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망 받을 것이 없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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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은 늘 상식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늘 상식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7절 말씀을 보면,
네가 또한 이것을 명하여 그들로 책망 받을 것이 없게 하라
여기서 책망하는 주체가 누구일까요? 바로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교회안에서 삶 만큼이나 교회 밖에서의 삶도 중요합니다. 늘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그리스도를 믿는 내가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 민감해야 합니다. 7절과 비슷한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젊은이는 시집 가서 아이를 낳고 집을 다스리고 대적에게 비방할 기회를 조금도 주지 말기를 원하노라
대적에게 비방할 기회를 조금도 주지 말아야 한다. 여기서 대적이란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교회 밖 사람들, 특히 기독교를 혐호하는 그러한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 대적은 기독교와 기독교인들에 대해서 매우 적대적인 사람들입니다. 기독교인들은 그러한 안티 크리스챤도 신경 써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그러한 교회 밖의 사람들의 비방으로 부터 자유로와 지고, 책망을 받지 않을 수 있을까요?
자녀들이 부모에게 효를 행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그들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한 것이니라
자녀가 부모에게 효를 행하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의 도리입니다. 십계명에도 “네 부모를 공경하라"라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효행은 저절로 생기는 덕이 아닙니다. 효는 가르쳐야 실천할 수 있습니다. 4절 말씀을 다시 보면,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라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주어는 무엇일까요? 주어가 분명하게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4절은 매우 해석하기가 곤란한 문장이기도 합니다. 과연 누가 누구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로 되어 있을까요? 어떤 과부가 자녀나 손자들에게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고 해석해야 할까요? 아니면, 목사가 어떤 과부에게 가르치기를 자녀들이 부모에게 효를 행하는 것을 배우게 하라고 해석해야 할까요? 하지만, 주어가 어찌 되었던 분명한 것은 자녀나 손자들은 부모에게 효를 행하고 부모의 은혜에 보답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그것이 4절 말씀에서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한 것이라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자신의 부모에게 효도를 잘 해야 합니다. 이 세상 어떤 곳에서도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을 악하다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효도를 잘 하면 칭찬합니다. 그것은 십계명이면서 동시에 상식적인 행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이해할 만하고 칭찬할 만한 매우 상식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바울은 힘이 없는 늙은 부모를 잘 돌보지 않는 그러한 비 이성적인 행동에 대해서 매우 강하게 비난합니다.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가족을 돌보지 않는 행위와 믿음을 연결하고 있습니다. 가족을 돌보지 않으면 믿음을 배반한 사람이고 불신자보다 더 악한 사람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일반 도덕과 윤리에서 벗어나 있으면 안 됩니다. 누구보다 도덕적이고 윤리적이어야 합니다. 효는 그 도덕과 윤리의 대표적인 예에 불과합니다. 한 시대의 그 사회의 구성원 전체가 대부분 공유하고 있는 규칙과 올바름 윤리와 도덕은 하나님이 가르치는 성경의 가르침과 다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 세상을 지으시고,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이 세상의 모든 만물에 심어 두셨습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모든 사람의 양심에 이미 두셨습니다. 그것을 신학용어로 일반은총이라 합니다.
근래에 여러 매체에서 기독교를 매우 희화하는 모습을 보면, 매우 안타깝습니다. 드라마나 뉴스, 영화 등지에서 독실한 기독교인은 마치 비 상식적인 독선적 종교인으로 비춰지거나 겉과 속이 다른 위선적인 모습은 사람들로 부터 손가락 질 받기 딱 좋습니다.
