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서 빈무덤을 보라! 그리고, 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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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8:1–10 (NKSV)
1 안식일이 지나고, 이레의 첫 날 동틀 무렵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러 갔다. 2 그런데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났다. 주님의 한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와 무덤에 다가와서, 그 돌을 굴려 내고, 그 돌 위에 앉았다. 3 그 천사의 모습은 번개와 같았고, 그의 옷은 눈과 같이 희었다. 4 지키던 사람들은 천사를 보고 두려워서 떨었고, 죽은 사람처럼 되었다. 5 천사가 여자들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나는, 너희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찾는 줄 안다. 6 그는 여기에 계시지 않다. 그가 말씀하신 대로, 그는 살아나셨다. 와서 그가 누워 계시던 곳을 보아라. 7 그리고 빨리 가서 제자들에게 전하기를, 그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 나셔서, 그들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니, 그들은 거기서 그를 뵙게 될 것이라고 하여라. 이것이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이다.” 8 여자들은 무서움과 큰 기쁨이 엇갈려서, 급히 무덤을 떠나, 이 소식을 그의 제자들에게 전하려고 달려갔다. 9 그런데 갑자기 예수께서 여자들과 마주쳐서 “평안하냐?” 하고 말씀하셨다. 여자들은 다가가서, 그의 발을 붙잡고, 그에게 절을 하였다. 10 그 때에 예수께서 그 여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무서워하지 말아라. 가서, 나의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러면, 거기에서 그들이 나를 만날 것이다.”
기억에 남는 기쁜 소식.
기억에 남는 기쁜 소식.
오늘 설교는 한 어머니의 이야기로 시작하려고 합니다. 이 어머니는 다름아닌 저의 어머니 서은숙 집사님입니다. 지난 수요일, 김정자 권사님과 가족을 위로하고자 교회에서 승합차를 타고 다녀왔습니다. 교회에서 승합차를 타고 오가다 보면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이런 저런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게 됩니다. 그 때 저를 굉장히 민망하게 만드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처음부터 신학하지 않고 나중에 신학하신 목사님들 이야기가 나왔는데, 한 집사님께서 목사님은 어떻게 신학을 하게 되셨는가를 물어 보셨는데, 제 어머니이신 서집사님께서 갑자기 자식자랑을 시작하셨습니다. 우리 아들이 대학 들어갈 때 과수석을 했다. 대학 결과가 너무 궁금해서 직접 인천 인하대까지 전철타고가서 찾아 보니 아들 수험번호가 나오지 않아서 보니 맨 위에 과수석이라고 제 이름과 수험번호를 말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민망한 저는 어머니에게 “제발 어머니 그만하세요"라고 절규하였는데, 어머니는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경부고속도로 한복판에서 시작된 자식 자랑은 듣고 싶지 않아도 들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담임목사로서 우리가 어떤 출신인지 학벌이나 혈연 지연이 아닌 그 사람 그 자체로 바로 보자고 설교를 하였기 때문에 막을 수 없는 자식 자랑에 속수무책 운전만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민망해 하는 걸 느끼셨는지 조용하시다가 갑자기 어머니가 제 수험번호도 외우고 있다며 수험번호를 외우며 외치셨습니다. 그순간 저는 진짜 깜짝놀랐습니다. 나는 이미 잊어버린 92년도 학력고사 전기 인하대 입시 선박해양공학과 수험번호를 어머니는 외우고 계셨습니다. 그러면서, 이야기는 걷잡을 수 없는 증언으로 당시의 기억을 생생하게 다 이야기하는 증거의 현장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후 어머니께 정중히 자제를 부탁드렸습니다. 그런데, 설교를 준비하면서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이 이야기를 나눌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저에게는 잊혀져가는 이 사건이 당시 인생의 무게를 지고 살아가던 어머니에게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감격과 기쁨의 사건이었으며 이는 아들인 제가 존중해 드려야 하는 기억이라는 마음을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이제 여러분도 자식자랑 하셔도 됩니다. 대신에 내 자식 자랑하셨으면 남의 자식자랑도 들어주시고 혹 자녀의 아픔을 가진 분의 이야기는 더 들어주시 바랍니다.)
