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의 예루살렘 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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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5 views예수가 마침내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다.
Notes
Transcript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가서 감람 산 벳바게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두 제자를 보내시며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하면 곧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로 끌고 오라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 하시니
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
제자들이 가서 예수께서 명하신 대로 하여
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으매 예수께서 그 위에 타시니
무리의 대다수는 그들의 겉옷을 길에 펴고 다른 이들은 나뭇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높여 이르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니 온 성이 소동하여 이르되 이는 누구냐 하거늘
무리가 이르되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라 하니라
서론
-예화
-문제제기
저는 오늘 영광의 예루살렘 입성이라는 제목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려 합니다.
▣ 루터의 죄목(구원)
어느 날 루터는 이상한 꿈을 꾸었다. 꿈에 마귀가 와서 그의 죄목을 보이면서 "네게 이러이러한 죄가 있으니 나와 함께 지옥으로 가자."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루터가 "그밖에는 없소?" 하고 묻자 마귀는 또 어느 곳을 다녀오더니 몇 가지를 더 추가 기록하는 것이었다. 루터가 다시 "이제 더 없느냐?" 묻고는 마귀가 기록한 죄목 위에 "예수의 보혈이 나의 모든 죄를 씻어 준다."라고 써 놓았다. 그러자 마귀는 놀라서 걸음아 날 살려라고 줄행랑쳤다.
* 참조: 롬5:9, 롬10:13
어떤 말씀입니까? 마귀는 루터를 넘어뜨리려 하였습니다. 하지만 루터는 도리어 자신의 죄를 더욱 분명히 했고 예수그리스도가 모든죄를 대속하셨음을 보여주고 있는것입니다.
마귀는 어떻게 됩니까? 우리가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돌아가신 예수를 믿고 나아갈때 물러가게 됨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본문 연구
-본문설명
-본문의 진리
-본문에 나타난 교리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예수님의 영광의 예루살렘 입성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종려주일 오늘 예루살렘에 입성하게 되었습니다.
종려주일이란 어떤날입니까?
성경 문화배경 사전 종려주일
종려주일(棕櫚主日, Palm Sunday) 예수께서 십자가 죽음을 앞두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날을 기념하는 절기. 특히, ‘종려주일’이라 부른 것은 예수께서 베다니에서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에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겉옷을 길에 깔고, 또 손에는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흔들면서(종려나무는 승리를 상징한다, 계 7:9) ‘호산나’(‘구하오니 우리를 구원하소서’란 뜻)를 외치며 환영한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요 12:13). 이 날은 부활주일 전 주일로서(사순절 다섯 번째 주일), 이날부터 성주간 곧 고난주간이 시작된다. 【☛ ‘고난주간, 수난주간’을 보라】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것입니다. 당시에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왕을 기쁨으로 백성들은 다음과 같이 맞이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입성은 승리의 왕인 동시에 겸손한 왕의 모습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사람이 되셔서 이땅에 오신분이십니다. 이런 예수님이 하나님의 구원의 뜻을 이루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시려 예루살렘오신것입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예수님의 입성은 어떠한 것이었는지 생각하며 은혜받길 원합니다.
첫째로 예수님의 입성은 하나님의 계획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에 의한 것이었다는 것은 그것이 즉흥적이거나 우연의 일치가 아니었다라는 것입니다. 철저하게 하나님의 계획하심아래 이루어졌다라는 사실입니다.
1절에 보면 예루살렘에 가까이 가서 감람산 벳바게에 이르렀을때에 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입성이 이제 멀지 않은 상황을 말해줍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두제자를 불러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서 거기에 가보면 나귀가 매여있을것이다. 그리고 나귀새끼가 함께 있을건데 그것을 풀어다가 내게 끌고와라. 새끼나귀를 데려오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3절에서는 무슨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하시는 것입니다.
당시상황을 생각해보면, 거기에 나귀가 있되 어미나귀와 새끼나귀가 같이 있는것을 어떻게 압니까? 또 그와 동시에 그 나귀를 풀어가지고 오려 할때 그것을 즉시보내주겠다는 것은 어떻게 아십니까?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이루어진 상황이 아니라고 한다면 이해할수 없는 부분입니다. 준비되어있었다라는 사실이고, 오늘 예수님의 입성에 쓰이도록 계획되어 있음을 말씀합니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말씀에서는 왕으로 오시는 분은 공의로우시고 구원을 베푸시고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신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구약의 말씀처럼 예수님은 이제 그 입성을 준비하십니다.
