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확신-양자의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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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서론
로마서를 기록한 목적은 복음을 들려 주고 회심을 통하여 크게 두 가지 선물을 받음을 알려 준다. 죄인이 의인이 되고 진노의 자녀가 하나님의 입양된 자녀 됨을 알라고 한 것입니다.
회심은 회개와 믿음을 말합니다.
회개는 롬 1장부터 3장에서 알려 주었습니다. 마음 속에서 특정한 우상을 숭배하는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발견하고 그것들을 향한 동기 자체를 근절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3장부터 4장에서 알려 주었습니다. 자기 자신을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한 존재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5장에서는 죄인이 의인의 신분이 됨을 깨닫게 해 주어 하나님께 죄 용서를 받고 용납됨의 참된 소망을 갖게 하고 8장에서는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 된 존재임을 깨닫게 함으로 하나님과의 친밀하고 사랑스러운 관계를 가짐으로 참된 소망을 갖게 합니다.
의인과 하나님의 자녀됨의 확신을 의심하게 하는 두 가지 죄와 율법이 6,7장에서 소개 되었습니다.
설문조사를 해 보겠습니다.
1번이 나에게 해당 된다면, 0점, 2번이 나에게 해당 된다면, 1점을 줍니다.
마음
1.종:은혜란, 하나님께서 나에게 더 나은 삶을 살도록 힘과 능력을 주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2.자녀:은혜란, 나를 변화시키시는 하나님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1,종:믿음이란, 더 선해지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여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2,자녀:믿음이란, 내가 하나님께 받아들여진 것을 매순간 기억하며 사는 것이다.
1,종:순종이란, 의무이다.
2,자녀:순종이란, 사랑의 태도이다.
생활 방식
1,종:거절 당할까봐 두려운 마음으로 순종한다.
2,자녀: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한 마음으로 순종한다.
1,종:다른 사람들의 기대와 의견에 따라 살아간다.
2,자녀:하나님의 뜻이 다른 사람들의 기대와 의견보다 중요하다.
1,종:나의 실패를 숨기려고 전략을 세운다.
2,자녀:나의 다름과 상처, 실패를 열린 마음으로 인정한다.
1,종:다른 사람들이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신경쓰지 않는다고 느끼고 아무도 믿을 수 없다.
2,자녀:자신을 스스로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다.
1,종:문제에 대해 절망한다. 고난에 대해 하나님이 나에게 앙갚음하시는 것 아니야? 죄책감과 괴로움
2,자녀:문제는 아버지가 주시는 사랑의 교훈이며 훈육이다. 교훈을 배우고 인내심을 발휘한다.
1,종:회개하는데 인색하다. 실패를 인정하는 것은 나를 망가뜨리는 것이기에 성가신 것이다.
2,자녀:실패를 인정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새롭게 생각나게 하기에 회개를 빨리 한다.
10점에 가깝다면,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마음과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반대로 0점에 가깝다면, 종의 마음과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죄와 율법의 종의 마음과 삶 하나님의 자녀의 마음과 삶을 비교합니다.
우리는 고비를 넘겨야 합니다.
자신의 착함과 도덕적 노력에 기초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은 분노, 염려, 비난이라는 죄를 항상 회개하듯 고백합니다.
그러나 진짜 죄는 자기 의존입니다. 자기 스스로 구원을 얻으려는 시도가 가장 큰 죄입니다.
이 죄가 모든 문제를 초래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돌이켜야 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끔찍한 나를 사랑으로 용납하셨다는 것을 믿지 못하면 문제는 반복됩니다.
이런 죄들은 하나님의 자녀 됨을 알지 못한데서 생겨납니다.
죄와 율법의 종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기 위해 오늘 말씀을 들으셔야 합니다.
본론
본론
14-17절은 성령이 신자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어 주시며 이 사실을 확신할 수 있도록 돕는 분임을 강조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현재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누리는 특권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상속자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양자의 영으로서의 성령의 사역(14-16절)
주제1: 성령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를 인도하신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신자의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사실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롬8: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여기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다는 것은 흔히 잘못 생각하듯이 꿈이나 환상 같은 신비적인 방식으로 인도를 받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다는 것은 성령 안에서 성령을 따라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즉 신자의 사고방식과 신자의 행동양식을 요약적으로 표현한 말입니다.
또한 8장 13절에서 말한 ‘성령으로서 몸의 행실’ 을 죽인다는 것을 다르게 표현한 것입니다.
