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부르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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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부르시는 하나님 (창세기 43:1-10)
Intro
‌기독교는 사람이 먼저 하나님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부르시는 생명이 있는 생명이 있는 곳이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미리 정하시고 부르시며, 그 부르신 자들을 의롭게 하시어 완전한 구원으로 인도해가시는 분이시다. 성도는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해야 한다. 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은혜를 누렸는가?
‌그런데 문제는 이 부르심을 받은 후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금방 신자는 죄와 세상의 욕망에 따라 시들시들해져가고 말씀에서 멀어진다.
‌그럼에도 신자는 죄 가운데 자주 넘어지고 살아가지만,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계셔서 결정적인 단계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다시 부르시므로 하나님의 길로 가도록 인도하신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성도 개개인에게 찾아오시는 주기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공통점은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실 때,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경험한다는 것이다. 그것이면 충분한 것이 성도의 인생이라는 점이다. 본문은 다양한 루트를 통해서 다시 부르시는 하나님을 말씀한다.
‌‌‌‌1. 하나님은 삶의 필요에서 오는 압박감을 통하여 그의백성을 다시 부르신다.
‌하나님은 그의 나라와 백성을 위해 세상의 역사를 주간하시는 분이시다. 지금 이스라엘 땅에 기근은 하나님이 미리 계획하신 섭리 안에서 일어났다. 바로의 꿈을 통해서 미리 7년의 풍년과 7년의 흉년을 알리시고 요셉으로 하여금 해몽하게 하셔서 준비하게 하셨다. 애굽의 각 마을에 곡물을 저장하게 하셨다. 여기서 자연재해를 허락하신 이유는 자기 백성을 다시 부르시기 위한 하나님의 의도에서 비롯된다.
‌ - 첫째 생계의 압박을 통해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부르신다
성도를 부르실 때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첫 번째 방법은 생계의 필요 때문에 느끼는 압박감이다. ‌‌​42:1-2 그 때에 야곱이 애굽에 곡식이 있음을 보고 아들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서로 바라보고만 있느냐 2야곱이 또 이르되 내가 들은즉 저 애굽에 곡식이 있다 하니 너희는 그리로 가서 거기서 우리를 위하여 사오라 그러면 우리가 살고 죽지 아니하리라 하매
‌​43:1 “그 땅에 기근이 심하고 2 그들이 애굽에서 가져온 곡식을 다 먹으매 그 아버지가 그들에게 이르되 다시 가서 우리를 위하여 양식을 조금 사오라”
애굽으로 갈 이유가 없는 야곱은 돈으로도 먹을 것을 구할 수가 없어지자, 10명의 아들들을 애굽으로 밀어넣는다. 가족을 굶을 지경에 놓일 때 그 압박감은 말로 할 수가 없다. 생계에 필요한 것을 위해서는 어떤 수단도 마다하지 않는 것이 인간이다. 먹을 것이 바닥이 나면 그 압박감은 이로 말 할 수없다. 특히 한 가정의 가장에게는 오는 무게감은 상상 이상이다. 하나님은 그렇게 이 형제들을 삶의 필요 때문에 오는 압박감을 주어 애굽으로 몰아가시는 분이시다.
‌‌
- 처한 환경에서 오는 압박감을 통해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부르신다.
‌생계의 필요 때문에 애굽을 찾아간 10명의 형제들은 애굽의 총리를 만나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환경에 처한다. 애굽 땅을 엿보고 정보를 캐가기 위해 칩입한 스파이로 의심을 받는다. 42:9 “요셉이 그들에게 대하여 꾼 꿈을 생각하고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정탐꾼들이라 이 나라의 틈을 엿보려고 왔느니라”
‌형제들은 가뜩이나 양식을 빨리 사서 귀국하여 수십명이나 되는 가족을 빨리 먹여야 되는 급박한 상황에 놓여 있는데, 큰 나라의 어마한 권력을 가진 총리가 자기들을 스파이로 몰고, 심지어 감옥에 3일을 가두는 것이다. 그러고는 형제 하나를 가두고 나머지는 풀어주고 곡식을 가지고 집에 전달하고 막내 동생을 데려오라는 것이다. 돌아가는 길에 심지어 곡식을 넣은 자루에는 지불했던 돈까지 도로 들어 있다. 형제들의 심정은 피가 바짝바짝 마르는 것이다. 그들은 아버지가 베냐민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요셉을 팔라버린 대역 죄인으로 낙인찍힌 형제들이 아버지께 그 사실을 알린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야곱은 이 사실을 듣고는 격하게 분노하고 마음이 무너진다. 하나님은 다시 부르시기 위해 형제들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힘으로 누르는 환경으로 끌어가시는 분이시다.
