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와 평강의 복음(바울이 전한 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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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와 평강의 복음(바울이 전한 복음)
본문: 갈라디아서 1:1-5
서 론
오늘부터 여러분과 함께 바울의 서신중 갈라디아서를 살펴보려 합니다. 제가 여러분과 이 서신서를 살펴보려고 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는 갈라디아서를 전체적으로 살펴보면서 우리들이 성경을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해야 하는지에 대한 틀을 세워보고자 함입니다.
성경은 앞 뒤 문맥과 구조와 지은이의 심리상태나 환경에 대해서 얼마나 정확하고 바른 이해를 가지고 있는가에 따라 성경을 통해 말씀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본의를 더욱 잘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모든 말씀은 일점일획이라도 가감할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이 말씀을 자기 식대로 오해하곤 합니다. 자신의 생각대로 아무렇게나 성경 구절을 가져다 붙이고서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우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과, 아무런 해석의 기준 없이 자신이 원하는 성경 구절만 인용하는 것과는 구별 되어야 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벧후 1:21-22에서 이렇게 권면합니다.(ppt)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무슨 말씀이죠?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함부로, 사사로운 감정이나 생각으로 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갈라디아서를 택한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사실 성경적인 구원론에 관해 가장 논리적이면서도 종합적으로 다룬 말씀은 로마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갈라디아서는 비록 로마서에 비해 분량은 적지만 ‘작은 로마서’라고 불릴 만큼 기독교적 구원관뿐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해 매우 구체적인 내용이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또한 갈라디아서는 바울의 서신중에서도 복음에 대한 바울의 열정을 가장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성경입니다.
갈라디아서는 바울의 사역이 여러모로 최고조로 달하던 전성기 때 기록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바울의 서신중에 가장 먼저 쓴 편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바울의 사역이 가장 왕성하고 활력 있게 펼쳐지던 시기에 기록되었다는 점에서 우리는 갈라디아서를 통해 복음에 대해 열정적인 바울의 진짜 모습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런 기본적인 배경을 생각하면서 갈라디아서를 본다면 대하면 그동안 그저 눈으로 평면적으로만 읽어지던 말씀이 바울과 같은 심정으로 강렬하면서도 통쾌한 은혜와 승리의 굴곡을 타는 느낌처럼 가깝고도 생생하게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에 더 애정을 갖고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본 론
갈라디아서는 사도바울이 가장 먼저 쓴 편지로 갈라디아지역에 있는 교회들을 대상으로 A.D 49년경에 기록되었습니다. 사도행전 14장에 보면 바울이 이고니온, 루스드라, 더베 등의 지역에서 복음을 전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요, 바울의 복음 전파로 이 지역에 세워진 교회들이 오늘 바울의 수신자들이었습니다.
바울은 아주 급한 마음으로, 그리고 진지하면서도 간절하게 이 편지를 썼습니다. 그 이유는 바울 자신의 복음 전파로 세웠던 이 갈라디아지역에 자신이 전한 복음과 다른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들어와서, 교회들을 어지럽히고, 사도인 자신에 대해서 의심을 받게 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바울의 사도직에 대한 의심은 바울 자신에게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전한 복음의 권위의 문제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곧 교회의 성도들의 믿음과 직결되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다시금 자신이 전한 복음의 기원과 핵심을 설명할 필요를 느꼈고 이 편지를 보내었습니다. 그러므로 갈라디아서는 기독교 복음의 핵심 진리를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종교개혁자 루터가 “갈라디아서는 나의 서신이다. 나는 사실 상 갈라디아서와 결혼했다. 갈라디아서는 나의 사랑스러운 아내이다.”라고 했을 정도로 기독교교리의 핵심을 담고 있습니다.