성령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는 것이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것입니다.
성령이 신자를 인도하시는 것은 신자의 삶의 방향 전체가 하나님 중심적으로 살아가도록 역사하시는 것을 말합니다. 또한 하나님 말씀 중심으로 살도록 인도 하시죠.
이러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면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살아가게 됩니다.
갈5:18-23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주제2: 성령께서 그리스도와 연합되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다.
창조주 하나님이시기에 우리의 아버지라 표현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죄로 인해 본질상 진노의 자녀가 되었다(엡2:3).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선물은 날 때부터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거듭나면 받습니다(요1:12).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분은 입양으로 맺어집니다.
양자가 된다는 것은 본질적인 변화가 아니라 신분의 변화입니다.
하나님께서 전적인 은혜로 선택하셔서 “너는 내 아들이다”라고 불러 주셔야 합니다.
내가 무엇인가를 잘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자녀가 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출생을 통해 자녀가 될 수 있고, 입양을 통해 자녀가 될 수도 있습니다.
신자는 입양 됨으로써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신자를 하나님의 양자라고 하는 것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 세계에 배경을 둡니다.
입양된 아들은 입양한 부모의 모든 것에 대해 법적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로마 제국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제국의 실제적 기초를 놓았던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양자였으며 2대 황제 티베리우스는 아구스투스의 양자였습니다.
또한 로마 제국의 5현제라 불리는 황제 중 네 명이 양자 관계로 이어졌습니다.
트리야누스 황제-하드리아누스(양자)-안토니우스(양자)-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양자)
하나님 아버지가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신 중요한 목적은 바로 신자들을 하나님의 아들로 입양하는 데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갈4:4-5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신자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은 그리스도와 연합을 통해서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는 신자와 그리스도를 연합시켜 주시는 분입니다.
성령은 신자가 하나님 자녀의 신분이 되도록 해 주실 뿐 아니라 신자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는 확신을 가지도록 해 주십니다.
그래서 15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롬8: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갈4:6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이 두 구절을 비교해 보면 성경은 성령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양자의 영, 하나님의 아들의 영
성령 하나님을 양자의 영이라고 부르는 것은 성령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의 양자가 되며 하나님의 양자라는 확신을 얻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신자의 마음 속에 역사하셔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을 수 있게 해 주십니다.
주제 3: 성령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전인적으로 알게 하신다.
롬8:16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성령이 ‘우리의 영과 더불어’ 증언하신다는 것은 성령이 우리 존재의 가장 깊은 부분에 영향을 미쳐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는 지식과 감정을 갖게 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인간의 영은 인간 존재의 가장 깊숙한 부분을 말합니다.
인간의 지성과 감정과 의지 전체를 다 포함하며 인간 존재의 중심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성령은 우리가 단지 머리로만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알게 하지 않고 우리 가슴으로도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체험하도록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전인적으로 알게 하십니다.
양자의 책임
1.새로운 동기
의무감으로 살지 않고 사랑으로 살아갑니다.
2.순종
아버지를 모방하고,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고,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고자 합니다.
3.가족 간의 닮음
하나님 아버지를 닮은 모습이 됩니다.
칭의가 생명을 얻기 위해 법을 지키는 것으로부터 자유를 주는 것 처럼
양자됨은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는 법을 지키는 의무는 하나님과 그의 가족들을 서로 닮게 합니다.
물론 그 법을 지키지 않으면 관계가 아니라 교제를 손상시킵니다.
4.신뢰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무엇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5.훈육을 받아들임
왕의 자녀들은 특별한 훈련과 훈육을 받는다. 고귀한 운명에 적합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를 그리스도의 형상이 되게 하시기까지 빚어가신다.
거만함은 우리의 도덕적 능력과 종교적 성취를 의존하지만 믿음은 우리의 연약함을 인식하고 받아들이는데서 시작합니다. 고아는 자신을 신뢰하면서 살아가지만 자녀는 아버지를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양자의 특권
1. 확신_비록 결손 가정의 자녀들은 우울증, 산만함, 미성숙함이 나타날 수 있으나 하나님의 가족 안에 들었다는 믿음은 절대적인 안정과 안전이 있음을 누리게 합니다.
2. 기도와 친밀함_부르짖는다는 표현은 우렁찬 고함을 뜻한다. 진한 감정을 표현한다. 분석보다는 아버지임을 확신하고 어린아이는 아빠에게 돌진한다. 기도는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는 안전한 관계에 있음을 알기에 친밀한 대화를 나눈다.
