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414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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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으키시는 주님
일으키시는 주님
여러분 모두 반갑습니다. 제가 또 이렇게 말씀을 전하는 것은 오랜만인 것 같네요. 이제 봄도 되고, 날씨도 많이 따듯해지는 시기인 것 같습니다. 혹시 다들 벚꽃구경도 하고 좀 봄을 느끼고 있나요?
사실 이번 봄 같은 경우에는 벚꽃 구경가기가 조금 애매했던 것 같기는 해요. 벚꽃이 생각보다 이른 시기에 피기도 했고, 웬만한 벚꽃축제가 열린다고 했던 때에는 비가 내려가지고 벚꽃이 이미 절정이 지나게 되고 했어서 올해는 예년보다는 조금 아쉽게 되지 않았나 생각을 합니다.
사실 그래서 저 같은 경우도 벚꽃 좀 보려나 하던 차에 비가 오고 해서 좀 아쉬웠는데, 다행히도 지난주에 영종도에서 벚꽃을 조금 누릴 수는 있었습니다. 바다 근처라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인천에는 조금 늦게까지 있더라구요. 그래서 겨우 벚꽃을 조금 구경할 수는 있었어요.
자 그런데 벚꽃이 다 지고 어느정도 봄을 느끼게 되면, 대학생들의 경우에는 또 맞이해야 할 것들이 있어요. 바로 중간고사죠.
개강 한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조금 대학생활 좀 누릴려고 하니까 바로 시험 볼 때가 찾아오게 됩니다. 참 이상하죠.
직장인들의 경우도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뭐 학생들은 잠깐 중간중간에 나가서 벚꽃보면서 쉬기라도 했지, 우리는 벚꽃은 남일이고 계속 앉아서 일만 하고 했었죠?
날도 따듯해지고 나가서 놀고 싶은데, 놀지도 못하고 매여있는 분들도 아마 있었으리라 생각이 됩니다.
사실 이렇게 되면, 우리의 마음에는 참 힘들고 지치는 마음들이 많이 생기게 될 것 같아요.
사실 저는 어제 저희 집 근처에 있는 한양대 친구들과 만났었는데, 다들 지친 기색들이 있더라구요.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제가 어떻게 여러분들에게 힘을 불어넣어줄 수 있을까 생각을 하다가 제가 할 수 있는게 어떤 거겠어요? 말씀을 전하면서 좀 힘을 주어야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제가 뭐 장풍 쏘듯이 말씀을 선포해서 여러분들이 포션 먹듯이 힘이 채워지고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말씀 안에 역사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 이 자리에 모인 모든 이들에게 능력으로 큰 위로와 힘을 주실 것이라 믿으면서 함께 오늘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 시작을 보면 오늘의 주인공이 등장을 합니다. 누구죠? 바로 엘리야입니다.
엘리야는 우리가 성경에서 선지자 하면 바로 생각나게 되는 인물 Top 5 안에 들 정도로 우리에게는 유명한 사람이고 그만큼 뛰어난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서 등장하는 엘리야의 모습은 우리가 아는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등장을 하게 됩니다.
말씀 1절을 보시면, 뭐라고 하죠?
아합이 엘리야가 행한 모든 일과 그가 어떻게 모든 선지자를 칼로 죽였는지를 이세벨에게 말하니
자. 이 말씀의 내용을 잘 알려면 엘리야가 대체 뭘 했는지를 알아야겠죠? 그러면 여러분들의 성경 바로 앞부분에서 그 내용을 찾을 수가 있습니다.
바로 18장의 내용인데요, 이 18장의 내용은 엘리야의 사역 중 가장 대표적인 장면이 등장을 합니다. 바로 갈멜산 전투입니다.
아마 유명한 사건이기 때문에 다들 아실지도 모르겠어요. 이 사건을 굳이 전투라고 표현한 것은요, 엘리야가 수많은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과 말그대로 ‘영적 전투’를 펼쳤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 중에 혹시 ‘문명’이라고 게임을 아시는지 모르겠어요. 저도 좋아하는 게임인데, 그 게임이 어떤 게임이냐면, 각 국가별로 고대시대부터 현대까지 역사의 흐름을 따라서 자신의 국가를 발전시키고 상대로부터 승리를 얻어내는 그런 게임이에요.