왕들은 보통 예루살렘에 입성할때에 말을 통해서 입성하였습니다. 신구약중간시대에 전쟁에서 승리했을때 말을 타고 귀환하였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민족을 전쟁을 통해서 해방시킬 정치적인 부분을 드러내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스가랴 말씀이 내포하고 있는것은 이러한 전쟁이 아닌 자신의 몸을 산제물로 바쳐 하나님과 사람들을 화목시키기위해 오시는 평화의 메시야임을 알리는 것입니다. 겸손의 모습으로, 정확한 계획과 성취로서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한번 주목해볼수 있는것은 예수님이 나귀를 끌고오라고 했다라는 것입니다. 명령하셨습니다. 오늘날로 보면 사전에 연락도 없이 다른 사람의 소유물을 마치 자신의 소유처럼 가져오라고 명령한 것처럼 보입니다. 상식으로 보면 법으로 보면 이러한 행동은 이치에 맞지 낳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모든 만물의 주인이시며, 또한 당신 자신이 메시야로 이세상의 모든 죄로부터 구원하여 평화로 그들을 이끌어 가실 모습을 이해한다면 더이상 재산상에 문제나 법과 상식의 수준을 떠난 부분인것입니다.
하나님이 명령하실때, 그분의 주권을 알고, 순종하고 믿고 나아가는 우리가 될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둘째로 왜 나귀를 타셨나 입니다. 이는 예언을 성취하기 위함입니다.
아마, 품위를 생각한다고 한다면, 그리고 뭔가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부분이었다고 한다면 말을 타는게 더 맞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이기때문에 말을 타더다도 이전의 왕들보다 더 좋은 말을 타고 들어가실수도 있을 것입니다. 보통 세상에서는 이렇게 자신을 높입니다.
전장에서 승리한 기쁨을 보이며, 용맹함을 드러내기 위해서, 더 없는 강한 힘과 군력을 보이기위해서 그러하실수 있는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굳이 그리 할필요도 없을뿐더러, 그리하지도 않았습니다.
왜 그러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예언을 성취하기 위해서 입니다.
스가랴를 통해서 말씀하신 말씀은 정확하게 예수님을 통해 성취되었습니다. 완전해졌습니다.
문법적으로 오늘 말씀을 살펴보면, 좀더 그 내용이 구체적이게 됨을 보게 됩니다. 구약의 예언은 의도적인 사건이었다라는 말씀을 당시의 가정법에 쓰이는 접속사 ‘히나’라는 것을 통해 의도적 사건임이 드러납니다.
예수님은 메시야 임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왕이요, 공의와 구원을 이루시는 분이 타시는 것은 스가랴에서 나귀이다 말합니다.
또 우리는 이것을 과거 말과 나귀의 사용 용도를 볼때 보다 구체적으로 내용을 이해할수 있습니다.
말은 전쟁에 나가서 전장을 누비며 장군이나 높은 지위에 오른 사람이 타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나귀와 같은 경우는 짐을 나를때, 풍요로운 마을에 어떤 짐꾼들이 짐을 끌거나 나를때 타는 것이었습니다.
평화를 주시기 위해서 나귀에 오르시고, 고난의 길을 가신것입니다.
나귀새끼가 예수를 태운모습을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무거운 멍에입니다. 한걸음 한걸음이 고난의 길입니다.
겸손과 평화를 상징하는 말을 타시며 십자가를 통해 이루실 그 은혜를 생각할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예언의 성취를 보면서도 여러 다른 생각으로 이것을 바라본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자기들의 겉옷을 나귀위에 얹는 행위는 예수님이 왕이기 때문에 최고 존경의 표시한거지만, 예수님의 생각과 제자들의 생각은 달랐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로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서 입성하셨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면
로마의 하수인과 헤롯, 로마군대를 몰아내실것이다. 유대인의 왕으로 즉위하실것이다. 라 생각한것입니다.
인류시조 아담의 타락이후로 이땅에 왕노릇하는 왜곡된 구속의 역사를 바로잡아 구원을 이루려는 구속역사를 깨닫지 못하고 정치적메시야로 오해한것입니다.
예수가 잡히자 다 예수를 어떻게 합니까? 도망하게 됩니다. 죽이라고하는 폭도로 변신할수밖에 없게된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고 그 의미를 바로앎으로 당시의 제자들과, 따르던 무리들과 같이 되지 말아야 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승리하기 위함입니다.
예루살렘을 입성할때 무리들은 예수님을 반갑게 맞아줍니다.