‌‌ - 사랑하는 사람의 필요를 통해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부르신다.
‌처음 그들의 압박은 먹는 양식 때문에 시작했지만, 이제는 그건 문제도 아닌 상황이 되어 버렸다. 베냐민과 갇혀있는 시므온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상황으로 급격하게 악화되어버렸다. 야곱을 낙담시키지 않기 위해서 시므온과 베냐민을 살리기 위해서 유다는 너무나 큰 압박감을 느낀다. 이러한 사랑하는 사람의 필요를 통해서 거대한 압박감을 경험할 때, 이 고난 끝에서 하나님은 사랑하는 성도를 부르신다.
‌‌대한민국에서 알아주는 학군지 중에 한 곳인 지역에서 고2를 둔 한 어머니가 아들 때문에 너무 힘들어서 눈물로 밤을 지새웠다. 어릴 땐 너무 창의적이고 발명을 기발한 아이디어로 해내고, 밝고 웃음이 많은 아들인데, 그 사회는 오로지 수능등급으로 존재의 가치가 평가되다보니 집에오면 고개도 못들고 엄마한테 그렇게 미안해하고 우울증을 앓고 정신과 처방을 받아 약을 먹고 또 등급 때문에 자존감이 떨어져 있는 아들을 보니 너무 고통스럽다는 것이다. 교회를 가고 싶은데 카폴릭 배경을 가진 남편이 반대한다. 한 가지 감사한 것은 주변에 참 성도를 심어셔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볼 수 있도록 돕고 계시다는 것이다. 이 고통의 끝에는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택한 성도에게 오는 쓰라림과 죄의 비참함은 그 강도가 강할 수록 하나님의 부르심이 가까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란다. 하나님은 삶의 필요, 컨트롤을 벗어난 환경과 사랑하는 이의 필요를 통해서 사랑하는 성도를 다시 부르신다. 그 범위가 내 통제를 벗어 날수록 하나님의 콜링은 가깝다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성도에게 오는 고난은 기쁨으로 여겨야 하는 것이다. 약 1:2은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을 당할 때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말씀하신다. 이는 너희를 온전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하신다. 이 온전함의 본질은 하나님의 은혜를 얻는 것이다. 구원을 받는 것이다.
시 33:19그들의 영혼을 사망에서 건지시며 그들이 굶주릴 때에 그들을 살리시는도다”
‌‌2. 하나님은 우리를 다시 부르실 때 죄의 고백을 받아내신다. (회개)44:13
‌42:20 “너희 막내 아우를 내게로 데리고 오라 그러면 너희 말이 진실함이 되고 너희가 죽지 아니하리라 하니 그들이 그대로 하니라
‌‌21그들이 서로 말하되 우리가 아우의 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도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 22 르우벤이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그 아이에 대하여 죄를 짓지 말라고 하지 아니하였더냐 그래도 너희가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의 핏값을 치르게 되었도다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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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44:16
“유다가 말하되 우리가 내 주께 무슨 말을 하오리이까 무슨 설명을 하오리이까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정직함을 나타내리이까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찾아내셨으니 우리와 이 잔이 발견된 자가 다 내 주의 노예가 되겠나이다”
‌ 요셉은 의도적으로 형제들을 애굽 땅을 엿보고 정보를 캐가기 위해 칩입한 스파이로 몰아간다. 이 장면은 복수심에 의한 연출로 이해하기 보다는 형제들의 죄책감을 불러일으키기 위함으로 보아야 한다. 3일을 옥에 가둔다. 다시 시므온만 옥에 갇히고 베냐민을 데려와서 진실 여부를 증명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10명의 형제들은 시므온을 잃어버리고 두달을 넘게 걸어서 가나안을 가서 베냐민은 데리고 와야 할 위기에 처한다. 자루에 들어 있는 돈 때문에 의심을 사게되는 상황이 된다. 뿐만 아니라 이 모든 사태를 요셉을 잃은 아픔을 가진 아버지에게 아뢰어야 한다. ‌갈수록 사태가 심각해 진다. 그들의 힘으로 어떻게 모면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죄는 절대로 소멸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수면 아래에 깔아 앉아 있을 뿐이다. 하나님은 이 이물질을 휘저어 떠오르게 몰아붙이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의도적으로 우리의 인생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가셔서 자신들의 죄를 자백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회개하게 하시는 분이시다.
