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원의 날이 이르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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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심판, 하나님의 일 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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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원의 날이란?

저는 오늘 여러분들과 함께 “신원의 날이 이르기 전에”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 나누겠습니다. 여러분 신원이라는 말은 “원통한 일이나 억울하게 뒤집어 쓴 죄를 푸어 버릴 때”사용하는 단어입니다. 즉 신원의 날이란 성도가 믿음을 지키며 살다가 당하는 재난이나 환란 또는 시험등을 통해 어려움을 겪게 되는 데 그러한 어려움들 가운데에서도 바른 믿음을 지키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여려움과 환란 그리고 그 눈에 맺힌 눈물을 마지막 때에는 반듯이 벗겨주시고 닦아 주시는 날을 가리켜 말씀합니다.
즉 신원의 날은 세상 끝날 때를 가리켜 말씀하고 있는 날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 신원의 날에 많은 사람들이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재난과 환란 그리고 자기중심성의 죄의 유혹 앞에 하나님의 뜻 보다 육체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따라 살아 가게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현실입니까? 여러분 신원의 날이 이르기 전에 한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뜻 대로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고결하고 가치가 있으며 행복하다는 사실을 저와 여러분들이 이루고 있는 한밭제일의 공동체를 통해 알려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요엘 3:14
Joel 3:14 NKRV
사람이 많음이여, 심판의 골짜기에 사람이 많음이여, 심판의 골짜기에 여호와의 날이 가까움이로다
심판의 골짜기는 어떠한 특정적 장소를 가리켜 말씀하는 게 아닙니다. 이 골짜기는 불특정 다수를 심판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심판대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의 사람과 한국의 사람 모두를 동시 다발적으로 심판할 수 있는 심판대를 가리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엘선지자는 그 앞에서 이와 같이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날이 가까이 옴이로다”
여러분 “여호와의 날이 가까이 옴이로다”어디서 많이 들어보았던 메세지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요엘선지자가 시종일관 외쳤던 메세지입니다. 요엘 1:15
Joel 1:15 NKRV
슬프다 그 날이여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나니 곧 멸망 같이 전능자에게로부터 이르리로다
요엘 선지자는 요엘서 1장을 통해 여호와의 날이 가까이 왔다고 말하며 그 전조 증상으로 다양한 재난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그 중 압권 재난은 메뚜기 재난이었습니다. 그 재난은 지속적 반복적으로 일어날 것이라고 말씀했었습니다. 요엘서 2장 4절 말씀을 읽어 보시면 그 재난의 성격이 잘 기록돼 있습니다. 팥중이가 남긴 것을 메뚜기가 먹고 메뚜기가 남긴 것을 느치가 먹고 느치가 남긴 것을 황충이 먹게 된다고 말씀합니다. 메뚜기 재난도 네차례나 반복적으로 일어날 것이라는 예언이었습니다.
메뚜기 재난 때 까지만 해도 여호와의 날은 곧 이르게 될 것이라는 예언이었습니다. 즉 여호와의 날이 아직 이르지 않았다는 말씀이겠지요. 하나님께서 여호와의 날을 유예 시키는 이유는 단 한 사람이라도 그 재난 앞에 준비 시키시어 그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재난 이라는 징조를 통해 곧 여호와의 날이 임하게 될 것이니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그 날을 기다리고 준비하는 삶을 살라고 요엘 선지자는 말씀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재난은 그저 재난으로만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삶의 방식을 전혀 바꾸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옷도 찢지 않았고, 나아가 가슴도 찢지 않았습니다. 결국 많은 사람들이 준비 되지 않은 가운데 여호와의 날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요엘 2:1
Joel 2:1 NKRV
시온에서 나팔을 불며 나의 거룩한 산에서 경고의 소리를 질러 이 땅 주민들로 다 떨게 할지니 이는 여호와의 날이 이르게 됨이니라 이제 임박하였으니
여호와의 날이 이르게 되니 이제서야 그 앞에서 떠는 사람들이 나타났던 것입니다. 남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와 남유다 백성들은 여호와의 날이 임하여 결국은 바벨론의 네차례의 공격을 받고 1년 넘게 버티다가 결국 주전 586년에 점령 당하고 맙니다. 독이 오를 때로 오른 바벨론은 남유다 백성들을 처참하게 살육했습니다.
