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설교 (6)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32 views
Notes
Transcript
“맞습니다, 찬송하겠습니다.”
세상에서 찬송해야 할 것은 무엇이 있을까? 칭찬과 격려와 칭송을 아끼지 않아야 할 영역은 얼마나 될까?
얼마 없다.
찬송한다는 것은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의미한다.
특별히 사도바울이 찬송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스도의 복음이다. 죄인 중에 괴수인 우리들을 위해
하나님인 그 분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그 예수 그리스도를
찬송하자고 고백하고 있다.
먼저 3절에서 고백하고 있는 것은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기록하고 있다.
엡1:3
먼저 하나님께서는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주신다고 했을 때..... 그것은 하나님께서만 주실 수 있는 복을 우리에게 주신다로 해석할 수 있다.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복은 무엇인가?
세상의 기복과는 다른 것이다.
동탄 지역의 아파트값이 오르는 복이 아닌, 나의 자녀가 좋은 대학과 취직하는 것이 아닌, 내 연봉이 오르고 내가 가진 재산의 목록이 더 늘어나는 복이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하시고자 하는 복을 주신다 이것이다.
그러면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셨다는 것 무엇을 주셨다는 것일까?
* 영적인 복: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특권(자녀 삼아주심)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특권을 아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번짓수를 제대로
이해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내가 하나님께 받은 복이 마치 ‘기복’으로 계속해서 비교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믿지만 복을 영원히 찾지 못할 것이다.
마치, 사도바울이 복음을 전하러 여러지역을 돌아다녔을 때 유대인들은 여전히 하나님을 기대하고
율법에 얽매이고 메시야를 기다린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유대인일지라도 예수님 몰랐던 사람일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예수께서 오심을 인정하며, 예수께서 오심이 믿어지는 사람들은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특권”영적인 복”을 발견하여 축복의 삶을 살아간다.
------------
이 영적인 복을 누리게 하시려고 4절에서 말씀하시는 것이다.
엡1:4 사랑으로 택하사와 엡1:5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같은 말이다.
창세 전에 우리를 택하사 이 부분은 박정근 목사님의 에베소서 강해를 참고해야 한다.
<에베소서:은혜의 사람으로 참고할 것>
나는 흔히 건강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들은 상처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이 말에는 모순이 존재한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갖춰져 있는 사람은 공허하지 않고
모두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의 마음에는 사람으로서는 이 세상의 것들로는 채울 수 없는 것들이 반드시 존재하기 때문이다.
예레미야 말씀 참고
그러면 사람은 왜 때로는 질투하고, 빈 마음이 있고,
상처가 있을까? 불완전한 죄인이기 때문이다.
아담과 하와에게 무엇이 부족했을까? 부족한 것이 없었다.
그러나, 그들에게 욕심이 하나님과의 단절된 관계를 가져오게 했다.
그러나 단 하나의 사랑이 우리의 삶을 채우고 만족하게 하며 넘치게 한다.
하나님의 사랑
오늘 바울은 3절부터 14절까지 찬송하리로다 ~ 이후에 쉬지 않고 헬라어단어들을 쏟아낸다....마치 그는 감옥 속에서 자신의 상황과 환경을 뛰어넘어서는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을 쉬지 않고 감격으로 이야기하는 것 환경을 초월한 기쁨..
바울은 어떻게 이런 감격으로 찬송할 수 있었을까요?
1. 선택 받은 은혜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 우리의 공로 행위로 선택받은 것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해주신 것이다.
"창세 전에"
'창세'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전에
바울은 어떻게 이런 감격으로 찬송할 수 있었을까요?
2. 자녀로 선택 받은 은혜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로마의 가족제도를 알아야 합니다.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서 쓴 것은 로마의 배경을 사람들이 다 안다는 가정하에 쓴 것
우리는 보통 아들로 태어나는 것이지만, 여기는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는 표현을 쓰고 있다.
로마가족제도를 보면 ‘파트리아 포스테스타스’
‘파트리아’ 아버지, ‘포스테스타스’ 절대적인 권력
쉽게 말해 이 때 당시 아버지가 자녀를 죽일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아들을 죽일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그것이 로마의 가족법
재산상속도 아버지가 정하는대로, 이 때 당시 한 부인에게서만 아들을 낳은 것이 아니라 여러 부인에게 낳았기 때문에 아버지가 누구를 후계자로 지목하느냐가 중요. 어떤 학자들은 아버지의 상속권을 받기 위한 자녀들의 암투 때문에 로마가 멸망했다고도 이야기한다.
