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가 예배가 아닐 때

에스라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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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라 3:1–7 NKRV
이스라엘 자손이 각자의 성읍에 살았더니 일곱째 달에 이르러 일제히 예루살렘에 모인지라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와 그의 형제 제사장들과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그의 형제들이 다 일어나 이스라엘 하나님의 제단을 만들고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율법에 기록한 대로 번제를 그 위에서 드리려 할새 무리가 모든 나라 백성을 두려워하여 제단을 그 터에 세우고 그 위에서 아침 저녁으로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며 기록된 규례대로 초막절을 지켜 번제를 매일 정수대로 날마다 드리고 그 후에는 항상 드리는 번제와 초하루와 여호와의 모든 거룩한 절기의 번제와 사람이 여호와께 기쁘게 드리는 예물을 드리되 일곱째 달 초하루부터 비로소 여호와께 번제를 드렸으나 그 때에 여호와의 성전 지대는 미처 놓지 못한지라 이에 석수와 목수에게 돈을 주고 또 시돈 사람과 두로 사람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과 기름을 주고 바사 왕 고레스의 명령대로 백향목을 레바논에서 욥바 해변까지 운송하게 하였더라

M1 : 본문의 사건을 전개하라

오늘 본문은 유대인들이 페르시아, 바사 제국으로부터 포로귀환을 하고 난 이후 정착 후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페르시아가 바벨론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제국의 통치권을 쥐게 됩니다.
그 이후 페르시아의 왕인 고레스는 유대인들을 포로 신분에서 벗어나게 해줍니다.
더 나아가 유대인들에게 무너진 성전을 다시 건축하라는 명령과 물질적 지원까지 아끼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고레스 왕을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성전을 다시 건축하게끔 하신거죠.
유대인들의 새로운 비전은 바로 하나님의 성전을 다시 건축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PPT)
에스라 3:1 (NKRV)
이스라엘 자손이 각자의 성읍에 살았더니 일곱째 달에 이르러 일제히 예루살렘에 모인지라
귀향민들이 유대 땅으로 포로 귀환한 해의 일곱째 달이 됩니다.
귀향민들이 각자 예전의 자신들이 살았던 그 땅에서 살다가 일곱째 달이 되니까 예루살렘으로 모입니다.
이들이 왜 예루살렘으로 모이나요?
(PPT)
에스라 3:2 (NKRV)
......이스라엘 하나님의 제단을 만들고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율법에 기록한 대로 번제를 그 위에서 드리려 할새
이들이 예루살렘으로 모이는 이유는 번제를 드리기 위해서였습니다.
오늘 본문 안에서 포로 귀환이 끝나고나서 하는 귀향민들의 첫 행동은 모여서 ‘번제’를 드리기 위해서 제단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예배 드리기 위한 것이었죠.