‌‌그들이 처한 상황을 인지하도록 하여 다른 사람을 억울하게 하는 것이 무엇이며, 억울한 뉘명을 씌워서 감옥에 갇히는 심정이 어떠하며, 자기가 사랑하고 아끼는 가족과 끊어지는 아픔이 무엇이며, 그 중에 소중한 이를 잃어버리는 쓰라림이 무엇인지 경험하게 하셔서 스스로의 죄를 자각하도록 몰아붙이신다. ‌요셉은 예수그리스도의 모형으로 대표되는 인물 중에 한 사람이다.
누가복음 24:44, 45“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성경은 언약의 구원자, 메시야를 소개하는 책이다. 성경의 주요 핵심 인물과 이이야기는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요셉은 위대한 사람이 아니라, 위대한 예수그리스도를 카리키는 특징이 두드러지는 인물 아버지의 사랑하는 아들, 자기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음, 노예 가격으로 팔림, ‌고난을 받은 후 높임을 받음, 백성들의 통치자로 세워짐, 잘못한 사람을 용서함, 그들의 백성들을 구함, ‌‌이 요셉의 그림은 죄의 자백을 끌어내어 그들을 용서하시고 품어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가리킨다.
하나님이 부르시는 성도는 극적인 시련과 상처를 경험하면서 내가 다른 사람에게 어떤 행동을 했는지 스스로 자각하는 시간을 보낸다. 하나님은 미리 정하신 자기 성도를 위해서, 반드시 그 죄의 고백을 받아내시는 분이시다. 도저히 내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지경까지 몰아붙이신다.
‌EX) 아이들을 보면 자기보다 힘이 약한 동생을을 그렇게 괴롭히고, 뼈아픈 상처를 주는 말을 스슴 없이 내뱉고, 조금이라도 내게 손해를 끼치면 자존심을 묵살내버린다. 이런 아이들이 학교에 가서 나보더 힘이 쎄고 공격적인 아이들을 만나 무시를 당하고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나면 처음엔 견디지를 못하다가 반복되면 비로서 자기를 돌아본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사랑하는 성도에게는 반드시 죄에 대한 자각을 일깨우도록 몰아붙이신다.
‌하나님의 성도는 반드시 하나님 앞에 죄인됨을 자각하고 고백하게 되어있다. 하나님 앞에 심판을 받아 죽어 마땅한 존재라는 사실을 자백하게 하신다. 우리는 아둔하고 영적으로 어두워서 하나님의 아들을 팔아넘긴 자가 나라는 사실을 인지못한다. 그런데 압박감의 고통이 극을 치닫을 때 비로소 눈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그 때 내 죄를 담당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이 얼마나 억울한 길을 걸어셔야 했는가, 죄의 누명을 쓰고 벌거벗고 십자가에 피를 흘리며 달리는 것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분통스러움인지, 그럴 이유가 전혀 없는데 사랑하는 아버지와 끊어져야 하고 독자를 내어줘야 했는지, 소중한 이를 잃어버려야 할 고통이 얼마나 뼈가 시린지 배우게 된다. 그 모든 억울함과 분통이 나의 죄 때문에, 내가 그 분에게 지은 죄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우리는 어리석어서 고난 안에서 내가 당해보고 좌절과 쓰라림의 끝으로 떨어져 보기 전까지는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원래 하나님과의 교제를 거부하고 당신이 없어도 나는 내 인생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자리를 차고 앉은 자였다. 저는 죄인입니다. 제가 예수님을 억울하게 십자가를 지게 하셨습니다는 고백을 받아내길 원하십니다.
