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죄의 굴레에서 벗어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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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말씀을 제대로 읽어야 합니다.
첫째, 말씀을 제대로 읽어야 합니다.
1 그 때에 예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가실쌔 제자들이 시장하여 이삭을 잘라 먹으니 2 바리새인들이 보고 예수께 고하되 보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 3 예수께서 가라사대 다윗이 자기와 그 함께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25 네 이웃의 곡식밭에 들어갈 때에 네가 손으로 그 이삭을 따도 가하니라 그러나 네 이웃의 곡식 밭에 낫을 대지 말찌니라
5 다윗이 제사장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가 참으로 삼일 동안이나 부녀를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나이다 나의 떠난 길이 보통 여행이라도 소년들의 그릇이 성결하겠거든 하물며 오늘날 그들의 그릇이 성결치 아니하겠나이까 하매 6 제사장이 그 거룩한 떡을 주었으니 거기는 진설병 곧 여호와 앞에서 물려낸 떡 밖에 없음이라 이 떡은 더운 떡을 드리는 날에 물려낸 것이더라
5 또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음을 너희가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 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전보다 더 큰이가 여기 있느니라
신앙의 전문가, 말씀의 전문가인척 하는 바리새인들은 정작 말씀을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들을 책망하십니다.
그 말씀 못 읽어봤어? 3절과 5절에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잘 모르면서 자기의 기준을 가지고 사람들을 판단하고 정죄하지 않나요?
말씀을 제대로 알면 정죄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분별은 해야합니다. 하지만 정죄는 분명히 죄입니다.
37 비판치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팔복에 순서를 보면 참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나라에 목마르고 배고파서 그것을 pursue 하는 삶은 너무나 귀합니다.
그런데 그 다음 바로 무슨 복이 등장합니까?
긍휼히 여기는 자 입니다. 긍휼히 여긴다는 것은 넘어진 자를 짓밟지 않고 손을 잡아 일으켜 주는 것입니다. 긍휼은 죄인을 용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쫓으면서 누군가를 비방하고 판단하고 정죄하고 있다면 바리새인과 같은 일을 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말씀을 모르니 안식일의 진정한 주인도 알아보지 못합니다.
8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
사랑하는 대학청년부 여러분, 우리가 말씀 앞에 제대로 서 있다면 정죄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말씀의 전문가라고 알려졌지만, 구약성경에서 그렇게도 자주 이야기한 메시야가 눈 앞에 있지만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제대로 읽지 않고 자신의 기준으로 정죄를 합니다.
안식일의 주인이 괜찮다고 하는데, 나는 안된다고 합니다. 말씀을 제대로 읽지 않으니...
우리에게도 그런 모습이 있지 않을까요?
둘째, 하나님의 뜻은 선(자비)을 행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뜻은 선(자비)을 행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7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면 무죄한 자를 죄로 정치 아니하였으리라
12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하시고
하나님의 사역은 선을 행하시는 사역, 회복과 구원의 사역입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손 마른 사람을 고친 예수님을 죽이려고 의논합니다.
주인이 뜻을 제대로 모르니, 자신들이 섬기는 하나님이 보낸 예수님을 죽이려고 합니다. 그것도 손마른 자가 고침을 받았으면 기뻐해야지, 기뻐하기는 커녕, 어떻게 하면 자신들의 뜻을 이룰까 모여 의논합니다. 너무나 사악하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생각에서 벗어나 누군가가 은혜 받고 변화를 받았다고 하면 진정 기뻐하나요? 아니면 어떻하든지 그것을 깍아내리려고 합니까?
정죄에 굴레에서 벗어나려면,
셋째, 예수님도 정죄하시지 않았음을 다시 기억해야 합니다.
셋째, 예수님도 정죄하시지 않았음을 다시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주로 어떤 대상을 정죄합니까?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아 보이는 사람들을 정죄합니다.
눈에 쉽게 들어오죠. 우리의 기준에 맞지 않으니깐, 이건 아니야 저건 아니야, 라고 이야기 하기도 합니다.
우리보다 신앙생활을 잘하고 성령충만한 사람은 정죄하지 않죠.
그니깐 사실 우리가 정죄하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한 갈대, 꺼져가는 심령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정죄보다는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입니다.격려가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이 요한복음 팔장에서 간응한 여인을 만났을 때도 그랬습니다.
율법이시자 말씀 그 자체인 예수님도 죽어 마땅한 여인에게 말씀을 드리댄 것이 아니라 정죄하지 않으시고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7 저희가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가라사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8 다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9 저희가 이 말씀을 듣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10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소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11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라〕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 20절에
20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신앙생활을 하면 할 수록 바리새인 같아지는 저의 모습을 전 자주 봅니다.
성 바리새인입니다.
신앙생활을 오래하면 더 예수님을 닮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저 또한 정죄의 굴레에 쉽게 빠집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정죄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법을 알려줍니다.
첫째, 말씀을 제대로 읽으면 정죄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고
둘째, 하나님의 뜻이 자비와 선을 행하는 것임을 깨달으면 벗어날 수 있고셋째, 예수님도 정죄하지 않았음을 기억하면 정죄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나도 상한 갈대, 꺼져가는 심지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하고, 그 때 내가 필요한 것은 사람들의 손가락질이 아니라, 격려와 위로가 필요할 것임을 기억하고, 오늘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특히 성금요일을 보내면서.. 더욱 더 그들을 채워주고 살리기 위해 고민하고 실천하는 귀한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