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가상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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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가상칠언

요한복음 19:28–30
요한복음 19:28–30 NKSV
28 그 뒤에 예수께서는 모든 일이 이루어졌음을 아시고, 성경 말씀을 이루시려고 “목마르다” 하고 말씀하셨다. 29 거기에 신 포도주가 가득 담긴 그릇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해면을 그 신 포도주에 듬뿍 적셔서, 우슬초 대에다가 꿰어 예수의 입에 갖다 대었다. 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시고서, “다 이루었다” 하고 말씀하신 뒤에, 머리를 떨어뜨리시고 숨을 거두셨다.

성금요일

성금요일에 드리는 기도회는 8세기에 시작된 테네브레(Tenebrae)예배 입니다. 이 예배는 성금요일에 드리는 예배로서 예수님의 가상칠언을 낭독해 가면서 촛불을 하나씩 끄고 마침내 어두움 속에서 돌아가는 예배입니다. 여기에서 어두움은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실 때 온땅을 덮었던 어두움을 상징 합니다. 촛불은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으로서 예수님이 세상을 떠나시면서 세상이 어두워짐을 상징적으로 나타냅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의 가상칠언의 의미를 잠시 살펴 보고 성금요일 의식으로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고자 합니다.

역사적으로 남겨진 유언들

죽음을 앞두고 말할 수 없는 고통이 몰려오는 그때에 남기는 한마디의 말이 있다면, 그 사람을 잘 말해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그 순간에 어떤 말을 남기실 것 같으십니까? 제가 여러번 말씀드리는 한 집사님의 임종앞에서 저에게 남기신 그 말을 기억합니다. 간암으로 고생하시면서 죽음의 고통앞에서 여러번 집사님 위해서 기도했던 저에게 “ 목사님, 사랑하고 축복합니다.”라는 말을 남기셨습니다. 집사님은 정말로 저를 보면서 그 얼굴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간 때문에 안색이 좋지 않았지만, 진심을 담아 웃으며 축복의 말을 남기셨습니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이름을 남긴 유명한 사람일 지라도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은 실망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1883년 3월 14일 칼 마르크스가 사망하던 날, 하녀가 마르크스에게 다가가 자신에게 ‘마지막 말'을 남기면 기록으로 남기겠다고 했습니다. 그 때 마르크스가 남긴말은 “시끄러워, 나가"라고 소리치며 죽어갔다고 합니다. 프랑스의 그 유명한 나폴레옹은 “나는 불행했다. 프랑스, 군대, 조세핀…”, 장개석의 마지막 말은 “영웅이란 용감하게 실패하는 자다. 그러나, 희망은 … 사라졌다.”라고 애석하게도 대륙 수족의 한을 남기며 죽어갔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달랐습니다. 예수님이 남기신 가상 칠언은 끝에 남기신 말이지만, 다시 새로운 구원의 역사를 시작하는 끝트머리가 되셨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셔서 남기신 가상칠언은 십자가에 달리신 오전 9시부터 숨을 거두시는 오후 3시까지 마지막 숨을 거두시고 운명하시는 사이에 극한의 신체적, 심리적 고통 중에서 뱉어내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 가상칠언에는 우리의 신앙생활 속에서 기억해야할 복음의 메시지가 있습니다.