승리 방법도 사람을 달로 보내는 과학 승리, 관광객을 많이 얻는 문화 승리, 전쟁으로 국가를 무너뜨리는 정복 승리 등 여러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게임이 특이한 게 승리 방법중에 종교 승리라는 것도 있습니다. 자신의 나라에서 창시한 종교를 많이 퍼뜨리면 승리하게 되는 것이죠.
그러다보니까 그 게임의 유닛들 중에는 선교사, 사도 이런 종교 유닛들도 존재합니다.
그 유닛들은 다른 나라로 가서 자신의 종교를 전하고 그 나라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역할들을 합니다.
대신 그 유닛들은 다른 군사 유닛처럼 공격을 하지는 못해요. 하지만 딱 한번 공격을 할 떄가 있습니다.
그게 언제냐, 바로 다른 종교의 선교사, 혹은 사도 유닛을 만났을 때입니다. 그러면 전투가 시작되는데, 그게 바로 종교전투입니다. 그렇게 유닛끼리 종교전투를 벌이고 지게 되면 다른 유닛처럼 죽게 됩니다.
어떻게 보면 이런 문명에서의 종교전투가 실제로 이스라엘의 갈멜 산에서 이루어졌다고 볼 수도 있다는 거에요.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숫자입니다.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은 각각 450명과 400명, 그러니까 총 850명이었습니다.
하지만 맡서서 전투를 하는 엘리야는 혈혈단신, 혼자였죠.
문명에서 이랬다면 당연히 처참한 패배 뜨면서 지게 될 텐데요, 놀랍게도 엘리야는 큰 승리를 거둡니다.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 수백명이 온갖 짓을 하면서 그들의 신을 불러도 응답하지 않았지만,
엘리야는 오히려 물을 넘치게 붓고 하나님께 응답해달라고 소리치니까 여호와의 불이 크게 임해서 그 모든 물이 다 증발해버렸죠.
그렇게 엘리야는 갈멜산 종교 전쟁에서 큰 승리를 거둡니다. 그리고 엘리야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죠. 그 모든 바알의 선지자들을 잡아서 모두 죽이게 됩니다.
사실 이 사건은 정말 엄청난 승리의 현장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했을 것이고, 엘리야 역시도 응답하신 하나님을 높이 경배했을 것입니다.
엘리야는 거기에 더해 가뭄으로 고통받던 이스라엘 땅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비가 내리게까지 합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하나님 말씀을 안듣던 아합 왕과 백성들의 앞에 하나님의 능력을 너무나도 크게 보인 것이라고 할 수 있겠죠.
이렇게 엘리야의 큰 일들이 마무리 되면 좋았겠죠.
그런데 오늘 말씀의 첫 구절로 인해 상황이 180도 바뀌게 됩니다.
갈멜산 전투의 현장에 있었던 아합 왕이 자신의 아내인 이세벨에게 모든 일들을 말한거에요.
이세벨은 말 그대로 극대노를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신에게 맹세하면서 자신이 반드시 엘리야를 죽일 것이라고 말합니다. 심지어는 그렇게 못하면 신들이 내게 벌을 내려달라고까지 말하죠.
자, 그러면 우리의 엘리야 선지자가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우리가 아는 엘리야라면 뭔 말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냐면서 코웃음을 쳤어야 할 것 같죠.
그런데 아니에요. 3절에 보면 뭐라고 하나요.
그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자기의 생명을 위해 도망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자기의 사환을 그 곳에 머물게 하고
정말 말그대로 줄행랑을 친거에요. 말씀에서도 노골적으로 ‘자기의 생명을 위하여’라고 말하고 있죠. 진짜 이세벨의 말이 무서워서 자신이 죽을까봐 도망을 친거에요.
그런데 그 도망을 어디까지 쳤다고 해요? 브엘세바라고 합니다.
브엘세바가 어디냐면요, 이스라엘 가나안 지역의 최남단에 있는 도시입니다. 그래서 보통 구약성경에서 이스라엘 모든 땅을 표현할 때,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라고 자주 표현을 합니다. 단이 최북단이고, 브엘세바가 최남단인거죠.
