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409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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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주님

할렐루야! 오늘도 이 자리에 모인 모든 하늘고 친구들 너무나도 반갑습니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죠? 신입생 환영예배이기도 하고, 또 교회력으로는 부활주일인 날이기도 합니다.
부활절은 교회에서 성탄절과 더불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주일인데요, 아마 우리 친구들도 잘 알고 있을 것 같아요.
우리 친구들에게는 부활절이 어떤 날인가요? 보통은 아주 배부르게 계란을 먹을 수 있는 날이라고 생각을 할거에요.
저 역시도 어릴 때 계란 꾸미기도 많이 해보고, 맥반석 계란을 막 원없이 먹고 했었던 그런 기억이 있습니다.
하지만 부활절은 그저 계란먹는 날이라기에는 우리에게 아주 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고, 그렇기에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대체 왜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인지, 함께 말씀을 보면서 바라보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을 하나씩 차근차근 보면서 부활이 대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함께 살펴보도록 해볼게요.
자. 오늘 말씀을 함께 읽어보았는데요, 사실 오늘 말씀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사실 죽으심에 대한 이야기에 더 가깝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부활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예수님의 죽으심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하기에 오늘 말씀으로부터 출발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의 시작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장면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예수님께서 새벽 시간에 잡히시고, 대제사장들과 헤롯, 그리고 빌라도에게까지 가서 재판을 받으신 후 결국 십자가형이 결정이 되었죠.
그리고 예수님은 채찍으로 수없이 맞고, 백성들로부터 수많은 조롱을 받으시면서 십자가형이 벌어질 골고다 언덕을 오르시고 그 자리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난 후 온 땅에 어둠이 깔리게 됩니다. 말씀에 보면 제육시부터 어둠이 깔렸다고 하기 때문에, 그냥 별 생각 없이 말씀을 본다면 저녁 6시인가? 하고 생각하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사실 여기서의 제육시는 유대력에서 말하는 시간입니다. 그러니까 지금의 시간대로 변환을 해야 하는데요, 지금의 시간으로는 정오 12시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왜 굳이 어둠이 깔린 것을 말씀이 언급했는지를 알 수가 있을거에요. 정오에, 해가 아주 쨍쨍할 시간인데, 갑자기 어둠이 깔리더니 오후 3시까지 계속된거에요.
이때부터 아마 사람들은 뭔가가 이상하다고 느꼈을거에요.
그렇게 어둠이 깔린 채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채로 세시간이 흐릅니다.
세시간이 흐른 후 오후 3시 경, 예수님은 갑자기 크게 소리를 지르십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말이죠.
자 우리가 이 내용에 대해서 알아보기 전에 한번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 있어요. 바로 예수님께서 소리를 지르셨다는 그 자체에 대해서입니다.
자. 여러분들, 십자가형은 죄수를 죽이기 위한 형벌이겠죠? 그렇다면, 십자가형으로 죄수가 죽었다면, 그 사람의 사인은 무엇일 것 같나요? 다시 말하자면 그 사람을 사망에 다다르게 한 원인 말이죠.
보통은 몸에 못이 박혔으니까 과다출혈로 죽게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을 할거에요. 그런데 사실 학자들에 따르면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죄수들이 십자가형으로 죽는 대부분의 사인은 질식사라고 합니다.
한번 생각을 해볼게요. 십자가에 못박히게 되면 팔이 묶인 채 손목부분에 못이 박히게 됩니다. 그리고 발에도 못이 박힌 채로 발 밑에 아주 조그만 디딤용 발판을 두게 됩니다.
그러면 어떤 상태가 될까요? 중력에 의해서 몸이 아래로 쏠리게 되겠죠. 그러면 몸의 무게가 가슴을 압박하게 됩니다. 그래서 숨쉬기가 매우 힘들어지게 됩니다.
그러면 숨을 쉬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겠어요? 몸을 일으켜야겠죠. 그러면 몸을 일으키기 위해서 힘을 주는 순간 발과 팔에 못박힌 상처에 심한 고통이 오게 되는거에요.
그 고통때문에 힘을 풀게 되면 또 어떻게 되겠어요? 숨이 막히게 되겠죠. 결국 죄수들은 이 과정을 오랜시간동안 반복하다가 숨이 막혀 죽게 되는 거에요.
그런데 오늘 말씀에도 나와있지만, 예수님은 세시간 동안 살아계십니다. 앞서 말했던 그 과정이 너무나도 고통스럽기에 빨리 죽고 싶은 마음이 들어도, 죄수들은 쉽사리 죽지도 못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잘 알듯이 예수님 옆에 있던 죄수들은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나서도 숨이 붙어있어서 다리뼈를 꺾어버려서 그 충격으로 죽도록 만들게 됩니다.
그만큼 이 십자가형은 너무나도 고통스럽고 엄청난 형벌이라는 것이죠.
자 그런데, 세시간이 지난 상황에서 예수님은 크게 소리를 지르셨다는 것입니다.
사실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라도 세시간동안 그 고통 속에 있으면 소리를 지를수가 없을거에요. 애초에 숨이 잘 쉬어지지도 않는데, 소리를 치는 것이 불가능하겠죠.
