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유하신 그리스도

팔복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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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유가 설 자리를 잃어가다

작년 연말, 테슬라의 최고경영자인 일론 마스크는 무려 3,700명이나 되는 트위터 직원들을 해고했습니다. 그는 한화로 매일 약 50억 가까이되는 재정 손실이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대량 해고가 불가피했다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그의 냉정한 결정으로 인해서 하루 아침에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게 되었습니다. 운영자의 입자에서 매일 50억나 되는 손실을 감수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일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조금더 온유한 마음으로 직원들을 생각했다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하루 아침에 일자리를 잃게되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성과 위주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온유함은 대기업 회장에게는 그리 중요한 덕목이 아닐 수 있습니다.
반면에, 비영리 기독교 단체를 운영하는 크레이그 힐이라는 사람은 온유한 사람이 진정한 부자라고 말합니다. 그가 쓴 '다섯 가지 부위 비결'이라는 책에서 그는 현금 여력과 시간적 여유를 가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자기를 위한 소비를 제한하는 것이 온유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것으로 다른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는것 그것이 온유함이고 그런 사람이 정한 부자라고 그는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온유는 힘이 있거나 많이 가진 사람이 연약하고 적게 가진 사람에게 베푸는 호의가 아닙니다. 온유는 단순히 동양철학에서 말하는 도덕적인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온유는 사실 그리스도인이 아니어도 얼마든지 가질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말하는 온유함은 무엇일까요?
온유함을 다시 세우다
성경이 말하는 온유는 심령의 가난함, 애통함과 마찬가지로 일차적으로는 나 자신과 하나님과의 관계에 관한 것입니다. 나 자신과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안에서 온유한 자가 약속하신 땅을 기업으로 얻는 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성과와 결과 위주의 자본주의 세상에서 성경이 말하는 온유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까? 어떻게 힘이 없고 시간과 돈과 에너지가 없어도 온유한 자로 살아갈 수 있습니까? 우리는 먼저 나에 대해 온유해야 하며 하나님에 대해 온유하고 무엇보다 온유하신 그리스도를 구해야 합니다.

