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331 금요기도회 : 삼하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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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오늘 금요기도회의 자리로 불러주심에 너무나도 감사합니다. 한 주간 저희가 살며 하나님께 범죄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시게 하진 않았는지 돌아봅니다. 그러나 저희를 너무나도 사랑하시기 때문에 말씀을 듣고 기도할 수 있는 자리로 부르셨음을 믿습니다.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의지하여 나아가니 저희를 기도를 들어주시고 위로와 소망이 있게 해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먼저 성경을 봉독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은 사무엘하 23:1-7 의 말씀입니다.
이는 다윗의 마지막 말이라 이새의 아들 다윗이 말함이여 높이 세워진 자, 야곱의 하나님께로부터 기름 부음 받은 자, 이스라엘의 노래 잘 하는 자가 말하노라
여호와의 영이 나를 통하여 말씀하심이여 그의 말씀이 내 혀에 있도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씀하시며 이스라엘의 반석이 내게 이르시기를 사람을 공의로 다스리는 자,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다스리는 자여
그는 돋는 해의 아침 빛 같고 구름 없는 아침 같고 비 내린 후의 광선으로 땅에서 움이 돋는 새 풀 같으니라 하시도다
내 집이 하나님 앞에 이같지 아니하냐 하나님이 나와 더불어 영원한 언약을 세우사 만사에 구비하고 견고하게 하셨으니 나의 모든 구원과 나의 모든 소원을 어찌 이루지 아니하시랴
그러나 사악한 자는 다 내버려질 가시나무 같으니 이는 손으로 잡을 수 없음이로다
그것들을 만지는 자는 철과 창자루를 가져야 하리니 그것들이 당장에 불살리리로다 하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반갑습니다. 금요기도회에 나아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오늘도 말씀을 듣고 기도하면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위로와 평안을 얻고 돌아가시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오늘 말씀은 사무엘서의 대미를 장식하는 다윗의 시입니다. 이 시는 ‘다윗의 마지막 말’이라고 말하지만 시간적으로 다윗이 죽기 직전에 지은 시는 아닙니다. 이 시의 구조를 나눴을 때 네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1절로 이 시의 제목으로 볼 수 있고, 둘째는 2절로 이 시의 도입 부분입니다. 그 다음 셋째는 3-5절로 이스라엘 앙권의 번영과 소망에 대해서 말하고 있으며 마지막으로 6, 7절은 이스라엘 왕권의 오용에 대한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앞장인 22장은 다윗이 자신이 받은 구원에 대한 감사의 시를 통해 다윗이 경험한 모든 구원과 승리를 하나님께 돌림으로써 이스라엘의 왕권은 오직 하나님으로 인해 세워지고 견고하게 된다는 것을 강조한다면, 23장은 그 왕권이 번영을 누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와 왕권의 오용과 남용에 대한 경고가 담겨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이스라엘 왕권이 번영을 누릴 수 있을까요? 중앙집권적인 강력한 왕권을 통해 국방을 강화하고 주변국들을 점령하는 것이 이스라엘이 번영을 누릴 수 있는 것일까요? 역사를 통해, 그리고 세계 정세를 통해 우리는 그렇다고 자연스레 생각할 수 있겠지만 다윗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3절을 보시겠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씀하시며 이스라엘의 반석이 내게 이르시기를 사람을 공의로 다스리는자,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다스리는 자여”
바로 이스라엘 왕권이 번영을 누리기 위해서는 공의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다스려야만 그 왕권이 복을 누릴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이 말은 만일 왕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불의를 행할 때 그 왕권은 시들어지고 쇠퇴할 수밖에 없다는 경고이기도 합니다.
공의롭게 다스린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지혜로 백성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예시로 솔로몬이 있습니다. 솔로몬은 지혜의 왕으로서 백성들을 지혜롭게 공의로 다스렸습니다. 솔로몬은 열왕기상 3:16-28 에서 두 매춘부가 서로 자기 아이라고 주장하는 상황 속에서 진짜 어머니가 누군지를 지혜롭게 판결하여 공의로 다스렸습니다. 바로 이 솔로몬의 판결이 공의롭게 다스리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약 시대를 살고 있는 교회에 치리가 있는 것 또한 공의롭게 교회를 다스리기 위한 것입니다. 억울한 자가 있다면 억울함을 풀어주고 범죄한 자가 있다면 교회의 질서를 위해 벌을 주는 동시에 회개할 수 있도록 긍휼과 은혜를 베푸는 것이 바로 공의롭게 교회를 다스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 한다는 것이라는 의미도 있고 하나님을 최우선 순위로 두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든 일에 있어서 하나님을 최우선 순위로 두어 그분이 하신 말씀으로 통치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다스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다스리는 자를 다윗은 4절에서 “돋는 해의 아침 빛 같고 구름 없는 아침 같고 비 내린 후의 광선으로 땅에서 움이 돋는 새 풀 같다.”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여호와의 지도를 따라 다스리는 의로운 통치자는 자기 백성에게 기회와 성장과 복의 새로운 시대를 연다는 의미입니다.