M2 : 본문의 위기를 보여주라

유대인들이 왜 그동안 예배(번제)를 드리지 못했었나요?
(PPT)
포로 생활 속 어려움
오늘 유대인들이 포로 귀환을 하고 번제를 드리기까지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까?
유대인들이 포로 생활을 한게 약 70년입니다.
숫자로 보면 짧아보일 수 있습니다.
1살이었던 애기들이 70살의 노인이 되었을 겁니다.
20대였던 청년들은 대부분 죽었을 겁니다.
그 이상은 모두 죽었을 것이죠.
어떤 이들에게 포로 생활은 그들의 삶 전체였습니다.
어떤 이들에게 포로 생활은 20대 젊은 청년 시절 이후를 어둠으로 물들인 시기였습니다.
그 어둠의 시기 속에서 유대인들은 맘껏 하나님을 예배할 수가 없었습니다.
번제를 드리고 싶어도, 절기를 지키고 싶어도 바벨론 이방 국가 밑에서 포로로서 그들의 문화를 억지로 수용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싶어도 섬기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을겁니다.
자연스레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잊어가기 시작할 겁니다.
계속해서 신앙 교육을 가정에서 하더라도 그들은 계속되는 포로 생활 속에 정말 하나님께서 계신지 의심하게 될 것입니다.
처음 몇년은 다시 하나님께서 그들을 회복시키실 것이라는 소망을 강하게 가지고 있겠죠.
그러나 그게 10년이 되고, 20년이 되고, 50년이 되면, 과연 그들이 그 소망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1945년 남북이 분단되고 난 직후 대한민국은 분단된 국가의 상황이 마음 아팠을 것입니다.
금방 다시 통일될 것이라는 소망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10년, 20년이 지나고 그 소망은 어떻게 되나요? 당연히 약해집니다.
제가 초등학생 때 TV에서 이산가족 상봉을 방영했던 것을 한참 봤었습니다.
그때 서로 가족임을 확인하고 눈물을 흘리며 끌어안던 것을 본 기억이 아직도 납니다.
그런데 남북 분단이 된지 거의 8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한국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2021년 데이터상 60퍼센트의 국민만이 “통일이 필요하다”라고 대답하고 있습니다. 40퍼센트는 통일을 반대하거나, 아예 통일에 대해서 관심도 없는 것입니다.
유대인들도 마찬가지 아니었을까요? 70년이 되는 기간 동안 다시 하나님을 맘껏 섬길 수 있을지에 대한 소망은 적어졌을지는 몰라도 커지진 않았을 겁니다.
점점 기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하나님을 예배하는데에 소망이 적어지는 것이죠.
(PPT)
2. 성전이 무너지고, 마음도 무너짐
포로 기간이 길어지는 동안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에 대한 소망이 적어집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예배하지 못하게 할만한 이유가 또 있습니다.
그것은 예배를 드리는 공간, 제사를 드리는 공간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예배를 드리던 성전이 이미 다 무너졌습니다. 황폐해졌고 이제는 흔적조차 남지 않은 그저 전쟁 폐허지에 불과한 곳이 바로 성전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소망을 가질 수 있을까요?
전쟁은 전쟁을 하는 중에만 비극적인 것이 아닙니다.
전쟁이 끝난 이후 남겨진 허허벌판은 전쟁 중의 비극만큼 비극적입니다.
전쟁은 그런 것이죠. 모든 것을 불사르는 불처럼 모든 땅을 황폐하게 만듭니다.
성전도 황폐해집니다.
그만큼 사람들의 마음도 황폐해집니다.
전쟁은 하나님을 예배하고 싶어하는 그 마음에 불을 지릅니다.
불을 지른 그 마음은 불이 꺼져도 결국 잿더미밖에 남지 않는 겁니다.
하나님을 예배할 장소가 전쟁의 폐허가 되는 것은 장소가 없어질 뿐만 아니라 그들의 마음까지 황폐하게 만들었습니다.
(PPT)
3. 예배에 대한 회의감, 매너리즘
아주 큰 문제는 그들에게 생겼을 회의감입니다.
‘예배를 드리고싶다’라는 마음이 있었는데도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어떻게 될까요?
‘예배를 안 드려도 괜찮은 것 같은데?’
예배 자체에 대한 회의가 드는 것이죠.
어차피 예배를 못드리는데 그냥 앞으로도 안드려도 되겠다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는 것이죠.
예배에 대한 회의감이 듭니다.
예배에 대한 매너리즘이죠.
예배 자체에 대해서 슬럼프로 오는 시기가 되는 것입니다.
예배에 대한 소망은 황폐해져가다가 결국 예배 자체를 회의하게 되는 매너리즘까지 오는 것이죠.

M3 : 본문의 사건을 오늘날로 연관하라

예배에 대한 소망이 점차 사그라드는 것은 오늘 날 우리에게도 흔히 있는 일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언제나 같지 않습니다.
당연히 예배에 대한 소망이 사그라드는 것도 가능한 일입니다.
유대인들이 예배에 대한 소망이 줄어들고, 황폐해지며
나중에는 매너리즘, 회의감까지 생기는 신앙의 황폐함.
그 마음의 황폐함은 지금 우리에게도 충분히 생기는 일들인 것이죠.
아주 마음 아픈 일이지만 우리에게 언제나 발생할 수 있는 일입니다.

