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_0411_사무엘하1:17-27_하나님의 뜻에 헌신하는 성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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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사무엘하 1:17–27 (NKRV)
다윗이 이 슬픈 노래로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을 조상하고
명령하여 그것을 유다 족속에게 가르치라 하였으니 곧 활 노래라 야살의 책에 기록되었으되
이스라엘아 네 영광이 산 위에서 죽임을 당하였도다 오호라 두 용사가 엎드러졌도다
이 일을 가드에도 알리지 말며 아스글론 거리에도 전파하지 말지어다 블레셋 사람들의 딸들이 즐거워할까, 할례 받지 못한 자의 딸들이 개가를 부를까 염려로다
길보아 산들아 너희 위에 이슬과 비가 내리지 아니하며 제물 낼 밭도 없을지어다 거기서 두 용사의 방패가 버린 바 됨이니라 곧 사울의 방패가 기름 부음을 받지 아니함 같이 됨이로다
죽은 자의 피에서, 용사의 기름에서 요나단의 활이 뒤로 물러가지 아니하였으며 사울의 칼이 헛되이 돌아오지 아니하였도다
사울과 요나단이 생전에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자이러니 죽을 때에도 서로 떠나지 아니하였도다 그들은 독수리보다 빠르고 사자보다 강하였도다
이스라엘 딸들아 사울을 슬퍼하여 울지어다 그가 붉은 옷으로 너희에게 화려하게 입혔고 금 노리개를 너희 옷에 채웠도다
오호라 두 용사가 전쟁 중에 엎드러졌도다 요나단이 네 산 위에서 죽임을 당하였도다
내 형 요나단이여 내가 그대를 애통함은 그대는 내게 심히 아름다움이라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더하였도다
오호라 두 용사가 엎드러졌으며 싸우는 무기가 망하였도다 하였더라
하나님의 은혜와 위로가 있는 귀한 하루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은 다윗이 부르는 슬픈 노래입니다.
그토록 자신을 괴롭히던 사울이 죽었지만, 막상 사울이 죽으니까 다윗은 슬픔이 복받쳐올랐습니다. 사울만 없어지면 두 다리 뻗고 마냥 좋을 것만 같았는데, 그렇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사울만 사라지면 속시원하게 지낼 줄로만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다윗은 사울이 진정으로 죽기를 바랬습니다.
다윗이 또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여호와께서 그를 치시리니 혹은 죽을 날이 이르거나 또는 전장에 나가서 망하리라
다윗의 바램대로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을 처벌하시리니 그가 전쟁에 나가서 망하게 되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그렇게 되었습니다. 전쟁에 나가서 망했습니다. 기도의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울고 있습니다.
다윗 개인적으로는 사울과의 관계에서 고통을 맛보았지만, 이제 다윗은 사울 뒤를 잇는 왕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삶의 내용을 넘어서서 이스라엘 전체적으로 보면, 사울의 죽음은 이스라엘의 참담한 패배를 말하는 것입니다. 사울을 세우시고, 다윗을 이끄시는 하나님께서 모욕을 당하신 것이고, 수치를 겪으시는 것입니다. 다윗은 본인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그때는 사울이 망하기를 바랬던 것이지만, 이제와서 정신차리고보니 사울만 망한 것이 아니고 다윗 본인도, 하나님도, 이스라엘도 다 망한 것입니다. 도대체 사울의 이 죽음은 누구를 위한 죽음인지 알 길이 없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사울과 함께 하시면서 이스라엘을 여기까지 이끌어오신 하나님께서 이제 그 바통을 다윗에게 넘기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이 슬픈 노래는 야살의 책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무엘하 1:18 (NKRV)
명령하여 그것을 유다 족속에게 가르치라 하였으니 곧 활 노래라 야살의 책에 기록되었으되
야살의 책은 '의인의 책'이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지도자들과, 그들의 업적들이 기록된 책입니다.
다윗은 '오호라 두 용사가 엎드러졌도다'라는 반복구를 중심으로 이 노래를 지었습니다.
두 용사는 사울과 요나단입니다. 다윗이 표현하기를 사울은 이스라엘의 영광이고, 요나단은 이스라엘의 무기라고 했습니다. 사울이 하나님 앞에서 개인적으로는 어땠는지 자세히 몰라도, 분명한 것은 블레셋을 물리치시는 것에 있어서는 하나님께 요긴했던 사울왕이었습니다. 또한 사울의 오른팔 요나단은 그 핵심병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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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이 이토록 슬픈 노래를 작사, 작곡한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르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사울과 요나단이 이스라엘을 위해 헌신했던 지난 시간들을 기억하고, 감사하며 그들의 죽음을 애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오랫동안 못살게 굴었던 사람의 죽음 앞에서, 슬픔을 느끼는, 다윗은 얼마나 성숙한 성도인지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개인적인 감정에 갇혀버리지 않고, 진실한 마음으로 상대방의 위상을 높이는 행동은 성숙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할 수가 없습니다.
이스라엘 딸들아 사울을 슬퍼하여 울지어다 그가 붉은 옷으로 너희에게 화려하게 입혔고 금 노리개를 너희 옷에 채웠도다
지난 날의 지도자들 덕분에 지금 이 혜택들과 번영이 왔다는 것을 잊지말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헌신이 없었다면 무슨 수로 지금 우리의 이 부요한 현실이 오게 되었는가 생각하며, 그들을 존경하라는 것입니다.
어렵고 힘든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위해 헌신하고 수고롭게 지냈던 사람들의 시간들을 기억하고, 그 기억들이 지금 우리가 지내는 현실의 토대가 되고, 동력이 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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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곳에 우리가 있기까지, 지난 날 정말 많은 사람들의 수고가 있었고, 외롭고 힘겨운 싸움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있었고, 하나님께 드리는 몸과 마음으로 대변되는 헌신이 있었습니다. 그냥 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어찌 되었든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금 여기까지 인도해오셨습니다.
우리를 여기까지 올 수 있게 하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억하며, 이제 앞으로 새롭게 도모해가실 하나님의 일들을 기대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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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이라는 큰 지도자가 운명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요나단과 같은 용맹한 지도자가 중도하차하는 것은 아쉬운 일입니다. 그 날이 왜 오늘인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왜 이번 전투가 그들의 마지막 전투였는지는 모릅니다. 아마도 이스라엘을 세워가는 것에 그들의 역할은 거기까지인가 봅니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이제 지나간 일들에 마음 쓸 여유는 없습니다. 이랬으면 좋았을 껄, 저랬으면 어땠을까하는 상상은 이제 접어두고, 새롭게 회복되고, 새롭게 이끌어 가실 놀라운 인생을 기대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는 늦은 시간도 없고, 이른 시간도 없습니다. 하나님께 기대를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늘 새로운 기회와 상상이상의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과거에 경험했던 어떤 일이든, 그것이 좋은 것이든, 다소 나쁜 것이든, 실수이든, 큰 성공이든 간에 앞으로 새롭게 만들어질 우리의 삶에 토대와 동력으로 삼아 하나님과 동행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한 결 같으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다윗의 성숙한 믿음을 보았습니다. 자신을 그토록 괴롭게 했던 사울을 향해 경의를 표하고 아픔과 슬픔을 노래에 담을 줄 알며, 그의 헌신까지 감사하는 하나님 앞에 서 있는 다윗을 보았습니다. 지금까지 우리에게 있었던 과거의 모든 일에 경의를 표하고, 그 모든 경험과 지혜를 토대와 동력으로 삼아 앞으로 주님께 이끌어 가실 인생의 길을 강건하게 걸어나갈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