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의 영적 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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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묵상하다보면, 수많은 인물을 만난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은, 하나님을 만나고 나면, 그들의 인생이 달라지는 것을 또한 본다.
아브라함도, 모세도, 다윗도, 베드로도, 바울도, 이 외에 성경에 나오는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경험하고 난 뒤, 하나님의 뜻대로 살며,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믿음을 지켰다.
하지만, 성경에는 참으로 이해하고 설명하기 어려운 사람들도 등장한다.
요나의 경우가 그렇고,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그렇다.
그러나, 그 가운데, 단연 설명하기 어려운 사람이 있는데, 바로 솔로몬이다.
솔로몬 하면, 가장 먼저 그를 설명하는 단어가 바로 지혜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이스라엘을 당대에 강력한 나라로 성장시켰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있다면, 성전건축이다.
다윗이 그토록 소망했던 성전건축을 솔로몬 때에 이루어냈다.
이와 같이 외적인 차원에서만 본다면, 그의 아버지인 다윗보다도 더 큰 성과를 낸 왕으로 인정받아도 될 정도입니다.
그러나, 이같은 화려하고 위대한 평가가 무색할 만큼, 그의 마지막 모습은 굉장히 처참하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영적인 면에서의 처첨함이다.
정말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케하여, 하늘의 지혜를 받은 솔로몬이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이다.
정말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이 굉장히 거룩한 사명을 감당해 낸 솔로몬이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이다.
과연 무엇이 솔로몬을 이같은 영적 쇠퇴에 빠지게 만든 것일까?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두 가지 이유로 말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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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로, 솔로몬의 영적 쇠퇴는 한 순간에 일어난 일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따라합시다. “영적 쇠퇴는 한 순간에 일어나지 않는다”
먼저, 1절을 말씀을 보자.
“솔로몬 왕이 바로의 딸 외에 이방의 많은 여인을 사랑하였으니 곧 모압과 암몬과 에돔과 시돈과 헷 여인이라”
1절에서 솔로몬은 바로의 딸 외에 이방의 많은 여인을 사랑하였다고 말한다.
그런데, 성경을 조금 앞으로 돌려서 열왕기상 3장 3절 말씀을 보면, 초기 솔로몬의 상태에 대해 이렇게 평가한다. “솔로몬이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아버지 다윗의 법도를 행하였으나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하더라”
3장은 솔로몬의 통치가 시작될 때의 모습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솔로몬이 사랑한 대상은 다름아닌 하나님이었다.
그렇기에, 그의 마음에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했고, 어떻게 하면, 이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뜻대로 잘 다스릴지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는 3장에서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는 간절한 기도를 하게 된 것이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의 그 마음과 생각과 중심을 보시고 감동하셔서, 그토록 구하였던 지혜도 주셨을 뿐 아니라, 구하지 않은 부귀와 영광까지도 솔로몬에게 약속하셨다.
또한, 선대 다윗왕 때에 이루지 못하였던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이 사명에 집중하며 신실하게 감당했다.
이처럼, 처음에 솔로몬은 온전히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솔로몬이 11장에 와서 정말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무너진다.
조금 넘어진 수준이 아니라, 완전히 바닥까지 내려가 버린 영적 침체에 빠졌다.
이 이유를 11장 1절은 솔로몬이 “이방의 많은 여인을 사랑하였다”는 이 한문장으로 정리해버린다.
바로, 솔로몬이 사랑하는 대상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처음 솔로몬이 사랑하는 대상은 하나님이었다. 그의 중심에는 하나님이 계셨고, 모든 일의 출발과 우선순위는 하나님이었다.
초기 솔로몬이 하나님을 사랑했다는 사실에 대해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도 이런 솔로몬의 마음에 감동하셨고, 그를 기쁘게 여기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솔로몬은 하나님 아닌, 이방 여인들을 사랑하고 있다.
사랑의 대상이 하나님에게서 이방 여인들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성경은 솔로몬이 사랑한 대상이 바뀐 것이 한순간에 일어난 일이 아님을 암시해줍니다.