M4 : 본문의 위기가 오늘날의 위기임을 느끼게 하라

지난 코로나 기간 동안 우리의 예배를 향한 마음은 어땠습니까?
처음 코로나가 심해졌을 때가 딱 2020년 1월입니다.
저는 코로나가 시작되던 시기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신학대학원에 입학한 해에 코로나가 심해졌기 때문입니다.
신학대학원에 입학하면서 바로 전도사 사역도 시작했습니다.
신학대학원의 시작과 전도사 사역의 시작을 코로나와 함께 한 것이죠.
처음에 코로나가 본격적으로 유행하고 성도님들 마음이 어땠습니까?
‘코로나 금방 괜찮아지겠지.’
‘마스크 잘 쓰고 잘 방역하면 금방 괜찮아질거야.’
이런 소망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까?
심지어 초반에 이런 얘기도 있었습니다.
바이러스는 여름이 되면 전염력이 현저히 줄어들어서 7~8월 이후로는 거의 사라질 것이다.
이 얘기 지금 우리가 들으면 얼마나 우습습니까?
3년을 훌쩍 넘어버린 지금 여름이든, 겨울이든 코로나 바이러스는 기온 상관없이 잘 전염되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으니까 웃긴 얘기인 것이죠.
그 얘기에 그래도 어떤 마음이 담겨있습니까?
‘코로나가 금방 끝날 것이다’ 이런 소망이죠.
그런데 우리의 그런 소망이 점점 시간이 길어지면서 어떻게 됩니까?
그 소망이 사그라듭니다.
국가에서 예배 인원이 제한되었을 때 어땠습니까?
그 소망이 점점 더 사그라들었습니다.
1년, 2년 지나가며 우리의 예배에 대한 마음이 사그라들고 코로나가 우리의 마음을 황폐하게 만들었습니다.
예배에 대한 소망을 황폐하게 만든 것이죠.
아주 큰 문제는 무엇인가요?
이런 소망이 우리의 마음을 황폐하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그 황폐한 마음이 아예 예배를 사모하는 마음조차 황폐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온라인 예배가 길어진만큼 예배에 대한 회의감이 생기기 시작하는 것이죠.
처음에는 ‘예배 드리고 싶다’ 에서 점점 ‘아 온라인 예배로 드리면 되지’라고 하다가 나중에는 ‘예배 빠져도 괜찮지 뭐 아무 문제 없던데’
이렇게 되는 겁니다.
온라인예배를 어쩔 수 없는 이유로 드리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우리의 마음이라는 것이죠.
마음이 점점 황폐해져가고, 예배에 대한 소망이 죽어가고.
이것이 큰 우리의 문제입니다.
이 마음의 문제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코로나 바이러스가 퍼진 그 상황 자체가 문제일까요?
사실 코로나 바이러스가 퍼진 상황 자체가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죄성 때문이죠.
사람의 죄인이었던 성질은 하나님을 망각하게 만드는 습성이 있죠.
망각하는 것이 어떤 때는 우리에게 유익이 있습니다.
정말 안좋았던 기억에 대해서 망각하는 것은 계속해서 괴로운 것보다 좋죠.
아주 안좋은 기억을 계속해서 떠올리고 기억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얼마나 끔찍합니까?
그러나 그 망각이라는 인간의 습성이 하나님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예배에도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하나님을 잊고, 예배를 잊고. 예배를 향한 그 소망을 잊고.
이것이 우리의 마음의 문제였던 것입니다.

