그가 이 땅에 오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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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9 views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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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함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함이다.
그 이튿날에는 명절에 온 큰 무리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는 것을 듣고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예수는 한 어린 나귀를 보고 타시니
이는 기록된 바 시온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의 왕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 함과 같더라
제자들은 처음에 이 일을 깨닫지 못하였다가 예수께서 영광을 얻으신 후에야 이것이 예수께 대하여 기록된 것임과 사람들이 예수께 이같이 한 것임이 생각났더라
나사로를 무덤에서 불러내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실 때에 함께 있던 무리가 증언한지라
이에 무리가 예수를 맞음은 이 표적 행하심을 들었음이러라
바리새인들이 서로 말하되 볼지어다 너희 하는 일이 쓸 데 없다 보라 온 세상이 그를 따르는도다 하니라
이번주는 종려주일이라고 합니다. 종려주일이 뭐냐면, 예수님께서 크게 갈릴리 지역과 예루살렘 지역을 중심으로 제자들을 모으시고 가르치셨고, 물로 포도주를 만드시고, 병든 자들을 고쳐주시고, 귀신을 쫓아내시고, 오병이어로 오천명을 먹이시고, 물 위를 걸으시고, 죽은 자(나사로)를 살려주시는 등의 사역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사역을 하시면서 예수님은 보통 사람들을 조용히 시키셨어요. 자신이 메시아임을 드러내지 않고 오히려 감추셨죠. 그러다가 베드로의 고백을 통해서 예수님이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만천하에 공개하셨어요. 그리고 드디어 때가 이르자 예루살렘에 들어가시게 됩니다. 이에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하나님에게 자기들의 옷을 깔고, 종려나무를 들고 호산나 외치며 주님을 환영합니다. 1-2절을 한번 읽어볼까요? 요 12:12-13
그 이튿날에는 명절에 온 큰 무리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는 것을 듣고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이 사건을 기념하는 주일이 바로 종려주일입니다. 메시야가 드디어 예루살렘에 들어오는 것을 환영하고 기념하는 것이죠.
본문에서는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에 대한 3그룹의 반응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바로 무리들, 제자들, 바리새인들입니다. 사실 이들 모두가 다 예수님에 대해서 잘 몰랐습니다. 각자의 이유를 가지고 예수님을 따랐거나 거부했죠.
가장먼저 무리들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무리들은 어떻게 반응하고 있나요? 바로 종려나무를 들고 호산나를 외치며 환영합니다. 종려나무 가지는 승리와 왕권을 나타냅니다. 고대 사람들이 자기의 옷과 나무를 바닥에 까는 행위는 왕을 환영하는 의식이었습니다.(왕하 9:13) 그리고 예수님을 향해 호산나를 외칩니다. 이는 시편 118:25 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이제 구원하소서 여호와여 우리가 구하옵나니 이제 형통하게 하소서
호산나란 이제 구원하소서 라는 뜻을 가집니다.
무리들의 반응을 정리하자면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을 왕으로, 메시야로 받아들이고 환영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환영해야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신자인 우리는 예수님을 왕으로 그리고 메시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예수님을 향해 우리를 구원해주세요. 당신은 우리의 왕이시며, 구원자 이십니다 라고 합당한 고백을 해야하는 것이죠.)
근데 여기에 하나의 문제가 있어요. 18절을 읽어볼까요?
이에 무리가 예수를 맞음은 이 표적 행하심을 들었음이러라
무리가 예수님을 환영한 이유는 죽은 자를 살리셨다는 것을 들었기 떄문입니다. 그들은 그들이 생워하고 원하는 왕의 모습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가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했죠. 문제는 그들이 생각한 메시야랑 예수님의 모습이 달랐다는 것입니다. 당시 사람들이 기대한 메시야는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바로 다윗 왕같은 메시야를 기다렸어요. 막강한 군사력과 힘을 가지고 로마로부터 해방시켜서 다윗 왕이 누렸던 그 태평성대를 누리게 할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죠. 그런 상황에서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으니 어때요? 일단 오병이어로 5천명을 먹여 살렸대요. 더 이상 우리는 경제적으로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무한 핵 버그가 있거든요. 또 병든 자를 고치시고, 죽은 자를 살린데요. 최강 군대가 형성되는거에요. 싸우다가 손이 잘리면 예수님이 다시 붙여줄 거니까요. 죽어도 괜찮아요. 예수님은 다시 살릴 수 있잖아요. 아! 나사렛 예수가 우리가 기대하고 고대하던 메시야구나! 생각한 거에요. 이제 예루살렘에 왔으니 왕으로서, 메시야로서 로마를 물리치고 막강한 나라를 세울거야 라고 생각한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환영한 거에요. 이 뉘앙스는 마치 오병이어 사건에서 무리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삼은 이유가 예수님이 왜 이땅에 오셨는지 알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그들이 떡을 먹고 배가 불렀기 떄문이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과 똑같아요.(요 6:26)
무리들이 예수님을 따른 이유는 예수님을 통해서 자신의 상황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메시야가 있었어요. 나를 로마로부터 해방시켜줄 메시야. 나의 상황과 환경으로부터 구원해줄 메시야를 예수님에게 대입한 것이죠. 여러분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예수님을 예배하고 찬양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하나님의 전지전능함을 가지고 나의 소원을 이루기 위함이 아닌가요? 하나님을 믿음으로 나의 환경과 상황을 바꾸기 위함이 아닌가요? 하나님을 믿으면 내 배가 부르기 때문이 아닌가요? 여러분 예수님이 이땅에 오신 이유는 우리의 배를 부르게 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며 성공하고 떵떵가리며 살게 해주려고 오신게 아닙니다.