여호와의 날은 누군가에게는 심판의 날이지만 준비된 자들에게는 은혜의 때이기도 합니다. 요엘선지자는 여호와의 날이 도래하면 성령 하나님께서 옷을 찢으며 겉치레로 회개했던 자들을 돌이키시사 가슴을 찢게 만드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 많은 제사와 의식을 통해 옷을 찢었습니다. 그들은 구제와 금식을 통해 옷을 찢었습니다. 그들은 십일조와 예물을 통해 옷을 찢었습니다. 그들은 수 많은 번제와 화목제 요제와 거제를 통해 옷을 찢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삶은 늘 변화가 없었습니다. 종교생활은 의식과 형식으로 시작하여 끝났습니다. 그러한 삶의 염증을 느꼈던 한 유대 관원이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 갔습니다. 자신은 배울만큼 배웠고, 유대 관원이었기 때문에 지위도 어느 정도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마음은 허무했습니다. 늘 옷만 찢는 종교 행위는 허무 그 자체였습니다. 그 사람의 이름은 니고데모였습니다. 그가 비록 주위 사람들의 눈을 피해 밤에 예수님을 찾아 갔지만 예수님 앞에서 그 마음을 찢게 되는 은혜를 경험한 이후 대 낮에도 예수님을 시인하고 그의 편을 드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구약의 백성들은 마음을 찢고 싶어도 그 마음을 위로해 주고, 변호해 주시고, 깨닫게 해주시는 성령님께서 그들과 영원토록 동행하지는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메시아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짊어 지시고 인류의 죄를 사하시는 사건이 아직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백성들은 하나님에 대한 사진 한 장을 들고 제한적인 신앙생활을 했다면 저와 여러분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 성령께서 우리 마음 가운데 역사하시어 동영상을 보면서 하나님을 알아갈 뿐 아니라 실제 하나님을 말씀을 통해 경험하기까지 하는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 예언을 요엘은 요엘서 2장에 말씀했던 것입니다. 요엘 2:28-31
Joel 2:28–31 NKRV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하려니와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시면 옷을 찢기보다 가슴을 찢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요엘 2:13
Joel 2:13 NKRV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여러분 하나님의 심판, 즉 여호와의 날은 은혜의 날입니다. 그 날은 하나님을 믿고 가슴을 찢었던
사람들을 반드시 신원하시는 날이 바로 여호와의 날인 것입니다.
성경은 여호와의 날이 임하기 전에 다양한 재난이 있을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그 예언은 역사를 통해 사실로 증명 됐습니다. 메뚜기 재난은 실제 일어 났고, 현대에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로인해 요엘서 2장에서 말씀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심판하신 여호와의 날이 실제 역사 가운데 일어나 북 이스라엘과 남유다 백성들은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여호와의 날은 누군가에게는 멸망의 날이지만 신앙의 명맥을 유지한 소수자들에게는 은혜의 날인 것입니다. 성경은 심판에 대한 예언 그리고 심판 전 다양한 전조들 재난이 될 수 있겠지요. 그리고 심판의 실행과 회복의 구도를 가지고 말씀합니다. 즉 요엘서 2장에 여호와의 날이 도래했지만
장차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드리고 그의 콧등을 찡하게 해드릴 마음으로 예배드리는 자들이 회복될 것을 또한 예언합니다. 그들의 특징을 요엘 선지자는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요엘 2:31
Joel 2:31 NKRV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하려니와
남유다 백성을 멸망시켰던 바벨론이 믿었던 달신 고대 중동 일대에 성행했던 태양신과 같은 문화와 사상을 장악했던 이방 종교와 학문 그리고 다양한 죄악들이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성령을 받은 사람들을 통해 변화된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이 성령의 임재의 예언 말씀에 기록돼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브살렙과 오홀리압과 같은 자들에게 성령으로 역사하시어 지혜를 주셨습니다. 삼손에게도 특별한 때에 힘을 쓰도록 하시기 위해 성령으로 역사하셨습니다. 하지만 구약 백성들이 경험한 성령님은 일시적으로 그들의 사역을 도우신 능력으로만 경험 되었습니다. 하지만 신약 교회를 이루어 가고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경험한 성령님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건을 우리 마음에서 확인하시고 우리 안에 들어와 영원토록 내주하실 뿐 아니라 우리와 영원토록 동행 그리고 교제하시는 인격자로 우리와 함께하고 계신 것입니다.
요엘서 2장은 앞으로 있을 여호와의 날을 예비할 존재들에게는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아 알 뿐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그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마음을 찢는 회개자들 예비하시어 이 깨어진 인류를 구원하겠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세상은 깨어졌습니다. 세상은 죄로 가득해 졌습니다. 자체 정화되는 에덴의 모습은 사라졌습니다. 코로나 19, 이상 기후 현상, 동성애, 전쟁등으로 지금도 세상 구석구석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 배후에는 악이 존재합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고 듣지도 못했던 악한 존재가 있고 그 악한 존재의 배후에는 더 악한 존재인 사단이 있습니다.