‌이런 내가 어떻게 구원을 받게 된거야? 감사로 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내가 거기에서 빠져 나오게 된 것일까? 감사로 가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풍성하신 사랑은 나를 감싸 않는 것이구나로 가는 것이다. ‌죄를 자각하고 형벌을 받아야 할 죄인임을 인정한다. 모든 것을 재판관에게 맡긴다.
‌ 3. 하나님은 사랑의 능력으로 자기 백성을 다시 부르신다.
창 45:5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하나님은 성도를 시련의 압박 속으로 몰아넣으시고 죄를 자백하게 하셔서 사랑의 능력으로 모든 것을 덮어 버리는 분이시다. 야곱과 그의 형제들은 죄와 허물로 간사한 길로 걸어갔고 여동생을 강간했던 히위족속 남자들을 칼로 쓸었으며, 막내 동생을 시기하여 애굽에 팔아버리며 하나님 앞에서 생명을 보존 받을만한 근거가 전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택하신 자기 백성을 지명하여 불러내시며, 기어이 생명의 문으로 인도하시는 분이시다. ‌그들이 약속의 말씀을 떠나 세상의 벗을 두고 살아가는 동안에 하나님은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혀 고난을 받고 결국 영광을 받아 온 세상의 통치자가 된 요셉을 준비시키셨다.
하나님의 구원과 성도의 택함은 내가 어떤 삶을 사는가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의 힘에서 오는 복음의 능력에 있다. 하나님은 그의 존재, 지혜, 권능, 거룩하심, 공의, 인자, 진실하심에 있어서 무한하시고 불변하시고 영원하신 영이시라. 그의 작정과 통치에는 오차가 없다. 그 대상이 설령 희망이 없고 고집불통대로 지가 원하는 길로만 가는 죄인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하나님의 사랑의 능력으로 불러내시는 분이시다. 그래서 성도는 안전하다. 성도의 구원을 하늘의 요새로 둘러싸고 보호하고 계씨기 때문이다.
창 43:3 “그들이 요셉에게 따로 차리고 그 형제들에게 따로 차리고 그와 함께 먹는 애굽 사람에게도 따로 차리니 애굽 사람은 히브리 사람과 같이 먹으면 부정을 입음이었더라”
애굽인과 함께 겸상을 할 수 없는 ‌형제들과 음식을 함께 나누는 요셉의 모습은 죄인과 겸상하시는 우리 주님을 예표하는 그림이다. 하나님 앞에서 그들의 죄를 회개 했을 때, 요셉은 사랑의 힘으로 모든 과거를 깨끗히 씻어버린다. 이것의 사랑의 힘이다. 성도는 자신에게 은혜를 받을만한 근거가 전혀 없음에도 먼저 찾아오셔서 모든 것들을 준비하시 아버지가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같은 상에서 함께 식사를 하시므로 내 아들이라 점 찍어버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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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성도님, 우리의 삶이 만만하지는 않으실거다. 하나님의 말씀이 멀어지고 세상의 욕망에 나도 모르게 깊이 빠진 자신을 발견하고 있는가? 세상의 필요에서 오는 압박의 수위가 높고, 처한 환경의 압박이 짓누르고, 사랑하는 사람 때문에 고통이 뼈를 수셔도 하나님의 성도는 괜찮습니다. 그 압박이 심할수록 하나님의 부르심이 가까이 와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신자에게 오는 고난은 내가 사랑하고 있는 세상의 것들을 전부 태워버리는 역할을 한다. 하나님의 사랑은 개념이 아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경험하는 것이다. 내가 삶의 필요에서 오는 압바깜을 느낄 때, 내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이 하나님의 사랑의 능력을 경험하게 하도록 역사하고 일하신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10월에 에데 리켄베커라는 조종사가 겪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의 비행기는 남태평양 바다에 추락했고, 그는 비행기 파편 조각에 올라 하루하루 버티었습니다.
