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413 새벽] 하나님을 합당하게 섬기기 위해 말씀을 가까이 하라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12 views
Notes
Transcript
찬송 : 200 달고 오묘한 그 말씀
본문 : 출 32:1-6
은혜와 자비가 충만하신 주님, 혼탁한 시대 속에서 우리를 홀로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말씀을 허락하여 주사 말씀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고, 말씀으로 주의 교훈을 듣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입니다.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입니다. 늘 우리를 의와 진리의 말씀으로 교훈하시고, 말씀 가운데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우리 되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인류의 타락 이후로 사탄 마귀는 계속해서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불신과 반역을 일으키고 있다. 성경에 등장하는 이스라엘의 모습만 보아도 얼마나 이 악랄한 원수가 이스라엘을 넘어뜨리고 실패하게 만들었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심지어 과학과 기술이 발달했다는 오늘날에도 이러한 사탄의 공격은 계속되고 있다. 성경을 성경대로 믿지 못하게 만들고, 역사적으로 일어났던 예수님의 부활까지도 사람들의 상상속에서 꾸며낸 일에 불과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심지어 이러한 자유주의 신학에 물들어 예수님의 부활은 실제 사건이 아니라 허구라고 설교하는 목사들도 온라인 상에 얼마나 많은지 모를 정도라고 한다.
이러한 일들을 볼 때마다 사탄 마귀의 방해공작이 얼마나 거센지 우리는 발견하게 된다. 세상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이 마치 전부인양 살아가지만,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잘 알고 있는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본문 속의 이스라엘처럼 하나님을 섬긴다 말하면서 금송아지를 숭배하는 일이 없도록 늘 깨어 있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본문의 배경은 이렇다. 하나님의 종 모세는 하나님께로부터 성막에 대한 계시와 십계명 두 돌판을 받기 위해 시내산에 올랐다. 40여일이 지나도록 모세가 내려오지 않자 산 아래에서 기다리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론을 찾아가서 말한다. 제가 다른 성경 번역본으로 1절을 읽어드리겠다. “자, 일어나서 우리를 앞서서 갈 신을 만들어 주십시오. 우리를 이집트에서 이끌어 낸 그 사람 모세가 어떻게 됐는지 알 게 뭡니까?” 모세가 어떻게 됐는지 우리가 알 게 뭡니까? 이것이 얼마나 악한 말인가?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었으므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도 몰랐고, 은혜가 무엇인지도 몰랐으며, 그분의 때를 인내로 기다리지 못했다.
이처럼 하나님을 향한 불신과 패역함으로 인하여 온전히 인내하지 못하고 경거망동함으로 범죄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가? 사무엘이 더디옴을 기다리지 못하고 자신이 직접 희생제사를 드려 죄를 범하였던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이 그러하였다. 초대교회 때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지체됨에 따라 어떤 이들은 자신이 하나님께 직통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고 성도들을 미혹하게 하는 죄를 범하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도 하나님께 기도하고는 그 응답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여 인간적인 방법을 일을 이루려하다가 하나님 앞에서 불신앙의 죄를 저지르기도 한다.
물론 그들이 모세를 기다리지 못하고 금송아지를 만든 것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부족했기 때문도 있지만, 더욱 결정적인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잘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을 오해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며 부족함이 없으시고 어떤 것에도 제한이나 구속을 받지 않는 스스로 계신 하나님이신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존재하는 존재, 자신의 복을 위한 수단으로 여겨버렸던 것이다. 그저 세상 가운데 존재하는 수많은 우상들 중 하나 정도로 여겼던 것이다.
대다수의 이방종교들이 그러하듯이 신은 인간을 지켜주고 돌봐준다. 인간은 그 댓가로 감사의 희생제사를 신에게 바친다. 이처럼 신은 인간에게 무언가를 제공하고, 인간은 신에게 뭔가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신의 도움 없이 인간은 살 수 없고, 인간의 경배 없이 신은 나약한 존재에 불과하다. 인간은 신을 필요로 하고 신도 인간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수많은 신들 중에서 나의 소원을 가장 잘 들어주는 신을 내가 선택해서 섬기는 것이고, 이 신이 나의 소원을 잘 안들어준다 싶으면 다른 신으로 소위 갈아타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겉으로 볼 때 인간은 하찮은 존재이고 신은 위대한 존재처럼 보이지만 실은 서로가 서로에게 공생관계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것이 이방 종교들이 가진 신학이었다. 애굽 땅에서 오랜 기간 머물면서 이방의 신학에 물들어버린 이스라엘 역시 하나님을 이처럼 오해하기 시작했다.
