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410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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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 329 주 날 불러 이르소서
본문 : 출 2:11-22
은혜와 자비가 충만하신 주님, 늘 우리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붙들고 가심에 감사드립니다. 비록 우리 스스로의 모습이 주님 보시기에 너무나도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은혜로 우리를 붙들어 주시고, 성령께서 우리를 날마다 주님 쓰시기에 합당하도록 빚어가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하나님 쓰시기에 합당한 그릇이 되어 주님의 맡기신 사명들을 잘 감당하는 일꾼들 되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지도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지도자적인 기질을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도 있지만, 노력하고 훈련받아서 지도자적인 기질을 가지게 되는 사람도 있다는 뜻입니다. 이 말을 증명하는 성경의 인물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바로 이스라엘 자손을 그 당시 최강국이었던 이집트, 곧 애굽으로부터 건져 낸 민족의 지도자 모세입니다.
특별히 민수기 12:3 에서 모세의 지도자적 성격을 가리켜 “그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고 말합니다. 즉, ‘모세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실만큼 온유한 지도자이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대개 ‘온유’라는 말을 성품과 태도가 온화하고 부드러운 사람에게 사용합니다. 즉, 착하고 유순한 사람에게 온유라는 말을 사용하지요.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온유는 조금 다릅니다. 성경이 말하는 온유는 훈련되고 다듬어진 성품을 말합니다. 즉, 여전히 강하고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있지만 스스로 그것을 조절하고 절제할 수 있는 성품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꼭 부드럽고 온화한 사람에게만 온유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열정적이고, 진취적인 사람에게도 온유하다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핵심은 스스로 조절하고 절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는 것입니다. 더 큰 뜻을 위해, 더 큰 의를 위해, 더 큰 덕을 위해 나의 뜻과 열정을 내려놓을 수 있느냐, 없느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온유를 ‘고집꺾기’라고 정의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모세는 처음부터 온유한 성품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처음부터 온유한 힘을 가진 자가 아니었습니다. 모세의 온유함은 철저히 훈련된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오늘 본문말씀을 통해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 자란 모세는 어느 날 자기 백성들, 곧 고역을 하는 동족을 보기 위해 고역의 현장으로 나갔습니다. 그때 모세는 어떤 애굽의 감독관이 한 히브리인을 심하게 때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마도, 무엇인가 히브리인이 잘못해서 매질을 당한 것이 아니라 더딘 노동 때문에 매질을 당했을 것입니다. 이에 모세는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의롭지 못하다는 판단 때문이었을 것이고, 동족에 대한 동포애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좌우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그만 그 애굽의 감독관을 쳐서 죽입니다. 그리고는 그를 모래 속에 감춥니다. 의를 세우고 동포를 구하기 위해서 불의를 행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튿날 모세는 다시 고역의 현장으로 나갑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동족끼리 싸우는 것을 목격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 13절은 ‘그 잘못한 사람에게 이르되’라는 표현을 통해 분명 둘 중에 한 명이 잘못을 하였고, 모세는 그것을 정확히 보았음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즉, 이번에도 모세는 의를 세우기 위해 그 싸움에 개입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과정 속에서 모세는 뜻밖의 일을 당하게 됩니다. 그것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의를 세우고자 하는 자신을 동족이 거부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범행이 탄로되었다는 것입니다.
모세에게 있어서 동족의 거부는 충격적인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두 번 다 동족을 위해 나선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동족이 모세를 거부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만약 모세였다면 어떤 마음이 드시겠습니까? 모세는 참으로 허탈했을 것입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모세는 허탈감에 빠질 새도 없이 도망쳐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범죄행각이 바로 왕의 귀에까지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모세는 그의 나이 40세 때, 바로의 낯을 피하여 미디안 땅으로 도망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이 사건의 전말을 통해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모세는 처음부터 온유한 성품의 소유자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동족에 대한 사랑과 불의에 대한 불타는 정의감은 있었지만 자신의 감정을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은 없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기질과 성격을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은 없었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온유함의 힘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살인을 하고 시신을 유기까지 하는 불의를 행하고만 것입니다. 모세의 젊은 날은 이처럼 온유함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먼 사람이었음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처럼 불같던 모세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온유한 사람이 되기까지, 다듬어지고 만들어지는 훈련의 기간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대개 미디안의 40년 생활동안 모세가 훈련되었다고 말합니다. 물론 그때 모든 것이 훈련되어진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적어도 온유함에 대한 훈련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온유함의 부재로 인해 도망자 신세가 되어 도망친 곳이 미디안이고, 그곳에서 르우엘이라는 장인의 권위 아래에서 40년이라는 세월동안 양을 치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이 권위 아래에 들어간다는 것은 낮아진다는 것입니다. 낮아짐에 있어서 필요한 덕목은 온유입니다. 자신의 것을 꺾을 수 있고, 버릴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낮아질 수 있는 것입니다. 권위에 순종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온유함의 훈련은 바로 미디안 40년의 생활 가운데서 이루어진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곳으로의 도망은 결코 우연히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의 미디안의 40년은 인생의 최고의 조련사 하나님께서 모세라는 한 야생마를 조련시킨 학교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모세는 하나님의 학교에서 훈련된 지도자였습니다. 그와 같은 훈련됨이 훗날 능력으로 발휘되었고,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 온유하다”는 평가를 받게 된 것입니다. 모세는 철저히 만들어진 지도자였던 것입니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말씀 앞에 여러분 자신을 한번 돌아보십시요. 나의 불 같은 성격, 욱하는 성격, 쉽게 인내하지 못하고 자제하지 못하는 성격, 모난 성격 등 하나님께서 쓰시기에 부적절한 나의 모습들이 보이지 않습니까? 쉽게 순종하지 못하고, 의심하고, 불평과 원망으로 가득 찬 나의 성품과 기질들을 하나님께서 그 위대하신 사역을 이루어가시는데 사용하실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여러분, 그럼에도 우리가 감사할 수 있는 것은 복음의 능력은 새롭게 하는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복음의 능력은 처음부터 되도 않는 떡잎을 찬란하고, 영광스러운 나무로, 그리고 크고 높은 나무로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능력인 것입니다. 비록 지금은 내가 보기에, 내가 하나님의 일꾼으로, 하나님의 종으로, 리더로 설 것 같지는 않지만, 하나님께서 복음 안에서 나를 훈련시키시면 오늘 모세처럼 내가 하나님의 일꾼으로, 하나님의 종으로, 리더로 세워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학교 안에서 잘 훈련받을 때, 우리도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귀한 일꾼으로 쓰임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희망과 소망을 갖기를 바랍니다. 복음의 눈으로 나 자신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훈련학교에 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주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여러분들을 봉사와 헌신의 자리로 심어두셨는데, 그곳에서부터 충실히 출발합시다. 나에게 맡겨진 자리에서 충성을 다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렇게 조금씩 변화시켜 가실 것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지도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여기 계신 모두가 하나님 앞에 잘 훈련되어져 하나님 나라의 귀한 지도자들이, 일꾼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기도합시다.
하나님, 우리를 하나님 쓰시기 좋은 그릇으로 빚어 주옵소서. 우리의 불충함과 우리의 연약함, 우리의 죄성과 우리의 완악함을 꺾어주시고, 오직 주님 쓰시기 좋은 일꾼이 되도록 우리를 훈련시켜 주옵소서.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과 주님의 나라를 위하여 귀히 쓰임받는 우리가 되도록 은혜 베풀어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