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론의 지팡이와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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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론의 지팡이와 교회
아론의 지팡이와 교회
[서론]
전세계가 올 여름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기후 위기로 역대급 더위와 홍수, 태풍이 찾아올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이런 기후위기는 어디서 온 것일까요?
인간이 자연의 질서를 파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작년에 있었던 이태원 참사는 어떻습니까?
그 안에 질서가 사라져 무질서한 상태가 되어버렸기에 참사가 일어났습니다.
질서를 잡아줘야할 경찰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 것입니다.
자신이 있어야할 자리에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근본적인 원인은 우리 사회에 질서가 바로 잡혀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세상에 질서가 바로 잡혀 있지 않으면 우리의 삶은 불안해집니다.
우리 개인을 봐도 그렇습니다.
내면세계의 혼란, 무질서를 겪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현대사회에 만연한 질병인 공황장애, 우울증 모두 이러한 내면세계의 혼란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무서운 이유는 그러한 무질서의 끝이 죽음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OECD국가들중 우리나라가 자살률 1위입니다.
하루에 무려 37명의 사람들이 극단적 선택을 하고 있습니다.
젊은 세대인 10대, 20대, 30대 사망률 1위는 수년째 자살입니다.
40대부터는 암입니다.
그런데 제 생각에 아마도 40대부터는 내면의 무질서가 병으로 드러나는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어찌되었든 우리나라의 젊은 세대가 극단적 선택을 많이 하니 참 가슴아픈 일입니다.
최근에는 10대 학생들의 극단적 선택이 더욱 잦아지고 있습니다.
뉴스보니까 10대학생 3명이 연달아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출산률까지 낮아지고 있으니 미래세대가 매우 위태롭습니다.
그렇다면 이 무질서하고 혼란한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은 무엇일까요?
그 해답을 고민하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본론]
오늘 말씀의 장소적 배경은 광야입니다.
성경에서 광야는 무질서와 혼돈이 자리잡고 있는 공간입니다.
하필 오늘 말씀은 그 무질서의 끝판왕이 되는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반역을 계속하는데, 그 절정이 바로 고라의 반역사건입니다.
고라의 자손들은 레위지파로서 성막을 섬기던 자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가문으로는 혈통으로는 제사장이 될수 없습니다.
아론이 대제사장으로서 그의 후손들만 제사장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고라는 제사장직을 아론의 자손들만 독점하지 말라며 대규모 반란을 일으킨 것입니다.
모세와 아론은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이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려는 하나님의 계획도 수포로 돌아가게 됩니다.
이 순간 무력한 모세와 아론은 기도할수 밖에 없었고, 하나님이 이 사건에 개입하십니다.
이 일의 결과로 피비린내 나는 하나님의 심판이 일어났습니다.
땅이 입을 벌려 고라와 함께 한 사람들을 산채로 집어 삼켜 버렸습니다.
고라의 반역에 동참한 250명의 지도자들은 성막에서 불이 나와 산채로 불에 타서 죽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백성들은 여전히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 일에 대해 오히려 모세와 아론을 희생양으로 삼아 그들을 죽이려 했습니다.
이때문에 하나님은 백성들조차 심판하셔서 결국 14,700명이 죽임을 당합니다.
광야에서 내 가족과 내 이웃이 눈 앞에서 죽어나가는 피비린내 나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처럼 반역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매우 매서웠습니다.
그럼 하나님은 이 일을 어떻게 마무리 지으실까요?
어떻게 하면 이 피비린내 나는 불만과 반역의 현장을 역전시킬수 있을까요?
하나님은 참 독특하고 놀라운 방법으로 이 일을 마무리 지으십니다.
2절입니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그들에게서 지팡이를 모아라. 각 종족별로 지팡이 하나씩, 곧 각 종족마다 한 지도자에게서 하나씩, 지팡이가 열두 개이다. 너는 각자의 이름을 그 지팡이 위에 써라.
지팡이는 각 지파 지도자들의 권위를 상징합니다.
지팡이는 내가 리더라는 의미입니다.
먼저 12지파의 지도자들 이름을 지팡이들에 쓰게 합니다.
요셉 대신 그의 아들인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한 지파씩 이뤄 12지파의 지팡이가 모입니다.
레위지파는 따로 열외부대로 쳐서 그 지팡이에는 아론의 이름을 씁니다.
그럼 지팡이가 총 13개가 되는데 이것을 지성소 언약궤 앞에 둡니다.
지성소 언약궤는 대제사장 아론만 유일하게 하나님을 만나는 곳입니다.
이곳에 놓아서 하나님의 판단을 받겠다는 것입니다.
5절입니다.
내가 택하는 바로 그 한 사람의 지팡이에서는 움이 돋아날 것이다. 너희를 거역하여 불평하는 이스라엘 자손의 불만을 내가 없애고야 말겠다.