2017년도에 개봉한 영화인 더킹을 보시면 공권력을 얻는 길만이 세상에서 인정받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공부하여 검사가 된 조인성이 등장합니다. 조인성은 실제 검사가 되어 공권력을 얻습니다. 하지만 그 공권력은 더 높은 자리로 나아가기 위해 부조리한 방법으로 사용 됩니다. 그로인해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이 큰 피해를 봅니다. 영화는 공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들 간의 자리 다툼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판사, 검사, 정치인들과 같은 공권력을 쥐고 있는 자들이 세상을 주무르고 있는 것 처럼 보이지만 실제 그 공권력을 흔들고 있는 또 다른 세력이 있었습니다. 그 세력은 언론이었습니다. 언론사를 이끌고 있는 보이지 않는 거물들이 실제 눈에 보이는 공권력자들을 꼭두각시처럼 흔들 수 있는 보습이 영화에 등장합니다. 여러분 이 세상은 깨지고 깨진 세상입니다. 정의가 깨졌고, 불공정한 일들이 정치, 경제, 교육, 문화 모두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쉬지 않으시고 다양한 재난을 통해 인류에 하나님은 경고하고 계신 것입니다. 마지막에는 반드시 여호와의 날이 있을 것이다. 그 말씀이 바로 요엘서 3장의 말씀인 것입니다. 요엘서 3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받게 될 심판도 아니고 과거의 중동 일대에 존재 했던 악한 나라들을 한정한 심판도 아닙니다. 요엘서 3장에 등장하는 여호와의 날은 바로 성령 하나님을 통해 옷이 아닌 마음을 찢는 사람들의 공동체인 교회를 핍박하고 흔들어 놓는 자들을 향한 심판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오늘도 하나님의 백성들은 부조리한 경제 시스템 가운데에서도 믿음을 지키고 사회의 악과 싸우며 신앙을 지킵니다. 그런데 사회는 다양한 유혹으로 신앙인들을 흔들어 놓습니다. 공정한 거래를 하게되면 큰 손해를 보게 되니 신앙인들도 불법적인 거래를 시도하게 됩니다. 이를 부추기는 사회의 악한자들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정신을 지배하고 있는 영적인 악한 존재가 있습니다.
다양한 문화와 매체를 통해 사람들의 정신을 피폐하게 만드는 악한 존재들이 있습니다. 이들을 통해 뿌려진 다양한 책과 영상들을 통해 오늘도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믿음을 떠나는 일들이 발생합니다. 그렇다보니 이제는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가 분별이 되지 않을 때도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서도 특별히 믿는 자들을 유혹하여 넘어뜨리는 다양한 세력들에 대한 심판의 경고를 요엘서를 통해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참으로 악한 존재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심판을 받아 앗수르로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갈 때 다양한 이방 나라들은 믿음의 백성들을 유린했습니다. 요엘 3:2
Joel 3:2 NKRV
내가 만국을 모아 데리고 여호사밧 골짜기에 내려가서 내 백성 곧 내 기업인 이스라엘을 위하여 거기에서 그들을 심문하리니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을 나라들 가운데에 흩어 버리고 나의 땅을 나누었음이며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심판을 받을 때 그들을 더욱 유린한 백성들을 가리켜 말씀합니다. 대표적인 나라를 요엘 선지자는 4절 말씀에서 밝힙니다. 요엘 3:4
Joel 3:4 NKRV
두로와 시돈과 블레셋 사방아 너희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희가 내게 보복하겠느냐 만일 내게 보복하면 너희가 보복하는 것을 내가 신속히 너희 머리에 돌리리니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노예로 잡혀갈 때 남편은 이 나라에 부인은 저 나라에 자녀들은 또 다른 나라로 팔았던 사악한 무리들이었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사람을 돈으로 사고 파는 인신매매와 성적인 악한 죄를 저지르기도 했습니다. 요엘 3:3
Joel 3:3 NKRV
또 제비 뽑아 내 백성을 끌어 가서 소년을 기생과 바꾸며 소녀를 술과 바꾸어 마셨음이니라
여호와의 날은 수 많은 재난의 전조 후에 BC 722년 앗수르를 통해 북이스라엘 백성들과 BC 586년 바벨론을 통해 남유다 백성들에게 먼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그 여호와의 날은 구약 선지자들의 예언을 통해 2000년 전 예수님께서 마굿간에 태어나실 때 임하게 됩니다. 그로인해 사단은 머리를 밟히게 되어 큰 피해를 입게 되고,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사건을 통해 뒷꿈치를 사단에게 물리는 일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죽은 자 가운데서 사흘만에 살아나시는 부활을 통해 사망 권세를 이기신 유일무이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세상에 선포하셨습니다. 이제 마지막 남은 여호와의 날이 있습니다. 이 여호와의 날은 모든 사람을 심판하시는 날이기도 하겠지만 요엘서 3장의 배경을 통해 엿볼 수 있다면 그 날은 특별히 하나님의 백성들을 핍박한 나라와 민족 정신과 이데홀로기 사상과 철학을 심판하시는 날이될 것입니다.