그 다음으로 제자들을 살펴볼까요? 제자들의 모습은 어떠했을까요? 제자들은 무리들과 달랐을까요?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나귀를 타셨어요. 이는 슥 9:9 의 예언을 성취하기 위해서였죠.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예수님은 이를 통해서 자신을 공의로 구원을 베푸시는 겸손의 왕으로 보여주신 거에요. 그러나 제자들은 이 사실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16절을 읽어볼까요?
제자들은 처음에 이 일을 깨닫지 못하였다가 예수께서 영광을 얻으신 후에야 이것이 예수께 대하여 기록된 것임과 사람들이 예수께 이같이 한 것임이 생각났더라
제자들 역시 예수님에 대해서 무리들과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었어요. 예수님을 막강한 군사력을 토대로 로마로부터 해방시키고 다윗 때와 같은 나라를 세울 왕으로 생각했던 것이죠. 그들은 예수님이 세우실 나라에 대해서 한 자리르 차지할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끼리 누가 제일 크냐?(막9:34) 싸우고, 주의 나라 들어가면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임명해달라고(마 20:20-21) 한 것이죠. 제자들 역시 동상이몽 즉, 다른 생각과 다른 꿈을 가지고 예수님을 따랐던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에는 진짜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자들도 있지만, 교회를 다님으로 오는 이익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에 오면 친구들이 있잖아요. 형 누나, 언니 오빠들과 관계를 맺는게 재밌어서 오는 거죠. 오면 사람들이 다 저를 칭찬해주고 이뻐해주니까. 또 만약 저희 교회가 대형교회였다면, 경원이형입장에서 너무 좋겠죠? 코웨이 들어줄 사람들이 많아지는거잖아요. 또 결혼한다고 생각해봐요. 2-300명이 한가정씩만 와도 축의금이 얼마에요? 그래서 예수님을 따를 수 있는거죠. 예수님을 믿음으로, 교회에 다님으로 이익을 얻기 위함인 것이죠.
그러나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이유가 우리에게 한 자리를 주기 위해서, 어떤 복을 주고,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닙니다.
마지막 바리새인들의 모습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잡아드리려고 혈안이 되어있던 사람들이었어요. 그들은 거룩한 자라는 뜻으로 율법을 철저히 지키며 거룩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자들이었어요. 그들은 율법해석에 권위를 가졌고 사람들의 존경과 인정을 받게 되었어요. 그런데 예수님이 오면서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말하고, 자신들을 비판하는 거에요. 사람들이 더이상 자신들이 아닌 예수님을 따르게 되는 거에요. 이에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잡아들이려고 했어요. 19절을 읽어볼까요?
바리새인들이 서로 말하되 볼지어다 너희 하는 일이 쓸 데 없다 보라 온 세상이 그를 따르는도다 하니라
즉, 이러한 말이에요 바리새인들이 서로 이야기하기를 야 예루살렘에 예수가 오면 바로 잡아들이려고 했는데 사람들이 그를 너무나 많이 따르니까 그를 잡아들일 수 없겠다. 안되겠다 라고 한겁니다.
오늘 이자리에 있는 여러분은 당연히 이런 모습이 없겠지만 예수님이 이땅에 오셨을 때 그분을 나의 구원자로 받아들이지 않고 거부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예수님은 이 땅에 왜 오셨을까요? 23-24절을 읽어볼까요?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예수님은 바로 십자가에 죽으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거에요.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깨어졌던 관계를 회복시기키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겁니다. 예수님이 밀알이 되어 썩어지면 그로인해 많은 생명이 열매로 드러나게 되는 것이죠.
예수님은 우리를 살리기 위해 예루살렘에 죽으러 오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군중들과 제자들이 생각하고 기대하는 바와 다르게 예수님은 죽기 위해 오신 것이죠. 예루살렘에 오신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십니다. 은 30애 팔려가신 예수님은 채찍질을 당하시고 조롱과 멸시 핍박을 당하시며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십니다. 사 53:5 읽어볼까요?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예수님이 채찍질 당하시고 찔림을 당하시며 고난 받으신 이유가 바로 우리의 죄 때문이라고 이사야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가 우리를 대신해 고난을 당해야만 우리가 평화를 얻고, 그가 고난을 당해야만 우리가 나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자신의 몸을 밀알로 내어주심으로 우리가 살게 된 것이죠. 사 53:5 을 다시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우리의 죄 때문에 예수님께선 징계를 받으시고 찔림을 받으셨습니다. 그런데 그가 그렇게 하심으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은혜로 담대히 나아갈 수 있게 되었으며 다시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를 바울은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롬 8:2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어 생명의 성령의 법에 들어갔다. 이제는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과 평안과 안식과 기쁨을 누리며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바로 이를 위해서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하려고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소원, 성공을 이뤄주시기 위해 오시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오늘날 이땅에서 잘먹고 잘살며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존경받게 하려고 오신 것이 아닙니다. 보다 본질적인 이유 곧 우리의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서 죽으러 오셨습니다.
여러분 월요일부터 고난주간입니다. 한주간 예수님의 고난과 고통, 얼마나 아프셨을까? 고민하는 것보다(물론 이것도 생각하면 좋죠) 하나님이 나를 살리기 위해 이땅에 오셨다는 것을 묵상했으면 좋겠습니다. 나를 살리기위해, 나를 구원하기 위해, 나와 교제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자신의 몸을 내어 주셨다는 것을 묵상했으면 좋겠습니다. 한 주간 하나님의 극진한 사랑을 묵상하며 그 사랑을 깨닫는 다윗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이시간 함께 찬양할까요. 그가 이 땅에 오신 이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