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414 금요기도회 : 왕하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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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반갑습니다. 오늘도 금요기도회 자리에 나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오늘도 기도로써 하나님과 교제하며 기도를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참된 위로와 소망을 가지고 돌아가시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기도하기 전에 잠깐 하나님의 말씀을 함께 듣고자합니다. 오늘 본문을 1-3절만 읽었지만 설교는 23장 전체를 아우르려고합니다. 오늘 읽은 본문에 등장하는 남유다의 왕은 우리가 잘 아는 ‘요시야’입니다. 요시야는 앞장인 22장부터 등장하는데, 할아버지는 므낫세, 아버지는 아몬입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하나님께 범죄한 악한 왕이었지만 요시야는 그 길을 따라가지 않았습니다. 요시야는 불과 8살의 나이에 아버지인 아몬이 일찍 죽어 왕위에 오릅니다. 8살이라는 어린아이가 왕이 되었다면 우리 생각에 왕위가 안정되지 못하여 불안한 통치가 시작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극인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어린아이가 왕이 되면 어머니인 대비가 수렴청정을 하거나 심지어 조선시대의 세조처럼 쿠데타를 일으켜 왕위를 빼앗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요시야의 통치는 불길하게 시작되는 것처럼 보였지만 열왕기 저자는 그가 31년동안 통치했으며, 그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는 정직히 행하여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길로 행하고 좌우로 치우치지 않았다는 엄청난 극찬을 덧붙이면서 요시야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와는 다른 길로 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요시야가 통치한지 18년이 되던 해에 그는 서기관 사반을 보내 대제사장 힐기야를 통해 성전 수리를 명령합니다. 힐기야가 성전 수리를 지도하다가 성전에 파묻혀있던 율법책을 발견하고 사반은 이 율법책을 요시야에게 낭독해줍니다. 요시야는 사반이 낭독하는 율법을 듣고는 옷을 찢으며 애통해합니다. 그리고 여선지자 훌다를 통해 이때까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저버리고 이방신을 쫓았던 남유다의 지난 날들을 회개합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요시야가 율법에 따른 불순종의 결과를 해석하기 위해 선지자의 말씀을 구하는 것이 바로 국가의 죄를 인정하고 그 결과를 두려워하며 변화하기에 너무 늦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하나님이 자격 없는 백성에게 아직 자비를 베푸실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의 죄가 너무 크다. 우리는 율법에 따라 심판을 받아도 마땅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진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자비를 베푸시는 분이니 지금이라도 우리가 그분에게로 돌아가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요시야가 행한 것이 바로 오늘 읽은 23장입니다. 23장에서 요시야는 개혁을 행하는데, 새로운 것을 만들어 개혁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개혁한 것은 바로 ‘예배’입니다. 흔히들 요시야의 종교개혁이라고 하지만 저는 ‘예배개혁’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시야가 행한 예배개혁을 요약하자면 예배의 대상을 이방신이 아닌 하나님으로 바꾸고 예배의 방법 또한 율법에 명시된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방법으로 바꾼 것이었습니다.
그는 먼저 제사장들에게 다른 신을 숭배하는 데 사용되는 모든 기구를 성전에서 제거하라고 명령합니다. 그리고 백성이 우상을 숭배하는 곳인 산당을 맡고 있는 이교도 제사장들을 그만두게 하고, 므낫세가 성전에 놓았던 아세라 상을 불태우고, 아세라를 위해 휘장을 짜는 곳이기도한 성전에 있던 남창들의 집을 허물고, 전국적으로 있던 산당들을 더럽히고, 성문에 있는 산당들도 철거하고, 몰렉신을 예배하는 방식인 어린이 희생제사를 못하게 막고, 태양을 예배하기 위한 장식용 말을 성전 입구에서 치우고, 하늘의 신들을 예배하기 위해 따로 마련된 지붕 위의 제단들을 헐어버리고, 솔로몬이 자기 아내들을 위해 지은 산당들을 더럽히고 부숴버리고, 여로보암이 세운 벧엘의 제단과 산당을 헐어버리고, 신접한 자와 점쟁이들을 제거했습니다. 이것이 25절까지 기록된 요시야가 예배개혁을 위해 금지한 것들이며 동시에 이때까지 그의 선조들의 잘못을 없애버린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요시야는 금지만 한 것은 아닙니다. 그는 21-23절에서 유월절을 지키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이것은 바로 ‘우리가 어떻게 구원받았는지 다시 기억하자’라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이전에 율법에 기록된대로 유월절을 지켜지지 않았기에 22절에서 “사사가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시대로부터 이스라엘 여러 왕의 시대와 유다 여러 왕의 시대에 이렇게 유월절을 지킨 일이 없었다”고 말합니다. 요시야는 하나님의 백성인 자신들이 왜 하나님을 예배해야 하며 하나님만을 섬겨야하는지를 유월절을 지킴으로써 동기부여하게 만들었습니다.