자신에게 온유하지 못했던 모세

출애굽기 2장에서 모세는 곤경에 처한 히브리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이집트 사람을 쳐 죽입니다.
[출 2:11-12] 11 모세가 장성한 후에 한 번은 자기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들이 고되게 노동하는 것을 보더니 어떤 이집트 사람이 한 히브리 사람 곧 자기 형제를 치는 것을 본 지라 12 좌우를 살펴 사람이 없음을 보고 그 이집트 사람을 쳐 죽여 모래 속에 감추니라
모세가 이렇게 행동했던 이유는 그의 불같은 성격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무리 자기 동족을 괴롭힌다고 할지라도 사람을 쳐 죽이는 일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굉장히 다혈질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모세의 이러한 성격은 이스라엘 백성이 므리바에서 물이 없다고 불평할 때, 하나님의 명령대로 바위를 명해서 물을 내게 하지 않고 자신의 손에 쥐고 있던 지팡이로 바위를 두 번 쳐서 물을 낸 모습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그가 사람 한 명쯤은 죽일 수도 있을 만큼의 큰 권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모세는 이집트 왕족으로서의 1) 권력을 갖고 있었고 2) 이집트의 고등 교육을 받았으며, 3) 군대를 이끄는 강력한 전사였다고 말합니다. 모세는 이집트의 왕자로 성장하며 이집트의 부와 권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세가 이집트 사람을 쳐 죽이고 모래 속에 묻은 이유는 성격 때문도 아니고 그가 가진 힘 때문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 온유하지 못했기 문입니다.
모세는 비록 이집트의 왕자 신분으로 자신이 원하는 일들을 대부분 할 수 있었지만, 그는 여전히 모든 일에 철저히 하나님을 의지하는 온유한 사람이어야 했습니다. 모세가 자신에게 온유하지 못했다는 것은 그가 자기 힘으로 백성을 구해보려고 했다는데 있습니다.
힘 빼기
운동에서 경지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힘주기 만큼이나 힘 빼기가 중요합니다. 힘 빼기가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은 월드컵 경기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월드컵은 세계적인 축제로, 각국의 최고의 축구 선수들이 참가합니다. 그래서 월드컵에서 골을 넣으면 그 선수는 즉시 스타가 됩니다.
그러나 세계적인 스타 선수들 가운데도 골대 앞에서 하늘로 솟구치는 똥볼을 차는 모습을 간혹 볼 수 있습니다. 과거 한국 축구 국가대표 선수들은 이러한 모습을 자주 보여줬습니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밥만 먹고 공 차는 사람들이 그런 실수를 하는 것이 쉽게 이해되지 않지만 이렇게 골대 바로 앞에서 공이 위로 솟구치는 이유는 공을 차는 선수의 발에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발등에 정확하게 공이 임팩트가 돼야 하는데 과도한 힘이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세계적인 축구 선수들이 이러한 실수를 하는 이유는 기술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심리적인 문제입니다. 골을 반드시 넣어야 한다는 욕심, 이 골만 넣으면 영웅이 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발에 힘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제가 중학교 때 첼로를 배웠던 적이 있는데 개인지도 시간에 선생님께서 항상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깨에 힘을 빼라는 것입니다. 우리 생각에는 힘을 줘야 크고 웅장한 소리가 날 것 같지만, 힘을 빼야 아름답게 소리가 나고 그 소리가 멀리까지 퍼져 나가게 됩니다. 운동이든 음악이든 혹은 다른 분야에서든 경지를 넘어서려면 힘을 쓰는 것보다 힘을 빼는 것을 잘해야 합니다.
신앙의 힘 빼기, 낮아짐의 축복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힘주기와 힘 빼기를 잘해야 온유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언급하는 온유는 가난, 겸손, 낮음이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가난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무언가를 할 수 힘과 능력이 있지만 겸손한 마음으로 내려놓는 것을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온유는 하나님 앞에서 “나는 할 수 없습니다.”라고 고백하는 완전한 낮아짐입니다. 히브리 기자는 이처럼 낮은 자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히 7:7] 논란의 여지없이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서 축복을 받느니라
하나님께서 약속하시는 땅을 기업으로 얻는 자는 땅의 소유자이신 하나님 앞에서 철저하게 낮아진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온유한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수평적으로 다른 사람을 온유하게 대하기 이전에 수직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철저히 나를 낮추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온유함

