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D_누가복음24:44-53_늘 하나님을 찬송하는 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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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4:44–53 (NKRV)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
예수께서 그들을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사 손을 들어 그들에게 축복하시더니
축복하실 때에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려지시니]
그들이 [그에게 경배하고]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가
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니라
고난주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누가복음이 1편이라면 사도행전은 누가복음 2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은 예수님이 누구인지에 대해서 쓴 것이고, 사도행전은 성령님이 하시는 일에 대해서 쓴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누가복음1편의 마지막 단락입니다. 누가복음 전체에 대한 요약이면서,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은 어떤 삶을 살았는가를 요약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이 성도라는 관점에서, 주님이 어떻게 살아가셨는지 이 고난주간에 생각하려고 합니다.
poi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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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시며 살았습니다.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은 구약성경을 말합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약성경에 쓰여진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어 드리는 삶을 사셨다고 누가복음은 요약하고 있습니다.
이 고난주간에 전 세계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 분들 중에서 만에 하나라도 하나님을 향해서 살아가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성경에 쓰여진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며 살아가면 될 것입니다.
알아듣기 어렵고 이해하기도 쉽지않은 하나님의 뜻도 있지만, 누구에게나 분명하게 알 수 있는 하나님의 뜻도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16–22 (NKRV)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
예언을 멸시하지 말고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reason
reason
이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야겠다고 마음 먹고 보니까, 뜻밖에도 하나님의 뜻이란 하나님을 위한 것이기 보다는 오히려 우리들이 행복하게 지내는 방법을 주십니다.
늘 결핍에 시달리고, 미래에 대한 걱정거리에 둘러싸여 있는 사람들이 현실 속에서 용기있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 같습니다.
항상 기뻐하면, 기뻐하는 당사자가 유익합니다.
내 현실 속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함께 하시는지를 알고 싶다면 기도의 자리는 불가피한 것입니다. 항상 기도하라는 말씀은 사실 우리가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수단입니다.
무엇보다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만큼, 본인 자신이 행복한 사람은 이 세상에 없을 것입니다. 어떻게 그런 상황에 감사를 하십니까. 어떻게 그런 형편에 감사를 하십니까. 어떻게 그런 조건 속에서 감사가 나오십니까. 감사하시는 분이 있다면 그 분 안에 뭐가 있기는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그 뭔가를 가지라고 하시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며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가 행복한 것입니다. 자식이 행복하다고 하면 엄마아빠는 그저 좋습니다. 없는 형편에 기쁨과 감사를 결실하는 자식을 보는 것은 엄마아버지의 영광입니다. 자식을 향한 고마움과 미안함과 대견함과 안타까움이 함께 묻어 있는 부모님의 영광입니다. 없는 형편인게 미안하고, 그 속에서 잘 자라주니 고맙고, 대견하고, 앞으로 견뎌야 할 인생의 무게를 생각하면 안타까운 것이지요. 믿음은 그 길을 가는 것입니다.
내가 행복해야 옆사람이 행복합니다. 내가 짜증내면 그 짜증이 사람들을 타고 옮겨답니다. 누군가는 그 짜증의 고리를 끊어줘야 합니다. 행복한 사람만이 끊을 수 있을 것입니다. 감사하는 사람이 그 악의 고리를 멈출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살아가는 것은 그 고리를 끊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기뻐하면 옆사람이 덩달아 웃게 됩니다. 웃는 사람 옆에 가면 같이 웃게 됩니다. 실컷 웃고나서 그런데 뭐가 그렇게 웃음이 냐느냐고,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느냐고 물을 지언정 우선 같이 웃고 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망가지고 결핍되어 있어서 완전히 채워질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에, 한 번 웃는 것이 그렇게 힘이 든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와중에 웃음이 있고, 기쁨이 있다는 것은 마음에 여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이 세상에 여유를 부릴 틈이 없습니다. 그 틈을 가지는 것이 하나님의 듯을 이루어드리며 사는 것입니다.
모든 일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그럼 나쁜 것을 취하라고 하겠습니까. 악을 도모하는 자가 되라고 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성도에게 늘 바라시는 것이 당연한 것들입니다.