이미 처음부터 이렇게 됐을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성경은 이 한 단어를 꼭 집어 표현한다.
바로, “바로의 딸” 이라는 표현입니다.
열왕기상 3장은 솔로몬의 시작을 다루고
11장은 솔로몬의 끝을 다룬다.
그런데[, 그 시작과 끝의 첫문장 모두, 애굽의 딸, 바로의 딸에서 출발한다.
3장 1절을 보자.
“솔로몬이 애굽의 왕 바로와 더불어 혼인 관계를 맺어 그의 딸을 맞이하고....”
11장 1절을 보자.
“솔로몬 왕이 바로의 딸 외에 이방의 많은 여인을 사랑하였으니....”
열왕기 저자는 솔로몬의 처음과 끝에 바로의 딸을 아내로 맞이한 이 일을 왜 동일하게 기록했을까요?
바로의 딸을 아내로 맞이한 이 일이 솔로몬이 지금 이러한 영적 상태에 이르게 한 시작이었기 때문이다.
이방 나라의 여인과 결혼하는 것은 이미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이었다.
신 7:3–4 “또 그들과 혼인하지도 말지니 네 딸을 그들의 아들에게 주지 말 것이요 그들의 딸도 네 며느리로 삼지 말 것은 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여 그가 여호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하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갑자기 너희를 멸하실 것임이니라”
이방 나라와 혼인을 금한 가장 근본 이유는, 여호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을 솔로몬이 알고 있음에도, 몰랐다고 보지 않는다.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솔로몬은 이 신명기 율법을 어기면서 출발하였다는 것이다.
합리적으로 짐작해보면, 아마도 이때의 솔로몬은 자신이 있었던 것 같다.
3장 3절에서 보았듯이, 초기때의 솔로몬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득하였기 때문에, 애굽의 공주가 왔어도,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확신했을 수 있다. 실제로 그 마음이 본문을 보면 이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당시 시대적 배경 속에서도 결혼동맹은 문제가 아니었다.
나라간에 정치적인 동맹을 맺을 때, 그 약속으로 나라간에 사돈을 맺는 결혼동맹은 당연한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솔로몬이 애굽의 공주를 아내로 맞이하는 이 일을 통해서, 과거 애굽의 노예였던 이스라엘이 이제는 애굽보다 높은 위치에 존재하는 강대국임을 나타내고 싶어 했을 것이다.
그런데요. 그렇게, 자신만만하고, 사소하게 여겼던 이것이 결국에는 솔로몬의 마지막 때에 자신을 영적 쇠퇴의 길로 빠지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였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솔로몬에게 이 일에 대한 경고의 말씀을 이미 여러차례 하셨다.
열왕기상 9장 4-7절
4 네가 만일 네 아버지 다윗이 행함 같이 마음을 온전히 하고 바르게 하여 내 앞에서 행하며 내가 네게 명령한 대로 온갖 일에 순종하여 내 법도와 율례를 지키면
5 내가 네 아버지 다윗에게 말하기를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를 사람이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한 대로 네 이스라엘의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려니와
6 만일 너희나 너희의 자손이 아주 돌아서서 나를 따르지 아니하며 내가 너희 앞에 둔 나의 계명과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고 가서 다른 신을 섬겨 그것을 경배하면
7 내가 이스라엘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에서 끊어 버릴 것이요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거룩하게 구별한 이 성전이라도 내 앞에서 던져버리리니 이스라엘은 모든 민족 가운데에서 속담거리와 이야기거리가 될 것이며
그러나 솔로몬은 하나님의 경고에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이방 나라와의 결혼동맹을 이어갔다.
그 결과 어마어마한 숫자의 후궁과 첩을 두게 되었고, 이것이 마침내, 솔로몬이 완전한 영적 쇠퇴의 나락으로 빠지게 된 것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역시도 영적인 침체를 경험하거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잃어버리는 경험을 한다.
