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대와 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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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대가 일상의 전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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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대란 무엇인가?

본문: 누가복음
누가복음 24:29–35 (NKRV)
그들이 강권하여 이르되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 때가 저물어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 하니 이에 그들과 함께 유하러 들어가시니라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곧 그 때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 및 그들과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보이셨다 하는지라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
저는 오늘 여러분들과 함께 환대 그리고 구원이란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 나누길 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환대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환대란 무엇입니까? 국어 사전에 환대를 이와 같이 정의하고 있습니다. “반갑게 맞아 정성껏 후하게 대접함” 즉 환대란 기쁘게 대접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환대에 대한 내용으로 가득합니다. 부지불식간에 하나님을 환대한 아브라함의 이야기로 시작하여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뜻을 저버렸을 때 자격 없는 이방인인 저와 여러분들을 환대해 주신 이야기등 다양한 종류의 환대 스토리가 성경에 기록돼 있습니다.
즉 성경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믿는 자들에게 환대를 베푸시고 그 환대를 받은 자들이 또 타인에게 환대를 베풀것을 요구하는 말씀으로 가득합니다.
환대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함께 연상되는 단어가 있습니다. “음식, 식사, 집”입니다. 기쁘게 누군가를 대접하기 위해서는 음식이 필요하지요. 그래서 외국에서는 귀중한 손님을 환대할 때는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여 함께 식사를 나눕니다. 이는 내가 당신을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표현인 것입니다. 특별히 식당에서 음식을 대접할 수도 있지만 자신의 집에서 음식을 대접하는 행위는 아주 특별한 누군가를 환대할 때 반드시 필요한 사항인 것입니다. 음식, 식사, 집...
저는 오늘 여러분들과 함께 이 새벽 음식, 식사, 집을 통해 전도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특별히 저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서 저자 누가가 사용한 음식, 식사, 집과 같은 단어를 풍성한 ‘환대’의 단어로 사용하여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의 잃어버린 아들 비유(눅15:11–32)와 잃어버린 양과 잃어버린 동전(드라크마) 이야기(눅15:3–10)를 기억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가 왜 이 이야기들을 말했는지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잘못된 대상에게 환대를 베푸는 자신에게 분노하며 불평하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 이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있다. “모든 세리들과 죄인들이 그의 말씀을 듣기 위해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불평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사람은 죄인들을 환대하고[prosdechetai] 그들과 함께 먹고 있다!’
그렇다면 예수의 이 세 비유들은 죄인들 및 세리들과의 식사를 통해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환대하시어 그들을 구원하고자 함인 것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환대는 구원의 다른 이름인 것입니다.

예수가 죄인들과 식탁 교제를 나눌 때, 이는 신적 목자가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을 되찾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가 소외된 자들과 나눈 식탁교제는 잃어버린 동전처럼 “잃었다가” 이제 다시 “찾은”(15:8–9) 죄인들에 대한 신적 축하의 구현이다(15:10). 죄인들에 대한 예수의 환대 시행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잃었다가 다시 얻은 아들”을 환영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표현한다(15:24. 15:32도 보라). 잃어버린 아들을 되찾은 데 대한 아버지의 반응은 중요한데, 그 이유는 예수가 죄인들 및 소외된 자들과 함께하는 식사와 마찬가지로 이 아버지의 반응이 기쁨과 축하의 잔치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15:27. 30도 보라). 맏아들은 죄인들을 환영하는 신적 환대를 거절하는 바리새인들의 입장을 요약한다. 맏아들과 바리새인들은 “들어가고자 하지 아니하며”(15:28) 잔치에 참여하지 않으려 한다. 아버지가 맏아들에게 하는 말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 말은 맏아들이 잃어버린 자를 되찾은 데 대해 기뻐해야 할 필요를 인정해야 한다고 선언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15:32a

그렇습니다. 환대는 잃었던 것을 되찾기 위해, 죽었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실시 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지만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왜 쓸데없이 그런 자들에게 환대하는지에 대해 반문합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상기 비유를 통해 환대의 중요성을 설명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강조한 환대의 모습을 좀 더 확인해 보겠습니다.