1절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론에게 뭐라고 말하는가. “일어나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신을 만들어 내라고 말한다. 지금 그들에게는 인격적인 하나님, 말씀하시는 하나님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들의 삶에 복을 줄 수 있는 존재, 자신들의 삶을 윤택하고 풍요롭게 인도할 존재만을 바라고 있다. 이방인들이 자신들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신은 곧잘 버리던 것처럼, 지금 이스라엘도 자신들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하나님을 버리고 권능과 힘의 상징인 송아지와 물질의 대표격인 황금을 접목시켜 자신들의 야망을 드러내고 있질 않는가? 이후로도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 우상숭배의 죄가 떠나지 않았던 것으로 미루어 볼때 그들은 하나님을 힘써 알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여러분, 이처럼 하나님을 오해하고 복만을 바라는 기복주의적인 태도가 우리 한국교회 가운데에도 얼마나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모른다. 마치 옛날 옛날 달 밝은 밤에 정한 물을 한 바가지 떠놓고 “비나이다 비나이다" 손이 닳도록 갈구했던 우리 조상들처럼, 지금 당장의 내 소원, 내 성공, 내 부귀, 내 유익, 내 풍요를 채워줄 수 있다면 그것이 하나님이든지, 부처든지, 알라든지 상관없다는 식의 신앙행태가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이 있는가. 그저 나의 복을 위해 일해줄 신적인 존재를 ‘하나님’이라고 부를 뿐이지, 그저 사용하는 용어들이나 문화들이 기독교적인 배경을 가질 뿐이지, 그들이 가진 신앙은 이방 종교와 크게 다를 바 없다.
이런 신앙을 가진 자들은 하나님을 마치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우상 정도로만 여긴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할 때 대부분 현실적인 복을 구하는 내용으로 일관한다. 그러다가 아주 작은 시련만 찾아와도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며 믿음에서 실족하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이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이다. 내 입맛대로 하나님을 오해하고, 하나님을 향한 잘못된 자기만의 신학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더욱 참담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가? 지금 이스라엘이 금송아지 형상에 다른 신의 이름을 붙인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대목이다. 그들은 다른 신의 이름을 부르짖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이었다. 이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말하면서 실상은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일들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오늘날 우리들도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이 자리에 모여 있지만,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그 하나님을 하나님답게 섬기지 않고, 그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지 않으며, 그 하나님을 세상의 수많은 우상들처럼 섬기고 그 하나님을 알라딘의 요술램프처럼 섬기는 일들이 우리 가운데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이러한 모습이 하나님의 복을 받기에 합당한 모습인가? 지금 이 모습들이 하나님이 예비하신 약속의 땅을 상속받기에 합당한 모습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지금 이들의 모습은 앞으로 광야 40년 하나님의 훈련학교를 통해 철저하게 부숴지고 박살나야만 할 필요성을 보여주고 있는게 아닌가.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을 하나님답게 섬기는게 아니라 이방의 우상들처럼 하나님을 섬긴다면, 하나님을 알라딘의 요술램프처럼 섬긴다면, 하나님을 합당치 않게 섬긴다면, 우리 앞에 놓인 것은 하나님 예비하신 복이 아니라 40년 광야학교일 뿐이다. 더욱 철저하게 무너지고, 깎이고, 부숴지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체득하게 될 일만 남은 것이다. 물론 이 자체도 은혜이다. 하나님이 우릴 버리지 않고 끌고가시니. 하지만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제대로 믿었더라면 금방 약속의 땅에 도착할 것을 40년을 삥 돌아서 그 복을 받았던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복을 받기까지 그 수많은 연단과 고통들을 겪어야만 할 것이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여러분, 어쩌피 이 땅을 살면서 예수 믿기로 한 것, 제대로 믿어야 하지 않겠는가? 내가 믿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얼마나 위대하신 분이신지, 우리에게 어떤 놀라운 은혜를 베푸셨는지, 우리의 삶 가운데 무얼 원하시는지 제대로 알아야지요. 그리고 이처럼 분명한 모든 것들을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남겨두셨다. 우리 믿음의 선진들이 웨민 대요리문답을 통해 고백했던 바와 같이 성경만이 우리의 “믿음과 순종을 위한 유일한 법칙"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바르게 신앙생활하기 위해서는 무얼 해야 하겠는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리고 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얼 원하시는지 기록된 성경을 읽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가까이 함이 합당하지 않겠는가? 말씀을 읽지 않는 자가 어찌 하나님을 바르게 알 수 있으며, 말씀이 선포되는 예배에 소홀한 자가 어찌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아낼 수 있단 말인가.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늘 가까이 두고 읽으라. 그 말씀이 선포되는 예배의 자리에 늘 힘써 나아오라. 이를 통해서만이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을 바르게 알 수 있다. 하나님에 대해 바르게 이해하지 못한 상태로 수 십년 신앙 생활 한들 그것이 그 사람에게 무슨 유익이 되겠는가. 하루를 신앙생활 하더라도 바르게 해야지요. 늘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여 그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그 말씀이 선포되는 예배에 힘쓰는 여러분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기도하자. 주여, 우리에게 말씀을 통하여 더욱 하나님을 알아갈 수 있길 원합니다.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날마다 경험하는 우리가 되게 인도하여 주옵소서.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