하나님은 자신이 선택한 지도자의 지팡이에만 움이 돋아나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은 나를 만날 수 있는 대제사장이 누구인지 알려주시겠다는 의미입니다.
모세가 이집트에서 했던 것처럼 지팡이가 뱀으로 변하는 것도 아니고 죽은 나무에 움이 트게 하시겠다니 참 독특한 방법입니다.
과연 13개의 지팡이에는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요?
8절입니다.
이튿날이 되어, 모세가 증거의 장막 안으로 들어갔다. 레위 집안 아론의 지팡이에는 움이 돋았을 뿐 아니라, 싹이 나고, 꽃이 피고, 감복숭아 열매까지 맺은 것이 아닌가?
모세조차도 너무 놀라서 느낌표를 하고 있는 것이 보이십니까?
이 죽은 막대기에 싹이 나고 꽃이피고 열매가 맺었다니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그럼 도대체 하나님은 왜 이렇게 하셨을까요?
10절입니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아론의 지팡이는 증거궤 앞으로 도로 가져다 놓아, 반역하는 사람들에게 표적이 되도록 잘 간직하여라. 너는 다시는 그들이 나를 거역하여 원망하지 못하게 하여라. 그래야만 그들이 죽지 아니할것이다.
하나님의 목적은 이것이 반역하는 자들에게 표적이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더이상 아론이 대제사장을 하는 것때문에 문제삼지 않게 증거를 만들어 언약궤 안에 보관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아론의 권위는 자신들이 스스로 세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세워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권력과 다른 점입니다.
권력은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세운 것이지만, 권위는 하나님이 세워주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권력과 권위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반역한 것입니다.
아론이 대제사장이 된것은 권력을 차지한게 아니라 권위를 위임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백성들의 반역은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라는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그 결과 죄를 지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질서란 자신이 있어야할 자리를 알고 그 자리에서 맡은 바 책임을 다하는 것입니다.
야구도 대충 서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좌익수, 유격수 모두 자신의 자리와 위치가 있습니다.
창세기 1장 1,2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다는 말은 한마디로 무질서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를 바로 잡고 질서를 세우신 분이 하나님입니다.
6일동안 빛과 어둠, 하늘과 땅, 바다, 해와 달, 별, 그리고 동물과 사람을 만드셔서 적절한 곳에 배치하셨습니다.
그리고 7일째 되는 날, 바로 질서의 완성이라고 말할 수 있는 안식일을 만드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이 세상에 질서를 세우셨습니다.
그것을 깨뜨린 불청객이 바로 사탄입니다.
사탄은 인간이 하나님께 반역하는 죄를 짓게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의 질서를 무너뜨렸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지은 반역죄는 갑자기 튀어나온게 아닙니다.
원래 아담과 하와 이후로 쭉 이어져 온 인간의 죄성인 것입니다.
그래서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워진 사람이 바로 대제사장 아론입니다.
그는 죄로 무질서해진 백성들과 하나님 사이를 중재하는 역할을 맡은 사람입니다.
백성들이 죄를 지으면 제사를 드려 하나님 앞에 나아가 죄용서를 받았습니다.
한마디로 죄로 무너진 이스라엘의 질서를 바로잡는 일이 아론의 역할인 것입니다.
그래서 16장 48절에 보면 반역한 백성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때 중간에서 중재한 사람이 바로 아론입니다.
아론의 중재로 하나님은 심판을 멈추신 것입니다.
그러나 아론은 모형에 불과하고 그 실체는 바로 메시아 예수님입니다.
히브리서 6장 20절입니다.
예수께서는 앞서서 달려가신 분으로서, 우리를 위하여 거기에 들어가셔서, 멜기세덱의 계통을 따라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셨습니다.
죄로 무너진 세상의 질서를 바로 잡기 위해 하나님이 보내신 대제사장이 바로 메시아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 복음은 이것입니다.
죄로 무질서해진 세상을 하나님이 바로 잡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왕으로 이 세상을 통치하신다는 하나님 나라 복음입니다.
우리가 보통 복음하면 예수 천당 불신 지옥으로 단순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제 성경의 복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보다 훨씬 큰 그림이 바로 하나님 나라 복음입니다.
복음은 내가 천국가기 위한 좋은 소식일 뿐만 아니라 주님이 죄로 무너진 이 세상의 질서를 다시 회복하신다는 좋은 소식인 것입니다.
이 세상을 무질서하게 만드는 죄의 권세를 꺾어 하나님의 질서, 하나님의 통치 아래로 들어가게 하는게 바로 하나님 나라복음입니다.
그렇기때문에 이 땅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다면, 즉 천국은 죽어서가는게 아니라 이 땅에서부터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의 무질서를 바로 잡기 위해 예수님이 자신을 대리하여 세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그 제자들 공동체가 뭘까요?
