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황금 목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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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서론
목걸이에 대한 이야기
본론
본론
신자를 위해 기도하시는 성령을 통한 구원의 확신(18-30절)
미래의 종말론적 영광에 대한 확신에 초점을 맞춥니다.
이 단락의 시작은 영광으로 시작합니다. 또한 단락의 마지막도 영광으로 끝납니다.
롬8: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롬8: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이처럼 8장 18-30절은 5장1-11절의 ‘미래의 영광에 대한 확신’이라는 주제를 반복하지만 우주적인 더 넓은 배경 속에서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합니다.
두 단락 모두 신자의 현재적 신분과 미래에 누릴 영원한 영광을 긴밀하게 연결합니다.
5장과 8장에서 신자의 현재적 신분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음을 동시적으로 말한다.
신자의 미래적 영광은 하나님의 진노에서 구원을 받음과 영화롭게 됨을 말한다.
현재의 고난과 미래의 영광(18절)
현재 이 세상에서 아무 고통과 고난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있을까?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고통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인간이 고통과 고난을 피할 수 없는 것은 인생이 죽음을 피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인간의 고통과 죽음은 근원적으로 인간의 죄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죽음이 왔듯이 각종 육체의 질병, 정신적 갈등, 사회적 범죄, 자연적 재해 등도 근본적으로는 인간의 죄 때문에 발생한 일종의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범죄와 타락 이후 죄악 된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인간에게는 죽음이 필연이듯이 고통도 필연입니다.
고통이 수시로 찾아올 때 우리는 이 방문객을 어떻게 맞이해야 할까요?
수시로 삶의 고통이 짓눌러 오거나 압박해 올 때, 우리는 고통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고통에 대해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두 가지 반응을 보입니다.
첫째, 고통에 대해 체념하는 사람들입니다.
세월이 약이야, 시간이 지나면 고통이 사랑지겠지, 팔자소관인데 어떻게 하겠나?
둘째, 고통에서 도피하려는사람들입니다.
자신에게 닥친 삶의 괴로움을 애써 잊어버리려 발버둥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직면한 고난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보통 술에 취함으로써 고통을 잊어버리려고 합니다.
또는 오락적인 도피처로 감으로써 고통에서 도망치려고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고난에 대해 그리스도인의 태도는 다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고난이 없지 않습니다.
오히려 일반적인 사람들보다 두 배로 고난이 있습니다.
첫째, 신자도 일반적인 고난을 받습니다.
질병이나 전재이나 자연 재해 등과 같은 고통들입니다.
일반 은혜가 모두에게 있는 것처럼 일반 고난도 모두에게 있습니다.
둘째, 신자이기에 세상에서 당하는 고난입니다.
예수 믿는다는 이유로 가족이나 동료나 사회에게 당하는 어려움들입니다.
이것은 특별한 고난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에게 이 세상에서의 현재의 삶은 ‘두 배로 고난’의 세월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인은 이런 고난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첫째, 그리스도인은 고난에 대해 도피하려고 하지 말고 고난의 현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고난의 현실을 받아들여야 할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고난 속에서 의미를 발견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와 연합된 신자는 그리스도의 고난에도 연합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고난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중요한 증거 가운데 하나입니다. 또한 고난은 경험적 측면에서 신자가 거룩하게 되는 중요한 방편입니다.
죄의 본성에 물든 나를 고치는 약 중에 고난의 약보다 신통한 약이 어디 있으며, 죄로 뻣뻣한 나를 고치는 데 고난의 스승보다 더 좋은 스승이 어디 있겠습니까?
고난으로 신자의 신앙과 인격은 점점 자라납니다. 그래서 장차 영광에 도달할 준비를 하게 됩니다.
둘째, 그리스도인은 미래의 영광을 통해 현재의 고난을 이겨야 합니다.
고난이 신자에게 의미가 있다 해도 고난은 역시 힘들고 어려운 것입니다.
갑자기 고통이 우리를 찾아오면 우리는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습니다.
고통의 무게에 눌려 신음할 수 밖에 없습니다.
“주여!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십니까?”
그리고 도저히 이 고통에서 헤어날 수 없을 것처럼 느껴지지도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가 고난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고난을 극복하며, 고통을 이겨 낼 수 있을까요?
신자가 고난을 이기는 방법은 현재의 고난과 장차 올 영광을 비교하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처한 환경과 조건이 너무 힘들고 고통스럽습니까?
그러면 장차 임할 영광을 한번 묵상해 보십시오.
그러면 지금까지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줄 알고 있었던 고난의 무게는 갑자기 깃털처럼 가벼워질 것입니다.
신자가 고난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장차 신자에게 나타날 영광의 무게를 아는 것입니다.
많은 신자가 고난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은 고난이 너무 크게 보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만큼 미래의 영광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입니다.