하나님 앞에 나 자신을 낮추는 온유함을 회복했다면 이제 우리는 하나님을 향하여 온유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온유난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 설정이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화려했던 왕궁의 생활을 뒤로하고 지극히 평범함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이집트의 왕자였던 모세는 바로 가 자신을 죽이려 하자 이집트를 떠나 미디언 광야로 피신하였습니다. 미디언 광야에서 모세는 육체노동을 하고, 양을 돌보기 위하여 거친 날씨와 싸워야 하는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풍요로운 이집트에서의 생활과 비교하면 광야에서의 삶은 너무나 힘들고 괴로운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모세는 이 시간을 통하여 철저히 자신의 무능함과 연약함을 아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모세는 40년의 광야 생활을 통해 하나님의 낮추심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여전히 온유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여러 차례 거절했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여러 차례 거절한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첫째, 그는 그 누구보다 자신이 무능하고 연약한 존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 입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모세의 첫 번째 반응은 “내가 누구이기에”라는 것이었습니다. 둘째, 그는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의 말을 믿지도, 듣지도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더욱이 그는 기력이 다 빠진 80세의 노인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세 번째 거절에서 하나님께 보낼 만한 사람을 보내라고 말합니다.
모세는 자신의 한계를 알았고 사람들의 생각을 알았습니다. 그는 스스로 이 일을 할 수 없는 자라는 점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모세의 이러한 태도가 바로 그가 하나님을 향하여 온유하지 못한 것입니다.
얼핏 보면 모세의 이 반응은 굉장히 겸손한 태도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모세는 온유한 사람이 가지는 겸손과는 거리가 먼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모세 스스로 이 일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결코 스스로 설 수 없는 존재입니다. 오직 스스로 계신 하나님께서 그를 붙드셔야만 살아갈 수 있는 존재입니다.
성경에서 온유하다는 것은 가난, 겸손, 낮음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잘 길들여진 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잘 길들여진 종은 주인의 말에 토를 달지 않습니다. 잘 길들여진 종은 주인의 명령에 절대 순종합니다.
온유한 사람은 내가 스스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주인이 명령하시면 행하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태생적으로 아무리 온유하고 겸손한 성품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온유한 사람이 아닙니다.
내 인생의 주어, 동사가 하나님으로 바뀔 때
오늘날 교회 안에서 순종이라는 단어는 긍정적인 이미지보다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더 강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따르기 원하는 제자에게 순종은 거리끼는 것이 아닌 기쁨이 되어야 합니다.
이재철 목사님이 쓰신 ‘주님의 교회’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이 땅에 있는 모든 교회는 누구에 의해 세워졌든, 누가 교인이든 상관없이 모두가 주님께서 주인이신 주님의 교회입니다. 어느 교회이든 특정인이, 사람이 주인인 교회는 주님의 교회일 수 없습니다. 교회는 건물이나 제도가 아니라,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는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했습니다. 내가 섬기는 교회가 주님의 참된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나 자신이 주님만을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내 인생의 주어를 하나님으로 삼고, 나는 그 주어의 동사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동사는 언제든지 주어에 종속되어 있습니다. 동사는 결코 주어를 지배하려 하지 않습니다. 동사는 주어를 자기 동작을 위한 수단과 방법으로 삼지 않습니다. 동사는 언제나 주어에 순종합니다.
순종, 내 삶의 주어와 동사 바꾸기 연습
내가 라는 말을 삭제하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온유는 하나님이 내 인생의 주어가 되시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제 주어를 바꾸는 연습을 합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삶에 '내가'라는 말을 빼야 합니다. '내가'라는 말이 들어가는 순간부터 우리는 온유를 잃게 됩니다. 그러면 인정받으려고 하고 주위 사람들을 힘들게 만듭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온유함