여러분. 요시야는 율법을 발견하고 회개한 것으로 22장 끝인 22장 20절에서 평화로운 죽음을 약속받아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재앙을 요시야 때에는 보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것에 만족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자비에 감사하면서 1-3절에서 제사장과 선지자, 그리고 모든 백성과 함께 언약을 갱신합니다. 그리고 그 언약을 지키겠다고 요시야 자신이 먼저 약속하고 그 다음에 백성이 왕을 따라 지키겠다고 약속합니다. 이것은 요시야가 “주님은 자신의 말씀에서 회개하는 자에게 용서와 자비를 약속하셨으니 온 백성을 주님께 진정으로 돌아오게 하여 예고된 저주를 가능한 한 멀리 돌려놓겠습니다.”라는 마음으로 남유다의 백성 또한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도록 이끄는 모습입니다. 자신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하나님이 아닌 산당을 세워 이방신들을 예배하고 하나님께서 가증하게 여기시는 예배의 방법을 도입하여 남유다의 백성들도 같이 범죄하게 만들었지만, 요시야는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의 백성들도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의 방법대로 예배하게 하여 백성을 바른 길로 인도하기로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요시야가 다윗의 길로 행하고 좌우로 치우치지 않은 왕이었다는 이유입니다. 다윗이 그러했던 것처럼 요시야도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만을 예배하길 기뻐했던 왕이었습니다.
요시야는 왜 다른 것이 아닌 ‘예배’를 개혁했을까요? 그것은 다름 아닌 예배를 개혁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 백성이라는 것을 넘어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무슨 말인지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인간은 언제나 무엇인가를 예배하는 존재입니다. “저는 어떤 신도 예배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삶에 있어서 최고의 가치로 두는 것, 그것이 돈이든, 사랑이든, 권력이든, 성취든, 부동산이든, 그 어떤 무엇이든지 간에 자신에게 이것만 있으면 행복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 있다면 그 사람은 그것을 예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이라면 무엇이든지 예배하는 예배자입니다. 열왕기에 등장하는 악한 왕들이 이방신을 섬기려고 했던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주변국들이 섬기는 신들을 같이 섬기면서 국가 평화 유지라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두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보다 국가 평화 유지를 더 최고의 가치로 두어 국가 평화 유지를 예배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평화 유지라는 우상을 숭배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예배했을 때의 결과물은 어떻습니까? 그것이 진정으로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줄 것 같지만 결국에는 공허해집니다. 더 나아가 그것을 가졌을 때는 엄청난 기쁨이 있지만 결국에는 점차 만족감이 사라지고 다른 것을 갈구하게 됩니다. 우리의 삶만 봐도 그렇지 않습니까? 제 경험을 말씀드리자면, 처음 스마트폰이 나왔을 때 스마트폰만 가지면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나 정작 스마트폰을 엄마가 사주셨을 때는 당장 가졌을 때는 너무나 기뻤지만 시간이 지나 점차 그냥 제가 가지고 있는 많은 물건들 중 하나일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소중하게 다루지도 않고 툭툭 던지기도 하였습니다. 이처럼 그 어떤 것도 우리에게 완전한 만족을 주지 못합니다.
