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설교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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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보라 나 바울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으리라
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언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너희가 달음질을 잘 하더니 누가 너희를 막아 진리를 순종하지 못하게 하더냐
그 권면은 너희를 부르신 이에게서 난 것이 아니니라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느니라
나는 너희가 아무 다른 마음을 품지 아니할 줄을 주 안에서 확신하노라 그러나 너희를 요동하게 하는 자는 누구든지 심판을 받으리라
형제들아 내가 지금까지 할례를 전한다면 어찌하여 지금까지 박해를 받으리요 그리하였으면 십자가의 걸림돌이 제거되었으리니
너희를 어지럽게 하는 자들은 스스로 베어 버리기를 원하노라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자유롭게, 더 자유롭게
갈 5장 1절에서 15절 말씀
I. 서론
I. 서론
1) 쇼생크 탈출
1) 쇼생크 탈출
① 제가 20대에 아주 감명 깊게 본 영화가 있습니다. 바로 쇼생크 탈출입니다.
이 영화를 보신 분이 많이 계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⓶ 주인공인 은행 부지점장인 엔디는 아내와 아내의 애인을 죽였다는 누명을 쓰고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탈옥율 0%라는 쇼생크 교도소에 갇히게 됩니다.
⓷ 그런데, 교도소 생활이 만만치 않습니다. 온갖 어려움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한 가운데, 모건 프리먼 역의 엘리스라는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⓸ 엔디의 억울한 이야기를 들은 엘리스는 함께 탈옥하기 위한 철절한 준비를 해서 탈출에 성공을 하는 스토리입니다.
⓹ 혹시 영화를 보신 분은 이 장면이 기억에 날지 모르겠습니다. (사진)
감옥에서 탈출하여 자유를 만끽하는 주인공의 모습입니다.
⓺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2) 자유를 향한 갈망
2) 자유를 향한 갈망
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자유를 갈망합니다.
아마 인류 공통의 모든 사람 안에 있는 마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러한 자유에 대한 갈망이 없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② 그런데, 실제로 참된 자유를 누리고 살아가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③ 어떤 부분에서 자유를 누리는 것 같은데, 여전히 어떤 부분에서 무엇인가에 얽매여 살아가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그런가하면 불필요한 죄책감과 과거의 상처 속에 살아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④ 나름 자유롭게 산다고 무엇인가를 선택했는데, 또 다른 굴레 속에 매여 살아갑니다.
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 정말 자유를 누리며 사십니까?
II. 본론
II. 본론
1) 예수님께서 자유를 주심
1) 예수님께서 자유를 주심
① 사실 이러한 사람들의 마음을 잘 아셨던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인 예수를 통해 사람들에게 자유를 주시고 싶으셨습니다.
“갈 5:1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
⓶ 바울은 정말 오랫동안 율법과 온갖 유대인들의 삶의 방식에 얽매여 살아갔던 사람입니다. 특히 그는 그 일에 누구보다도 열심을 내며, 그렇게 해야만 하나님에게 축복을 받지, 그렇지 않으면 벌을 받는다고 생각한 사람이었습니다.
⓷ 이런 바울이 예수님의 참된 복음을 깨닫고 진정한 자유를 맛보았습니다.
요 8:32절 너희가 진리를 알지니 그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바로 이 말씀의 의미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2) 다시 종의 멍에를 지려고 하는 갈라디아 성도들
2) 다시 종의 멍에를 지려고 하는 갈라디아 성도들
① 그래서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자유를 누리도록 해주기 위해 예수님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⓶ 그런데 1절 후반절을 보세요.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
⓷ 그런데, 바울이 다른 곳에 복음을 전하는 사이에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 자유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종이 되어 무엇인가에 얽매여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⓸ 갈라디아 성도들은 유대인 거짓 교사의 가르침을 받아 유대인들이 지키는 할례와 절기들과 율법들을 다 지켜야 된다고 믿고 그렇게 된 것입니다.
⓹ 특히 거짓 교사들은 아무리 예수를 믿어도 유대인들처럼 언약 백성의 징표인 할례를 받아야 진짜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⓺ 그래서 갈라디아 사람들은 서로 앞 다투어 할례를 받았습니다. 이 것은 그들에게는 영적인 감투를 하나 쓰는 것과 똑같았습니다.
