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D_0331_요한복음20.30-31_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는 성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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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경은 신약, 구약을 합쳐서 66권입니다. 가장 중요한 책 1권을 뽑으라고 한다면 무엇을 뽑으시겠습니까. 빼고, 빼고, 빼고, 한 권씩 다 빼고 하다보면 결국 요한복음과 로마서 둘 중에 고민하는 분들이 많다고 합니다. 구약 중에 뽑으라면 이사야서를 많이 고른다고 하네요.
아마도 성경전체의 엑기스, 핵심 중의 핵심, 다른 것은 몰라도 이것만은 꼭 알아야 한다고 했을 때, 그 자리에 요한복음이나 로마서, 이사야서가 있다는 것입니다.
마태, 마가, 누가복음도 있지 않습니까. 이 세 권은 예수님이 하신 일에 초점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무엇을 하셨나에 관심이 있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은 일에 관심이 없고, 그래서 예수님이 누구냐에 초점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기적에는 관심이 없고, 그런 이적과 기사를 일으키시는 저 분은 도대체 누구냐고 질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 마가, 누가복음만 읽은 성도들은 주님을 쫓아다니면서 기적주십시오. 응답주십시오. 역사해 주십시오. 능력을 주십시오 하게 되지만, 요한복음을 읽고, 주님을 만나는 성도들은 기적, 응답, 역사, 능력은 없어도 좋으니까 주님을 더 알고싶다고 하는 신앙의 경지에 이른다는 속설도 있습니다. 물론 낭설일지도 모릅니다. 기적도 있고, 주님도 알아가면 제일 좋을 것입니다.
성도가 예수님을 매일 새롭게 알아가는 것이 그토록 중요한 이유는 기독교와 다른 종교와의 어떤 차별적 포인트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위해 벌려 놓으신 제단에 관심이 있지만, 다른 종교는 사람이 신을 위해 벌려 놓은 제단에 관심이 있습니다.
기독교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향해 열심이 특심이시지만, 다른 종교는 사람이 신을 향해 지극정성일 뿐입니다.
기독교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하나님의 뜻대로 이끌어 가시지만, 다른 종교는 사람이 신을 사람의 뜻대로 이끌어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 기독교는 어떤 종교활동을 넘어서는 무엇인가가 있는 종교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참 지식이 있다고 해야 할까요. 주님을 아는 생명이 있다고 해야 할까요. 어떻게 표현하든 간에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주님을 알아가는 것은 어쨌든 굉장히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저는 처음이 이 구절을 읽고 좀 당황했습니다. 영생이 하나님을 아는 것이라니, 뜻밖이었습니다. 영생은 죽지않고 영원히 사는 어떤 영원한 생명의 줄임말 아니었습니까? 저 하늘나라 생활이 영생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영생이 하나님과 주님을 아는 것이라고 써 있는 것을 보고, 도대체 무슨 뜻인가 했습니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이 뭔가. 주님을 안다고 하는 것이 도대체 무슨 말인가 했던 것이죠.
같이 사는 거드라구요. 주님과 같이 사는 것, 하나님과 같이 지내는 것.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주님과 같이 있는게 영생이더라구요.
전에는 하나님 잘 몰랐는데, 어느 덧 하나님과 함께 지내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경험하고, 그 분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 분의 말씀으로 소통하며 지내는 것이 영생이라는 뜻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에 계시지 않고, 굳이 이 세상 땅에 사람으로 태어나신 이유가 사람들이랑 같이, 그 사람들의 누추한 인생 속을 함께 지내시려고 오신 것입니다.
이런 부분이 뜻밖입니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사람은 땅에 있으면서, 사람이 어려움에 빠지면, 하늘에서 손을 내미셔서 사람을 건져주시는 그림이 일반적인 종교그림입니다.
그런데 성경의 하나님은 하늘에만 계시지를 않고, 땅으로 뛰어내려오셔서 사람이 어려움이 빠지면, 같이 그 어려움에 빠지셔서 같이 그 어려움을 통과하시는 그림을 그리시는 셈입니다.
그래서 성령받고, 능력받고, 사랑받고, 위로받고 하면 그 다음에 오는 것은, 너희가 세상에서 환란을 당하겠지만 담대하라가 나오는 것입니다. 환란을 안당하고 싶은데, 그런 그림이 성경에는 잘 없어보여서 속상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주시려는 영생이 무엇인지 자꾸 캐묻고, 그것을 얻으려고 애를 써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알아가면알아 갈수록, 우리가 받은 이 영생에 활력이 더해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을 더 이해할 수 있다면, 우리가 받은 이 영생의 맛이 그만큼 깊어져 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시작도 없고, 끝도 없으신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받은 영생의 내용도 끝이 없고, 깊이도 가늠할 수가 없습니다.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우리가 받은 영생은 더 풍성히 가꾸어 가야 합니다. 침노하고 두드리고 구하고 어떻게든 물고 늘어져서 빼앗아야 할만큼 고급스러운 것입니다.
우리의 겉모습은 나날이 부스러져 가지만, 우리의 속사람이 날마다 새로워지려면 주님을 더 많이, 더 깊이 알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이 요한복음을 썼다고 합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요한복음은 21장까지 있는데, 두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 중심에 나사로 부활사건이 있습니다. 나사로 사건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져 있는 것입니다.
전반부는 3개의 장면으로 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장면은 예수님이 이 세상을 말씀으로 만드신 하나님 본인이시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조물주가 세상 속으로 들어오셨다는 것이 첫번째 장면입니다.
두 번째 장면은 4개의 사건입니다.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킨 사건은, 하나님께서 지금까지와는 질적으로 다른 풍성한 구원이 시작되었다는 신호탄이었습니다.
새성전 사건은, 성전 안에 계시던 하나님께서 성전을 무너뜨리시고 성전밖에 있는 사람들의 일상 생활 속으로 들어오셔서, 사람이 하나님의 성전이 되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새마음 사건은, 경건한 유대지도자 니고데모랑 나누신 대화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경건하든 그렇지 못하든 간에 성령하나님께서 중생시키고 회심시키는 사람들이 역사에 등장할 것을 예고하신 사건입니다.
새예배사건은 영과 진리로 하나님을 가슴 속 깊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전심으로 예배하는 때가 지금이라는 선언이셨습니다.
이렇게 4개의 사건이 두 번째 장면입니다.
세 번째 장면도 4개의 유대절기에 있었던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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