자, 그럼 오늘은 이 서신의 서문이라고 할 수 있는 1:1-5까지의 말씀을 개괄적으로 말씀드린 후에, 상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갈라디아서는 갈라디아라는 지역에 있는 교회의 성도들에게 보내는 편지(서신서)입니다. 지금으로부터 거의 이천년 전의 상황이지만, 당시 로마는 편지로서 서로의 소식을 주고 받는 일이 매우 일상화된 사회였습니다. 당시 사회가 문화적으로 얼마나 수준 높은 사회였는지를 짐작케 하는 대목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편지를 쓰는 형식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입니다. 편지를 쓸 때에는 반드시 발신인과 수신인을 적게 되어 있습니다. 당시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1:1에 이 편지를 기록한 발신자가 누구인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누구라고요? 바울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자신이 이 편지의 발신자라는 사실만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누구인지를 덧붙여 말하고 있는데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편지를 기록하고 있는 사도된 자신의 권위가 다른 누구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께로서 났다는 점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이 점은 우리가 이 서신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해 굉장히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조금 있다가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하고요. 2절에서는 이 편지의 수신자가 언급되어 있습니다. 누구입니까? “함께 있는 형제”들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이 편지를 기록할 때에, 바울의 마음속에 있었던 ‘이 형제들’이 누구인지에 관해서는 정확하게 확인하기 어렵습니다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들은 갈라디아 지역의 교회에 속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 서신서의 발신자와 수신자를 언급한 다음에, 바울은 3-5에서 이 편지를 쓰는 목적에 관해 요약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3-5의 문장 구조를 보면 3절의 ‘은혜’라는 단어와 5절의 ‘영광’를 두고 4절의 내용이 샌드위치 되어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니까 이 두 가지 단어는 앞으로 이 편지에서 다루려는 전체의 내용을 가장 핵심적으로 요약하고 있는 내용인데요, 다시 말해 바울이 이 서신을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보내는 이유가 무엇인가? 할 때, 서론 부분에서 앞으로 다룰 전체 내용을 이 두 단어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즉 첫째, 바울은 이 편지로 인해 ‘이 편지의 수신인이 되는 갈라디아 성도들이 은혜’를 누리기를 바라는 동시에, 둘째로, 이 일로 인해 궁극적으로는 하나님께 영광이 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편지를 쓰는 목적을 한마디로 한다면, 이 내용이 “주님을 믿는 성도들에게는 은혜가” 되기를 바라며, “하나님께는 영광이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 복음의 성격을 가장 잘 보여주는 상징물이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줄 아세요? 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4절 말씀을 보십시오.(ppt)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
십자가는 성도로 하여금 하나님께 입은 은혜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사무치게 실감하도록 하는 가장 좋은 도구인 동시에, 그 일이 하나님께 얼마나 큰 영광을 돌리는 일인가를 나타내는 주는 가장 훌륭한 교구가 됩니다.
하나님은 십자가 없이도 우리는 구원하실 수 있는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지 않으면 구원에 대해 생각할 수도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통하지 않고는 절대로 우리의 깊은 죄성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것이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통하지 않고는 절대로 하나님의 그 무한하신 사랑과 자비와 긍휼에 대해 깨닫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오고 오는 모든 세대의 믿는 자들의 죄를 한꺼번에 사해 주시고, 이 십자가 복음을 통해 택한 백성을 구원하심, 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 능력이며 지혜입니까? 그러나 믿음이 없는 자들은 이 십자가를 여전히 미련하고 부족한 것으로 여김. 그래서 십자가 없는 복음과 십자가를 통하지 않는 구원을 구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나의 존재됨을 자각하고, 죄악에 대한 거룩한 분노와 슬픔을 경험하고, 피 묻은 십자가 복음을 통해 완전히 새로워진 삶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밑에서 진정한 안식과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에게는 은혜를 은혜로서 알게 하는 가장 좋은 수단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십자가의 은혜를 깨닫게 된 이후로, 뭐라고 고백합니까? 고린도전서 2장 2절 말씀을 보시면,(ppt)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바울 사도의 개인 고백이 아닙니다. 바울과 같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해 거듭남과 의롭게 된 은혜를 입은 성도들라면 당연히 고백해야 할 내용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십자가를 생각하면 할수록 하나님의 풍성하고도 깊은 은혜를 절감하게 됩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런 은혜를 깨닫게 되는 것이 결국에는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표현을 쉽게 사용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영광돌리겠습니까? 헌금을 많이 해서요? 큰 교회를 지어서요? 세상에 이름을 내서요? 모두가 주목할 만한 큰 업적을 세워서요?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그러하지 못하잖아요. 그럼 이런 일을 하지 못한 사람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하는 삶인가요? 아닙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은 어찌 보면 너무나 간단하고 쉬운 일입니다. 지금 내게 온 모든 하나님의 은혜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으로 비롯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고백하고, 그런 믿음가운데 말씀위에서 최선을 다해 사는 것, 바로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리는 일입니다.(그런데 사실 신앙생활을 하면 할수록 이게 가장 어렵습니다.)