신자의 고통의 진정한 원인은 외부적인 고통의 조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주어질 영광에 대해 너무 모르는 데 있습니다.
미래의 영광의 크기를 보여 주는 세 가지 탄식(19-27절)
사도 바울은 신자들이 맞이할 미래의 영광이 얼마나 큰지를 세 가지 탄식을 통해 보여 줍니다.
첫째, 피조물의 탄식입니다(19-22절).
롬8:19-22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동물과 식물들과 자연 만물은 지금 썩어짐의 종노릇 상태에 있습니다.
피조물들이 이렇게 된 것은 바로 인간 때문입니다.
타락의 피해를 모두 받고 있습니다.
인간이 만물의 대표이므로 다른 피조물들도 인간과 연합되어 있습니다.
인간의 타락과 형벌로 피조물들도 썩게 되는 형벌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자연 만물도 언젠가 이런 상태에서 벗어나 더 이상 썩지 않는 영광스러운 상태가 올 것을 간절히 기대하고 있습니다.
자연이 썩어짐의 종노릇 상태에 들어간 것이 인간의 타락 때문이었듯이 피조물의 영광스러운 상태는 하나님의 아들들, 즉 신자들이 영광스럽게 될 때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신자인 나에게 임할 영광은 자연 만물도 간절히 바라는 영광입니다.
따라서 신자의 자연관은 일반적인 환경보호 운동가의 자연관과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환경보호 운동가는 현재의 자연 상태에 보존에 관심이 있습니다.
그러나 신자의 자연관은 현재 타락한 상태에서 썩어짐의 종노릇 상태에 있는 자연의 회복 정도가 아니라 자연조차도 완전히 썩어짐의 종노릇에서 해방되는 영광스러운 새 하늘과 새 땅이 되는 것입니다.
신자의 영광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나에게 임할 영광은 장차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날 그때에 함께 임합니다.
예수님이 33년의 생애 동안 특별히 변화산에서 잠깐 보여 주셨던 영광, 부활시 보여 주셨던 그리스도의 영광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해 완전히 드러날 것입니다.
그때에 그리스도와 연합된 신자도 그리스도의 부활하신 몸처럼, 그리스도의 성육신 하신 영광의 일부를 함께 누리게 될 것입니다. 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신 영광스러운 몸처럼 변화되는 일들이 신자에게 일어날 것입니다. 죽은 성도들도 부활하여 몸이 변화될 것이고, 그리스도 재림 때 살아 있는 신자들은 죽음을 맛보지 않은 채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둘째, 신자들의 탄식입니다(23-25절).
롬8:23-25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신자들이 탄식하는 이유는 ‘양자 될 것 곧 몸의 속량’입니다.
여기서 몸의 속량이란 몸의 부활을 통한 영화를 말합니다.
신자의 최종적인 속량은 바로 그리스도의 재림 때 있을 몸의 부활입니다.
신자들은 이런 영화가 이루어지기를 위해 탄식합니다.
신자는 현재의 고난과 장차 임할 영광 사이에 끼여 있습니다.
현재의 고통을 깊이 알수록 신음은 커집니다.
미래의 영광을 깊이 알수록 신음은 더욱 커집니다.
신자의 신음과 탄식은 결국 소망의 다른 표현입니다.
영화를 바라보는 신자의 탄식은 영화가 얼마나 큰지를 말해 줍니다.
셋째, 성령의 탄식입니다(26-27절)
롬8:26-27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성령은 우리의 연약함을 돕습니다.
여기서 연약함이란, 인간의 피조물성을 총체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이런 연약함은 신자에게 있어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 할지를 잘 모르는 것’으로 대표됩니다.
신자가 드리는 기도에 있어 가장 큰 문제는 이것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기도가 과연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것일까?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라면 이루어 주십시오.’라고 하기도 합니다.
우리의 기도에는 항상 ‘하나님의 뜻이라면’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연약해서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가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것인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는” 우리의 연약함은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여 주심”으로 도와주십니다.
성령의 탄식은 피조물의 탄식이라는 표현과 마찬가지로 의인법을 사용하여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성령의 말할 수 없는 탄식은 성령이 친히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성령이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부합하는 기도를 드려 주신다는 말입니다. 즉 성령은 하나님의 뜻대로 신자를 위해 기도해 주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생각과 성령님의 생각이 완전하게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장차 하나님이 신자에게 주실 영광이 얼마나 큰지 알기 때문에 탄식하며 신자를 위해 친히 간구해 주시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피조물의 탄식, 신자들의 탄식, 성령의 탄식은 모두 미래의 영광이 얼마나 큰지에 대한 강력한 증거들입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구원의 마스터플랜(28-30절)
그러면 성령이 신자를 위해 간구하는 하나님의 뜻은 뭘까요?