그런데, 이같은 일은 한순간에 갑자기 일어나기보다는, 서서히 스며드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이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는 말처럼,
사소하게 여기고 쉽게 넘겨버리는 죄의 가랑비가 우리의 영적인 옷에 내려지는 것도 모르게끔 계속해서 우리 삶에 내리고 있다. 지금 당장은 모른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옷이 젖어있는 것을 발견하면, 이미 그땐 온 몸이 흠뻑 젖은 뒤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을 때는, 사소하게 여기는 죄들이 나에게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사소한 것들은 그냥 넘겨버린다. 언제든 끊어낼 수 있다고 여기며, 쉽게 생각한다.
하지만, 실과 같은 가랑비가 옷을 젖게 하듯이, 그 사소한 것들이 모여서, 결국에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완전히 무너져 내리게 하는 결정적인 이유가 된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솔로몬이 보여주는 영적 쇠퇴의 과정을 우리는 결코 간과해서는 안된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을 때, 사소하게 여기는 죄의 모습부터 끊어낼 수 있기를 바란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고 있다면, 습관적으로 사소하게 여기는 죄의 모습부터 끊어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럴 때에, 우리의 신앙이 솔로몬의 전철을 밟아가는 신앙이 아니라, 처음보다 가면 갈수록 더욱 더 견고한 사랑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따라갈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런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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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로, 솔로몬의 영적 쇠퇴는 분별력을 잃게 되면서 더욱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따라합시다. “분별력을 잃게 되면 더욱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된다”
2절 말씀을 다시 읽자.
“여호와께서 일찍이 이 여러 백성에 대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그들과 서로 통혼하지 말며 그들도 너희와 서로 통혼하게 하지 말라 그들이 반드시 너희의 마음을 돌려 그들의 신들을 따르게 하리라 하셨으나 솔로몬이 그들을 사랑하였더라”
마지막 단락에 보면, 솔로몬이 그들을 사랑하였더라고 되어 있는데,
원어로 보면, 1절과 2절의 사랑하다는 단어가 다르다.
1절에서는 아헤브라는 말그대로 사랑하다는 단어를 사용했지만,
2절에서는 아헤브가 아닌, 다바크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다바크의 뜻은 “달라붙다, 굳게 결합하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2절의 마지막 문장을 좀더 문자적으로 표현하면, “사랑에 굳게 결합하다”는 것이다.
즉, 솔로몬이 이방 여인들을 사랑하는 것에 몰두하고 집착했다는 뜻이다.
이것이 심각한 것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시 한번 솔로몬의 처음 때로 돌아가봐야 한다.
열왕기상 3장 9-11절을 읽어보자.
9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10 솔로몬이 이것을 구하매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든지라
11 이에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것을 구하도다 자기를 위하여 장수하기를 구하지 아니하며 부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 원수의 생명을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으니
솔로몬이 왕으로 통치를 시작할 때에 그가 가장 원하던 것은 다름아닌 하나님의 지혜였다.
그러나, 이 지혜는 단순히 지식이나 아이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 바로 선악을 분별하는 지혜였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주신 지혜는 정확한 의미에서는, 분별하는 능력이었다.
그런데, 이 분별하다가 가진 의미가 굉장히 중요하다.
9절과 11절 마지막 단락에 보면, 분별하게, 분별하는 이라고 되어 있는데,
분별하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는 빈이다.
그런데, 이 단어가 분별하다라는 뜻으로 쓰인 곳은 여기 열왕기상 3장 9절과 11절이 전부이다.
여기서만 빈이라는 단어가 분별하다는 뜻으로 쓰였다는 것이다.
그러면, 본래 이 단어가 가지고 있는 의미가 있다는 것이겠죠?
바로, 인식함으로 이해하다라는 것이다.
즉, 분별은 하나님을 인식하는 것에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이해가 되시죠?
그러니깐, 3장에서 솔로몬이 분별의 지혜를 구한 것은 바로, 하나님을 인식하며, 하나님과 결합하기를 원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뜻대로 나라를 통치하는게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방법과 뜻을 구현해내는 분별의 지혜를 원했고, 그 소원대로 분별하는 지혜를 받게 된 것이다.
그렇기에, 솔로몬은 이 분별하는 지혜를 통해서, 하나님을 인식하고, 하나님과 결합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런 솔로몬이 11장에 와서는 지금 누구와 결합되어 있습니까.