그러나 식량이 다 떨어지고 남은 기력을 다해 하나님께 마지막이란 심정으로 기도를 드렸는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갈매기 한 마리가 리켄베커의 모자 위에 날아왔던 것입니다. 갈매기는 본래 육지 가까운 해안가에 서식합니다. 육지에서 수백 킬로나 떨어진 바다 한 복판에 갈매기 날아가는 일은 없습니다.
그런데 기적처럼 한 마리의 갈매기가 날아온 것입니다. 그는 이 갈매기를 잡아먹고, 내장을 미끼로 낚시를 해서 물고기를 잡아먹고 생존하다가 구조되었습니다. 그 갈매기는 하늘에서 날아와 자신을 먹거리로 주었습니다. 갈매기는 죽었고, 그는 살았습니다. 갈매기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생명의 선물이었습니다.
리켄베커 대위는 전쟁이 끝난 후 갈매기에게 은혜를 갚으려고 했습니다.
1973년 죽을 때까지 리켄베커는 매 금요일 저녁, 새우가 가득 든 양동이를 들고 미국의 동부 플로리다의 해변가에 와서 갈매기에게 먹이를 주었습니다..
오래 전 과거 어느 날 하늘에서 내려와 순순히 자신을 내어준 한 갈매기의 은혜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그 일을 했던 것입니다.‌
갈 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구원의 은혜를 붙드신 성도들은 이 믿음을 계속해서 붙드는 한 주가 되길 바란다.
‌혹시 아직 이 복음을 저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한 분들은 이 믿음을 구하길 바란다.
다시 부르시는 하나님
1. 하나님은 삶의 필요에서 오는 압박감을 통하여 그의 백성을 다시 부르신다.
생계 문제 -
야곱의 가정은 기근으로 인해 먹고사는 문제에 압박을 받는다.
삶의 필요에서 오는 압박감을 주어 애굽으로 몰고가신다.
‌ 환경의 압박 -
스파이로 의심, 3일 감옥, 시므온이 갇힘, 더 큰 문제가 발생
문제를 해결하려 할수록 더 큰 통제 불능의 문제로 진입한다.
하나님은 다시 성도를 부르시기 위해 감당이 안되는 환경으로 몰고가신다.
다른 이의 필요 -
베냐민, 시므온을 요구, 처음의 문제는 문제도 아닌 생명의 위협의 문제로 악화
숨막히는 거대한 압박감을 느낄 때, 고난 끝에서 성도를 다시 부르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성도는 그 쓰라림과 비참함의 강도가 강할수록 주님의 부르심이 가까웠다는 것을 기억
2. 하나님은 우리를 다시 부르실 때 죄의 고백을 받아내신다.
요셉은 의도적으로 형제들을 억울하게 만들므로 그들의 죄를 기억나게 한다.
스파이, 거짓으로 치부하여 형제를 빼앗김, 베냐민을 빼앗길까봐 두려움, 아버지와 논쟁
하나님이 성도의 인생을 벼랑 끝으로 몰고가실 때, 죄의 고백을 받아내시기 위함이다.
다른 이를 억울하게 만드는 것,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같히는 것, 사랑하는 자에게 끊어지는 것
ex) 어릴 때 힘이 약한 동생을 괴롭히다가 내가 힘쎈 사람에게 당하면 비참함을 느끼도 자각함
예수님이 얼마나 억울한 길을 걸어셔야했는가? 십자가를 지시게 한 내 죄를 자각하게 하심
그리스도의 모형으로서 요셉
3. 하나님은 사랑의 능력으로 자기 백성을 다시 부르신다.
요셉은 근거없는 사랑으로 형제들을 용서하고 생명을 보존한다.
고집불통대로 내 것만 챙기며 살아가는 우리를 사랑의 능력으로 부르신다.
죄인과 겸상을 하시고 사랑의 힘으로 모든 죄를 말끔히 씻어 자녀 삼으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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