주님의 가상칠언

주님의 가상 칠언은 각 복음서의 말씀들을 모은 7마디의 마지막 외침입니다. 정확하게 그 순서를 우리는 알 수 없지만, 교회에 내려오는 전통적인 순서에 따라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번째 말씀은 “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입니다. 이 말씀은 용서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억울한 일은 당하시는 예수님은 제일먼저 하신 말씀이 놀랍게도 “용서"였습니다. 먼저 이는 우리가 속죄, 즉 죄사함의 용서의 은혜를 입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종으로 오셔서 우리를 조건없이 용서하여 주셨습니다. 결국 하나님앞에서 율법의 완성은 사랑입니다.이 은혜와 은총을 기억합시다. 나아가 예수님은 우리에게 원수라도 사랑하고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따라 용서하기 원하십니다. 주님의 기도에서도 용서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조롱하고 매질하고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는 자들에게 극한의 고통과 괴로움 가운데서 용서를 몸소 실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용서와 화해를 말하기 어려운 지금 이 시대에 참된 용서의 의미를 되새겨야 할 것입니다.
두번째 말씀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입니다. 이는 십자가에 함께 달린 옆에 달린 강도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사실 강도는 예수님께 예수여 당신의 나라가 임할 때 나를 기억하소서라고 말하였습니다. 낙원은 히브리어로 에덴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아담을 창조하여 함께 동행하셨던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 에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강도에게 에덴을 약속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을 통해서 임재하시는 하늘 나라로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의 초월적 성격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십니다. 영원이라는 것은 현재와 미래가 하나님 안에서는 초월된 상태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죽음을 잠을 잔다고 표현합니다. 고전 15:20 “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셔서, 잠든 사람들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우리는 죽음 이후에 엄청난 기다림의 시간 후에 예수님의 재림이 있을 것을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주님에게는 천년이 하루같고 하루가 천년 같은 분이십니다. 벧후3:8 “8 사랑하는 여러분, 이 한 가지만은 잊지 마십시오. 주님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가 죽음의 시간을 맞을 때에 주님의 재림의 때에 순간 깨어나 종말의 때에 부활을 경험하여 주님이 예비하신 낙원에 있을 것입니다. 강도에게 하신 이 천국의 즉각성은 우리에게 약속되어 있음을 믿기를 소망합니다. 나아가 한가지 더 기억할 것은 예수를 믿는 우리들에게는 이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을 살아갈 수 있는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라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길 소망합니다.
세번째 말씀은 “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보라 네 어머니라.”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도를 말씀하실 때 예수를 따르는 자들이 예수님의 가족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오해해서 예수 믿고 헌신하면 가족을 돌보지 않고 예수님을 따라야 하기 때문에 정말 가족들을 전혀 돌보지 않는 다면, 그것은 예수님의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사랑하는 제자 요한에게 이제 자식의 죽음 앞에 있는 어머니 마리아를 맡기십니다. 그리고 마리아에게 요한이 이제 아들 역할을 할 것입니다. 예수의 어머니로서 마리아의 삶은 어땠을까요? 많은 내면의 아픔과 괴로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땅에서 겪으셨던 아픈만큼 어머니 마리아도 아팠을 것입니다. 예수의 형제들 중 야고보가 나중에 교회 지도자가 되었지만 이 당시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어머니 마리아는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탄생 가운데도 함께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남겨질 어머니를 위해서 기도하셨듯이 우리도 예수님의 마음을 닮아 가족들을 돌아보길 소망합니다. 이는 혈족 뿐 아니라, 예수 안에 맺어진 식구들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네번째 말씀은 그 유명한 말씀입니다. “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나님의 아들이 부르짖는 이 말씀은 시편 22:2 “2 나의 하나님, 온종일 불러도 대답하지 않으시고, 밤새도록 부르짖어도 모르는 체하십니다.” 의 기도를 예수께서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모국어처럼 하셨던 아람어로 누가복음에는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만큼 고통 가운데 큰 소리로 부르짖는 외침이었습니다. 이러한 거절과 외면은 죄인인 우리가 당해야 할 심판에대한 죄값이건만 이를 예수님께서 유월절 어린양이 되셔서 우리의 죄값을 담당하여 주셨습니다. 그 저주와 외면을 받아내시었습니다. 한 신학자는 그리하여 “ 버림을 받으신 하나님”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의 스스로 버리시는 음성이라고 하였습니다.
다섯번째 말씀은 “내가 목마르다" 입니다. 십자가의 형벌을 받으시는 예수님은 사지가 꺽이셔서 숨을 쉴 수 없을 정도의 질식하는 고통을 겪으셨습니다. 이는 인간이 감당하기 힘든 극심한 고통 속에 그 목마름은 물과 피를 쏟으셔서 더이상 육신의 생명을 유지 할 수 없는 극도의 탈수 상태에서 뱉어내신 말입니다. 이는 시 22:14-15 “14 나는 쏟아진 물처럼 기운이 빠져 버렸고 뼈마디가 모두 어그러졌습니다. 나의 마음이 촛물처럼 녹아내려, 절망에 빠졌습니다. 15 나의 입은 옹기처럼 말라 버렸고, 나의 혀는 입천장에 붙어 있으니, 주님께서 나를 완전히 매장되도록 내버려 두셨기 때문입니다.” 의 말씀이 이루어 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 목마름과 갈증은 우리의 인생의 목마름과 갈증을 이해하시는 갈증입니다. 인생에는 끝없이 채워지지 않는 목마름이 있습니다. 편안해 지고, 건강해지고 부자가 되고 아무 걱정 없길 바라지만 결국 우리는 헤어나올 수 없는 갈증에 목말라 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목마름을 이해하시고 예수께서 우리의 생수가 되어 주심을 초막절 명절 마지막 날에 “목마른 자들은 나에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고 하셨습니다.
여섯번째 말씀은 “다 이루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사명을 위해서 끝까지 순종하시고 실행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7:4 “4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맡기신 일을 완성하여, 땅에서 아버지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을 보면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하라고 맡기신일을 끝까지 완성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셨습니다.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내가 하고 싶은 야망을 위해서만 살지는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사명을 끝까지 이루어 마지막날에 예수님과 같이 고백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마지막 일곱번째 말씀은 “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 입니다. 예수님은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 라고 크게 외치고 부르짖으며 괴로워하셨지만, 결국 죽음을 눈앞에 두고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전적으로 맡기는 신뢰와 순종의 모습을 보여 주십니다. 사실 이 말씀은 시 31:5 “5 주님의 손에 나의 생명을 맡깁니다. 진리의 하나님이신 주님, 나를 속량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의 기도를 따라 예수님께서 하신 기도입니다. 그런데, 기도가 유대인들이 잠을 들기전에 했던 기도입니다. 현실에서의 의식의 스위치를 끄고 잠자리에 들때 하는 기도입니다. 우리는 이 스위치가 잘 안꺼질 때가 많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하나님 아버지께 그 신뢰의 말씀을 드리신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 찬송가 144장을 하면서 주님의 가상칠언의 의미를 기억하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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