골고루 밥 잘 먹고, 항상 차 조심하고,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고, 두 개 있으면 하나는 동생주고, 인사 잘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다른 사람 눈치보지 말고 소신껏 너의 인생을 살라는 것이 아버지의 뜻이 아니겠습니까. 엄마의 마음이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볼 때, 아마도 하나님께서는 성도가 부디 현실을 행복하게 지내기를 바라시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삶은 하나님 아버지의 그런 뜻을 이루어드리며 살아가셨기 때문에 충분히 행복하셨습니다. 목수로 사시는 생활내내 기쁨과 감사로 지내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십자가까지 가는 길이라는 것을 아셨지만 마음이 담대하셨습니다. 그 뜻을 이루는 것을 주님의 행복으로 아셨습니다. 기꺼이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셨습니다.
주님은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가 건강하셨기 때문에, 망가진 이 세상에서 살아가시면서도 분노만 하시지 않고 긍휼을 베푸셨습니다. 바르게 살아가셨을 뿐만 아니라 제자들이 바르게 되기까지 그 실패와 오해와 넘어짐을 이해해주셨습니다. 제자들이 어떻게 해야 하나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도록 스스로 본을 보이셨습니다. 격려하시고 새로운 기회를 주셨습니다. 급변하는 상황 속에서도 차분히 제자들을 따로 앉혀놓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 한 번 태어나서 잘 사는 것이 도대체 무엇일까 생각할 때,
성경에 드러나 있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드리며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고 누가복음은 전달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m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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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딸을 둔 집사님이 계셨습니다. 조그마한 사업체를 운영하셨던 분이셨는데, 어느 날 주님의 사랑을 깨닫고 진지한 믿음을 추구하시게 되었습니다. 자신에게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내, 두 딸, 조그마한 사업체뿐만 아니라 살아있는 모든 시간시간 감사함을 느꼈고,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는, 하나님의 은혜가 머물고 계시는 분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너무나 일찍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습니다. 참으로 황망하고, 경황도 없고, 뭐라고 아무말도 할 수 없는 시간들이 지나야 했습니다.
특히 아빠의 죽음에 대한 두 딸이 받은 데미지는 가늠할 수가 없었습니다. 슬픔의 오랜 시간이 지나고 두 딸 중에 한 분이 사람과 하나님 앞에서 고백했습니다.
하나님,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아직도 아빠가 없다는 것이 여전히 믿어지지가 않고, 자기 의지로 누를 수 없는 눈물이 때때로 흐른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한 현실을 나름대로 잘 받아들일 수 있는 이유가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 아빠는 여한이 없이 자신을 사랑했다고 했습니다. 다른 딸들이 평생에 걸쳐서 받아야 할 아버지의 사랑을, 우리 아빠는 자기에게 한꺼번에 쏟아준 것 같다고 했습니다.
아빠도, 자기 자신도 서로 여한이 없이 사랑을 주고 받았기 때문에, 비록 많이 슬퍼도, 여한이 없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란, 여한이 없이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일찍이 천국에 들어가신 그 집사님은 성경에 드러나 있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며 살았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향해서 하나의 인생으로 살아가셨습니다. 사람이 한 번 세상에 태어나서 하나님을 어떻게 경외하며 지내야 하는 지를 보여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을 향해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다양하게 보여주시려고 노력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계획하고 이루어 가시는 분이신지 보여주셨고, 얼마나 능력이 강력하신지, 얼마나 참을성이 많으신지, 얼마나 사람을 구원하시는 것에 진심이신지를 보여주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서, 예수님의 사랑을 알게 된 사람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싶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좀 부족해도, 좀 못난 짓도 하지만, 은혜를 받았다면 이렇게라도 하나님을 쫓아살고 싶기 마련입니다.
비록 예수님처럼 완전하지는 않을지라도, 하나님의 뜻이 내 인생 위에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성도입니다.
하나님을 향해서는 어떻게 경외하며 살아야 할까 매일 생각하고, 가족을 향해서는 어떻게 따뜻하게 살아야 할까 고민하는 사람들이 성도들입니다.
그런 고민 위에서 지내는 시간들이 쌓여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과정이 되어 가고, 하나님의 영광이 담겨지는 그릇같은 인생으로 지어져 가는 것입니다.