신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 안에는 신자들의 미래의 종말론적인 구원인 영화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자들의 미래에 대한 확신은 바로 이런 하나님의 계획에서 비롯됩니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할 때 계획을 세웁니다.
그러나 우리의 계획은 잘못될 수가 많습니다.
또한 좋은 계획을 세웠다 할지라도 우리의 능력과 의지 부족으로 계획을 이루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와 다릅니다. 하나님은 전지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계획은 완벽합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입니다. 한번 세우신 계획은 반드시 이루고야 마십니다.
28-29절은 바로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과 목적, 마스터 플랜을 우리에게 장엄하게 보여 줍니다.
롬8:28-29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로마서8: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여기서는 구원의 모든 과정을 단계로 소개합니다.
구원의 5단계는 미리 아심, 미리 정하심, 부르심, 의롭다 하심, 영화롭게 하심입니다.
이러한 구원의 5단계는 구원의 모든 단계를 상세하게 말한 것이 아니라 핵심 내용을 중심으로 계략적으로 말한 것입니다.
1단계: 미리 아심, 미리 안다는 것은 단순히 사건에 앞서 미리 안다는 지적인 의미가 아닙니다.
여기서 안다는 것은 특별한 관계를 가진다는 말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미리 안다는 것은 곧 미리 사랑했다는 말과 동의어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이전에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시고, 미리 사랑하셨다는 뜻입니다.
미리 안다는 것은 미리 선택하셨다는 말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인간의 행동 이전에 하나님의 행동이 먼저였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미리 안다는 것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기 이전에 하나님이 영원 전에 먼저 사랑하시고, 사람들이 하나님을 선택하기 전에 하나님이 창세 전에 먼저 선택하셨다는 말입니다.
2단계:미리 정하심, 예정은 미리 아신 자들에 대해 하나님이 미리 목표를 정하신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미리 아신 자들을 어떻게 목표하고 계실까요?
일차적 목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도록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닮게 해서 예수님의 동생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동생을 만들어 하나님의 아들로 입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우리를 이처럼 예수님 닮은 하나님의 아들로 만드시려 하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영광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맏아들로 만들기 위함입니다.
맏아들이란 상속자요, 독특한지위를 가지고 있는 아들입니다.
예수님이 맏아들이 되심으로써 예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영광을 드러내심으로써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풍성함을 드러내시려는 것입니다.
3단계:부르심, 하나님의 계획이 역사 속에서 구체적으로 이루어집니다.
부르심은 새로운 전환점입니다.
부르심이란,복음 전도를 통해 우리를 예수님 믿도록 부르시는 것을 말합니다.
복음 전도를 듣고 믿도록 부르시는 것을 효과적 부르심이라 말합니다.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반응하는 것은 효과적인 부르심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음을 주어 예수님 믿도록 만드십니다.
이러한 부르심은 열 살 때 올 수도 있고, 스무 살에 올 수도 있고, 죽기 직전에 올 수도 있습니다.
부르심을 통해 구체적으로 내 삶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현실화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내가 부르심 받았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내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고 있는 사람은 바로 자신이 부름 받았다는 증거를 가진 사람입니다.
4단계:의롭다 하심, 하나님이 복음 전도를 통해 예수님 믿도록 부르신 사람에게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연합을 통해 우리를 의롭다고 선언해주십니다.
죄인 된 우리 죄를 예수님께 넘겨주심으로 예수님이 우리 대신 죄의 형벌을 받게 되어 우리 죄가 용서받게 됩니다.
의인 된 예수님의 이를 우리에게 넘겨주심으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때 의인으로 선언되고 간주됩니다.
우리의 의가 아니라 예수님의 의로써 우리는 의롭다 칭함을 받습니다.
예수님의 핏값으로 산 옷입니다.
5단계:영화롭게 하심, 구원의 마지막은 영화입니다.
영화롭게 된다는 것은 우리의 구원이 영혼만이 아니라 몸의 구원까지 일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영화란 바로 예수님처럼 닮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닮는다는 것은 신성을 가지신 예수님을 닮아 우리가 신이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것은 영원토록 불가능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영원한 하나님이시고 우리는 영원한 피조물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을 닮는다는 것은 완전한 인성을 가지신 예수님, 그 예수님의 인성을 완전하게 본받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인성은 하나님이 계획하신 완전한 인간성의 모델입니다.
예수님을 본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태초에 계획하신 완전한 인간이 된다는 말과 같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구원은 통짜배기입니다.
하나님의 미리 아심을 받았는데 하나님의 예정을 받지 못한 사람은 없습니다.
예정을 받았는데 부르심을 받지 못한 사람도 없습니다.
부르심은 받았는데 의롭다 하심을 받지 못할 사람도 없습니다.