여인들의 증언
여인들의 증언
복음서가 부활 사건을 다루는 것을 보면 부활사건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그것을 증언하는 성격이 강하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왜냐하면, 십자가에서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을 당시 산헤드린 공의회 회원이었던 아리마대 요셉이라는 부자가 예수님의 시신을 내어달라고 청합니다. 로마의 법에는 십자가에서 죽은 자의 명예로운 장례를 허용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빌라도가 예수님에대해서 호의적인 마음이 있고, 또한 유대인들에게는 사람을 죽여 나무위에 달거든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라는 규정을 감안해서 내어 주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나사로의 이야기를 설교할 때 유대인들의 무덤에대해서 이야기 한 적이 있습니다. 아리마대 요셉은 부자여서 바위를 뚫어서 만든 새 무덤이 있었습니다. 여기에 예수님을 세마포로 잘 싸매어서 모시고 큰 돌로 굴려 놓았습니다. 요한복음에는 이때 또한명의 공의회원인 니고데모도 함께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을 무덤 맞은 편에서 보고 있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 입니다.
마태복음 27:61 (NKSV)
61 거기 무덤 맞은편에는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앉아 있었다.
뿐만 아니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빌라도에게 부탁해서 경비병들에게 이 무덤을 지켜달라고 합니다. 그리하여,
마태복음 27:66 (NKSV)
66 그들은 물러가서 그 돌을 봉인하고, 경비병을 두어서 무덤을 단단히 지켰다.
경비병들이 단단히 무덤을 지키었습니다. 이처럼 봉인된 돌과 경비병은 예수의 죽음을 분명하게 할 뿐 아니라 예수님의 부활에대한 증언의 근거가 됩니다. 부활의 날 아침에 이 무덤을 찾은 사람은 다름아닌 여인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매장은 안식일이 시작되기 전에 급하게 진행이 되었을 것입니다. 안식일이 지나고 그 날 새벽에 예수님의 무덤을 여인들이 찾아 옵니다. 이 때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마태복음 28:1–4 (NKSV)
1 안식일이 지나고, 이레의 첫 날 동틀 무렵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러 갔다. 2 그런데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났다. 주님의 한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와 무덤에 다가와서, 그 돌을 굴려 내고, 그 돌 위에 앉았다. 3 그 천사의 모습은 번개와 같았고, 그의 옷은 눈과 같이 희었다. 4 지키던 사람들은 천사를 보고 두려워서 떨었고, 죽은 사람처럼 되었다.
예수님을 찾아간 여인들은 지진을 경험합니다. 그때 한 천사가 돌을 굴려내고 그 돌위에 앉았습니다. 그 천사의 모습은 번개와 같았고 그의 옷은 눈과 같이 희었습니다. 이 때 그 무덤을 지키던 사람들은 천사를 보고 너무 두려워서 죽은사람처럼 되었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이 장면을 보고 믿어지십니까? 마태는 예수님이 무덤에 매장될 때 그 장면을 본 증인을 둘을 세웁니다. 바로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 그리고 돌무덤을 지키던 경비병입니다. 그들은 함께 지금 이 일을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여인들을 복음서 기자들이 부활의 첫 증인으로 내세우고 있다는 것을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누가복음에서 이른 새벽에 여자들이 준비한 향료를 가지고 무덤에 갔다고 합니다. 이를 통해서, 예수님의 장례를 위해서 시신에 향료를 바르기 위해서 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에서는 막달라 마리아가 나옵니다. 그리고 마가복음을 보니까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라는 여인까지 세명의 이름이 나옵니다.
마가복음 16:1–2 (NKSV)
1 안식일이 지났을 때에,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는 가서 예수께 발라 드리려고 향료를 샀다. 2 그래서 이레의 첫날 새벽, 해가 막 돋은 때에, 무덤으로 갔다.
사실, 당시 어떤 사건의 증언이 필요할 때 증인으로 여인을 세우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복음서는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라는 여인들을 증인으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서 예수님이 무덤에 매장된 것을 본 여인들이 부활의 새벽에 그 이름이 언급되어 증언을 한다는 것은 이 여인들이 확실한 부활의 증인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팀켈러 목사님은 왕의 십자가라는 책에서 마가가 여인들의 이름을 포함시킨 것은 분명 마가복음이 기록될 당시에 이 여인들이 살아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고 주장합니다. “내 이야기가 진짜인지 의심스럽다면 이 세여인을 찾아가서 물어보라!”는 것입니다. 지난 주 수요일의 그 사건과 연결해서 생각해 보니 제가 팀켈러 목사님의 주장에 설득이 되었습니다. 제자들이 모두 흩어지고 예수님의 시신을 수습조차 하지 않을 때 여인들은 예수님의 시신이 어떻게 수습되는 지 끝까지 지켜보고 있었고, 안식일 끝나자 마자 새벽에 예수께 향료를 발라드리려는 소중한 마음을 가지고 도착하여 경험하였기에 그들은 너무도 생생하게 이 이야기를 제자들에게 그리고 사람들에게 전하였을 것입니다.