오늘 갈라디아서 말씀을 시작하면서 바울 사도가 가장 강조하고자 하는 내용이 바로 이것입니다. 성도로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해 얻은 은혜를 은혜로서 알고, 그 은혜대로 고백하며 사는 일이야말로 하나님께 얼마나 큰 영광이 되는 일인지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이런 말씀을 듣고도 의심합니다. “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 고작 그런 일로 된단 말입니까?”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목적으로 각종 인간의 방법과 종교적인 의식을 고안해서, 그런 과정을 통해야만 영광이 된다고 강조합니다. 세상에서 크고 화려하고 특별하고 어려운 일을 해야만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고 합니다.
이런 주장은 값없이 주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의미 없는 일처럼 만드는 일입니다. 참된 복음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바르게 깨닫고 누리는 일이 바로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일임을 기억하십시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와서 이제 오늘 말씀 1-5절은 두 단락으로 나눠 볼 수 있는데요, 1,2절은 이 복음의 권위에 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면, 3-5절의 내용은 앞으로 증거하게 될 복음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압축적으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복음의 권위와 내용을 먼저 소개하는 일은, 이 일이 복음을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틀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믿는 복음의 권위가 누구로부터 왔으며, 또 그 내용이 무엇인지를 모르고서는 복음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전한 복음의 권위와 내용은 무엇일까요?
첫 번째, 바울은 복음의 기원이 하나님 아버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함께 1장 1절을 읽겠습니다.(ppt)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
지금 바울은 편지를 보내는 자신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지금 자신을 사도라고 소개합니다. 원래 ‘사도’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포스톨로스’라는 말은 ‘보냄을 받은 자’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신약 성경이 기록될 당시에는 이 말은 일반적으로 어떤 개인이나 단체의 권익을 옹호하기 위해 보냄을 받은 대표자라는 의미로 사용되던 단어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자신을 사도라고 말한 것은 이러한 일반적인 의미로 사용한 것이 아닙니다. 단순히 어떤 단체나 사람의 이야기를 전하려고 이 서신서를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의 말씀을 대신 증거하는 것이죠? 이 사실을 분명히 해 두어야 할 필요성 때문에 바울은 그냥 “사도된 바울” 이렇게 쓰지 않고, “사람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및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이라고 덧붙여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들에게 자신을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사도가 아니라는 점을 강하게 어필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지금 자신을 사도라고 특별하게 언급하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갈라디아교회 성도들이 바울이 사도임을 몰라서 그랬을까요?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그 당시 갈라디아지역 교회들 가운데 그의 사도직을 의심하게 만드는 심각한 사태가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지역에 열심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울을 통해 복음의 씨앗이 뿌려진 곳에 생명의 역사가 있었고, 예수님께로 회심자들이 늘어났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전한 복음이 아닌 나쁜 복음의 씨앗이 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복음을 전한 사람들은 예루살렘으로부터 온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이 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먼저 바울이 사도가 아니라고 소문을 퍼뜨렸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이 살아계실 때에 12명의 사도로 임명된 사람도 아니었고, 맛디아처럼 제자들의 손에 제비 뽑혀 공식적으로 임명된 자도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들은 바울 자신의 사도직을 비난하며, 갈라디아 교인들로 하여금 의심하게 만들었습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이것은 심각한 것이었습니다. 사도직분을 가진 자신의 체면이 구겨졌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전한 복음이 타격을 받을 수 있는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바울은 자신의 사도직분에 대해서 변호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사도직분에 대한 변호는 곧 복음에 기원에 대한 변호와 직결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여기서 잠깐 우리가 한번 생각해 보았으면 하는 것이 있는데요, 여러분 사도의 직무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증거하는 일입니다. 다시 말해,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고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은혜는 오직 말씀 안에서, 말씀을 통하여, 말씀으로 인해 깨달아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교회 형편은 어떻습니까? 말씀이 중요하다고 말하지 않는 성도들은 없습니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치고 성경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말로는 성경이 중요하다, 성경대로 살아야 한다, 성경중심의 신앙이어야 한다고 하면서도 실제로 성경안에 기록된 말씀을 얼마나 사랑하고 얼마나 바르게 이해하고, 얼마나 깊고 넓게 은혜를 누리기를 원하는가를 돌아보십시오.