Luke 22:15–20 NKRV
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유월절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루기까지 다시 먹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이에 잔을 받으사 감사 기도 하시고 이르시되 이것을 갖다가 너희끼리 나누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이제부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까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또 떡을 가져 감사 기도 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성경에서 말하는 ‘떡을 뗌’의 식사는 예수님께서 죄인인 저와 여러분들을 환대해 주심으로 저와 여러분들이 구원 받고자 하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즉 예수님이 차려주신 빵은 저와 여러분들의 죄를 위해 찢기신 예수님의 몸이고, 포도주는 그 분이 저와 여러분들을 위해 흘리시 보혈의 피인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찢기신 예수의 몸과 그 분이 흘리신 보혈의 피로 구원 받은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가 예수님께 받은 환대에 감사하여 우리도 누군가를 환대하기 위해 식사를 대접하는 행위는 예수님의 환대를 본 받아 재연하는 것이고, 그 식사의 자리에서 예수님의 사랑과 존중 그리고 희생을 다양한 모습으로 타인에게 표출할 수 있는 전도의 행위 또한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전도란 예수님께 받은 환대를 떠올리며 그 감격 그대로 누군가에게 다른 환대의 모습으로 되 돌려주는 행위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많이 빚진자가 많이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큰 환대를 받은 자가 예수님을 더 많이 사랑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환대를 받을 수 없는 내게 진수성찬으로 환대해주신 그 예수님의 환대가 너무 감격스럽기 때문에 나도 누군가를 환대하고 싶어 그 사람을 다양한 모습으로 섬겨주는 것이 바로 전도라는 것입니다.
저는 저와 우리가 받았던 극진했던 예수님의 환대를 고스란히 돌려줄 가장 최선의 곳이 ‘목장 모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초대교회도 예수님께 받은 사랑을 고스란히 목장 모임에서 재연하고 계승했습니다.
Acts 2:42–47 NKRV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라고 말씀합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구원 받는 자들의 수를 증가하게 하셨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함께 성전에서 모여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 감사와 감격을 좀 더 작은 소그룹인 목장 모임에서 재차 나누었던 것입니다.
“ 오늘은 우리 집에서 모이자, 아니야 지난 번에 너네 집에서 모였잖아 오늘은 우리집에서 모이자. 내가 김치 찌개 가져갈게. 아니야 아니야! 내가 갈비찜 했으니 가져올 필요 없어. 그냥 와! 그럼 내가 케익이라도 가져갈게.” 이 모습이 초대 교회의 목장 모임의 모습이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것들을 통용하고 날마다 모임기를 힘썼고, 모여서 떡을 떼고 함께 찬양하고 삶을 나눌 때 그 환대의 자리에 함께 하시는 예수님의 은혜로 목장 모임에 초청된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 믿는 자들의 수가 날로 증가했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이 타인을 환대하길 원하십니다.
Luke 9:12–17 NKRV
날이 저물어 가매 열두 사도가 나아와 여짜오되 무리를 보내어 두루 마을과 촌으로 가서 유하며 먹을 것을 얻게 하소서 우리가 있는 여기는 빈 들이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 여짜오되 우리에게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으니 이 모든 사람을 위하여 먹을 것을 사지 아니하고서는 할 수 없사옵나이다 하니 이는 남자가 한 오천 명 됨이러라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떼를 지어 한 오십 명씩 앉히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렇게 하여 다 앉힌 후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무리에게 나누어 주게 하시니 먹고 다 배불렀더라 그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거두니라
제자들은 무리들 스스로 먹을 것을 찾게 하자고 예수님께 건의했지만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먹을 것을 무리에게 주어라! 즉 너희가 그들을 환대하라고 명령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자신에게 받은 은혜에 감사하여 무리들을 환대하기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아직 자기코가 석자였습니다. 자기 중심성의 죄를 내려놓지 못했고 예수님처럼 누군가를 환대할 희생을 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신적 환대를 통해 남자만 5천명 아이들과 여인들까지 포함하면 2만명도 넘는 사람들을 환대했습니다. 환대는 예수님의 명령이셨습니다. 환대는 적지 않은 물질과 희생이 따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몸을 내어 주시기까지 하여 저와 여러분들을 환대하여 구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환대에 어떠한 태도가 필요할까요?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누가복음 24:29–35 (NKRV)
그들이 강권하여 이르되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 때가 저물어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 하니 이에 그들과 함께 유하러 들어가시니라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곧 그 때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 및 그들과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보이셨다 하는지라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는 예수님이 밤에 강도를 만날 수도 있고, 자신들이 하나님께 받은 은혜 때문에라도 예수님이 밤 중에 고을을 지나 홀로 가지 못 하시도록 “강권하였다”라고 말씀합니다. 이 표현은 의지가 투철한 표현인 것입니다. 환대는 의지적인 결단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목장 모임을 통해 목원들을 환대하고 나아가 주변 이웃들을 목장에 초청에 환대하는 것은 의지가 투철하지 않고는 할 수 없습니다.