맞습니다.
바로 교회입니다.
예수님이 자신의 권위와 권세로 세워주신 공동체가 바로 교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사명도 하나님 나라 복음으로 이 땅의 무너진 질서를 바로 잡는 것입니다.
교회는 자의적으로 세워진 공동체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권위를 위임받아 세워져 하나님과 세상 사이의 중매쟁이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제사장 아론의 실체가 바로 교회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택하심을 받은 족속이요, 왕과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민족이요,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을 어둠에서 불러내어 자기의 놀라운 빛 가운데로 인도하신 분의 업적을, 여러분이 선포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세상 속에서 아론처럼 제사장이 되어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선포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에게 여전히 풀리지 않는 사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왜 아론의 지팡이에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까지 맺히게 하셨느냐는 것입니다.
12-13절을 보겠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우리는 죽게 되었습니다. 망하게 되었습니다. 다 망하게 되었습니다. 가까이 가는 사람, 곧 주님의 성막에 가까이 가는 사람은 모두 죽을 터이니, 우리가 이렇게 망하는 것으로 끝장이 나야 합니까?
백성들은 자신들의 죄악으로 인해 이제 하나님께 나아가면 죽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아론의 지팡에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었는데 오히려 백성들은 두려워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오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죽은 지팡이에서 생명을 보여주신 하나님의 뜻은 멸망이 아니라 생명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이 이렇게 반응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아론의 열매맺은 지팡이가 반역하는 자들에게는 멸망의 표적이기 때문입니다.
그 지팡이를 보면서 반역한 백성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떠올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순종하는 백성에게는 다릅니다.
아론의 열매맺은 지팡이는 멸망의 표적이 아닌 생명의 약속입니다.
하나님이 백성들의 반역, 무질서를 바로잡으신 이유는 그들을 심판하여 죽이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질서와 통치에 순종하는 자에게는 풍성한 삶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열매맺은 지팡이는 순종하는 자들에게는 광야를 거쳐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해주시겠다는 하나님의 확실한 약속인 것입니다.
앞서 대제사장 아론이 예수님의 모형, 교회의 모형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아론의 열매맺는 지팡이는 무엇의 모형일까요?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 18절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그 당시 십자가는 죄에 대한 심판, 죽음을 의미합니다.
로마의 가장 잔혹하고 수치스러운 처형방법이 십자가였던 것입니다.
그러니 십자가가 생명의 통로라고 말하면 미련한 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는 우리에게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 통로이자 약속입니다.
어떤 찬양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십자가, 십자가 그 그늘아래 내 소망이 있네, 십자가 십자가 그 그늘아래 내 생명이 있네…
그렇습니다.
믿는 우리에게 십자가는 하나님의 능력, 부활의 생명을 얻는 구원의 통로인 것입니다.
아론의 죽은 지팡이에서 새 생명이 움트듯, 십자가는 죄로 죽은 우리들에게 예수님의 피로 새 생명을 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교회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하나님 나라 복음을 통해 이 땅의 무질서를 바로잡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해 죄로 죽어가는 이 땅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론의 열매맺은 지팡이를 보며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봅니다.
예수님의 권위로, 예수님의 피로 세워진 교회를 바라봅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우리들이 해야할 일은 무엇일까요?
먼저 우리부터 하나님의 질서인 하나님 나라를 누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질서가 있는 곳에 풍성한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묵상하고 순종할때 하나님 나라는 이미 내 안에 있습니다.
자연에 창조 질서가 회복될때 풍성한 생명이 흘러나옵니다.
교회에 주님의 권위가 회복될때 풍성한 생명이 흘러나옵니다.
우리의 내면세계에 영적 질서가 잡힐때 우리에게서 생명이 흘러나옵니다.
무질서의 목적지가 멸망과 죽음이라면, 질서의 목적지는 풍성한 생명인 것입니다.
[결론]
이제 오늘 말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아론의 열매맺은 지팡이를 바라봅시다.
아니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봅시다.
십자가는 죄로 무질서하고 죽어가는 세상을 깨우는 주님의 나팔소리입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구부러지고 왜곡된 마음을 펴는 주님의 다리미입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혼잡한 내면세계의 질서를 잡아주는 주님의 처방전입니다.
다시 십자가를 바라보며 우리 삶의 무너진 질서를 바로 세웁시다.
이 세상의 무너진 질서를 바로 세웁시다.
10대 20대 30대 사망원인이 자살인만큼 우리에게 교회에게 맡겨진 사명이 있습니다.
공황장애, 우울증이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갈때 우리에게 교회에게 맡겨진 사명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 복음, 십자가 복음을 그들에게 전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새 생명을 누리며, 새 생명을 세상에 흘려보내는 우리 교회 식구들이 다 되시길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