3) 방종으로 나아가는 사람들
3) 방종으로 나아가는 사람들
① 그런가하면 갈라디아 성도들 가운데는 바울이 전한 복음으로 인해 자유를 누리게 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② 그런데 문제는 그 가운데는 더이상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며, 하나님이 자유를 주셨으니 이제는 내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⓷ 우리는 이런 모습을 자유가 아닌 방종이라고 부르지요.
⓸ 그래서 바울은 13절에서 그러한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⓹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갈 5:13)
④ 자신의 이기적인 욕심을 위해 사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⑤ 그렇게 되면 방종으로 빠지게 됩니다. 이 것은 다른 말로는 율법 폐기론, 자유주의자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4) 우리는 자주 두가지의 길
4) 우리는 자주 두가지의 길
① 지난번에도 이 말씀을 한번 드린 것 같은데, 팀켈러의 센타처치란 책에서 우리는 종종 복음의 길을 잘 가다가도 율법주의와 방종, 도덕주의와 자유주의, 종교주의와 비종교주의란 두 길로 미끄러진다고 말합니다.
율법주의
종교주의
도덕주의
방종
비종교주의
자유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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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참 자유를 누리며 살기를
5) 참 자유를 누리며 살기를
① 여러분 길을 가다가 미끄러지게 되면 다시 일어나 제대로 길을 가야지요. 그러한 것처럼 팀켈러는 미끄러지지만 중요한 것은 그 것을 알아차리고 복음의 길로 돌아와 다시 그 길을 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⓶ 바울 역시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말하는 내용이 바로 이 내용입니다.
너희들이 율법주의와 방종의 길로 미끄러졌지만, 다시 복음의 길로 돌아와 정말 주님이 원하는 참된 자유를 누리기를 원한다는 메시지를 하고 있습니다.
적용)
적용)
① 바라기는 저와 우리 성도님들 우리 자녀들 모두가 율법주의와 방종이 아닌 복음의 길로 돌아와 참된 자유를 누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III. 더 깊이 생각해볼 것들
III. 더 깊이 생각해볼 것들
첫째, 나는 이 자유를 잘 누리며 살아가고 있는가?
1) 눅 15장에서 두 아들들의 모습
1) 눅 15장에서 두 아들들의 모습
⓵ 다락방 교재 54-55p에 보시면 율법주의와 방종과 복음 세 가지를 설명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⓶ ~~주의, ~~적 이란 표현이 들어가면 사실 조금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것을 여러분들에게 조금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 한 달 전쯤 눅 15장에 나오는 잃어버린 두 아들들의 비유를 예를 들어 설명을 드렸습니다.
한달이 되었으니 기억력을 다시 더듬으면서 한번 생각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⓷ 눅 15장에 나오는 첫째 아들은 바로 율법주의자를 상징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바로 당시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입니다.
⓸ 그리고 아버지께 돌아와 회개하기전의 둘째 아들의 모습은 방종(자유주의)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자신의 삶을 자신의 마음대로 살아가는 세리와 창기들을 의미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2) 누구의 모습에 더 가까운가?
2) 누구의 모습에 더 가까운가?
① 다락방에 참여하시는 분들은 이 두 아들의 모습들 중에 어떤 모습에 더 가까운지를 생각해보고 나누어 보셨을 것입니다.
⓶ 혹시 생각을 미쳐 안하시분들이 있으면 지금이라도 생각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분들은 첫째 아들의 모습에 가까울 수도 있고, 어떤 분들은 둘째 아들의 모습에 가까울 수도 있습니다.
3) 두 사람의 모습을 다 가지고 있다.
3) 두 사람의 모습을 다 가지고 있다.
⓵ 그리고 우리 안에 두 아들들의 모습을 다 가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어떤 것은 첫째 아들의 모습, 어떤 면은 둘째 아들의 모습이 있습니다.
⓶ 여기에 계시는 분들은 대부분은 도덕적이고 바른 삶을 살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그래서 왠만해서는 법을 어기지 않으실 것입니다. 옆에 분에게 그렇게 살아주시어 감사합니다.
그런데, 어떠세요? 사실 그렇게 바르고 선하게 사는 모습도 있지만, 아마도 그렇지 않은 모습이 있을 것입니다.
(1) 운전
운전을 예로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질서를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잘 하실텐데, 그렇지 못하실 때도 있을 것입니다.
때로는 과속을 하기도 하고, 신호도 어기기도 하고, 상대방이 난폭 운전을 하면 화가 나서 함께 그렇게 운전을 했던 경험도 있으실 것입니다.
