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마음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27 views우리는 틈만나면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나려고한다. 그것이 자유라고 생각하면서. 그러나 아버지를 떠난 자유의 결과는 비참함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떠나갈지라도 언제든, 늘 우리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계신다.
Notes
Transcript
또 이르시되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그 둘째가 아버지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버지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그 후 며칠이 안 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더니
다 없앤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그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한 사람에게 붙여 사니 그가 그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맏아들은 밭에 있다가 돌아와 집에 가까이 왔을 때에 풍악과 춤추는 소리를 듣고
한 종을 불러 이 무슨 일인가 물은대
대답하되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건강한 그를 다시 맞아들이게 됨으로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하니
그가 노하여 들어가고자 하지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아버지께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혹시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기억이 있나요? 저는 물건을 잃어버리는 것을 너무나 싫어합니다. 너무나 짜증이 납니다. 똑같은 걸 또 사야하고, 그만큼 돈과 시간이 허비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물건을 신경쓰며 잘 관리하려고 애씁니다. 그래서 물건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손에 꼽힙니다. 그런데 제가 카드지갑을 한번 잃어버린 적이 있습니다. 그 카드지갑이 제가 군목을 준비한다고 1년간 정말 공부만 했거든요? 저희 집안에 막 그렇게 용돈을 주고 지원을 빵빵하게 해줄정도의 형편이 못되어 당시 교회에서 받은 장학금 100만원 정도를 가지고 기숙사에 들어갔어요. 그리고 진짜 그돈을 쪼개고 쪼개서 사용했습니다. 밥도 부모님한테 반찬받아와서 직접해먹고, 커피 음료, 과자, 치킨? 이런건 사먹지도 않았어요. 정말 최소한의 유지할 수 있는 돈만 썼습니다. 그리고 학기때마다 150만원씩 생활비대출받아서 그돈으로 다음학기 생활비대출 받을 때까지 버텼어요. 정말 1년 정도를 옷한번 못샀던 것 같아요. 그래서 여름엔 반팔 반바지 츄리닝, 겨울엔 후리스 조합으로만 입고 다녔어요. 그러다가 합격을 하고나서 처음으로 스스로에게 선물로 샀던게 루이까또즈 카드지갑이었어요. 그러니 저에게 얼마나 큰 의미가 있었겠어요. 진짜 1-2년간 잘 썼거든요? 그러다가 어느날 카드지갑을 잃어버린거에요. 진짜 너무 속상하고 화가났어요. 민증, 카드들도 다 재발급 받아야 하고 새로운 카드지갑 사려면 또 돈인데.... 그래서 핸드폰 케이스에 카드만 끼워다녔어요. 그런데 1달쯤이었나? 갑자가 광주경찰서에서 카톡이 온거에요. 분실물이 있다고 찾아가라고. 그래서 가봤더니 제 카드지갑이 있는거에요. 정말 너무 행복했습니다. 잃어버린 카드지갑이, 집나간 카드지갑이 되돌아온거에요. 그때 제 마음이 어땠을지 상상이 가나요?
오늘 본문은 잃어버림과 되찾음의 마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본문의 비유는 흔히 탕자의 비유라고 알려져있습니다. 그러나 이 비유의 제목은 잃은 아들을 되찾은 아버지 비유입니다. 이 비유의 포커스는 아들이 아니라 아버지라는 것이죠.
예수님께서 이 비유의 말씀을 하신 이유는 바로 예수님이 세리와 죄인들과 교제하는 것을 보고 수근거리며 비난하자 예수님이 그들에게 내가 찾아온 이유는 바로 나에게서 떠나간 이들을 되찾으려고 왔음을 가르쳐주기 위함입니다. (눅 15:1-2)
이 비유를 살펴보면 아버지와 두 아들이 등장합니다. 어느날 둘째 아들은 아버지에게 물려받을 재산을 미리 달라고 말합니다.
작은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하기를 ‘아버지, 재산 가운데서 내게 돌아올 몫을 내게 주십시오’ 하였다. 그래서 아버지는 살림을 두 아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느 명백한 패륜적인 행동입니다. 패륜적인 행동이라함은 인간의 도리를 저버린 행동이라는 것이죠. 왜냐하면 유산은 그 사람이 죽었을 때 그들의 자녀들에게 전해지는 것입니다, 유산을 물려받았다는 것은 그의 부모가 죽었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버지에게 유산을 요구한 둘째 아들의 행동은 바로 아버지를 죽은 것으로 여긴 것입니다. 아버지가 죽어도 좋으니 아버지의 유산을 달라고 한 것이죠. 아버지와의 관계가 끊어져도 좋으니 저에게 물려줄 유산을 달라고 한 것입니다.