의롭다 하심을 받았는데 영화롭게 되지 못할 사람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이러한 구원의 단계는 구원의 황금 사슬입니다.
이 사슬을 중간에 끊을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신자로 부르심 받았다면 우리는 반드시 영화롭게 됩니다.
우리가 만일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면 우리는 반드시 영화롭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의 확신입니다.
왜 구원의 확신이 흔들릴까요?
구원을 내 행동에 기초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가 행동을 잘못하면 구원이 취소될 수도 있을 거라고 불안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구원은 우리의 행동에 기초하고 있지 않습니다.
구원은 나의 행동 이전에, 나의 출생 이전에 하나님의 미리 아심과 미리 정하심 속에서 계획된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행동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구원의 현재나 미래는 나의 행동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부르심과 의롭다 하심과 영화롭게 하심은 모두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절대로 중간에 포기되거나 실패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나의 구원을 완수하시는 전능하신 분입니다.
구원은 영원한 하나님의 계획에서 시작되어 영원한 하나님의 계획 완성으로 마감될 하나님의 위대한 작품입니다.
결론
결론
강력한 구원의 확신에서 우러나오는 찬양(8:31-39)
여기는 5-8장 전체의 요약이자 결론이기도 합니다.
바울은 다음과 같은 5가지 수사학적 질문과 대답의 형식을 통해 최종적인 구원에 대한 확신을 힘차게 노래합니다.
첫째 질문: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31절)?
롬8:31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이것은 신자를 공격할 존재가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35절에서 신자에 대한 다양한 대적을 ‘환난, 곤고, 박해, 기근, 적신, 위험, 칼’등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내 안의 죄, 이웃의 죄, 세상의 공격으로 인생이 망가질 때,
이 질문은 누가 우리를 대적해서 우리를 이기리요?라는 질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기 때문에 대적들이 신자들을 이길 수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보다 강한 분은 없습니다.
둘째 질문: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변하거나 감소될 수 있는가(32절)?
롬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우리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식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이미 우리에게 주신 십자가의 사랑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최고, 최상의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 주신 것입니다.
이미 가장 큰 사랑을 베풀어 주셨는데, 무엇을 의심하겠습니까?
셋째 질문:우리를 고발할 자가 있는가(33절)?
롬8:33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고발이라는 말은 사법적인 용어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최후의 심판 때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신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누가 신자를 최후의 심판 때 고발할 수 있을까요?
물론 사탄이 고발할 수 있고, 신자의 원수들이 고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고발은 아무 효력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재판장이신 하나님이 신자를 이미 의롭다고 판결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신자를 대신하여 하나님 앞에 의를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의롭다는 하나님의 판결을 받은 것입니다.
누구도 최후의 심판 때 이미 그리스도를 통해 의롭다 함을 받은 신자를 고발할 수 없습니다.
누가 능히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넷째 질문:우리를 정죄할 자가 있는가(34절)?
롬8: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주변에 우리를 정죄하려는 것이 많습니다.
우리의 마음이나 우리의 원수들이나 마귀가 우리를 정죄하려고 할 수 있습니다.
죄책감, 기쁨을 빼앗길 때
그러나 이 모든 정죄는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유는 바로 예수님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위해 우리 대신 이미 정죄를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우리를 위해 우리가 받아야 할 저주를 대신 받으셨고, 우리를 율법의 정죄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부활하심으로 우리의 죗값을 위한 죽으심과 우리의 의를 위한 예수님의 사심이 하나님 아버지께 받아들여졌음을 증명해 주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승천하여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면서 신자를 위해 중보 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예수님의 모든 속죄 사역이 완성되었으며 우리의구원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완성하셨다는 증거입니다. 대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 것 자체가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중보 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를 정죄할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다섯째 질문:우리의 연약함 때문에 우리가 넘어질 염려가 있는가(35-39절)?
바울은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라고 묻습니다.
롬8: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고통을 동원하는 사탄의 환난,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게 만드는 것
대답은
롬8: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바울은 자신의 사역에서 경험한 것으로 이 세상에서 직면하게 되는 대적과 고난의 종류가 다양한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어떠한 피조물도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서부터 분리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하여 피조물의 모든 범위를 언급하며 구원의 확신을 노래합니다.
롬8:37-38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사망이나 생명(존재의 두 단계),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영적인 영역), 현재 일이나 장래 일(시간적인 영역), 높음이나 깊음(공간적인 영역)
부활의 아침, 다섯가지의 질문을 통해 우리의 구원의 확신이 흔들릴 때 결코 끊어질 수 없는 구원의 황금 사슬을 주신 주님을 찬송합니다.
미리 아시고 미리 정하시며 부르시고 의롭다고 하시며 영화롭게 하실 주님을 찬송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영원한 구원 계획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보이신 사랑을 성령 하나님께서 이 일에 보증하십니다.
삼위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