그러다가 자칫 잘못하면 교통사고가 나게 됩니다. 어떤 상황에서 쌍방간에 화가 난다고 둘다 자기 마음대로 운전을 하게 되면, 다른 차들까지 피해를 주는 대형 교통사고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2) 자녀 교육
우리가 자녀 교육을 하는 측면에서도 이런 두가지 모습이 있습니다.
자녀들에 대해서 자신의 기준을 가지고 수시로 잔소리하면서 자녀들을 통제하며 키우는 부모가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자녀들은 어떻게 느낄까요? 아마도 혼나기 싫으니 겉으로는 말을 잘 듣는 것처럼 행동할 수 있습니다. 율법적인 교육에 율법적인 반응을 합니다.
그러나 사춘기를 지나 성인이 되면 부모가 말을 해도 더 이상 말을 듣지 않습니다.
잔소리로 들으며 한 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려 버립니다. 바로 자유주의, 방종의 모습을 보이는 것이지요.. 부모는 화가나 그래 내 마음대로 한번 살아봐 말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런 자녀를 바라보면서 속이 상합니다.
(3) 신앙 생활
① 예배나 봉사와 같은 영적인 면도 이런 먼이 있습니다. 율법주의적인 반응은 은혜에 대한 감사와 사모함보다는 이제까지 해온 습관과 의무와 책임으로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② 자유주의 반응은 자신의 편의와 상황을 우선적으로 생각하기에 바쁜 일이 생기면 아예 예배를 드리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여전히 상당수 많은 분들이 코로나가 풀렸음에도 공동체의 현장 예배보다는 온라인에 머문는 분들이 많은 것도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런 성향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합니다.
4) 변화되기 전의 둘째 아들의 모습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4) 변화되기 전의 둘째 아들의 모습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① 사실 우리는 그동안 전통적인 사회 속에서 살아 율법주의와 도덕주의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많았습니다.
⓶ 그런데, 포스트 모던니즘 특히 코로나 이후에는 우리 안에 자유주의의 모습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⓷ 지금 이시대가 이 것이 분명 옳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편의와 유익을 추구하는 것을 점점 더 중요하게 여기게 되었습니다.
⓸ 사람들은 점점 이런 문화에 더 쉽게 동화되어 버립니다.
⓹ 저 역시도 말씀을 준비하면서 저의 모습을 곰곰이 돌아보니 율법주의나 도덕주의적인 모습도 많지만, 방종과 자유주의적인 모습이 참 많다는 사실을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⓺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5) 두 종류의 공통점은 자기 중심적이라는 것이다.
5) 두 종류의 공통점은 자기 중심적이라는 것이다.
① 그런데, 여러분, 율법주의나 방종의 길은 완전히 정반대의 모습인데, 공통점이 있습니다. 둘 다 그 출발이 자기 중심적이라는 것입니다.
⓶ 율법 주의를 추구하는 큰 아들 역시 자기 중심이고, 아버지의 재산을 가지고 가서 탕진해버린 둘째 아들 역시 자기 중심적인 것처럼 두가지 모습다 자기 중심적이라는 것입니다.
6) 미끄러진 상태로는 둘다 참된 자유를 누리지 못한다.
6) 미끄러진 상태로는 둘다 참된 자유를 누리지 못한다.
① 그러므로 율법주의와 방종의 길로 미끌어지게 되면, 아마데우스에 마지막에 나오는 것처럼 살리에르와 모차르트처럼 비참하게 마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⓶ 이렇게 양극단으로 가게 되면, 둘다 주님이 주시는 참된 자유를 누릴 수 있을까요 ?
둘째, 어떻게 주님이 주신 참된 자유를 누리며 살 수 있을까?
1) 우리를 자유롭게 하신 예수님
1) 우리를 자유롭게 하신 예수님
①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이런 장애물 때문에 정말 누리기를 원하는 자유를 누리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아셨습니다.
⓶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자유를 주신 것입니다.
갈 5:1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⓷ 예수님은 우리에게 진정한 자유를 주시기 위해서 자신의 생명이란 비싼 값을 치루시고, 영적인 노예였던 우리를 자유롭게 해주셨습니다.
⓸ 자유의 반대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구속입니다. 누군가에게 구속당할 때, 사람들은 힘들어 합니다. 예를 들면, 코로나에 걸리신 분들은 다 격리를 해보셨을 것입니다. 집에서 격리를 겪으신 분은 다행입니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병원에 입원하게 되면, 음압 병동에 입원하게 되는데, 코로나 보다도 사방이 막혀있어서 그 것이 더 힘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구속이나 격리보다도 더 강한 것이 결박이란 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밧줄로 결박당하는 순간 몸을 움직일 수 없습니다. 육체적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⓹ 그런데, 여러분, 예수님이 우리에게 이러한 자유를 주시기 위해서 결박당하셨다는 것을 아십니까?