그 날이 도래하기까지 정치 군사 교육 문화를 주관했던 세상 가치와 철학 이를 사회에 심어 놓았던 악한 자들 그리고 그 배후에 있는 영적인 존재들에 대한 심판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제가 앞전에 해와 달은 무엇을 상징한다고 말씀했지요? 맞습니다. 중동 일대에 성행했던 신들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돈과 명예 권세가 될 수 있습니다. 그 신들의 심판이 있는 날이 바로 여호와의 날인 것입니다. 요엘3:15
Joel 3:15 NKRV
해와 달이 캄캄하며 별들이 그 빛을 거두도다
해신도 달신도 하나님 앞에서 힘을 잃게 되는 날인 것입니다.
그 날에는 맹수의 부르짖음과 같은 호령이 하나님의 입을 통해 세상 곳곳에 울려 퍼질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은 그 소리에 놀라 얼굴이 하얗게 될 뿐 아니라 그 수치가 들어남으로 창피해 이 곳 저곳으로 숨어 들것입니다. 그러나....그러나...이 표현이 정말 좋습니다. 따라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나...그렇습니다. 이 표현은 반전의 표현인 것입니다. 그러나...요엘서 3장 16절에는 어떠한 반전이 있다고 우리에게 말씀합니까?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Joel 3:16 NKRV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부르짖고 예루살렘에서 목소리를 내시리니 하늘과 땅이 진동하리로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의 피난처, 이스라엘 자손의 산성이 되시리로다
그렇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의 피난처요, 산성이 되시는 분명한 날이 바로 여호와의 날, 신원의 날이 될 것이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권선징악의 심판이 있을 것이라는 분명한 말씀을 하십니다.
Joel 3:18–19 NKRV
그 날에 산들이 단 포도주를 떨어뜨릴 것이며 작은 산들이 젖을 흘릴 것이며 유다 모든 시내가 물을 흘릴 것이며 여호와의 성전에서 샘이 흘러 나와서 싯딤 골짜기에 대리라 그러나 애굽은 황무지가 되겠고 에돔은 황무한 들이 되리니 이는 그들이 유다 자손에게 포악을 행하여 무죄한 피를 그 땅에서 흘렸음이니라
에스겔 선지자가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통해 사방이 살아나는 것을 본 것과 같은 역사가 여호와의 날에 일어날 것이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이 보다 더 근본적인 생명의 물이었던 에덴 동산에서 네 근원으로 흘렀던 비손, 기혼, 힛데겔, 유브라데의 강을 통해 세상 곳곳에 생명이 가득한 모습이 회복될 것이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깨어진 세상은 사라지고 정의가 하수같이 흐르고 공의가 서는 그러한 나라가 도래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독사 굴에 어린이가 손을 넣어도 해를 당하지 않고, 사자들과 함께 뒹구는 평강의 나라가 여호와를 피난처로 삼고 그 분을 산성으로 삼는 신약 백성들에게서 이루어질 것이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이 깨어진 세상에서 수 많은 사람들이 오늘도 유린 당하고 상처를 받고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여호와의 날, 즉 신원의 날을 기다리는 저와 여러분들의 자세는 어떠해야 합니까? 이 세상의 삶은 헛된 것이고 저 세상의 삶은 영원한 것이기 때문에 내세만을 준비하는 태도를 가지고 신원의 날을 기다려야 겠습니까? 그렇다면 이 깨어진 세상은 더욱 깨어질 것이고, 악은 더욱 판을 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더 많은 사람들은 여호와의 날을 알지도 못하고 죽게 될 것입니다.