우리가 읽는 성경은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상식에서 벗어나 있지 않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잘 지킨다면, 불신자들도 비방하지 못합니다. 책망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내가 신앙생활 잘 한다고 생각하는데, 주변 비 그리스도인들로 부터 책망과 비방을 받는다면,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
요즘 코로나가 풀리고 주변의 교회들이 모두 나와서 전도를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전도지를 나누어 주고 먹을 것도 나누어 주며 열심히 복음을 전하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행위가 주변 사람들로 부터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면, 분명 문제가 있는 것일 것일 것입니다. 전도는 내 그리스도인의 삶이 불신자가 보더라도 아니 안티 그리스도인이 보더라도 책망할 것도 없고 비방할 것도 없을 때, 살아있는 복음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전환문> 그런데, 외인들이 책망하지 않는 일만 하려고 하는 소극적인 태도가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태도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더 적극적인 선을 행하는 삶과 악을 미워하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악에 대해서 단호한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악에 대해서 단호한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선한 행실의 증거가 있어 혹은 자녀를 양육하며 혹은 나그네를 대접하며 혹은 성도들의 발을 씻으며 혹은 환난 당한 자들을 구제하며 혹은 모든 선한 일을 행한 자라야 할 것이요
나그네란 손님이지요. 엄밀히 말하면, 오 갈 곳이 없는 그러한 사람인데, 당시의 주로 나그네란 순회 설교자들 이었습니다. 구약에서 나그네란 이스라엘 민족에 속하지 않는 외국인이었습니다. 오늘 날 나그네를 특정하자면, 다문화권 이주 민 정도 될 것 같습니다. 캄보디아, 베트남, 미얀마 등 뭐 그러한 자기 나라를 떠나 한국에 거주하는 사람 일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에 대해서 잘 대접하는 것이 선한 행실입니다. 또한 성도들의 발을 씻기는 행위는 섬김의 행위입니다. 성도들이란,같은 기독교인을 말합니다. 교회에서 기독교인들끼리는 서로 잘 섬기는 것이 선한 해실입니다. 그리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이 있으면 물질로 도움을 주는 구제행위를 하는 것이 선을 행하는 일입니다. 마치 투르키예 지진 현장으로 헌금을 보내는 행위도 그러한 행위 중에 하나입니다. 그러한 적극적인 선한 행위를 하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반면에 악에 대해서는 단호한 태도를 가져야합니다. 딤전5:20
범죄한 자들을 모든 사람 앞에서 꾸짖어 나머지 사람들로 두려워하게 하라
범죄한 자들을 모든 사람 앞에서 꾸짖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범죄한 자란 명백히 죄를 범한 사람을 말합니다. 절대로 편견으로 지례 짐작으로 잘 못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증거가 명확하고 범죄한 자도 결코 변명의 여지가 없는 그러한 죄를 지은 사람이 바로 범죄한 사람입니다. 그러한 범죄한 사람을 모든 사람 앞에서 꾸짖으라고 바울은 명령하고 있습니다. 이는 죄에 대한 단호한 태도를 보여주는 것 뿐 만 아니라, 그러한 죄를 교회 공동체가 다시는 범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교육적인 목적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 기독교인은 죄에 대한 명확한 단호함이 부족해서 사회로 부터 조롱받는 대상이 되었다 생각합니다. 아마도 교회에서 은혜라는 말을 너무 강조해서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근래에 정치권에서 전광훈같은 이상한 사람 때문에 시끄러웠습니다. 자신이 마치 전체 기독교를 대표하는 사람인양 행동하며 거칠고 부끄러운 말을 하는 장면이 뉴스에 비춰질 때마다 언젠가 만나서 강하게 비난하고 싶은 마음이 속에서 부터 올라오곤 합니다. 사실 전광훈은 오래전 부터 빤스 목사로 부끄러운 행태를 많이 보여 주었던 인간입니다. 그러한 인간이 한기총의 대표도 했으니, 기독교의 자정 능력의 부재가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얼마전에서야 늦게 나마 전광훈을 이단으로 규정했으니 그나마 다행이긴 합니다. 그러한 전광훈 같은 사람이 여전히 기독교에는 많이 있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의 악한 행실은 단호하게 꾸짖어야 합니다. 그러한 악에 대한 단호한 태도를 우리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합니다.
마무리
마무리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는 기독교인입니다. 특히, 이 사회에서 발을 딛고 일을하며 여러 불신자들과 호흡하며 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결코 이 세상에서 동떨어져서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것을 인지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눈과 다른 사람의 눈을 신경써야 합니다. 하나님의 책망과 불신자들의 비방을 신경써야 합니다.
일반적인 상식적인 생각과 행동을 함으로서 불신자들의 책망을 듣지 않으려 해야 합니다. 비방할 기회를 조금도 주지 말아야 합니다. 또, 적극적으로 하나님이 성경에서 명령하신 선한 일을 행하며, 악에 대해서 단호한 태도를 가짐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받을 만한 존재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게 세상을 살아가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진정한 기독교인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