M5 : 본문에 나타난 구원자 하나님과 믿음의 반응을 보여주라

그러나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황폐해진 마음을 그대로 두지 않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PPT)
마음의 회복
오늘 본문은 포로 귀환한 귀향민들의 놀라운 마음의 회복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회복시키셔서 한 마음으로 번제를 드리기 위해 모이게 하십니다.
(PPT)
에스라 3:1 (NKRV)
이스라엘 자손이 각자의 성읍에 살았더니 일곱째 달에 이르러 일제히(한 사람 처럼) 예루살렘에 모인지라
(PPT)
오늘 1절에서 “일제히”라고 번역된 부분이 원어를 직역하면 “한 사람 처럼”이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개역개정 성경의 번역자가 약간의 의역을 해서 원어의 의미가 잘 전달되지 않았는데, “한 사람 처럼”이라고 번역하면 어떤 의미가 됩니까?
사람은 마음을 가지고 움직이지 않습니까?
한 마음으로 움직입니다. 마음을 가지고 행동하려는 의지가 생기면 행동하게 되는 겁니다.
귀향민들은 여러 사람들이었지만 마치 한 사람처럼, 한 마음을 가지고, 한 뜻으로 예루살렘에 모인 것입니다.
그들이 왜 예루살렘에 모이나요?
서두에 얘기했지만 “번제를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에요.
역대기, 에스라-느헤미야서에서 지도자가 절기를 지키기 위해서 사람들을 경우는 여러 차례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자신들의 마음이 한 마음으로 동해서 예배를 드리기 위해 이곳 저곳에서 예루살렘으로 몰려드는 것은 이 본문이 유일합니다.
이들은 누군가가 시켜서가 아니라, 그들의 마음이 은혜로 회복되어서 예루살렘으로 모이고 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예배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이들이 예배드리기 위해 모인 시기가 언제인가요?
(PPT)
에스라 3:1 (NKRV)
이스라엘 자손이 각자의 성읍에 살았더니 일곱째 달에 이르러 일제히(한 사람 처럼) 예루살렘에 모인지라
포로귀한을 한 해의 7월입니다.
7월은 유대인들에게 티스리월로도 알려져있는데 이 티슬리월에 유대인들은 초막절을 지냅니다.
유대인들이 초막절을 지내기 전에 번제단을 회복한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초막절이 어떤 날인가요?
(PPT)
레위기 23:42–43 (NKRV)
42 너희는 이레 동안 초막에 거주하되 이스라엘에서 난 자는 다 초막에 거주할지니
43 이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주하게 한 줄을 너희 대대로 알게 함이니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PPT)
초막절은 출애굽과 광야 생활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애굽으로부터의 노예 생활의 구원과 생명을 위협하는 광야에서 보호하신 은혜를 기념하는 절기에요.
(PPT)
즉 귀향민들은 과거 조상들을 구원하셨던 하나님의 은혜와 자신들을 노예 생활로부터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동일시 여기며, 이미 받은 은혜에 반응하여 번제단을 회복하였다.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귀향민들의 무너졌던 마음을 다시 일으키고 자발적으로 예배를 위해 예루살렘에 모인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인가요?
(PPT)
하나님께서 이미 그들을 구원하셨다는 은혜입니다.
이미 받은 그 은혜의 회복과 반응이 바로 예배를 소망하는 마음의 회복을 유발한 것이죠.
정말 길었던 70년의 포로 생활도, 그 기간 동안 사그라들었던 그 마음도, 예배에 대한 회의감과 매너리즘도
유일한 해결법은 하나님께서 그 포로 생활 속에서, 저 머나먼 시기에 모세를 통해서 출애굽시키셨던 구원의 은혜의 회복이었습니다.
2. 은혜의 회복과 함께 오는 말씀 사모함
그들의 마음에 은혜가 회복되자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PPT)
에스라 3:2 (NKRV)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율법에 기록한 대로 번제를 그 위에서 드리려 할새
에스라 3:4 (NKRV)
기록된 규례대로 초막절을 지켜 번제를 매일 정수대로 날마다 드리고
귀향민들이 '하나님의 사람 모세'를 통해 내리신 하나님의 율법의 규정을 철두철미하게 따랐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찾는 것입니다.
그 마음에 은혜가 회복된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고,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말씀을 사모하게 됩니다.
구원의 은혜가 회복되니까 황폐했던 마음이 회복됩니다.
예배를 사모하게 되고요, 말씀을 하모하게 됩니다.
하나님과 멀어진 황폐한 마음을 회복시키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사모하게 되고 찾게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구원받았다는 그 은혜의 회복입니다.

