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소망 - 교재
Notes
Transcript
안식일 다음 날, 바로 그 주의 첫날 동틀 무렵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러 갔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나더니 주의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돌 위에 앉았습니다.
그 천사의 모습은 번개와 같았고 옷은 눈처럼 희었습니다.
경비병들은 그 천사를 보고 두려워 떨면서 마치 죽은 사람들처럼 됐습니다.
그 천사가 여자들에게 말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찾고 있는 것을 안다.
예수께서는 여기 계시지 않고 말씀하신 대로 살아나셨다. 여기 와서 예수께서 누워 계셨던 자리를 보라.
그리고 빨리 가서 그분의 제자들에게 ‘예수께서 죽은 사람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니 그곳에서 너희가 예수를 보게 될 것이다’라고 말하라. 자, 이것이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말이다.”
그러자 여인들은 서둘러 무덤을 떠났습니다. 그들은 두려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기쁨에 가득 차 제자들에게 알리려고 뛰어갔습니다.
그때 갑자기 예수께서 여인들에게 나타나 말씀하셨습니다. “평안하냐?” 그들은 예수께 다가가 예수의 발을 붙잡고 예수께 절했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고 전하라. 그곳에서 그들이 나를 만날 것이다.”
포인트
예수님의 부활로 죄의 저주가 제거되고 죽음이 패배했습니다.
등장 인물 : 예수님
예수님이이 체포되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자 이 땅에서 사역하셨던 3년 동안 그분과 가장 가깝게 지냈던 제자들은 흔적도 찾기 힘들 정도로 숨어 버렸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비슷한 운명에 처할 수 있다는 위기감으로 인해 숨는 것으로 자신을 보호했던 것입니다. 처음에는 이와 같이 두려움에 떨며 무력했다가, 나중에는 믿음으로 용기 있는 모습을 보이는 갑작스러운 변화를 가능하게 해 준 것은 무엇일까요? 그 답은 바로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도입
재미있는 이야기에는 주인공이 패배할 것 같은 순간이 한 번쯤 있기 마련입니다. 영국 BBC TV의 유명 시리즈 <셜록 홈즈> 후반에서는 주인공 셜록 홈즈가 분명히 죽은 것처럼 보이는 장면이 있습니다. 숙적 모리아티가 친구들을 살리고 싶다면 자살하라고 셜록 홈즈에게 요구했던 것입니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네오는 총에 맞아 벌집이 된 채로 스미스 요원의 발 앞에 쓰러졌습니다. 영화 <스타워즈> 시리즈의 ‘제국의 역습' 편은 탄소 냉동실에 갇힌 한 솔로와 잘린 손을 치료하는 루크 이야기로 끝이 납니다. 그리고 실제로 종이 울리고, 록키가 이반 드라고를 곧바로 KO시켰다면, 이야기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뒤 사흘 동안, 현실은 소설 세계와는 분명 땅판이었습니다. 이 이야기의 영웅은 단순히 누워 있던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무덤에 누워 계셨습니다. 그분이 구원자로 불릴 수 없을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피와 물이 구원자의 옆구리에서 흘러나오듯 희망이 제자들의 마음에서 흘러나왔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분은 죽고 말았습니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 일요일이 되었습니다.
역전승을 거두는 이야기나, 삶과 죽음 앞에 놓인 운명이 뒤바뀌는 이야기를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만약 부활하지 않으시고 예수님이 무덤에 계속 계셨다면, 그 결과는 어떠했을까요?
와서 빈 무덤을 보라
안식일이 다가오고 있었으므로 사람들은 예수님의 장례 준비를 서둘렀습니다. 전통적으로, 거룩한 날에는 죽은 자를 옮기거나 만지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급히 무덤을 빌려 그곳에 예수님을 눕히면서 안식일이 되기 전까지 그들이 해야 할 준비를 서둘렀습니다.
안식일이 다 지나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갔더니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희거늘
지키던 자들이 그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더라
천사가 여자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는 무서워하지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두 명의 마리아는 예수님의 무덤으로 가기는 했지만 어떤 극적인 장면을 목격하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어떤 결론에 도달할지, 과연 끝인지 알고 싶었는데 그들이 보게 된 것은 그들의 예상을 넘어서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무덤 앞에서 한순간에 모든 것이 뒤집혔고, 선생님이었던 분의 죽음으로 인해 한때 묻어 버렸던 희망은 더이상 허무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마태는 두 명의 마리아가 무덤을 보러 갔다고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이 단지 무덤을 지켜보거나 참배하러 간 것이 아님을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대신에, 그들은 예수님의 시신에 향품을 발라 장례를 준비하려고 했습니다.