와서 그가 누워 계시던 곳을 보라.
와서 그가 누워 계시던 곳을 보라.
마태 복음에서는 갑자기 지진과 함께 주님의 한 천사가 내려왔습니다. 이 천사가 예수님의 부활을 여인들에게 알려 줍니다.
마태복음 28:5–6 (NKSV)
5 천사가 여자들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나는, 너희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찾는 줄 안다. 6 그는 여기에 계시지 않다. 그가 말씀하신 대로, 그는 살아나셨다. 와서 그가 누워 계시던 곳을 보아라.
갑자기 지진이 일어나고 천사가 나타나 무덤을 막고 있던 돌을 옮기고 경비병들은 너무 놀라 죽은 사람과 같이 되는 상황을 본다면 얼마나 두렵고 떨리겠습니까? 이와같은 마음을 알았는지, 천사는 두려워 하지 말라고 합니다. 두려워 하지 않아야 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님께서 살아나셨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셨던 예수님은 살아나셨습니다. 예수의 죽은 시신이 있어야 할 무덤은 빈무덤입니다. 예수님의 무덤이 비어 있다는 것은 예수가 살아나셨다는 것입니다.
천사들은 그 빈무덤을 “보라"고 말합니다. 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 부활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빈무덤을 보는 것이 그들의 두려움을 사라지게 해 줄 것이라고 안심시켜주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부활은 어떤의미가 있습니까? 믿음생활을 하면서, 우리는 예수님의 탄생과 부활을 믿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기독교 신앙에서 성령으로 잉태하신 예수의 탄생과 예수님의 부활은 복음서를 통해서 예수님과 함께 했던 사람들의 증언으로 신약성경은 우리에게 증언하여 주고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도전하십니다. 와서 빈 무덤을 보라~!! 부활을 믿고 부활신앙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분명 죽음을 피할 수 없는 것임을 확실하게 믿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예수님이 누우셨던 곳을 여인들과 함께 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부활은 예수님의 부활로 약속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고 이 세상만이 전부라면 믿는 우리가 모든 사람 가운데 더욱 불쌍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예수의 부활은 우리에게 부활이 약속되어 있음을 알게 해 줍니다.
고린도전서 15:20–22 (NKSV)
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셔서, 잠든 사람들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21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죽음이 들어왔으니, 또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죽은 사람의 부활도 옵니다. 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우리에게 부활의 생명은 죽은 다음 뿐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안에 심겨져 감추어져 있다고 바울은 골로새서에서 말합니다.
골로새서 3:1–4 (NKSV)
1 그러므로 여러분이 그리스도와 함께 살려 주심을 받았으면, 위에 있는 것들을 추구하십시오.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십니다. 2 여러분은 땅에 있는 것들을 생각하지 말고, 위에 있는 것들을 생각하십시오. 3 여러분은 이미 죽었고, 여러분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습니다. 4 여러분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여러분도 그분과 함께 영광에 싸여 나타날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어야 할 우리의 옛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그 분의 생명이 우리 안에 감추어져 있다고 말합니다. 부활의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기 때문에 이는 분명 그리스도의 날에 이뤄질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오늘 죄와 고통 속에서 신음하며 하나님의 선하심을 위한 결정을 했다면 그것은 바로 부활의 예수가 우리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부활의 생명이 있는 우리들의 삶 속에서 우리는 가장 깊은 어둠 가운데서 소망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다윗이 고백한 바와 같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도 계신 주님을 경험합니다. 죽음의 공포가 다가 올 때 그것이 빈무덤과 같이 된 믿음의 사람을 발견하게 되는 것도 부활의 증거입니다. 김동호 목사님은 폐암 수술을 받으실 때 하나님 다녀올께요 고백할 때 주님께서 내가 같이 갈건데라고 하는 하나님의 성령의 내적음성을 들으셨고, 죽음의 권세에 휘둘리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백성을 위로하는 삶을 살아내고 있습니다. 두려움 가운데서 빈무덤을 보고 위로 받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22:32 (NKSV)
32 하나님께서는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죽은 사람의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의 하나님이시다.”