그런데, 만약 아들 중에 후계자로 삼을만한 사람이 없으면 ‘양자’를 삼는다. 양자 삼으려면 양자 삼으려고 하는 사람의 친 아버지가 아들을 포기한다고 이야기해야 했는데 문서로도 약속으로도 되지 않고, 그 아들을 노예처럼 반드시 팔아야 그 아들을 사올 수 있었다.
한번도 아니라 세 번 해야 했다.
바울은 이런 의미로 아들됨 자녀됨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우리는 성경에 보면 불순종의 자녀, 진노의 자녀였따.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예수님 값을 치르시고 우리를 구원해주신 것이다.
우리를 선택한다고 하셨을 때 어떻게 선택하셨는지가 중요하다. “사랑 안에서, 사랑해서”
이용하려고 선택하신 것이 아니다.
부려먹기 위해 선택한 것도 아니다.
왜 사랑으로 택하고 사랑으로 예정하는가?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셔서 창세 전에 이미 경계 짓고 구분 지어놓으셔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값지 게 하심.
‘사랑 때문에’
이번에 아프면서 만화 성경으로 성경을 쭈욱 보게 되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은 늘 일방적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서도 하나님은 늘 일방적인 시선과 일방적인 사랑으로
우리를 향해 사랑을 쏟으셨다. 때로는 그 사랑을 너무 많이 쏟으셔서
실망감도 너무 크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또 자신의 사랑을 쏟으셨다.
쏟으시고 또 쏟으신 사랑의 결정판이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이다. 하나님이 쏟으신 그 사랑을 아는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다 쏟아 내었다.
자신의 삶을 다 쏟아내어도 아깝지 않게 생각하였다.
왜?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사랑이란 쏟아내는 것이다. 사랑이란 쏟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사랑은 경계와 한계를 반드시 구분짓는 그런 사랑이 아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다 쏟으시고,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자신의 사랑을
다 쏟아내셨다. 왜? 사랑하니까...
누군가 예수님은 왜 이렇게 힘 없게 오셔서 죽었냐고 물어볼 수 있다.
그런데, 분명한 사실은 모르겠다. 나를 왜 그렇게도 사랑하시는지.
내가 그러한 존재인지, 그러한 사랑을 받았는데 나는 지금 뭘하는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의 사랑을 쏟기로, 이미 태초부터 작정하셨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무엇인가?
은혜를 갚으며 살아라 인가? 은혜를 갚을 수 없다. 갚을 수 있는 은혜였으면
그것은 큰 은혜가 아니었을 것이다.
은혜의 반응인가? 은혜에 반응해봤자 얼마나 반응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겠는가?
반응할 수 있다면, 우리가 얼마나 반응할 수 있을까? 택도 없다.
다만, 너는 나의 은혜를 찬송하라.
은혜는 무엇인가? 하나님이 내 삶에 내가 거지같이 살아도, 끊임없이 내 삶에 개입해주셔서 너는 거지 같지 않다. 너는 가치 있다, 너는 내가 예전부터 예정했다....
말씀해주시는 은혜다.
우리의 삶을 향한 적극적 개입인 동시에, 적극적인 구애에 불과하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 오늘 바울사도가 하나님의 은혜를 어떻게 하자고 말하는가?
“찬송하자, 칭찬하자, 자랑하자..”
그래서 그가 했던 것은 칭찬, 찬송,자랑이었다.
우리의 전도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자랑,칭찬, 찬송
내 삶에 지금 하나님의 사랑을 향한 찬송이 있는가?
내삶에 주신 것 찬송 말고,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신 것에 대한 찬송이 있는가?
내 눈에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한 감격으로 인한 눈물이 있는가?
“나 노래하리라 천한 나를 돌아보신 구세주를 찬양해!” 이 고백 있는가?
사도바울은 절대 용서받을 수 없었던 사람이다.
스데반 집사님 죽일때만해도 그는 얼마나 극악무도했는가?
군사끌고 그리스도인 죽이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런 사도바울을 쓰신다.
우리라고 뭐가 다른가?
구원받고 은혜 받았음에도 여전히 별로다.
그런데,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기억하라고 하신다.
별로인 네가 그럴것을 알면서도 구원했다.....
찬송하라. 찬송을 회복하라, 찬송을 찬송답게 하라,
왜 찬송해야 하는가? 사랑받은 자이기 때문에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