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이자 마지막 성만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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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tthew 26:26–30 NKRV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이에 그들이 찬미하고 감람 산으로 나아가니라
여러분들은 혹시 예수님처럼 내일 세상을 떠나야 한다면 오늘 무엇을 하고 싶으십니까? 아마도 평소에 가장하고 싶었던 일을 하실 겁니다. 대부분은 사랑하는 이들과 마지막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으실 겁니다.
오늘 본문은 자신이 곧 죽게 된다는 것을 알고 계신 예수님께서 정말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을 하십니다. 바로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식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3년 동안 함께 지내면서 사랑으로 양육했던 제자들에게 배신을 당할 것을 알고 계시면서도 그들과 마지막 만찬을 함께 하셨습니다. 심지어 이 만찬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제자들은 전혀 알지 못했고 오직 예수님만 알고 계셨습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마지막 만찬이자, 첫 번째 성만찬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후에는 그들과 함께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시게 됩니다. 오늘은 제자들과 함께한 마지막 만찬 자리에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만찬의 때는 유월절 절기였습니다. 아시다시피 유월절은 유대인들이 애굽의 종살이로부터 구원받은 것을 기념하는 날 아닙니까?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유월절은 아주 중요한 절기였습니다. 설날이나 추석 같은 명절에도 준비할 게 참 많은 것처럼, 유대인들에게 있어 유월절은 아주 철저히 준비해야 했는데요. 출애굽기 12장을 보면, 흠 없는 1년 된 어린양을 준비하고 무교병과 쓴 나물을 준비해야만 했습니다. 어린 양을 구울 기구도 필요했고, 빵 부스러기도 남기지 말아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곧 죽음이 다가옴을 알고 계시는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유월절을 보내며 저녁을 준비하도록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만찬을 준비하면 좋을지 묻는 제자들에게 18절을 보니까요. “성안 아무에게” 즉 예수님이 정하신 누군가를 만나도록 하십니다. 누가복음 10장의 기록에 보면 그 아무개는 물 한 동을 지고 가는 사람이라고 나옵니다. 예수님은 그의 다락방을 빌리게 하셔서 제자들과 유월절을 보내시는 거죠. 그리고 바로 그 다락방에서 예수님과 제자들의 마지막 만찬이자 첫 번째 성찬식이 시작됩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하는 마지막 만찬 자리에서 한 명 한 명을 쳐다보며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요? 아직은 마음이 놓이지 않고, 정말 어떨 때는 “누가 더 크냐?” 하면서 인정만 받으려 하고 자꾸 딴소리하는 제자들을 바라보며 어떤 마음이셨을까? 상상해 보는데요. 물가에 내놓은 철부지 같기도 하고 뭔가 복잡한 심경이셨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 명절날 가까운 지인이나 오래간만에 만난 친지들과 저녁 식사하는 분위기 어떠세요? 편하고 즐겁잖아요?
이날 유월절 만찬 자리도 그래야 하는 것 아닙니까? 평안해야 할 만찬 자리에서 느닷없이 “너희 중의 한 사람이 나를 팔 것이라(23절)”는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제자들과 처음 갖는 성찬의 자리인데, 참 어울리지 않은 폭탄같은 말씀 아닙니까? 제자들 입장에서는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아니, 진지한 표정으로 자신들 중에 한 사람이 배신자가 될 거라는데, 누가 ‘아~~ 그런가요?’하고 말겠습니까? 제자들은 몹시 근심하며 예수님께 “나는 아니지요?”라고 묻습니다.
여러분, 이 장면을 상상해 보세요. 열두 제자 중 그 누구도 “주님, 저는 절대 그럴 일 없습니다.”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그 성격 급한 베드로조차도 예전 같으면 “다른 제자들이 다 배신해도 저는 절대 그러지 않겠습니다” 이래야 맞잖아요? 그런데 그 베드로를 포함한 모든 제자들이 “주여, 나는 아니지요?(22절)” 이렇게 떨리는 목소리로 묻고 있는 거예요. 그만큼 예수님의 발언이 충격적이었습니다.