그들이 무덤에 가까이 다가가자 큰 지진이 났습니다. 어쩌다 일어난 단층의 균열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천사가 나타나서 생긴 일이었습니다. 지진으로 돌이 옮겨졌으리라 생각할 수도 있었겠지만, 훨씬 더 큰 일이 벌어졌습니다. 당시 무덤을 막고 있던 돌의 무게는 약 900~1,800kg 정도 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천사가 그 돌을 손쉽게 옮긴 뒤 그 위에 앉아서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좋은 소식을 전해 준 것입니다.
두 명의 마리아의 관점에서 그때 상황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들은 무덤을 보려고 갔는데 지진을 경험하게 되었고, 무덤을 지키던 자들이 죽은 사람과 같이 얼어 버린 것을 봤으며, 눈부시게 빛나는 천사가 거대한 무덤의 돌문을 굴려 그 위에 앉아 있었습니다. 천사의 말은 공포스러웠을 것이 분명했습니다. 천사의 첫마디는 “너희는 무서워하지 말라"였습니다.
“너희를 해치러 온 것이 아니다"라거나 “너희를 돕기 위해 왔다"와 같은 말을 덧붙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천사가 무서워하지 말라고 한 데에는 더 깊은 뜻이 있었습니다. 여인들이 무서움을 떨쳐도 되는 이유는 그들이 보고 있는 천사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보지 못하는 것, 즉 주님이 그곳에 계시지 않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무덤이 텅 비어 있었던 것입니다.
빨리 가서 이 기쁜 소식을 전하라
천사는 여인들에게 네 가지 명령을 했습니다. “와서, 보라, 가서, 전하라"입니다.
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하거늘
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빨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알리려고 달음질할새
예수께서 그들을 만나 이르시되 평안하냐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세 가지 중요한 메시지를 전하라는 사명이 여인들에게 주어졌습니다. 첫째, 천사는 여인들이 이미 들은 것, 즉 예수님이 죽음에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전하게 했습니다. 믿기 힘든 것이긴 했지만, 그들이 사명으로 받은 메시지는 진실이었습니다. 둘째, 천사는 예수님이 전에 주로 사역하셨던 갈릴리로 가실 것에 대해 선포하게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천사는 제자들이 거기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볼 것을 그들에게 전하게 했습니다.
여인들이 그 소식을 듣고 느꼈을 경외심과 소망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들은 이 성스러운 부르심을 수행하기 위해서 급히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곧 예수님과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전력질주를 하다가 한순간에 멈추어 섰습니다. 위안과 기쁨에 찬 여인들은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그 발을 붙잡고 경배했습니다. 그들은 충분한 만남을 갈망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믿음의 경배를 드리며 예수님의 발을 단단히 붙잡았습니다.
무덤을 찾아간 여인들과 함께 있었다고 상상해 보세요. 과연 우리는 눈앞에 펼쳐진 상황에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왜 여인들은 다시 만난 예수님께 나아가 그분의 발을 붙잡았을까요? 어떻게 하면 우리도 예수님께 단단히 붙어 있을 수 있을까요?
가서 내 형제들에게 전하라
좋은 일이 생기면 사람들은 어떻게 하나요? 대부분은 즉시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그 소식을 공유하려고 할 것입니다. 소셜 미디어에 게시하든 장문의 문자를 보내든 부모님에게 전화하든 우리는 본능적으로 다른 사람과 좋은 소식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여인들은 예수님을 다시 만난 기쁜 소식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어떤 소식을 신나게 전했던 적이 있나요? 그 소식은 무엇이었나요? 반면에 전하기 어려웠던 소식이 있었다면 그것은 무엇이었나요?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
여자들이 갈 때 경비병 중 몇이 성에 들어가 모든 된 일을 대제사장들에게 알리니
그들이 장로들과 함께 모여 의논하고 군인들에게 돈을 많이 주며
이르되 너희는 말하기를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를 도둑질하여 갔다 하라
만일 이 말이 총독에게 들리면 우리가 권하여 너희로 근심하지 않게 하리라 하니
군인들이 돈을 받고 가르친 대로 하였으니 이 말이 오늘날까지 유대인 가운데 두루 퍼지니라
여인들에게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천사가 한 말과 거의 같았습니다. 여인들은 기쁨과 부활의 메시지에 힘을 얻어 예루살렘을 향하여 갔습니다. 긴급히 기쁜 소식을 전하러 간 것입니다.