M6 : 동일한 구원자 하나님과 우리에게 필요한 믿음의 반응을 제시하라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어떻습니까?
예배에 대한 황폐해진 마음과 매너리즘 속에서 예배를 드려도, 드려도 기쁨과 감사가 없고.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서 힘들어진 상황 속에서 현장 예배를 드리든, 온라인 예배를 드리든, 예배를 안드리든 삶이 똑같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그 첫사랑이 도저히 회복되지가 않고.
이런 삶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합니까?
중심을 회복해야죠.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기억해야합니다.
하나님은 구약의 유대인들을 어떻게 구원하셨습니까?
모세가 출애굽할 때 그들에게 수많은 기적들을 보여주셨습니다.
바로왕 앞에서 열가지의 재앙을 보여주시며 바로의 마음을 돌이키시고,
막다른 길과 같은 홍해 앞에서 홍해를 열어주시고,
그들을 좇던 군대를 수장시키시고,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 기둥으로 인도해주시고,
만나를 내려주시고
하나님이 그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셨습니다.
지금 본문의 백성들은 어떻게 구원하셨습니까?
이방 신을 섬기는 국가의 70년간 포로 생활 끝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대로 이방 왕의 마음을 옮기시지 않습니까?
절대 불가능할 것 같은 이방 왕의 마음을 움직이시고 그것을 공식적인 명령으로 내리시고
이스라엘을 포로에서 다시 회복시키셨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황폐해질대로 황폐해졌지만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은 계속되었고, 결국 그들을 구원하십니다.
불가능해보이는 것을 가능하게 하시는 그 기적을 통해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십니다.
여러분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은혜는 어떻습니까?
불가능했던 이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어떤 기적을 보이십니까?
우리는 정말 하나님께 돌아가지 않으면 안되는 사람들입니다.
왜요? 유대인들에게 보여주었던 기적과는 비교도 안되는 기적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잖아요.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 이것이 우리에게 일어난 기적인거죠.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이미 태초부터 구원을 계획하십니다.
그리고 약 이천년 전 이 땅에 하나님이 직접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십니다. 기적입니다. 하나님이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시는 것 자체가 기적입니다.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에 의해서 죽임당하십니다.
비극이지만 기적입니다. 전지전능한 신이 그가 만든 피조물들에 의해서 죽는 것은 있을 수 없느 ㄴ일입니다.
그러나 있을 수 없는 일을 행하시는 것이 하나님이시죠.
그런데 그것으로 끝납니까? 부활하십니다.
3일만에 그 무덤은 빈 무덤이 되었고, 완벽하게 부활하십니다.
인간의 육체와 하나님의 영으로 완벽하게 부활하시죠.
우리에게 나타내시고 보여주십니다.
완벽한 기적입니다.
하나님이 유대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보여주셨던 기적과 비교할 수 없는 기적입니다.
여러분 그걸 믿으시는 분들이 여기 계신거잖아요?
왜 우리가 예배에 대해서 황폐한 마음으로 고통받습니까?
우리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그 기적을 다시 생각만 해도 우리는 예배를 향한 마음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입에서는 찬양이 나와야 하고요, 우리의 마음에선 기도가 나와야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게 되고요,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의 사귐으로 다시 들어가게 됩니다.
매너리즘에 빠져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습니다.
예배에 대한 소망이 회복되어서 예배드릴 수밖에 없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는 고난 주간을 지나고 있습니다.
또 이번 주일은 부활주일입니다.
예배를 회복하기에 너무 좋은 시기입니다. 하나님께서 고난 주간을 통해, 부활주일을 통해 구원의 은혜를 회복하시기 원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그 기적을 한번 더 기억하기 소망합니다.
그 은혜가 회복되어 예배를 향한 소망을 회복하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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