전할 말이 있다.
전할 말이 있다.
천사들은 여인들에게 한 중요한 말이 있습니다. 바로 제자들에게 전할 말이 있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8:7 (NKSV)
7 그리고 빨리 가서 제자들에게 전하기를, 그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 나셔서, 그들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니, 그들은 거기서 그를 뵙게 될 것이라고 하여라. 이것이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이다.”
천사들은 여인들에게 제자들에게 가서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먼저 갈릴리로 가시니, 거기가서 그를 뵙게 될 것이라고 전하고 합니다. 그래서, 여인들은 무섭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고 복잡한 마음으로 미친듯이 달려 갑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이 때 여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살아계신 주님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평안하냐고 물으셨고, 여인들은 주님께 경배하였습니다. 예수의 발을 붙잡고 절하며 경배하였습니다. 예수의 부활의 몸은 만져지는 몸이었습니다. 그들의 두려움과 기쁨이 섞인 불안정한 마음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니 평안하여졌습니다.
마태복음 28:8–10 (NKSV)
8 여자들은 무서움과 큰 기쁨이 엇갈려서, 급히 무덤을 떠나, 이 소식을 그의 제자들에게 전하려고 달려갔다. 9 그런데 갑자기 예수께서 여자들과 마주쳐서 “평안하냐?” 하고 말씀하셨다. 여자들은 다가가서, 그의 발을 붙잡고, 그에게 절을 하였다. 10 그 때에 예수께서 그 여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무서워하지 말아라. 가서, 나의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러면, 거기에서 그들이 나를 만날 것이다.”
제자들이 예수를 만나게 될 것을 전하라는 명령을 예수님께 직접 듣습니다. 성경은 이후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이야기를 복음서에서 증언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고린도전서 15:5–8 (NKSV)
5 게바에게 나타나시고 다음에 열두 제자에게 나타나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6 그 후에 그리스도께서는 한 번에 오백 명이 넘는 형제자매들에게 나타나셨는데, 그 가운데 더러는 세상을 떠났지만, 대다수는 지금도 살아 있습니다. 7 다음에 야고보에게 나타나시고, 그 다음에 모든 사도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8 그런데 맨 나중에 달이 차지 못하여 난 자와 같은 나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
사도행전에서 누가는 예수님이 40일간 수많은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나타나셨다고 하였습니다.
사도행전 1:3 (NKSV)
3 예수께서 고난을 받으신 뒤에, 자기가 살아 계심을 여러 가지 증거로 드러내셨습니다. 그는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여러 차례 나타나시고, 하나님 나라에 관한 일들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의 증인들에게 하신 명령은 무엇입니까?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는 말씀이셨습니다.
사도행전 1:8 (NKSV)
8 그러나 성령이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능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그리고 마침내 땅 끝에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이다.”
부활의 증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난다는 것,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 예수님을 증언한다는 것은 바로 예수님의 성육신과 더불어 십자가에서 죽으심과 부활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부활은 복음의 핵심적인 메시지 입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나야 한다.
부활의 주님을 만나야 한다.
부활 신앙을 가지고 직면하기 위해서 우리는 부활의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성경의 많은 사람들이 순교하기까지 예수님을 믿었던 것은 부활의 주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신 부활의 주님을 통해서 우리는 참된 평안을 얻을 수 있고,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는 사명도 감당할 수 있습니다. 복음서는 부활의 증인으로서 교회의 지도자들인 사도들이나 제자들이 아닌 그 부활의 아침에 예수님이 매장된 무덤을 찾아가서 빈무덤을 보고 부활의 주님을 누구보다도 제일 먼저 만난 여인들의 증언을 통해서 부활의 역사성을 설명합니다. 당시 많은 메시야 운동이 일어났다 사라졌고, 그중에 죽임을 당했던 사람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만이 부활의 주님을 만난 사람들에게 구원이 사건이 되어 전세계에 기독교가 전파되고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성찬을 통해 부활하신 주님을 예배가운데 그 임재를 경험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