예수를 정치적인 메시야로 보는 사람들에게도 예수님의 예루살렘입성은 승리를 위한 입성이었습니다. 아직 일이 진행되어지지 않았고, 이제 정치적으로 이러한 일들을 이루실거야라고 기대했을것입니다.
예수를 구원의 메시야로 보는 사람들에게도 예루살렘의 입성은 승리의 입성입니다. 때문에 사람들은 환호합니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마치 전쟁을 승리하고 돌아온 사람을 향하여 환호하듯이. 외칩니다.
종려나무가지를 가지고 흔들었습니다. 이제 해방되겠구나라는 의미를 담아 승리와 기쁨을 상징하는 종려나무가지를 흔들었던 것입니다.
호산나를 외치면서 말입니다. 구원하소서 기도하나이다. 뜻을 담아 이와같이 올려드렸던 것입니다.
그 소리가 매우 컸으며 당시에 모인 백성의 수가 많아 소동하였다 말합니다.
당시의 유대종교지도자와 예수님의 충돌은 외부적으로 보면 기득권을 행사했던 종교지도자와 개혁가의 싸움으로 비쳐질수 있으나 그 배후에는 더큰 거대힌 영적 싸움이 있었습니다. 즉 메시야 사역을 반대했던 사단과 온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오신 예수그리스도 사이에서의 영적싸움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구속사역을 성취하면 사단은 이제 자신의 통치권을 내려놓아야 했습니다. 인류위에 왕노릇하던 자신의 자리도 치명적 타격을 입을수 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을 통해 메시야 사역을 방해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인것입니다. 예수님을 시험하며, 수난을 가하며 핍박한 사단의 시도는 모두 좌절되고 말았습니다. 오히려 메시야를 방해하고 죽이고자 했던 사단은 결국 하나님의 영원한 인류구속을 이루는 경륜을 이루는 방편이 되고 말았고, 보이지 않는 사단에 의해 예수를 함정에 빠뜨리고자 한 술책들이 좌절된것을 통해 우리는 사단의 지혜와 모략이 하나님의 지혜를 능가할수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의 입성은 승리하기위함이었고 모든 좌절과 영적싸움의 상황에서도 승리하셨습니다.
진리를 취하면 유익한점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예루살렘 입성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줍니까? 만물의 주인되신 하나님이 철저한 계획아래 이루어진 사건이며, 이제 시간이 되어 성취하시고 완전하게 하시되 단순히 당시의 정치적인 상황을 타계할 일련의 사건으로가 아닌 태초부터 주인된 죄와 사망으로부터 건져주시기 위해 보여주신 승리를 위한 입성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성도는 은혜로 구원을 얻었으며, 평강의 왕으로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순종해야 함을 나타냅니다. 구원자되시고 승리하신 주님을 찬양과 경배해야 할것입니다.
구체적인 실천방법
-버려야할 것
-현실에서 해야할 것 2~3가지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어떤것을 기억해야 합니까?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나아가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소유를 말하며, 예수님의 만물을 지으신 주권을 인정하지 않을때,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나귀를 가져오라는 것을 오해하며 받아들일수 있습니다. 마치 세상사람들이 교회를 비난하는 시각으로 오해할수 있는것입니다. 간혹, 이러한 사람들의 판단에 신앙인들도 오해를 하는 모습이 관찰되기도 합니다. 만물의 주권이 예수님께 인정할때와 아닐때의 모습은 완전 다른 모습이 됩니다.
또한 예수님의 승리가 영적싸움에서 승리한 것이다라는 사실입니다. 근시안적으로 보았을때 사람들은 실패하게 됩니다. 마치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여, 헤롯무리와 로마군대의 하수인들을 쫓아내고 군림할것이라 생각하였다가 오히려 일이 그릇치자 예수를 맹비난한 사람처럼 말입니다. 신앙생활하다가 보면, 내가 생각하는 방향과 다르게 일이 나아가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그때 어떠해야할까요?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나아갈수 있어야 할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계획이 무엇인지, 내가 하나님의 계획과 성취와 승리를 방해하고 있지는 않은지입니다.
결론
-전체요약
-중요한 간증과 권면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영광중에 입성하시며 구원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나귀를 타시고 화려해 보이지 않았지만 가장 완벽한 모습으로서 말씀대로 이루시고 영적 승리를 베푸신것입니다. 사탄마귀가 우리를 시험할지라도 낙심할 필요가 없는것은 그러한 승리의 주님이 오늘도 우리와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과 많은 일들을 기억하며, 구원의 복과 은혜 누리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