3. 자유와 확신_종종 우리는 나의 행동에 근거해 아들 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고 품꾼의 하나로 보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나의 구원의 근거를 내 자신에게 두려는 불신이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구원 받는다는 하나님의 능력을 무색하게 한다. 그러나 기억하라. 우리는 자신의 구원에 아무런 기여도 할 수 없다. 아들이 아니라 고용된 종처럼 얽매이지 않도록 성령 하나님께서 도우십니다.
4. 교제와 긴밀성_하나님의 자녀된 사람들과 서로 교제하고 받아들인다. 가족은 실패할지라도 다시 사랑으로 받아들인다.
5. 상속_
결론
결론
양자와 상속(17절)
하나님의 양자로 입양되었다고 해도 입양된 시점에 곧바로 부모의 모든 것을 상속받는 것은 아닙니다.
한 아이가 양자가 되는 순간 그는 법적으로 이미 상속자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상속받을 때는 아직 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신자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신자의 현재와 미래 사이의 관계를 잘 보여 줍니다.
상속은 아비가 죽어야 받는 법입니다.
신자는 현재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미래에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 즉 영원한 천국을 상속받게 됩니다.
신자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 신자가 하나님의 아들인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기 때문이듯이, 신자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상속자가 된 것도 하나님의 상속자인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받으실 미래의 영광도 함께 받겠지만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서 받으신 고난도 현재 이 세상에서 함께 받게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 부활의 영광을 얻으신 것처럼 신자들도 고난을 통한 영광을 얻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신자에게는 고난이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기도 합니다.
현재 이 세상에서 아무 고통과 고난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있을까?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고통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인간이 고통과 고난을 피할 수 없는 것은 인생이 죽음을 피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인간의 고통과 죽음은 근원적으로 인간의 죄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죽음이 왔듯이 각종 육체의 질병, 정신적 갈등, 사회적 범죄, 자연적 재해 등도 근본적으로는 인간의 죄 때문에 발생한 일종의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범죄와 타락 이후 죄악 된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인간에게는 죽음이 필연이듯이 고통도 필연입니다.
고통이 수시로 찾아올 때 우리는 이 방문객을 어떻게 맞이해야 할까요?
수시로 삶의 고통이 짓눌러 오거나 압박해 올 때, 우리는 고통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고통에 대해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두 가지 반응을 보입니다.
첫째, 고통에 대해 체념하는 사람들입니다.
세월이 약이야, 시간이 지나면 고통이 사랑지겠지, 팔자소관인데 어떻게 하겠나?
둘째, 고통에서 도피하려는사람들입니다.
자신에게 닥친 삶의 괴로움을 애써 잊어버리려 발버둥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직면한 고난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보통 술에 취함으로써 고통을 잊어버리려고 합니다.
또는 오락적인 도피처로 감으로써 고통에서 도망치려고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고난에 대해 그리스도인의 태도는 다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고난이 없지 않습니다.
오히려 일반적인 사람들보다 두 배로 고난이 있습니다.
첫째, 신자도 일반적인 고난을 받습니다.
질병이나 전재이나 자연 재해 등과 같은 고통들입니다.
일반 은혜가 모두에게 있는 것처럼 일반 고난도 모두에게 있습니다.
둘째, 신자이기에 세상에서 당하는 고난입니다.
예수 믿는다는 이유로 가족이나 동료나 사회에게 당하는 어려움들입니다.
이것은 특별한 고난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에게 이 세상에서의 현재의 삶은 ‘두 배로 고난’의 세월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인은 이런 고난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첫째, 그리스도인은 고난에 대해 도피하려고 하지 말고 고난의 현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고난의 현실을 받아들여야 할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고난 속에서 의미를 발견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와 연합된 신자는 그리스도의 고난에도 연합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고난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중요한 증거 가운데 하나입니다. 또한 고난은 경험적 측면에서 신자가 거룩하게 되는 중요한 방편입니다.
죄의 본성에 물든 나를 고치는 약 중에 고난의 약보다 신통한 약이 어디 있으며, 죄로 뻣뻣한 나를 고치는 데 고난의 스승보다 더 좋은 스승이 어디 있겠습니까?
고난으로 신자의 신앙과 인격은 점점 자라납니다. 그래서 장차 영광에 도달할 준비를 하게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