바로, 이방 여인과 결합되어 버린 것이다.
그렇게 됨으로써, 더 이상 솔로몬은 하나님을 인식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됨으로써, 하나님을 인식함으로 발휘되는 분별력이 사라져버리게 된 것이다.
그 결과, 솔로몬은 하나님의 말씀의 영향력 아래에서 살지 못하고, 이방 여인으로부터 기인되는 타락한 영향력 아래에서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인생이 되어 버리고 만 것이다.
그리고 결국 솔로몬의 마음에서 하나님이 사라진다.
9절. “솔로몬이 마음을 돌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므로”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오늘을 사는 우리의 현실이 본문의 솔로몬과 같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세상에 나타나는 성도들의 모습 속에서 하나님을 인식하지 못하고, 분별력을 잃어가는 모습을 많이 본다.
3절에, 천명에 이르는 이방 여인들이 솔로몬의 마음을 하나님에게서 돌아서게 한 것처럼,
세상의 수많은 것들이 우리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고, 하나님에게서 돌아서게 만든다.
믿음의 소망을 무너뜨리고, 현실의 상황에만 주목하게 만들어서 끊임없이 무너지게 하고, 허우적거리게 하고, 좌절하게 한다. 바쁘고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게 만들어서, 우리의 분별력을 흐트러뜨린다. 그렇게 세상의 이들과 별반 다를게 없게 만든다.
그렇게 마침내, 하나님이 아닌, 세상 앞에 무릎 꿇게 만듭니다.
이것이 오늘날 성도를 노리는 사탄의 전략 중 하나이다.
만약 솔로몬이 처음 하나님께 받았던 분별하는 지혜만 놓치지 않았다면, 이정도까지 깊은 죄의 수렁에 빠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분별력을 잃게되자, 하나님을 인식하지 못하게 되자, 결국엔 우상과 죄악에 굳게 붙들리는 비참한 최후에 빠지게 된 것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분별력을 잃으면, 세상의 유혹과 시험에서 빠져나오고 싶어도 빠져나올 수 없다.
가면 갈수록 더 깊은 죄의 수렁에 빠지게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을 인식하므로 발휘되는 분별력을 지키기 위해서,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드는 삶을 살아내야 하는 것이다.
때로는 어렵고, 지키기 어려운 말씀이라고 할지라도, 그 말씀 한절, 한문장, 한단어라도 우리 마음과 중심에 새겨서 하루하루 그 말씀이 나에게 분별하는 지혜가 되어 자리잡도록 힘쓰고 또 힘쓰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럴 때, 믿음의 삶을 위협하는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분별해내는 삶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삶이 지속될 때, 우리는 솔로몬과 같은 영적 쇠퇴의 길을 걷는 자가 아니라,
우리가 걸어가는 믿음의 여정이 마지막까지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하나님의 복을 받는 축복의 통로가 되어서, 우리가 속한 삶과 직장과 가정을 하나님의 나라로 변화시키는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될 줄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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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을 정리한다.
이러한 결말을 산 솔로몬이 최후에는 다시금 회심하고 돌아섰는지 우리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노년에 기록하였다고 알려진 전도서를 통해서, 솔로몬이 적어도 11장의 삶에 대하여 어떤 후회를 하였을까를 짐작해 볼 수 있을 것같다.
[전2:24-26]
24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것보다 그의 마음을 더 기쁘게 하는 것은 없나니 내가 이것도 본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오는 것이로다
25 아, 먹고 즐기는 일을 누가 나보다 더 해 보았으랴
26 하나님은 그가 기뻐하시는 자에게는 지혜와 지식과 희락을 주시나 죄인에게는 노고를 주시고 그가 모아 쌓게 하사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에게 그가 주게 하시지만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로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기뻐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 한 분만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인생이 진정한 기쁨과 영원한 행복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자리잡기를 원합니다.
그러므로, 사소하게 여기며 반복하며 짓는 습관적인 죄를 주님의 십자가 앞에서 진심으로 회개하고,
영적 분별력을 잃지 않도록,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으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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