성도만큼 죽음을 가까이 생각하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매일같이 영원히 계시는 하나님을 마주하면서, 나 자신이 한계가 있는 유한한 인생이라는 것을 직면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볼 수 있는 기회가 항상 있는 것이 아니고, 가족들을 향해, 교인들을 향해, 사람들을 향해 친절할 수 있는 시간이 무한한 것도 아닙니다. 어느 날 느닷없이 끝날 수도 있습니다. 예기치못하게, 손쓸틈이 없이 우리의 시간이 어느새 다 지나고마는 것입니다. 그런 일이 없어야겠지만, 있다고 할지라도 누군가 우리를 생각할 때, 참 여한이 없이 사랑하며 살았다고 말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마음 껏 하나님을 찬송하며 살아야 합니다. 마음 껏 가족들에게 진실해야 합니다. 거침없이 나쁜 것은 버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거침없이 교인들을 격려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제 좀 내 자신이 달라져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나에게 시간이 너무 없다고 느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무 의도없이, 그저 인간의 순수한 심정으로, 내 앞에 어떤 사람이든 인격적으로 대할 수 있는 실력을 기르려고 연습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사랑하시고, 새롭게 하신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해 주님은 고난주간을 통과해내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면서 짧은 인생을 지내신 것처럼, 저와 여러분도 늘 하나님을 찬송하며 그 분의 뜻을 이루어가며 살아가면 좋을 것입니다.
고난주간에 생각해보고 싶은 주님의 삶은,
point
point
두번 째로, 예수님은 영광이 보장된 고난을 감수하시며 지내셨습니다.
누가복음 24:46 (NKRV)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예수님은 다 알고 계셨습니다. 본인이 십자가에서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아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삼일이 지나 살아날 것도 아셨습니다. 영광이 보장된 고난이라는 것도 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난은 고난이었습니다. 감수해야 하셨습니다. 마시고 싶지 않은 고난의 잔을 마셔야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 잔을 마시려고 태어나셨기 때문입니다.
reason
reason
하나님의 아들도 고난은 감수하셔야 했다면, 하나님의 자녀들이 된 사람들도 감수해야 할 것들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친 아들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다보니 홀로 산에 가셔서 기도하며 고독한 싸움을 감수해야 하셨습니다. 함께 동거동락하는 친밀한 제자들일지라도 전부 나눌 수 없는 하나님과의 내용들이 있었습니다.
친 아들도 그렇셨다면, 양자로 받아들이신 저와 여러분 또한 홀로 하나님 앞에 서는 고독함을 감수해야 하는 것입니다. 모두 다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씩 혼자 하나님 앞으로 나오라고 하십니다.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하나님과의 내용을 가지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홀로 고독한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영적인 외로움을 감수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혼자 하나님 앞에 나갈 때 일어나는 것입니다.
예배하는 군중가운데서 따로 나오셔서 꼭 혼자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많은 무리들 속에서 섞여만 있지 말고, 따로 나와서 혼자 하나님께로 나아가서 내 자신이 이해가 어려운 것들을 물으시고 그 때 그 때 본인의 실력에 맞는 답을 얻어가시면서 자신의 삶을 기꺼이 하나님과 함께 지내십시오.
성경은 그렇게 하는 사람들을 증인이라고 합니다. 주님을 모시는 흔적이 있는 사람, 하나님을 아는 심정이 있는 사람, 주님과 씨름하여 환도뼈가 부러져본 사람은 그 자체로 복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고독한 사람이 되십시오. 그러면 사람들과 함께 행복한 사람으로 지어져 갈 것입니다.
혼자 잘 사는 사람이 둘이서도 잘 삽니다. 홀로 똑바로 서 있는 사람이, 함께 있어도 똑바로 잘 서 있습니다. 혼자 하나님 앞에 잘 나아가는 성도가, 모두 함께 있을 때에도 예배에 성공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24:50–53 (NKRV)
예수께서 그들을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사 손을 들어 그들에게 축복하시더니
축복하실 때에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려지시니]
그들이 [그에게 경배하고]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가
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니라
영광이 보장된 고난을 고독하게 감수하신 예수님의 은혜로 성령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을 향해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영적인 고독함 가운데서, 기꺼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며,
늘 찬송으로 남겨진 본인의 시간을 채워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우리들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보장된 영광을 바라보시며 고난을 감수하신 주님을따라 우리에게 있는 현실과 다양한 조건들을 감수하며 늘 하나님을 찬송하는 시간들로 남겨진 삶을 채워가는 축복받은 우리 모두가 되도록 동행하여 주시옵서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