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_03:01-03:05_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지하는 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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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s
Transcript
사무엘하 3:1–5 (NKRV)
1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 사이에 전쟁이 오래매 다윗은 점점 강하여 가고 사울의 집은 점점 약하여 가니라
2 다윗이 헤브론에서 아들들을 낳았으되 맏아들은 암논이라 이스르엘 여인 아히노암의 소생이요
3 둘째는 길르압이라 갈멜 사람 나발의 아내였던 아비가일의 소생이요 셋째는 압살롬이라 그술 왕 달매의 딸 마아가의 아들이요
4 넷째는 아도니야라 학깃의 아들이요 다섯째는 스바댜라 아비달의 아들이요
5 여섯째는 이드르암이라 다윗의 아내 에글라의 소생이니 이들은 다윗이 헤브론에서 낳은 자들이더라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 시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은 다윗의 아들들에 대한 등장인물 소개입니다. 사울의 집은 기울어져가고, 다윗의 집은 강력해져 가고 있습니다. 집안이 강력해진다는 것은 자식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강건한 자녀들이 많다는 것은 언제나 축복입니다. 다윗의 집안에 하나님의 축복이 쏟아졌습니다. 다윗의 아내들이 모두 다 순적하게 자녀들을 낳았고, 그 자녀들은 용모가 준수하고 능력도 뛰어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란 하나님의 축복을 고난으로 만드는 재주가 있는가봅니다. 오늘 소개되고 있는 다윗의 복된 자녀들은, 곧 다윗의 집안에 풍파를 몰고 올 주역들인셈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으로 왕이 된 다윗의 왕자리를 너도나도 차지하겠다고 혈안이 되는 것입니다. 왕자리가 축복인 줄 알고 그것을 탐내며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왕자의 난이 터지게 됩니다. 사실 다윗왕의 축복은 그 왕자리에 앉기까지,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모되는 상당히 오랜 시간들이 축복이었습니다. 왕의 자리는 어찌보면 하나님께서 다윗을 끌고 다니시면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빚어내시려는 명분이었는지도 모릅니다. 하나님 앞에 왕이 되어간다는 것이 무슨 내용인지를 알 길이 없는 다윗의 자녀들은 그저 아버지의 뒤를 잇는 왕이 되겠다고 그 난리를 부렸지만, 이루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오늘 명단에는 없는 나중에 태어나는 다윗의 자녀인 솔로몬이 왕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토록 건강한 체력으로, 준수하고 지혜로운 전략을 가지고 서로 물고 죽이고, 경쟁하면서 이루려고 했던 왕이 되는 꿈은 다윗의 자녀들에게 그렇게 평생을 받쳐야 할 인생과업이어야만 했을까요.

point

하나님께서는 경쟁과 결핍이 난무하는 우리의 현실 속에서 예배자가 되라고 하십니다. 예배자로 서면 우리의 결핍은 하나님께서 채워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전쟁과 같은 현실속에서 경쟁하고 이겨야 전리품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배자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면 꼭 다 이기지 못해도 승자들의 전리품을 누리며 살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고린도후서 1:20 (NKRV)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이기면 나누는 자가 되고, 지면 누리는 자가 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reason

전도서 9:11 NKRV
내가 다시 해 아래에서 보니 빠른 경주자들이라고 선착하는 것이 아니며 용사들이라고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며 지혜자들이라고 음식물을 얻는 것도 아니며 명철자들이라고 재물을 얻는 것도 아니며 지식인들이라고 은총을 입는 것이 아니니 이는 시기와 기회는 그들 모두에게 임함이니라

example

다윗의 첫 째 아들이라고 해서 왕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매력있는 압살롬이 첫 째 아들인 암논을 죽였지만 그도 왕이 되지 못했습니다. 결국은 전혀 예상치 못한 솔로몬이 왕이 되었습니다. 장차 될 일은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것을 그들도 다 알았지만,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는가 두고 볼수만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선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기를 바라십니다. 그 날들이 모여 마음에 원하는 것들을 이루어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point

최대한 행복한 오늘을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생명과 죽음 중에는 생명을 붙잡아야 행복합니다. 어차피 죽을 건데 이렇게 하면 뭐해, 저렇게 하면 뭐해 하는 것 보다는 오늘이라는 24시간이 나에게 있으니 오늘은 어떻게 행복하게 살아볼까하는 쪽을 붙잡는 것이 100배는 유익할 것입니다.
한 끼를 먹어도 맛있게 먹고, 옷을 입어도 깔끔하게 입고, 멋을 낼 땐 멋을 내면서 본인의 시간을 기쁘게 보내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생존이라는 인생의 노고에 댓가로 주시는 것이 오늘 하루 즐거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놓치면 왕의 자리를 차지했다고 할지라도 그 뿐일 것입니다. 왕이 되어서도 기쁘지 않다면 그것이 다 무엇이겠습니까. 오늘보다 즐거운 내일이 없다면 도대체 사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어제보다 오늘이 즐겁지 않다면 그것은 또 누구의 잘못이겠습니까. 내가 즐겁지 않은 것이 다른 사람 잘못이라고 하면 너무 치사한 것 같고, 그게 다 내 잘못이라고하면 너무 가혹한 것 같고, 그 모든 것이 다 하나님 잘못이라고 하면 너무 무례한 것 같으니, 어정쩡하게 있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결정을 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 잘못인 것같으면 그 사람에게 가서 시시비비를 따져야 할 것입니다. 내 잘못인 것 같다 싶으면 머리카락을 자르든, 혈서를 쓰든 해서 더이상 암울한 시간으로 나의 오늘을 채워가지 않겠다고 용단을 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 잘못이라고 생각된다면 장부답게 허리를 묶고 하나님 앞에 나와서 왜 세상이 이 모양인지, 내 인생이 왜 이래야 하는지 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시간을 거쳐 나름대로의 납득이 되는 결론을 갖고 그 위에 또 하루를 쌓고, 또 하루를 쌓으면서 이 세상과 이 세상을 운영해 가시는 하나님의 마음 속으로 뛰어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해서 얻어내야 하는 것은 오늘을 기쁘게 살아가는 하나님의 실존적 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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