우리에게 진정한 행복과 만족을 줄 수 있는 분은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만이 가능하십니다. 요시야는 바로 이것을 알았기에 예배를 개혁하려고 했습니다. 그는 선조 왕들이 했던 정치적인 안정을 위한 우상숭배는 진정한 평화를 가져다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여호와 하나님만이 자신의 국가에 진정한 평화를 가져다 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예배의 대상을 하나님으로만 해야 자신을 비롯한 모든 백성이 진정한 행복과 만족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그는 다른 개혁이 아닌 예배개혁을 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요시야 유월절을 다시 지키려고 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다른 이방신들은 반드시 무엇인가를 바쳐야 복을 베푸는 아주 거래적인 신인 반면, 여호와 하나님은 이미 자신들에게 구원이라는 선물을 먼저 베푸신 분이기에 우리가 선물로 주신 구원을 기뻐하며 자발적으로 그분을 예배하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유월절을 다시 지키자고 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예배개혁을 행한 요시야는 다윗 자손의 왕들이 하나님의 백성의 지도자로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모델을 보여줍니다. 그는 남유다를 심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결정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22장 20절에서 적어도 요시야의 때에는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재앙을 보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서 자신들의 죄에 대한 벌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렇게 예배개혁을 행한 요시야보다 더 위대한 예배개혁을 행한 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여러분, 우리 주변에는 우상숭배의 대상이 참 많습니다. 그런데 우상숭배의 근원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 즉 자아 사랑입니다. 우리는 하나님보다 나 자신을 더 사랑하려는 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나’라는 존재를 예배합니다. ‘나’라는 우상을 숭배합니다. 열왕기에 등장하는 왕들이 왜 이방신들을 섬기려고 했습니까? 국가의 평화라고 말했지만 그 근원에는 자기 자신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이방신을 섬겨야 물질적으로 풍요로움을 누려 더 편안한 생활을 자신이 누릴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므낫세는 자기 자식조차 몰렉에게 서스럼없이 바치기까지 했습니다.
이 자아 사랑, 자아를 예배하는 것을 예수님께서는 개혁하셨습니다. 그분은 이 땅에 오셨을 때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쫓으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습니까? 바로 그들은 성전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성전에서 장사로 돈을 벌어 자신의 유익을 구했기 때문입니다. 자아 사랑을 개혁하신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에 순종함으로써 자기가 의로운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기 자신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자신이 의로운 사람이라고 드러내려는 바리새인들의 자아 사랑을 예수님께서는 개혁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을 한번 봅시다. 우리 또한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한없는 은혜로 구원받았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하나님을 예배하기는커녕 하나님이 아닌 돈, 쾌락, 소유욕 등 다른 것을 예배하며 살아갑니다. 우리도 우리 자신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며 살아갑니다. 우리 또한 요시야의 예배개혁하기 전의 남유다 백성들과 다를 것이 없는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요시야보다 더 위대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은 남유다처럼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아 받아야 할 하나님의 진노의 벌을 예수 그리스도께 다 쏟으심으로 이제 더이상 우리에게 재앙이 임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오히려 요시야가 율법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써 하나님을 예배했던 것처럼 교회를 통해 말씀을 주심으로 삼위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신 성부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입니다. 우리는 이제 하나님을 예배함으로써 진정한 만족과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요시야는 예배의 대상과 방법을 올바른 길로 인도한 위대한 왕이었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하신 더 위대한 왕이십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남유다는 요시야라는 왕을 통해 예배개혁이라는 은혜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요시야보다 더 위대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재앙을 받지 않게 되었고 삼위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게 되는 은혜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꼭 기억하며 우리가 매주 드리는 예배에서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사랑과 자비를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게 되는 은혜의 시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말씀을 기억하며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드러난 요시야보다 더 위대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들을 기억하며 성부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날마다 찬양하고 주일 예배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의 예배의 대상이 하나님이 되고 하나님께서 예배하시는 방법대로 예배하는 우리가 되어 하나님을 예배함으로써 다른 것이 아닌 하나님으로 만족하며 진정한 행복을 누리게 되는 우리가 되게 해달라고 같이 기도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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