왜 둘째 아들은 유산을 땡겨 받은 것일까요? 아버지에게 불효자식으로 관계가 깨어질지라도 받으려고 재촉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는 바로 아버지로부터 벗어나 자기가 하고싶은대로 살고싶었기 때문입니다. 자유를 위해서 떠난 것입니다. 아버지를 떠나고 돈만 있으면 내가 하고싶은대로 살며 자유를 누릴 수 있을 거라는 착각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런 착각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간섭이 없이 내가 하고싶은대로 다 하는 것을 자유라고 말이죠. 부모님의 간섭, 잔소리가 없으면 진짜 자유할 거라고. 누군가 내가 하고싶은 것을 방해하고 태클걸지 않으면 자유할 수 있을 거라고 착각합니다.
오늘날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간섭하거나 마음대로 못하게하면 꼰대라고 하잖아요? 내 인생 내 마음대로 하겠다는데 왜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야. 지들이 뭔데 내 인생에 참견하는거야 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나의 울타리들(가정, 부모, 교회, 목사님, 학교, 선생님, 사회, 법…)로부터 벗어나면 진정한 자유가 있을까요? 아버지의 집으로부터 벗어나면 자유가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울타리를 벗어 자유는 방탕과 방종으로 나타납니다. 울타리가 없는 둘째 아들은 먼 나라에 가서 잘먹고 잘 산게 아니라 그 모든 재산을 낭비하고 거지가 됩니다. 13절을 보면 그가 먼 나라에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당비하더니 다 없애고 궁핍하게 되었다 라고 말합니다. 그 정도가 어디까지냐면 먹을게 없어서 돼지우리에 들어가 돼지가 먹는 쥐엄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합니다. 오늘날로 따지면 여러분 요즘 캣맘들이 길냥이들 밥을 주잖아요. 그걸 먹으려고 했던 거랑 같은거에요. 근데 그 마져도 주는 사람이 없어서 먹지 못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자유의 진짜 모습이에요. 아무도 간섭하지 않고 내가 하고싶은대로만 하면 진짜 자유일까요? 아니요 그것은 방종과 방탕이며 그 끝은 비참함이에요. 아버지로부터 따뜻한 집과 옷, 배부르게 먹고 마실 수 있는 음식, 나를 보살펴주는 하인들을 다 포기하고 찾았던 자유의 모습이 결국 돼지 사료를 먹기 위해 싸우는 비참함입니다. 마찬가지에요 여러분 오늘날 세상은 너 하고싶은대로해. 너가 원하는 대로 살어. 한번뿐인 인생 너 마음대로 살아라고 말하지만 그 삶의 모습은 말하고 있지 않아요.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 마음대로 살면서 술, 담배, 문란한 성생활, 동성애, 마약, 도박, 도박성 주식 등 수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잖아요. 여러분 울타리, 절제가 없는 자유의 끝은 비참함입니다.
둘째 아들은 쥐엄열매를 통해서 아버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방탕과 방종의 비참함을 경험하고 나서야 다시 아버지께로 돌아가기를 생각합니다. 그러나 막상 아버지께로 돌아가려니 자신이 아버지에게 행한 죄가 떠올라 부끄럽습니다. 16-18절을 읽겠습니다.
그는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라도 좀 먹고 배를 채우고 싶은 심정이었으나, 그에게 먹을 것을 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제서야 그는 제정신이 들어서, 이렇게 말하였다. ‘내 아버지의 그 많은 품꾼들에게는 먹을 것이 남아도는데, 나는 여기서 굶어 죽는구나.
내가 일어나 아버지에게 돌아가서, 이렇게 말씀드려야 하겠다.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 앞에 죄를 지었습니다.