우리는 나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알고 나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철저히 낮추는 온유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내 기준과 상황으로 볼 때는 불가능해 보여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기꺼이 순종하는 온유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처럼 온유한 사람이 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40년을 광야에서 연단받은 모세조차 온유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무엇보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온유하심을 의지해야 합니다. 모세는 자기 자신을 지상에서 가장 온유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민 12:1-3] 1 모세가 구수 여자를 취하였더니 그 구수 여자를 취하였으므로 미리 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박하니라 2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 하매 여호와께서 이 말을 들으셨더라 3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모세는 구수 여인을 아내로 삼아서 자신의 누이인 미리 암과 아론에게 비난을 받습니다. 미리암과 아론이 한 비방은 단순히 잘못을 지적하는 정도의 비방이 아니었습니다. 비방하다는 말은 히브리어 동사로 다바르라는 말인데 이것이 피엘 형으로 쓰였을 때는 몰아내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미리암과 아론은 모세를 공동체로부터 몰아내려는 의지를 갖추고 모세를 비방하였습니다. 비록 형제지만 그들의 말은 상당히 거칠고 공격적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만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까?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의 비방에 이어서 모세의 이 고백이 나옵니다.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70인 경을 영어로 번역한 성경 버전에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Now the man, Moses, was exceedingly meek, more than any humans existing on the earth.”
exceedingly meek 그는 자신을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이 땅에서 가장 온유한 사람, 가장 가난하고, 겸손하며 낮은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온유하지 못했던 모세가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이 땅에서 가장 온유한 사람이라고 고백을 살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온유하신 하나님이 그의 온유함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민 12:4-14] 4 여호와께서 갑자기 모세와 아론과 미리 암에게 이르시되 너희 세 사람은 회막으로 나아오라 하시니 그 세 사람이 나아가매 5 여호와께서 구름 기둥 가운데로부터 강림하사 장막 문에 서시고 아론과 미리 암을 부르시는지라 그 두 사람이 나아가매 6 이르시되 내 말을 들으라 너희 중에 선지자가 있으면 나 여호와가 환상으로 나를 그에게 알리기도 하고 꿈으로 그와 말하기도 하거니와 7 내 종 모세와는 그렇지 아니하니 그는 내 온 집에 충성함이라 8 그와는 내가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하지 아니하며 그는 또 여호와의 형상을 보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내 종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모세의 누이와 형의 평가와는 다르게 하나님은 모세를 내 온 집에 충성한 자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대로 민수기는 모세가 쓴 책 중의 하나입니다. 이 대목에서 모세가 자신의 온유함을 드러내고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결코 자신의 겸손함이나 순종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온유하지 못한 자를 온유함으로 이끌어오신 하나님의 온유함 때문이었습니다.
어깨 바꾸기
얼마 전 제가 전도사 때 섬기던 남서울 밀알 교회 정종남 목사님께서 갑자기 소천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한번 찾아봬야지 했었는데 결국은 뵙지 못하고 목사님을 먼저 보내드렸습니다. 정 목사님은 죄송한 이야기지만 조금 괴짜 같은 성격을 가지고 계십니다. 열심히 준비했는데 갑자기 하루아침에 뒤집기를 잘하시던 분이셨습니다. 말씀도 직설적으로 강하게 하시는 편이고 성도한테 서운하시면 말도 안 하시는 분이셨습니다. 보통 우리가 어디에 식사를 하러 가면 담임목사님이 장로님들하고 한 테이블에 앉습니다. 그러나 정 목사님께서는 교회를 정말로 충성 되게 섬기시는 장로님들과도 겸상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럼에도 장로님들이나 그 교회의 성도님들이 교회를 떠나지 않은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목사님의 말씀 때문이었습니다. 서운한 감정이 들어도 목사님의 말씀에 은혜를 받으니까 다 치유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목사님이 갑자기 돌아가시고 교회 홈페이지에 추모 영상이 올라와서 보게 되었습니다. 그 영상에는 목사님께서 소천하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전하셨던 설교의 한 부분이 담겨 있었습니다.
이 말씀으로 말씀을 전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담임목회를 시작하면서부터 한 주도 주님 앞에 그만하겠습니다.라는 말을 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내 어깨로는 감당이 안 됩니다. 여러분 어깨를 바꿔야 합니다.” 저는 말씀을 준비하면서 정 목사님께서 정말로 온유한 분이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자신의 어깨를 의지한 것이 아니라 주님의 어깨를 의지해서 마지막 은퇴를 앞둔 주일까지 맡겨진 사명을 감당하셨기 때문입니다.

온유하신 그리스도

오늘 본문은 그 어느 때보다 제 안에 더 많은 고뇌가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 앞에서 온유하지 못한 저의 모습이 말씀 앞에 너무도 적나라하게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저의 온유함을 의지하지 않고 온유하신 그리스도를 의지하며 나아갈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나의 온유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온유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오직 온유하신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한 일입니다.
마태복음 11장 29절~30절에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온유하지 못했던 모세가 이 땅에서 가장 온유한 사람이라고 고백할 수 있는 이유는 그를 대신하여 그의 멍에를 지신 하나님의 온유함 때문입니다.
우리 또한 주님께서 나를 대신하여 메신 멍에에 기대어 마음에 평안과 쉼을 얻고, 온유한 자에게 약속된 땅의 축복을 누리는 인생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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