한편 또 다른 메시지가 꾸며졌고 전달되었습니다. 여인들은 그들 생애 최고의 소식을 들었지만, 같은 소식이 무덤을 지키던 자들에게는 아마도 최악의 소식이 되었을 것입니다. 당시 문화를 고려할 때 죄수가 탈출하게 했다는 것은 경비병들에게는 곧 죽음을 의미할 수 있었습니다. 이미 죽은 죄수라 해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무덤이 비었다는 소식이 경비병들에게 그리스도의 부활 소식이 아닌 사형 선고가 되었습니다.
경비병들이 두려움에 떨면서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소식을 전했습니다. 운이 좋으면 매를 맞거나 질책 정도를 받으리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뇌물을 받았습니다. 대제사장들은 그들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몇 푼의 돈과 약간의 거짓말로 진실을 덮을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결국 그 비슷한 일이 유다에게도 일어났습니다.
마태복음에 따르면, 보고 들은 것을 전하라는 명령을 받은 사람은 이 여인들이 마지막이 아닙니다. 사실, 부활 후 40일 동안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가서 전하라"라고 직접 위임하셨습니다.
그리스도와의 연결
부활의 아침에 하나님은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자신의 백성에게 오랫동안 약속해 온 새로운 창조를 시작하심으로써 아들의 전적인 십자가 희생의 정당성을 입증하셨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써 새로운 창조의 일부가 되었으며, 그분의 형상 안에서 부활의 약속을 공유합니다. 죄의 저주는 제거되었고, 죽음은 패배했으며,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영원한 생명을 보장받았습니다.
your story
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직접 나타나지 않으시고, 여자들에게 먼저 나타나셨을까요?
두려움과 싸우는 믿는 자들에게 예수님의 부활 소식은 어떤 도움을 줄까요?
예수님의 부활을 믿게 되었을 때, 주변 상황은 어떠했나요? 부활 덕분에 변화된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your mission
<생각>
예수님의 부활 이야기에 너무나 익숙한 나머지, 그 놀라움을 잃어버리지는 않았나요? 죽음은 모든 사람에게 꼼짝 못할 만큼 두려운 것일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에게 죽음은 거대한 미지의 세계입니다. 죽음은 마지막이라는 의미에서 오싹합니다. 의료 기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죽음은 피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이길 수 없는 것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기셨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예수님의 승리는 곧 나의 승리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언젠가는 죽게 되는 현실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까요?
그리스도인이라면 죽음을 더 이상 아무것도 행사하지 못하는 패배한 적으로 봐야 합니다. 죽음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소멸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은 예수님의 부활하신 생명에 참여할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그리스도인들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자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을까요?
그리스도인은 죽음에 관해 이야기할 때, 항상 세심하고 부드러워야 합니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죽음 너머에 어떤 것이 있으며, 예수님은 믿는 자들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값없이 주시는 분임을 강조해야 합니다.
<마음>
마태는 여인들이 했을법한 말이나 예수님이 죽음에서 부활하신 것을 보고 물었을 법한 질문을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그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경배했다고만 기록했습니다. 거룩하신 그분의 존재 앞에서는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에게 가서 전하기 전에 우리가 최우선으로 삼아야 하는 것은 예배입니다.
예수님을 경배하며 살아가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이것은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따르는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예배하며 살아가지 않으면서 제대로 사명을 따를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사명을 추구하지 않는 것을 영적인 경고로 여기고 있나요?
<행동>
우리는 가서 다른 사람에게 예수님에 관한 진리를 전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28장의 부름과 위임은 특별히 예수님의 제자들을 향한 것이긴 하지만, 그것은 분명히 예수님을 믿고 사랑하는 모든 제자에게로 확장됩니다. 그 좋은 소식을 우리는 세상에 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예수님이 부활하신 사실을 믿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인들이 즉시 순종하여 전한 예수님의 소식을 듣고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여인들의 모습에서 배우게 되는 모범으로는 어떤 것이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