그러니까 다시 말하자면, 엘리야는 이세벨의 그 말을 듣고서 바로 갈멜산에서 최남단의 브엘세바까지 달려간거에요.
마치 야곱이 자신의 형 에서를 피해 도망한 것 처럼 정말 온힘을 다해 도망을 간 것입니다.
자. 엘리야가 대체 왜 이렇게 연약한 모습을 보였을까요. 왜냐하면요, 이세벨은 진짜 ‘찐’이었거든요.
이세벨이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멸할 때에 오바댜가 선지자 백 명을 가지고 오십 명씩 굴에 숨기고 떡과 물을 먹였더라
오바댜 선지자가 백명의 선지자들을 겨우 숨겨서 살려야 할 정도로 이세벨은 수많은 선지자들을 죽게 만든 것입니다.
그러니 엘리야도 그 이세벨의 악명을 잘 알았겠죠.
그런데 심지어 이세벨이 아끼는 바알 선지자들을 다 죽이기까지 했으니, 죽어도 곱게 죽지 못하겠다는 생각을 엘리야가 아마도 했을 거에요.
엘리야가 아무리 대단해보여도 그 역시도 결국에는 부족한 한 인간이었기 때문에, 덜컥 겁을 먹고 그렇게 먼 거리를 도망한 거에요.
그렇게 엘리야는 4절에 나온 것처럼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하나님께 한탄합니다.
‘차라리 제 생명을 지금 가져가주세요. 저는 저의 조상들보다 나은 사람이 아닙니다’
라고 말이죠.
아마 그 당시의 엘리야는 모든 힘을 소진한 채, 지금껏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려놓은 상태였을 것입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엄청난 일을 행했고, 그리고 승리했는데, 지금의 자신은 그때와는 너무나도 다른 초라한 모습이었던 거에요.
엘리야 자신도 그런 스스로의 모습에 요즘말로 현타가 왔을 거에요. ‘나는 하나님의 강한 선지자가 아니구나’ 자책을 했겠죠.
그래서 하나님 앞에, 자신의 이 못난 모습에 대한 죄책감과 앞으로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을 것 같은 무력감으로 자신의 생명을 가져가달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그러한 엘리야에게 하나님은 어떻게 대답하셨을까요? 우리 5절부터 7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로뎀 나무 아래에 누워 자더니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더라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
여호와의 천사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 먹으라 네가 갈 길을 다 가지 못할까 하노라 하는지라
하나님의 대답은 쉼이었습니다. 죄책감과 무력감, 또한 오랜 도망으로 인한 피곤함에 젖어있는 엘리야에게 하나님은 천사를 통해 떡과 물 한병을 주시고, 잠을 청하도록 하십니다.
그리고 엘리야가 충분히 휴식을 취한 후에 다시금 그를 부르시고 엘리야를 하나님의 산 호렙으로 부르십니다.
그렇게 엘리야는 마지막 8절에 기록된 것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양식으로 힘을 얻고 40일을 더 걸어가 호렙산에 이르게 됩니다.
그리고 엘리야는 그곳에서 하나님을 마주하고 하나님이 맡기신 세가지 일, 하사엘을 왕으로 세우고, 예후를 왕으로 세우고, 엘리사를 자신의 후계자로 세우는 일을 행하게 됩니다.
그리고 엘리사를 세운 후 우리가 잘 알듯 바람을 타고 하나님께로 향하게 됩니다.
여기까지가 바로 오늘 우리가 본 엘리야의 조금은 색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사실 엘리야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반응도 우리에게는 조금 새롭게 느껴질 것 같아요.
엘리야가 이렇게 하나님 앞에 무력한 모습을 보이고 자기를 죽여달라고 할정도로 무너져있으면, 우리가 생각했을 때에는 하나님께서 일침을 날리시거나, 그정도가 아니더라도 뭔가 말씀으로서 설득하시는 일들이 있어야 할 것 같잖아요.
그런데 하나님은 그저 지친 엘리야에게 양식을 주시고 그에게 쉼을 주시면서 기다리셨습니다.