이틀 후면 잡혀가서 돌아가실 주님이 지금 어떤 마음이신지에 관심이 있지 않고 ‘혹시 그것이 나인가?’ 아직도 자신에게만 관심이 있는 제자들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가슴 아파하시면서 너희 중에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했을 때 가룟 유다 역시 되물었습니다. 25절
25 예수를 파는 유다가 대답하여 이르되 랍비여 나는 아니지요 대답하시되 네가 말하였도다 하시니라
그곳에 있는 예수님의 제자들은 저마다 “주여, 나는 아니지요?” 하고 묻지만, 유독 가룟 유다만 “랍비여 나는 아니지요?”라고 말합니다. 물론 유다를 제외한 제자들이 “주여, 나는 아니지요?”라고 물었을 때, 그들에게 온전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주여”라고 부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단지 랍비, 즉 선생이 아니라 주님이셨습니다. 하지만 유다에게 예수님은 주님이 아니라, 그저 선생일 뿐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때 유다가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진정으로 회개하기를 원하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네가 맞다”라고 말씀하셨지만, 유다는 그 마음을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듣지 못했어도 유다는 똑똑히 들었습니다. 하지만 요한복음 13장의 증언처럼 마귀가 벌써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님을 팔려는 생각을 넣었기 때문에 그는 자기가 할 일을 하고 말았던 것이죠.
여러분, 만일 주님께서 오늘 이 예배당의 저 가운데 통로에 서서 “너희 중에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라고 말씀하신다면 얼마나 당황스럽겠습니까? 자신 있게 “저는 아닙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있다면 정말 다행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유다가 예수님을 은 30에 팔 수 있었던 것도 주님이 아닌 랍비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랍비여, 안녕하십니까? (마26:49)” 자신의 스승을 부르며 팔아넘기고 맙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생각할 수 있지만, 인류 역사에 제자가 스승을 배신하는 경우는 종종 있었잖아요? 가룟 유다 자신은 오히려 자신의 스승이 잘못되었다고 여겼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은 그저 좋은 분, 혹은 선생으로 우리에게 오신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우리의 구원자가 되시고 주인이 되어 주시기 위해 자신의 살과 피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래서 요한일서 5장 12절은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요일5:12
1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여러분, 우리에게는 지금 생명이 있습니다. 생명이 있기 때문에 이 자리에 나온 것이죠. 그런데 생명(生命)은, 살 생(生)자에 목숨 명이라고도 하고 명령할 명(命)자를 씁니다. 생명은 그냥 어쩌다가 생긴 게 아닙니다. 어쩌다가 아메바가 되고 원숭이가 되고 그래서 생긴 게 아니라, 생명은 살라고 명령하시는 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누구도 예외 없이 우리 밖에서 누군가에게 생(生)하라고 명령을 받은 존재들입니다. 만일 생명이 내 것이고 누구의 명령도 필요 없다면 왜 내 몸 아픈 것 하나 내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겁니까? 생명이 내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생을 명하신 분이 누구신가? 그 생을 명하신 주인을 진정으로 만난다면, 가룟 유다처럼 ‘선생’으로만 알고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내 생명의 주인이 예수님이심을 진심으로 고백하는 믿음의 역사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폭탄 발언과 가룟 유다의 돌발 행동으로 긴장감 가득한 유월절 식사는 계속 이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나누어 주시는 제자들을 위한 처음이자 마지막 성만찬이 시작됩니다. 26-28절
26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27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몸을 상징하는 떡(즉, 빵)을 떼어서 주셨습니다. 그 빵을 먹음으로써 우리 모두가 영원한 빵이신 예수님께 생명을 공급받은 형제자매가 됨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성찬은 나 한 사람만을 위한 자리가 아닙니다. 적어도 명절에 함께 저녁 식사를 하는 관계라면 나와 소중한 관계에 있는 분들이잖아요? 나의 부모이며 형제자매들이죠.
여러분, 가톨릭에는 성례전이 일곱 가지 종류가 있지만, 우리 개신교에는 세례와 성찬 딱 두 가지입니다. 그것도 세례는 단 한 번으로 끝나니까, 성찬식만 유일하게 반복하는 거룩한 예전 아닙니까?
이 거룩한 자리에 “나는 아니지요?” 하면서 자기 중심성을 벗어나지 못한 그 열두 제자와 같은 저와 여러분들을 주님이 가족으로 초대해 주시고 빵을 나누어 주십니다. 그러면서 이 생명의 떡을 먹을 주시는 분이 누구인지를 공동체가 함께 믿고 고백하고 살아가라고 당부하시는 겁니다.
28절을 보니까, 이 포도주는 “죄 사함을 얻게 하는 예수님이 언약의 피”라고 하십니다. 제가 철없을 때는 “피”, “보혈” 이런 단어가 참 부담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어감이 좋지 않잖아요? 그러나 떡과 포도주를 받음으로 생명을 살라고 하신 분이 누구인지를 제가 깨닫고 나니까, 부담스러웠던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눈물 없이 마실 수 없는 성찬의 잔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잔을 가지시고 감사 기도를 하셨던 겁니다. ‘감사 기도하다’가 헬라어로 ‘유카리스테오’라고 하는데, 성찬식을 뜻하는 영어 단어 ‘유카리스트(Eucharist)’가 여기서 유래된 것입니다.