그런데 예수님은 그 순간 소리를 지르십니다. 대체 어떤 것이 예수님으로 하여금 그 고통 속에서 소리를 지르게 했던 것일까요. 십자가 형의 고통이 너무나도 컸기 때문일까요?
그 답은 바로 이어지는 예수님의 말이 어떤 내용인지를 살펴봄을 통해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예수님께서 뭐라고 하셨냐면,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하십니다. 그 뜻은 이어지는 말씀이 말하듯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라는 뜻이었죠.
예수님께서 소리를 지르신 이유는 그럼 뭐겠어요?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셨기 때문이라는 거에요.
자. 우리가 여기서 이 내용을 보게 된다면, 좀 이상하게 느껴질거에요. 아니, 예수님은 분명히 자신이 죽을 것도 아셨고, 그 죽음이 매우 고통스러울 것도 아셨는데, 왜 갑자기 이렇게 영 다른 사람처럼 이야기를 하실까? 하는 것이죠.
그렇습니다. 이전까지만 해도 우리가 보았을 때 예수님은 그냥 그 고통을 혼자서 감내하시고 조용히 돌아가셔야 할 것 같아요. 하지만 예수님은 그러시지 않았아요.
그리고 또 이상한 점이 있죠? 우리가 매번 설교를 통해 듣듯이, 예수님은 곧 하나님이시죠. 하나님은 삼위일체시니까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라는 거에요. 그런데 이 말은 마치 예수님이 하나님과는 떨어진 존재인 것처럼 들리게 됩니다.
그렇죠. 이 한 구절의 말씀은 우리에게 여러가지 질문들을 던져줍니다.
하지만 그 질문에 대한 답 역시도 삼위일체의 신비 속에서 풀어낼 수가 있습니다.
친구들, 삼위일체가 뭐죠? 세 위격이 한 몸안에 있다라는 것이죠. 사실 논리적으로는 절대 이해할 수 없어요. 인간의 영역에서는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하나님은 가능하십니다. 그래서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의 세 위격은 하나의 존재이십니다.
다시 말하자면,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은 하나의 존재이시기 때문에 서로 강력한 연결이 있다라는 거에요.
그런데 성자 하나님께서 죽음을 경험하시면서 정말 아주 잠시잠깐 그 연결이 끊어지게 된 거에요. 그래서 예수님은 더이상 성부 하나님, 성령 하나님과 분리된다는 것에서 너무나도 큰 슬픔, 내적 고통을 느끼시게 된 거에요.
그래서 46절에서의 큰 외침으로 그 분리의 고통에 대한 아픔을 표현하신 것입니다.
이어서 47절을 볼게요. 예수님께서 그렇게 큰 소리로 외치시자 사람들이 이야기를 합니다. 저 사람이 엘리야를 부른다! 라고 말이죠.
이 말씀을 보면 첫째로, 이들이 예수님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라는 것을 알 수 있고, 둘째로 왜 엘리야가 나올까라는 질문이 생기게 될 거에요.
먼저 첫째로, 이들이 예수님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 것은 예수님께서 아람어를 사용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람어는 당시 이스라엘 지방에서 쓰이던 언어인데, 히브리어와는 또 다른 언어였기 때문에 이들이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어요.
둘째로, 왜 갑자기 엘리야가 나왔냐면요, 우선 엘리엘리라는 발음이 엘리야와 비슷하기도 할 뿐더러, 구약의 말씀에 엘리야를 보낼 것이라는 말씀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말라기 4:5 NKRV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래서 예수님께서 자신을 구원해달라고 엘리야를 부른다고 생각을 했던 것이었죠.
그러자 48절에서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해면에 포도주를 적셔서 마시도록 합니다.
오늘 우리의 본문에서는 등장하지 않지만, 다른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께서 목마르다고 하시고, 그래서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적셔서 마시게 합니다. 이런 것을 보면 예수님께서 이것을 요청하셨다고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 역시도 말씀을 이루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시편 69:21 NKRV
그들이 쓸개를 나의 음식물로 주며 목마를 때에는 초를 마시게 하였사오니
예수님은 마지막까지도 말씀을 이루어나가셨던 것이죠. 하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전혀 알지도 못하고 49절에서처럼 엘리야가 구원하러 오나 보자 이런 말들만 합니다.
그리고 결국 50절에서 예수님은 다시 한번 크게 소리지르시고 죽음을 맞이하시게 됩니다. 다른 복음서에 따르면 마지막에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셨다고도 하고 있죠.
그런데 예수님께서 죽으신 이후 엄청난 일들이 이루어집니다. 갑자기 땅이 진동하고 바위가 터지는 일들이 일어나는 거에요.
가뜩이나 낮에 어둠이 깔려있는데, 갑자기 지진이 나고 바위가 부서지고 이런 일들이 있었던 거에요.
그렇게 땅이 진동하면서 무덤들도 많이 부서지게 되었을 거에요. 우리가 이후에 예수님 무덤을 보아서도 알듯이, 당시의 무덤은 이렇게 바위 굴 같은 곳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죠.