그리고 그 쉼을 주셨기에 엘리야는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었고, 하나님의 계획을 실현해낼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우리에게도 엘리야와 같은 순간들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분명히 이전에는 나에게 화려한 순간들이 있었고, 신앙이 좋았던 순간들, 너무나도 밝았던 순간들이 있었는데,
지금 나의 모습은 그렇지 못하고, 그렇다고 해서 다시 좋아질 것 같지도 않고, 그러다보니 하나님께 계속 죄송한 마음만 들고, 이런 악순환에 놓이는 순간들이 있을 수도 있고, 혹은 지금 그러한 상황에 놓인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러한 우리를 혼내거나 꾸짖거나, 벌을 내리시거나 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사랑으로 우리를 기다려주시고, 우리가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우리에게 힘을 불어넣어 주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삶은요, 매번 완벽하면 좋겠지만, 절대로 그럴수는 없어요.
우리는 연약한 인간이고, 그 안에 죄를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기에, 지속적으로 실패하고 무너지고 넘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다보면 나의 믿음마저도 의심이 드는 순간들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잠깐 제 얘기를 하자면요, 저는 어린시절, 꽤나 오래 하나님께서 벌을 주시는 분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어떻게 생각하며 살았냐면요,
삶 속에서 나에게 안 좋은일이 생기게 되면, 바로 그걸 이전에 지었던 죄로 연결하는거에요. ‘아 이 잘못을 저질러서 하나님께서 내게 벌을 내리신 거구나’ 이렇게 생각한 것이죠.
하지만요, 그런 신앙은 유대인과 다를바가 없는 잘못된 신앙의 모습이에요. 그렇게 살아간다면 우리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의 크신 사역을 우리 스스로 거부하는 것과 마찬가지가 되어 버립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 하나하나를 찾아서 벌을 내리시는 분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자면요, 여러분들이 만약 지금 힘들고 한게 여러분들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생겨나는 고난이 아니라는 거에요.
여러분들의 모든 죄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모두 해결하셨습니다. 오늘 지은 죄 뿐만이 아니라 미래에 지을 죄까지 모두 말이죠.
그러면 이런 의문이 들겠죠. 대체 지금 겪는 고난은 뭐냐라고 말이죠.
그 원인은 사단이 여러분들을 공격하는 것일 수도 있구요, 하나님께서 이 고난을 허락하셔서 여러분들이 더욱 단단해지도록 인도하시는 것일 수도 있어요. 그 정확한 원인은 하나님만이 아시겠죠.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고난 중에 있는 여러분들을 그저 두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만약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그저 두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탈진 상태에서 정말 그가 말한대로 죽음에 이르게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의 종, 그의 자녀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따스한 손길로 양식을 내어주시며 다시금 힘을 내어 일어날 수 있도록 인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엘리야는 그 힘을 힘입어 자신의 모든 사역을 성공적으로 완수할 수 있었습니다.
분명히 엘리야는 세상의 공격과 연약한 자신의 모습으로 인해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실패한 그를 다시 일으키시고 사용하셔서 이루게 하셨습니다.
그 하나님의 손길은 여러분들에게도 향하고 있습니다. 마치 고난 속에서 실패한 것 같고, 내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질 때, 주님은 여러분들의 모든 마음을 아시고, 반드시 지켜보시며 함께해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금 일어나 주님이 주신 능력으로 주님께서 맡기신 일을 반드시 이루어낼 수 있도록 우리를 인도하실 것입니다.
엘리야가 브엘세바에서 호렙산까지 40일간을 걸었던 것처럼, 우리의 앞으로의 삶 역시도 정말 길고 험하고 고된 여정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 모든 길을 주님께서 여러분들과 함께 걸어주실 것이고, 그렇다면 우리는 엘리야가 충분히 힘을 얻어 이루어낸 것처럼, 반드시 이루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주님을 믿으며, 앞으로의 삶 속에서도 다시 일어나 주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함께 찬양할까요? 약할 때 강함 되시네 함께 찬양하겠습니다. 우리의 가장 힘들고 어려운 순간, 주님은 강한 손으로 우리를 이끌어 주십니다. 그 주님을 함께 찬양하며 나아가겠습니다.
말씀을 생각하며 기도합시다.
앞으로의 삶의 계획들을 놓고 기도합시다.
우리 주변에 힘들어하는 이들을 놓고 기도합시다.
재학생들을 놓고 기도합시다.
우리 학원선교부와 앞으로 준비될 사역을 놓고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