둘째 아들은 쥐엄열매라는 비참함을 경험하고나서야 죄를 꺠닫게 됩니다. 목사님이 지혜로운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해줬죠. 타인을 통해 깨닫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라고요. 여러분 우리 옆사람과 이야기해볼까요? 쥐엄열매를 먹기전에 돌아오자. 아버지를 떠나는 것이 죄입니다. 그 죄의 결과는 비참함입니다. 여러분은 쥐엄열매를 먹기 전에 하나님께 돌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스토리 절정에 이르게 됩니다. 자신의 죄로 인해 쭈뼛쭈볏 다가가는 둘째 아들을 본 아버지는 어떻게 행동하셨을까요? “어이고 잘한다. 내 말 안듣고 까불때부터 알아봤다. 내가 너 이렇게 된다고 했지?”라고 말하면서 등짝을 때리나요? 20절을 읽어보겠습니다.
그는 일어나서, 아버지에게로 갔다. 그가 아직도 먼 거리에 있는데, 그의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서, 달려가 그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
아버지를 죽은 사람이라고 다시는 안볼 것처럼 떠나버렸는데, 그 아버지는 내가 돌아오기를 매일같이 기다린 거에요. 그러니까 먼 거리에 있는대도 아들을 알아보고 달려온 것이죠. 여러분 이게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우리는 어떻게든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합니다. 교회 나가는 것보다 친구들과 노는 것이 더 좋고, 주일에 예배드리는 것보다 친구들과 토요일부터 밤새노는게 더 좋아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보다 내 감정이 시키는대로 사는게 좋아요. 우리는 틈만나면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지 않고 세상에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들이 족쇄처럼 느껴지고 나를 억압하는 것처럼 느껴요. 대기야 술취하지마라, 돈을 사랑하지마라, 간음하지마라, 동성애 안된다, 미워하지마라, 시기하지마라, 싸우지마라, 용서해라, 나눠주라, 섬겨라… 이런 말들이 다 잔소리처럼 여겨져요.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사려고한단 말이에요.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을 떠난 우리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인격적인 하나님은 강제로 우리를 끌어다가 앉히지 않아요.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만을 기다리십니다. 나는 하나님이 싫다고, 하나님이 필요 없다고, 하나님 없이도 잘 산다고 소리지르며 가출했는데. 하나님은 내가 거기서 굶지는 않은지, 따뜻하게 입고는 다니는지, 잠은 잘 자는지 내 생각밖에 없어요. 그리고 내가 하나님께로 돌아온다면 누구보다 기뻐하시며 나를 따뜻하게 앉아주시고 제일 좋은 옷을 입혀주시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며 신을 신기십니다. 그리고 나를 위해 살진 송아지를 잡고 잔치를 베풀어주시죠. 이게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한명이라도 주님께 돌아오기를 기다리시죠.
말씀을 맺으려고 합니다.
여러분 오늘 말씀에서 등장하는 두 아들은 사실 그리스도인들을 상징합니다. 아버지와 함께 있지만 아버지의 것들을 누리지못하고 아버지와 거래를 하던 첫째 아들은 오늘날 교회에 나오고 있지만 하나님과 함께함을 누리지 못하고 내가 이만큼 했으니 하나님이 이만큼 내게 주셔야해라고 거래하는 그리스도인들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아버지로부터 떠나 세상으로 나간 둘째 아들은 오늘날 교회를 떠나 세상으로 나간 그리스도인들을 상징합니다. 사실 아버지는 두 아들을 잃은 것입니다. 자신과 함께하지만 자신을 누리지 못하는 첫째 아들과 자신을 떠나버린 둘째 아들 둘다 잃어버린 거에요. 하나님은 이 두 아들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어디에 속하고 있나요? 교회에 나오지만 하나님을 누리지 못하는 첫째 아들인가요? 세상으로 떠나간 둘째 아들인가요? 본문에서 살펴본 것처럼 하나님은 두 아들 모두 돌아오기를 기다리고있습니다. 다시 아버지께 돌아와 주님과 함께 잔치를 누리며 교제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시간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소망합니다. 세상으로 나가 쥐엄열매라는 비참함을 경험하고 돌아오지말고 하나님께 돌아가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나에게 돌아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의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며 돌아온다면 하나님은 그 누구보다 기뻐하시며 우리를 따숩게 안아주실 것입니다. 우리 말씀 두 구절 읽고 마치겠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을 두고 더 기뻐할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을 두고, 하나님의 천사들이 기뻐할 것이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