그리고 그 부서진 무덤에서 많은 성도들이 부활을 한다고 말씀은 말합니다. 하지만 그 부활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이후라고 다음 말씀에서 말하고 있으니, 예수님께서 죽으셨을 당시에는 땅이 진동하는 지진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니까 54절에서처럼 백부장과 로마 병사들이 두려워하면서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라고 고백을 하게 됩니다.
아마도 로마의 병사들은 예수님에 대해서 그리 잘 알지 못했을거에요. 그냥 유대인 중 어떤 사람이 자신을 신의 아들이라고 말하고 다니는 미친 사람이라는 정도로만 생각했을 거에요. 그러니까 유대인의 왕이라고 십자가에 붙이고, 왕의 옷을 입히면서 조롱을 했겠죠.
그런데 그의 죽음에 맞추어 엄청난 일들이 벌어지니까 그가 정말로 신의 아들이라고 믿게 된 거에요.
여기까지가 바로 예수님께서 죽으신 십자가 사건에 대한 오늘의 말씀이었습니다. 어떤가요? 여기까지 보면 우리는 이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로마 군인들이 말했던 것처럼 정말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구나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하죠. 왜냐, 우리는 오늘 예수님께서 왜 죽으셔야 했고, 또한 부활하셔야 했는지를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것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서는 오늘 본문에서 제가 이야기하지 않았던 한 부분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바로 51절에 등장하는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졌다는 내용이죠.
가장 먼저, 성소의 휘장이 무엇인지를 알아야겠죠. 성소의 휘장은 제사장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 들어가는 성소와 바깥을 구분하는 천이었습니다. 성소는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장소였기 때문에 허락된 제사장 외에는 아무나 들어가서는 안되었고, 그래서 천으로 구분을 해놓은 것이죠.
그런데 그 천이 예수님께서 죽으심과 동시에 위에서 아래로 찢어진거에요. 왜 이 휘장이 찢어졌을까요. 충격으로 흔들려서?
이 찢어짐의 이유는 큰 목적이 있습니다. 방금 이 휘장이 목적이 뭐라고 했죠? 하나님이 계신 성소와 사람들이 있는 외부를 가르는 기준선의 역할을 한다고 했습니다.
왜 하나님의 장소와 인간의 장소를 갈라야 했을까요? 그것은 인간이 너무나도 큰 죄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죄가 너무나도 많아서 하나님을 마주할 수조차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 구분선이 찢어진거에요. 그 의미는 무엇일까요? 더이상 하나님과 인간과의 벽이 허물어졌다는 거에요. 무엇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죽으심으로 말이죠.
그렇습니다. 이전까지 인간은 그 안에 내재된 원죄로 인해서 수없이 죄를 짓고 살아갔고, 그것을 용서받기 위해서는 끝없이 동물을 바쳐 성소로 가서 제사를 드려야 했죠.
하지만 예수님께서 스스로 십자가에서 목숨을 바치신 그 순간,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위한 희생제물이 되셨고, 그 제사를 통해서 우리의 모든 죄가 사라지게 되었고, 하나님과 우리를 막았던 장벽도 더이상 필요하지 않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구원은 유대인들 뿐만이 아닌 모든 인간을 위한 구원이었죠. 그래서 예수님의 죽으심 이후 로마 군인들 역시도 예수님을 향한 믿음이 생겨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예수님은 3일이 지난 후 그 죽음의 형벌마저도 이기시고 다시 부활하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가지고 가셨던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은 그 모든 죄로부터 승리하셨다는 선언이었습니다.
그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기에 우리는 예수님께서 싸워 이기신 그 모든 죄악들로부터 이미 승리를 거둔 것이고, 그렇기에 우리는 이 승리의 날 부활절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부활절이 우리에게 너무나도 큰 의미가 있는 날인 것은, 이 날이 바로 우리가 죄로부터 승리를 거둔 날이기 때문입니다.
이 날이 있었기에, 우리는 이전까지 우리의 삶을 살아왔던 것처럼, 지금의 삶도 살아갈 수 있고, 앞으로의 삶도 기대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의 삶에서 죄가 전혀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죄는 지속적으로 우리를 괴롭히고 무너뜨리려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부활의 날이 있기에, 우리는 결국 주님과 함께 승리할 것임을 담대히 선포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승리로 이끄실 것입니다.
이 부활의 진리를 마음에 품고, 주님의 부활을 감사하고 기뻐하며, 앞으로의 삶 속에서 부활의 감격을 누리며 살아가는 우리 모든 하늘고 친구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함께 찬양하겠습니다. 나의 한숨을 바꾸셨네입니다. 주의 부활로 우리의 삶이 기쁨의 노래로 바뀌었다는 고백을 이시간 함께 올려드리기 소망합니다.
말씀을 놓고 - 부활의 주님께 감사하며 기쁨으로 누리는 삶을 살아가도록
신입생들을 놓고 - 앞으로의 삶에서 주님과 함께함으로 모든 것들 이겨내는 삶을 살게 해달라고
우리 자신을 놓고 - 각자의 모든 어려움들, 승리하신 주님께 맡기고 주님 안에서 자유를 누리게 해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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