큰 일이 나면 기도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말씀대로 하는 기도가 무엇인지는 생각하지 못합니다. 은혜를 받으라고 부흥회도 하고 여러 은사집회도 하지만 정작 말씀의 의미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보다는 자신의 의를 들어내는 인도자들의 행위와 말잔치만 늘어놓다가 끝냅니다. 더 큰 믿음을 갖겠다고 시간과 물질을 들여 이곳저곳을 찾아다니지만, 정작 성경을 진지하고 깊게 이해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한다”고 하는데, 우리는 말씀을 무하나 쪼개지 못할 만큼 둔하고 쓸모없는 연장으로 대하고 있으니... 이런 영적 현실에 대해 안타까워해야 하고 가슴아파해야 하는데, 말씀이 살았건 죽었건, 말씀이 성령의 날카로운 검으로 사용되건, 녹슨 연장처럼 사용되건, 어떠하든지 나와는 상관없다고 살아간다면, 그것은 성도의 바른 자세가 아닌 것입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서, 오늘 바울의 이 선언은 우리에게 복음의 기원은 하나님 아버지이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 종교와 기독교와 차이점이 있다면 기독교는 계시의 종교라는 것입니다. 세상종교는 사람이 만들어 낸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복음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직접 알려주신 것입니다. 어떻게 알려주셨습니까? 바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서입니다. 그리고 이 성경을 통해서 오직 하나님께 나아오는 유일한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진리는 우리 자신의 모든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며, 하나님의 전적인 일이라고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믿음의 문제 구원의 문제에 대해서 하나님 앞에서 주장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복음에 대해서 책임 있게 반응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바울의 이 말씀을 듣는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의 구원의 복을 누리며, 우리의 입술과 삶을 통해서 증거 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두 번째, 바울은 복음의 내용은 은혜와 평강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2-3을 읽겠습니다.(ppt)
“함께 있는 모든 형제와 더불어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에게 3.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바울은 지금 편지를 시작하면서, 그들에게 축복의 인사를 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바울은 갈라디아교회들에게 은혜평강이 있기를 기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기원은 평범한 인사말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은혜’와 ‘평강’이라는 두 단어가 바울이 전하고자 하는 복음의 핵심을 요약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은혜(charis)”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조건 없는 사랑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은혜란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자가 하나님의 호의를 힘 입는 것을 뜻합니다.
한편으로 “평강(eirene)”은 유대인들 사이의 일상적인 인사말입니다. 말 그대로 샬롬! 평안하십시오!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평강이라는 단어가 은혜라는 말과 함께 쓰일 때, 이것은 하나님의 선물이 개인에게 적용된 결과를 나타냅니다. 다시 말해서 평강은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또는 인간과 인간 사이에 생겨진 온전한 관계를 가리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이 두 단어를 사용해서 인사를 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자신이 먼저 가서 전한 복음을 상기시키기 위해서입니다.
바울은 복음은 하나님께서 구원을 얻을 자격이 없는 사람들에게 값없이 주시는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갈라디아교회에 들어온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예수를 믿어도 율법의 의식을 지켜야 한다, 특별히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얻는다고 가르쳤습니다. 이것은 심각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바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다른 복음을 접한 갈라디아교회에는 은혜가 사라질 위기에 있습니다.
또한 평강이 없어 혼란스럽습니다. 따라서 바울은 은혜와 평강이라는 두 단어를 사용함으로 갈라디아교인들이 혼란을 겪지 않고, 자신이 전한 은혜의 복음에 굳건히 서 있을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로부터 지금까지 내려오는 중요한 기독교교리가 있다면, “이신칭의”라는 교리입니다. 이 교리는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다, 즉 오직 예수를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다’는 교리입니다. 이 교리는 종교개혁의 핵심교리였습니다. 루터는 예수를 믿어도 인간의 선행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로마 카톨릭교회의 부패한 교리에 대항하여 이 교리를 외쳤습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니, “이신칭의 같은 캐캐묵은 교리 얘기를 지금 하는 것인가”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 아무리 시대가 지났어도 이 교리는 중요합니다. 이 교리는 하나님의 교회의 핵심교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복음주의노선에 있다는 어떤 사람들은 예수를 믿어도, 성령을 따로 받아야 구원을 받아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온갖 신비주의에 빠집니다. 그러나 이러한 가르침은 복음의 내용을 오해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입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그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믿기만 하면 성령을 거저 받는 것이라고 갈라디아교인들에게 가르쳤습니다. 바울의 가르침은 예수님의 말씀과도 다르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3장에서 예수께서 니고데모와 대화하실 때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은 오직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들이 영생을 얻게 되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초대교회로부터 종교개혁을 거쳐, 선교사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전해진 복음이, 여전히 우리가 붙잡고 있는 이 교리입니다. 지금 우리는 여전히 이 복음 가운데 있습니다.