저는 유럽지구의 목장들을 심방하면서 목장 모임의 목적을 나누곤 합니다. 우리가 목장 모임을 왜 하는 것일까요? 또 다른 예배를 드리기 위함입니까? 아니면 단순한 교제를 하기 위함입니까? 목장 모임에는 아이스브레이크와 찬양 주일 말씀 나눔과 삶의 나눔과 기도제목 나눔과 확인의 시간을 갖습니다. 목장마다 특성에 맞도록 그 내용은 적절하게 조율될 수 있도록 자율성을 보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방문하는 모든 목장에게 강조하고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유언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늘로 승천하시기 전에 말씀하셨던 유언의 말씀은 제자들과 그들이 이루게 될 교회에 있어서 가장 핵심이 되어야 할 말씀이었습니다. 유언은 당사자가 가장 중요한 말을 남기는 게 전형이기 때문이지요.
예수님의 유언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마태복음 28:19-20
Matthew 28:19–20 NKRV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가서, 제자를 삼고 세례를 베풀고, 가르쳐 지키게 하라! 무슨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영혼을 구원하여 제자를 삼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목장 모임은 목자와 목원들의 서로 환대하며 서로의 영혼을 지키고 나아가 장결자들과 주변 이웃들을 목장에 초청하여 그들을 환대하여 영혼을 구원하여 제자를 삼는 것입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들은 눈이 가려져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볼 품없어 보이는 한 청년인 예수님을 자신들의 집으로 영접하여 그 청년을 환대했습니다. 두 제자와 예수님은 식탁에 둘러 앉아 식사 하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떡을 떼셔서 축사를 하셨습니다. 어디서 많이 본 장면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함께 둘러 앉아 식사하실 때 떡을 떼셨던 최후의 만찬의 장면과 아주 흡사합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환대한 자리에는 예수님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엠마오의 두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말씀을 풀어주실 때 그들의 마음이 뜨거워졌다고 말씀합니다. 목장 모임에는 서로를 환대하는 떡을 뗌과 그 떡과 포도주가 어떤 의미인지를 알려주는 말씀 나눔의 시간이 있습니다. 매주일 주보 삽지로 나가는 말씀 나눔지는 말씀을 맡은 자가 담임목사님의 말씀을 주의깊게 듣고 중요하다고 싶은 점을 5~10분 요약해 주는 것 만으로도 목원들은 그 말씀을 가지고 서로 삶을 나눌 때 서로의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을 경험합니다. 이 환대의 자리에 전도 대상자들을 초청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환대의 자리를 통해 영혼들을 구원하길 원하십니다.
부디 예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베풀어주신 환대를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신앙생활은 그 환대를 서로에게 돌려주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홀로 신앙생활해서는 안 됩니다. 목장에 편성 되셔서 이런저런 모습을 경험하시면서 때론 시험도 들고, 다시 정신 차리고 주님을 의지하려 할 때 어느 순간 성령께서 저와 여러분들의 눈을 열어 주실 것입니다. 그 때 목장 모임에 함께하고 계신 예수님을 보게 되실 것입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목자와 목원들의 마음은 더욱 뜨거워질 것이고, 목장 모임에 참석하지 못하는 장결자들과 외부 전도 대상자들을 초청해 그들을 환대할 것입니다. 환대가 전도초청 행사 때만 일어나는 진귀한 현상이 아닌 늘상 일어나는 평범한 일이 받은 은혜에 감사하여 나누고 베푸는 환대의 모습이 될 것입니다.
타인의 말에 귀 기울여 주고,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고, 맛있는 식사를 대접할 때 그들은 그 환대를 통해 예수님의 섬김과 사랑 그리고 희생을 보게 될 것입니다.
저는 저와 여러분들 모두가 이와 같은 환대로 우리가 속한 공동체를 통해
많은 영혼들을 구원할 수 있기를 소망해 봅니다.
그런 환대의 역사의 조짐이 보이는 목장들은 미리미리 예비 목자들을 세워 놓으시기 바랍니다. 12명의 사람들이 모이면, 6가정 이상 모이게 되면 예비 목자를 통해 새로운 목장을 만드는 것입니다. 목장 모임에서 환대를 받아 구원의 자리에 이른 사람들은 여러 관계의 끈을 통해 관리가 되기 때문에 교회에 정착하여 하나님께 지속적으로 영광돌릴 확률이 높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의 목장 내에서 이와 같은 환대의 역사가 일어나 장결자들과 외부 전도대상자들이 목장을 통해 구원을 받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여러분들의 목장 모두가 예수님의 환대를 바르게 실천함으로 영혼구원의 역사가 일어나 날로 분가하는 은혜를 경험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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