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더 설교(에스더 9: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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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통과하는 자가 생명의 잔치를 누린다

1. 죽음의 날이 잔치날이 됨
인생의 죽음이 다가오는 날 끝났다고 생각함.
가정, 직장생활, 삶, 끝 망함, 실패라고 생각됨. 그런데 그 죽음의 순간이 잔치 날로 바뀜. 복음과 예수를 따라 그 죽음의 순간을 통화할 때 잔치날이 됨. 생명의 잔치로 바뀜.
9장 22절
다시씀의 조서를 통해 슬픔이 기쁨으로 바뀜. 만약 모르드개의 조서가 없었으면 저 모습이 나의 모습이 된다.
그래서 지금 현재 애통, 슬픔, 대적이 있느냐가 인생이 실패라는 확증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슬픔과 애통가운데 복음을 따라 통과하는 가에 있다. 그렇게 통과하면 반전의 역사가 있다. 반전의 잔치가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반전의 잔치 특징 - 서로 애물을 주었다. 함께 죽음을 통과 한데 대한 감사가 담겨있다. 당신이 나와 함께 걷고, 금식, 서 있지 않았다면 나는 그렇게 살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 마음을 담아 전달하는 것.
구제하는 것.
그래서 1장은 잔치는 개층별 잔치. 자기 만족을 위한 잔치, 9장의 잔치는 내가 예물을 준비하고 함께 섬겨야 이루어지는 잔치이다. 그래서 분열의 잔치가 아니라 통합의 잔치이다.
여러분 이런 모습을 묘사해 주는 솟아 흘러넘치는 잔치가 편 5절에 있다.
시편23: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죽음을 통과한 자는 자기 뿐 아니라 모두를 잔치로 살아가게 한다. 하나님 안에서 복음을 따라 죽음을 통과해야 우리에게 크고 아름다운 복이 주어진다. 죽음의 증상에 낙망하지 말라, 예수의 손을 붙들고 통과하며 모두의 잔치가 되게 하자.
2. 절기를 세우는 목적
에스더 9:26-28 “무리가 부르의 이름을 좇아 이 두 날을 부림이라 하고 유다인이 이 글의 모든 말과 이 일에 보고 당한 것을 인하여 뜻을 정하고 자기와 자손과 자기와 화합한 자들이 해마다 그 기록한 정기에 이 두 날을 연하여 지켜 폐하지 아니하기로 작정하고 각 도, 각 읍, 각 집에서 대대로 이 두 날을 기념하여 지키되 이 부림일을 유다인 중에서 폐하지 않게 하고 그 자손 중에서도 기념함이 폐하지 않게 하였더라”
부르 곧 제비를 뽑아, 부르라는 이름을 따서 부림이라는 이름을 만듬. 절기를 세우는 목적, 후손들이 계속해서 기념하게 하는 것. 절기를 세우는 목적 계속해서 행하게 하는 것.
그들이 부르때문에 죽게 되었다는 것,
모르드개의 조서때문에 죽음이 생명으로 반전됨.
예화: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경험들이 시간이 지나면 사그라지게 된다. 처음의 감격들 다 잊어버리게 된다. 옛날을 다 잊게 된다. 물론 올챙이적 사진이 있다. 그냥 추억이라고 지내는 것과 다르지 않다. 오늘의 삶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그런데 그렇게 살아가게 되면 망각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왜곡도 일어나게 된다. 처음에 시작점까지 은혜로 왔다고 생각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내가 그래도 많이 열심히 노력했고, 인내했으니 지금도 살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게 되는 왜곡도 일어난다.
절기를 통해서 다시 죽음을 통과하고 다시 생명을 통과하게 된다.
예수 믿는 자의 하나님의 백성은 나는 죽음을 통과 했는데 엄청힘들어 그러니 너네나 통과해 말하는 자들이 아니다. 또 죽음을 통과하고 죽음을 향해 가는 자들이다.
에스더 9:29 KRV
아비하일의 딸 왕후 에스더와 유다인 모르드개가 전권으로 글을 쓰고 부림에 대한 이 둘째 편지를 굳이 지키게 하되
절기를 지키라고 주도한 사람 모르드개와 에스더.
이 두 사람이 절기 주도 왜?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게 이들이 앞장서서 죽음을 통과했기 때문이다.
에스더 9:31 KRV
정한 기한에 이 부림일을 지키게 하였으니 이는 유다인 모르드개와 왕후 에스더의 명한바와 유다인이 금식하며 부르짖은 것을 인하여 자기와 자기 자손을 위하여 정한 바가 있음이더라
이스라엘의 구원은 부르짖어 얻는 구원이다. 그들의 힘으로 얻는 구원이 아니다. 그 부르짖음에 자리에 나간자는 모르드개와 에스더이다. 먼저 죽음을 통과할 때 그 죽음으로 말미암아 권위가 일어난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의 권위이다.
여러분 가정, 교회, 나라의 권위가 어디에서 옵니까? 십자가에서 옵니다. 죽음을 통과하는 자만이 권위를 갖게 된다. 이땅에 대통령, 원로들도 권위를 잃어버렸습니다.
사람이 많다고 권위가 생기지 않는다. 권위는 십자가, 죽음을 통과한 자들로 말미암아 권위가 옵니다.
죽음을 다시 통과할 때 죽음이 생명이 됨을 통해서 계속하여 이 일을 행함으로서 기억의 공동체가 되고, 반전의 역사를 보게 된다.
여러분 죽음의 증상이 여러분에게 보입니까?
실패가 아닙니다. 망하지 않았습니다. 뒤돌아 도망갈 생각하지 말고 그 고통속으로 들어가십시오. 죽음을 통과하는 자는 반드시 잔치를 누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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