새벽에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함께 의논하고 - 개역개정 마태복음 27:1
결박하여 끌고 가서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 주니라 - 개역개정 마태복음 27:2
⓺ 이 것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결박정도가 아니라 십자가라는 단단한 나무에 손과 발을 못박히어 옴짝 달짝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passion of christ 란 예수님의 영화에 보면, 손과 발에 목을 박는 장면이 나옵니다. 움직이면 못박힌 부분이 살갖이 찢어져 피가 납니다. 생각만 해도 고통스러울 것 같습니다.
⓻ 그런데, 얼마든지 풀려날 능력이 있는 그 분이 왜 그 십자가에 못박힌 채로 참으셔야만 했을까요?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 개역개정 히브리서 12:2
이 기쁨이 바로 우리에게 그토록 주시기를 원하시는 자유란 것입니다.
부모들은 자식이 잘 되는 모습을 보면 그동안 했던 모든 고생이 다 사라지지요..
그러한 것처럼, 주님은 바로 저와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복음 안에서 참된 자유를 누리며 성령 안에서 살아가는 그 모습을 보면서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2) 성령을 따라가라..
2) 성령을 따라가라..
① 그런데, 이러한 자유를 주셨는데, 다시금 자기 마음대로 살아감으로 그 자유를 허비해버린다면 얼마나 안타까우시겠습니까?
②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 개역개정 갈라디아서 5:16
⓷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하시고, 실제적인 삶 속에서 그 자유를 경험하도록 성령님을 보내주셨습니다.
⓸ 하나님의 영, 예수님의 영이신 성령을 따라 살면, 그 자유가 자신의 유익을 구하는 자유가 아니라 상대방을 배려하고, 다른 사람을 어떻게 하면 섬길 수 있을까 ? 하는 자유로 바뀌게 된다는 것입니다.
② 성령님은 바로 하나님이 마음, 예수님의 마음을 우리로 하여금 갖도록 해주십니다.
③ 이 과정에서 필요한 것이 바로 복음,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 나에게 해주신 일을 자신의 마음에 선포하는 것입니다.
(1) 운전에 복음을 선포하여 복음중심적 운전
① 앞에서 운전을 예로 들었는데, 내 감정대로 운전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 주님이 나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를 생각하면 나도 다른 사람들에게 배려 운전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복음 중심적인 운전을 하게 됩니다.
(2) 복음 중심적 자녀 교육 및 관계
⓵ 자녀에게 잔소리하고 싶을 때에도 주님이 내가 잘못했을 때 주님이 나에게 어떻게 해주셨지를 생각하고 주님이 나에게 해주신 것처럼 자녀에게 해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배우자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로 이 것이 삶으로 하는 전도입니다.
⓶ 우리는 가까운 관계들을 전도할 때, 그래 삶으로 전도해야지라고 쉽게 말합니다. 그런데, 막상 살아보면 그 것이 정말 쉽지 않음을 경험하게 됩니다.
⓷ 바로 그 것이 제대로 되기 위해서 주님이 먼저 나에게 어떻게 해주셨는지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복음이 기쁜 소식으로 와 닿게 됩니다. 그런 다음 주님이 나에게 그렇게 해주신 것처럼 그 사람에게 해주는 것입니다.
⓸ 이렇게 할 때, 그 것이 자녀 배우자,형제 자매, 친구, 이웃이든간에 그 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진짜 기쁜 소식이 될 수 있습니다.
(3) 신앙 생활
⓵ 신앙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배나 봉사나 헌금 생활 역시 그냥 습관적으로 할 수 있습니다. 아니면 내 마음대로 안할 수도 있습니다. 율법주의와 방종으로 흐를 수 있지요.
⓶ 그러나 먼저 복음, 즉 주님이 나를 위하여 어떻게 해주셨지를 먼저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사실 헌금을 드리는 것, 누구나 자신이 땀을 흘려 번 결과로 주어진 돈이기에 아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⓷ 그 때 주님이 나에게 해주신 십자가에서 나의 죄를 속량해주신 만달란트의 은혜를 생각하고 그 은혜를 생각해보면, 주님이 주신 은혜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으로 드리게 될 것입니다.