세 번째, 바울은 은혜와 평강의 복음은 자유하게 하는 복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갈1:4-5) 읽어볼까요?(ppt)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 5.영광이 그에게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바울은 갈라디아교회들을 향한 인사 다음에, 구원을 계획하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 구원 계획을 성취하신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송영을 올려드리고 있습니다. 이것은 복음을 향한 바울의 태도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바울은 오직 자신을 통해서 오직 그리스도의 은혜와 평강의 복음만 드러나기를 소망했습니다.
그런데, 이 송영에는 자신이 전한 은혜와 평강의 복음의 목적이 드러나 있습니다. 이것은 복음이 취급하는 본질적인 문제를 말씀합니다. 복음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을 선포하는 메시지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에 의해 계획되었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취되었습니다.
한편, 바울이 전하는 십자가의 복음, 은혜의 복음은 유대인들에게 있어서는 언제나 걸림돌이었습니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는 유대인들의 관점에서 단지 저주 받은 존재에 불과했습니다. 실제로 십자가는 로마제국에 반역한 죄인들을 처형하는 도구였을 정도로 유대인들에게는 아주 혐오스러운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새로운 관점을 갖게 된 바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4절에서 바울은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지금 바울은 인간의 모든 문제의 근본적인 핵심을 건드립니다.
모든 인류의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입니까? ‘죄’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아무리 선한 노력을 할지라도 죄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죄인의 신분에서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율법은 바로 이런 사람의 노력입니다. 율법은 오히려 사람으로 하여금 죄에 빠지게 만들고, 죄의 속박에 더욱 단단히 가둡니다. 율법이 할 수 있는 것은 다만 죄로 말미암은 인간의 비참함을 깨닫게 할 뿐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복음’이 이 모든 죄의 속박에서 사람을 자유하게 하는 능력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죄의 세력의 지배로 특징지어지는 이 세대에서 우리를 구출하시기 위함이며,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우리를 위하여 내어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로 어떻게 되었습니까? 우리가 예수를 믿기만 하면, 이 악한 세대에서 이미 구원을 받은 것은 물론이요, 한편으로 이 악한 세상에 살면서도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성령의 능력으로 살 수 있게 되었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전한 그리스도의 복음은 사람으로 하여금 진정으로 죄에서 자유하게 하는 복음입니다. 바울의 전한 복음은 자유의 대헌장인 것입니다.
결 론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오늘 다함께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면, 바울이 전한 복음은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이 악한 세대에 사는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건지시려고 자기 몸을 드리기 위하여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선물입니다.
그는 우리의 은혜와 평강의 소식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에게 믿음으로 말미암아 값없이 주시는 은혜로 죄가 없다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죄의 세력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게 된 자들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복음의 선물을 나가가서 나누어주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이 말씀을 듣는 저와 여러분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시는 은혜와 자유와 큰 기쁨을 날마다 누리며 증거 하는 주의 백성들이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부터 이제 갈라디아서 말씀을 함께 살펴볼 텐데, 오늘 말씀을 통해 진정한 복음의 기원은 바로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시작된 것임을 기억하며, 세상에서 우리를 미혹시키는 다른 복음으로부터 우리가 늘 깨어있고 분별하며 멀리 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앞으로 말씀을 통해 진리의 말씀을 잘 배우고 세워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바울은 오늘 말씀을 통해 복음의 내용이 은혜와 평강의 복음이라고 말씀합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함을 받는 이신칭의의 은혜, 그리고 이러한 은혜로서 우리가 이 땅에서 평강을 누리며 진리 안에서 자유함을 누리며 살아가는 참된 복음으로 인하 기쁨을 누리며 증거하는 자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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