이렇게 처음이자 마지막 성찬을 경험한 제자들과 예수님은 겟세마네 언덕이 있는 감람산으로 올라가시게 됩니다. 30절
30 이에 그들이 찬미하고 감람산으로 나아가니라
새번역 성경으로 보면, “찬송을 부르고 (기도하러) 올라갔다”고 합니다. 아니, 여러분! 지금이 찬송이 나올 때입니까? 노래가 나올 때에요? 이게 예수님과 제자들의 마지막 여정이었습니다. 이제 몇 시간 후면 주님은 체포되어 밤새 심문받고 고문받다가 십자가에 달려 죽으셔야 합니다. 가장 고통스러워야 할 시간에 주님은 찬양을 하셨습니다. 가장 고통을 앞둔 시간에 찬양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 주님은 떡과 잔을 받으며 감사하며 찬양하길 원하십니다. 네가 어떤 마음인지, 어떤 상황인지는 모르지만, 이 시간에는 “주님과 함께 찬미하며 나아가라” 하십니다.
「지선아, 사랑해」라는 책을 쓴 이지선 자매님은 미국 UCLA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현재는 이화여대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그러나 보시다시피 그녀가 23살 때, 음주 운전자가 일으킨 교통사고로 전신화상을 입고 서른 번이 넘는 대수술을 받았지만, 결국 안면장애와 지체 장애 1급 진단을 받게 됩니다.
사고로 상한 피부를 걷어내는 첫 수술을 받았을 때는 중환자실에서 “지옥에서 들릴 법한 소리”를 들었다고 말하면서 “치료를 마치고 나오면 아픈 걸 어쩔 수 없어서 이를 떨었다”고 그녀의 어머니는 당시 고통스러운 상황을 회상했습니다.
그렇게 예기치 못한 사고로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을 때, 그것을 이겨낼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는 바로 가족과 지인의 기도 그리고 “넌 괜찮아”라는 응원의 눈빛이었다고 합니다. 참고로 그녀의 어머니는 성남 선한목자교회의 권사님이십니다.
당시 이 자매님이 치료 중에 처음 자신의 다리를 보게 되었는데, 살색이라고 부르는 피부가 없는 상태임을 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중환자실에서 한 분 한 분씩 유명을 달리하는 걸 계속 보면서 어떤 마음이 들었겠습니까? “엄마 내가 살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 같아. 우리 마음의 준비를 하자” 딸이 먼저 엄마에게 말을 했습니다.
보통 엄마 같으면 딸의 그런 절망적인 말을 듣고 얼마나 마음이 무너지시겠습니까? 그러나 이 교수님의 어머니는 그럴 때마다 딸의 입에 밥을 밀어 넣으면서 “이게 지선이 살이 되고 피부가 되게 해 주세요” “살이 되고 피부가 되게 해 주세요” 억지로 밥을 떠넘기면서 그렇게 기도하셨다고 합니다.
여러분, 이 딸이요. 엄마의 그 기도 소리와 밥을 받으면서 “내가 살아야겠다!”라고 결심했다고 합니다. (사진) 여러분, 저 사진의 엄마 얼굴이 미이라처럼 전신을 붕대 감고 죽고 싶다는 딸 앞에서 절망하고 있는 모습입니까? 그렇지 않죠? 절망이 아닌 딸을 살려 내 주신 주님께 감사를 선택했기 때문에 가능한 미소 아닙니까? 밥을 떠넘기면서 “우리 딸의 살이 되고 피부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시는 어머니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어찌 외면하시겠습니까? 그것을 알고 계셨던 것 아닙니까?
여러분, 세상이 주는 떡은 배부르라고 유혹하는 떡입니다. 먹고 배부르라고요. 그러나 예수님께서 주시는 떡과 피는 우리에게 살라고 주시는 생명의 양식 아닙니까? 세상은 예수님을 팔아서 네가 원하는 것을 가지라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에게 떡과 포도주를 떼어 주시면서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라고 하십니다. 왜? 거기에 영원한 생명이 있으니까요.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 성찬을 받으실 때, 여러분들의 손으로 떡과 포도주를 집으시면서요. 주님을 붙잡는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믿음으로 빵과 포도주를 목으로 넘기시면서 ‘살라’고 하시는 분이 누구신지를 다시 만나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주님과의 신비한 연합이 일어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이 시간은 오늘 말씀을 기억하시면서 잠시 묵상으로 기도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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