다른 한편 5절에서 다윗은 하나님가 맺은 언약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바로 자신의 구원과 미래의 모든 소망이 하나님이 자신에게 허락하신 ‘영원한 언약’에 근거한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너무나도 중요한 부분입니다. 이 부분에서 다윗은 왕이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공의를 행하는 것이 왕권의 존립과 번영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지만 왕권의 궁극적인 안전과 소망은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사무엘하 7장에서 다윗의 나라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겠다고 다윗과 맺으신 ‘다윗 언약’은 모든 일에 준비되고 보증된 것이기에 왕과 그의 나라를 든든히 지키는 반석인 것입니다.
5절까지의 다윗의 시를 통해 이스라엘 왕정을 지탱하는 두 기둥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써 비롯된 정의와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이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6,7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주신 왕권을 오용과 남용하지 말라는 경고가 담겨있는 것입니다. 6,7절은 사사기의 요담의 비유를 연상하게 하는 방식으로 왕권의 남용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사사기 9 장에서 요담은 나무 비유를 통해 가시나무와 같은 불의한 아비멜렉을 왕으로 세운 이스라엘을 고발했습니다. 바로 다윗은 가시나무를 통해 아비멜렉을 연상시키면서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불의한 왕이 왕권을 남용했을 때 어떤 결과를 불러오는지를 연상하게 만들면서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인 23장을 통해 사무엘서의 저자는 사무엘서를 마무리하면서 왕권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 무엇이며 왕권의 존립과 번영을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더불어 이 23장의 다윗의 시는 사무엘하 9-20 장, 더 나아가 뒤에 다윗이 인구조사를 하여 하나님께 범죄하는 24장에서 결국 왕권을 남용했을 때 어떤 비극적 결과를 불러오고 어떻게 해결되는지에 대해서 올바른 이해를 위한 신학적 해석을 제공하며 이를 통해 이 단락을 장엄하게 종결하는 역할을 제공합니다.
다음 장인 24장에서 다윗은 율법에 금지된 인구조사를 시행함으로써 7만명의 목숨이 죽게 되는 아주 비참한 결과를 초래하였습니다.
이것은 바로 사사기가 이스라엘의 존립은 블레셋의 어떠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달려있음을 알려주는 것처럼 사무엘서도 이스라엘 국가의 존립은 하나님께 달려있음을 보여줍니다.
특별히 우리가 면밀히 살펴볼 부분은 2절입니다. 2절에서 다윗은 ‘여호와의 영이 나를 통하여 말씀하신다.’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이 구절이 단순히 다윗이 노래한 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다윗을 통해 말씀하시는 예언적 성격을 갖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바로 다윗은 본문에서 이스라엘 왕권에 대한 선지자적 메시지를 전하는 선지자로 등장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시는 사무엘서에 기록된 역사를 회고하고 정리하는 기능을 할 뿐만 아니라 앞으로 다가올 일을 예언하는 예언적 기능도 있는 것입니다. 이 시에서 다윗은 또한 1절에서 이새의 아들임을 밝히면서 자신은 유다 자손으로 율법이 명하는 적법한 왕의 조건을 성취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사무엘서 전체적으로 다윗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재자 역할을 하는 제사장적인 모습도 보여주었습니다.
따라서 사무엘서에서의 다윗은 왕, 제사장, 선지자라는 구약의 세 직분을 수행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본문이 ‘영원한 언약’을 언급하며 다윗을 ‘야곱의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자’라고 부르고 있다는 것은 다윗의 일생을 돌아보며 이스라엘 왕권이 ‘하나님의 언약’과 ‘정의’의 시행을 기초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힘과 동시에 그 왕권이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자, 메시야를 통해 영원까지 이어질 것을 내다보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 다윗의 일생 전체는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구원자, 메시야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이 다윗 또한 범죄하며 완벽한 메시야의 모습을 보여주진 못합니다. 다윗은 실체의 그림자에 불과하였습니다. 성경이 그림자인 다윗을 통해 보여주는 실체는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다윗이 보여준 왕, 제사장, 선지자의 모습은 가장 위대한 다윗의 자손인 예수 그리스도의 전조입니다. 다윗이 행한 세 직분의 직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성시키셨습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의 4절이 약속하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공의롭게 다스리는 통치자를 통해 그의 나라의 백성에게 주어지는 복과 성장들을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 받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이 말하는 하나님 나라의 왕권의 궁극적인 안전과 소망이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 안에 있다는 것, 다름 아닌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되었습니다. 우리 하나님, 이토록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범죄하며 하나님께 등을 돌릴 때조차 그분은 우리에게 복과 성장, 그리고 안전과 소망을 주시기 위해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시키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께로 나아오십시오. 그분에게 모든 복과 약속이 있으며 안전과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붙잡을 때 우리의 삶이 낙망 가운데 있을지라도 흔들리지 않는 터에서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기억하며 같이 기도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