깨어진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고, 그 분을 산성으로 삼는 공동동체인 교회를 통해 세상은 여호와의 날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와 여러분들이 이루고 있는 교회가 사회의 조직에 불과하다면 어떻게할까요? 그저 개개인의 유익을 위해 모여 종교활동을 하고 있는 조직에 불과하다면 우리는 이 깨어진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으로 존재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모임이 조직인지? 공동체인지?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그 것은 여호와의 날이 도래하기 전에 전조인 다양한 환란, 재난 앞에서 그 모임이 움직이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조직은 관리를 위해 만들어 놓았기에 재난 상황에서는 움직이지 않는 게 특징입니다. 하지만 공동체는 재난 상황일 수록 움직이려고 하는 데 있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힘겨운 상황을 공감해 주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다양한 모습으로 움직이고 서로 돕고 사랑하고 있다면 그 모임은 조직이 아닌 공동체인 것입니다. 저는 저와 여러분들이 이루고 있는 한밭제일교회가 조직이 아닌 공동체이길 소망합니다. 그리고 저와 여러분들이 이루고 있는 목장이 조직이 아닌 공동체이길 소망합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 전도사님과 함께 조직의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는 목장이 없는지를 살피기 위해 목장 탐방을 하고 있습니다.
예배를 통해 받은 은혜는 교회 안의 교회인 목장을 통해 서로의 삶 가운데 실천이 있는 나눔으로
공유되어야 합니다. 그 나눔 안에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있고, 그 나눔 안에는 진실함이 있고, 그 나눔 안에는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다양한 재난 가운데서 저와 여러분들이 이루고 있는 공동체인 한밭제일교회 그리고 그 안에 작은 공동체인 목장을 통해 영혼들을 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목장 모임을 통해 영혼들을 구원했으면 합니다. 여러분들의 목장에 나온 사람들
한 분 한 분이 세상에 에워싸여 얼마나 영향을 받고 있는지, 얼마나 부족하고 약한지를 목장 모임을 통해 깨달아 알기를 소망합니다. 그 가운데 그리스도인은 깨지고 상한 세상, 마지막 심판이 유예된 세상에서 살고 있음을 서로 깊이 공감하게 될 것 입니다.
공감이 있는 목장 모임을 통해 깨어진 세상 속에서 힘겨워하는 수많은 영혼들을 살려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목장 모임이 필요한 것입니다.
Romans 12:15–16 NKRV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
이 같은 삶을 수백 수천 명의 군중과 함께하기는 힘듭니다. 공동체로 사는 것은 서로 책임감을 느기며 진실한 관계를 맺고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요엘서에 따르면 교회란 “여호와의 날”을 기다리며 피난처이자 요새인 여호와에게로 피한 사람들의 공동체입니다.
공동체의 단위 마태복음 18:20
Matthew 18:20 NKRV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목장 공동체는 이처럼 작은 단위로도 분가가 가능합니다. 12명이 넘으면 분가하면 됩니다.
적용
진실한 관계를 바탕으로 공동체의 삶을 배운 성도는 삶터와 일터에서도 진실한 관계를 맺고 공동체를 형성합니다. 동네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곁에 있는 사람들을 챙기고 섬깁니다. 따뜻한 미소, 격려 한 마디, 차 한잔으로 이웃을 돌아보는 삶이 그리스도인이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더 나아가 일터에 동료 그리스도인이 있다면, 아침이나 일주일에 한 번 모여서 기도하고 말씀 묵상을 나누며 서로 격려합니다. 하나님은 없다고 하는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기란 쉽지 않으므로 일터의 그리스도인과 연대해 더 넓은 범위에서 새 이스라엘로 살아갑니다. 그리스도인도 물론 연애, 취미, 연봉, 재테크 같은 주제로 이야기를 나눕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을 에워싸고 또 그 안에서휘젓는 세상의 가치관에 근거해서 이야기하지는 않습니다. “여호와의 날”을 기다리는 관점에서 생각을 나누고 서로를 위해 기도합니다. 작장에서는 일하고 돈 벌고, 집에서는 쉬고 잠자고, 교회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 예배하는 것이 오늘날 그리스도이들의 일반적 삶의 방식인지 모릅니다. 각 영역은 칸막이로 나뉜 채 서로의 경계를 침범하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은 교회에서 주일에만 합니다.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특별한 이유는 공공선이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는 데 있지 않고, 그보다 더 근본적입니다. 기독교인의 진정한 유기체적인 공동체의 특징은 하나님을 피난처와 요새로 사는 다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을 몸과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사랑하는 공동체인 것입니다. 이웃사랑과 사회 정의 구현은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은혜를 통해 진정성 있게 사회에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원의 날이 이르기 전에 진정한 공동체인 교회 그리고 교회 안의 교회를 통해 더 많은 영혼들을 구원하고 아울러 깨어진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으로 삶을 영위하시다 여호와의 날을 맞이하는 저와 여러분들의 삶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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