3) 오직 사랑으로 종노릇하라.
3) 오직 사랑으로 종노릇하라.
① 바로 이 것이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는 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 자유가 진정한 자유라는 것입니다.
② 1절에서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했는데, 여기에서 다시 종노릇 하라고 말을 합니다.
1절에서 종은 억지로 주인을 섬길 수 밖에 없는 종을 말한다면, 13절의 종노릇은 주님이 나에게 해주신 복음을 선포함으로 주님이 나에게 해주신 것처럼 상대방을 사랑하면, 자연스럽게 종처럼 섬기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4) 진정한 율법을 회복하는 것
4) 진정한 율법을 회복하는 것
① 이렇게 서로를 사랑으로 섬기는 것이 진정한 율법이라는 것입니다.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갈 5:14)
② 바로 이 것이 복음 안에서 누리게 되는 진정한 자유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칫, 복음의 길이 아닌 율법주의와 방종의 반응을 너무 자주 합니다.
⓷ 그리고 그렇게 오랫동안 살아왔습니다. 때로는 율법주의적인 반응으로 때로는 방종의 반응으로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삶에 자주 두 길에 미끄러진채로 살아갑니다.
④ 우리 하나님은 이러한 우리들에게 복음의 손을 내밀어 다시 우리를 잡아 주십니다.
누구 누구야 괜찮아.. 지금이라도 나를 잡고 다시 복음의 길에서 서서 같이 걸어가자고 말씀하십니다.
⑤ 의왕 우리교회 모든 성도님들이 이 복음의 손을 잡고, 성령을 따라 순종함으로 자유롭게 더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IV. 결론
IV. 결론
1) 명 성도님과의 대화
1) 명 성도님과의 대화
① 서론에서 쇼생크 탈출 영화이야기를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최근에 교회 마당에서 영적인 쇼생크 탈출을 한 성도님을 보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예전 모습과는 너무 달라 몇 번이고, 내가 아는 그 분이 맞는가? 여러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가까이서 보니 제가 아는 그 성도님이셨습니다.
성도님, 왜 이렇게 달라지셨어요. 제가 몰라 봤어요.. 하고 인사를 드렸습니다.
⓶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 분은 최근에 순장님과 풍삶기를 일대일로 하면서 복음을 더 깊이 경험하는 시간을 갖으면서 그동안 여러 가지로 눌리고 얽매이던 삶에서 벗어나 복음이 주는 참된 자유가 무엇인지 이제야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⓷ 그래서 제가 성도님들과 나누고 싶어서 그동안 있었던 일을 부탁을 드렸습니다.
보내 주신 내용 중에 개인적인 이야기가 담겨져 있어서 말씀드려도 된다고 했더니 기꺼이 허락을 해주셨습니다. 제가 핵심 부분만 읽어 드리겠습니다.
2) 명채심 성도님 간증
2) 명채심 성도님 간증
⓵ 저는 의왕우리교회 오기 전, 남편의 가정 폭력으로 도저히 살 수 없어서 아이들을 데리고 이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⓶ 신앙인으로 이혼을 했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감히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없었습니다. 마치 제가 하나님 앞에 나가면 하나님은 저를 책망하시고 벌주실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몇 년간 신앙 생활도 하지 쉬었습니다.
⓷ 그런 상황에 의왕우리교회에 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풍삶초를 하고 순장님과 풍삶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순장님은 하나님께 가까이 가기 힘들어하는 저의 맘을 이해해주시고, 충분히 공감해주셨습니다.
⓸ 순장님은 특별히 풍삶기에 나오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특권 3가지를 매일 하루 세 번 제귀에 들리도록 외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나는 특별한 존재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나는 새로운 가족 공동체에 속했습니다.
⓹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렇게 하다 보니, 그동안 제 마음을 오랫동안 짓누르던 바윗돌같은 것이 사라지게 된 것입니다. 제 자신의 정체성을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확고하게 찾게 된 것입니다.
⓺ 전에는 제가 무엇인가를 하나님께 해야만 하나님이 나를 받아주시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벌주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⓻ 그러나 이제는 제가 하는 어떤 일도 하나님을 만족시킬 수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분만으로충분하다는 것을 알게 되니 너무 자유롭고 기뻤습니다.
⓼ 이제는 눅 15장에 자신의 죄를 깨닫고 돌아와 아버지 품에 안긴 둘째 아들처럼 하나님 아버지 품 안에 안긴 아기가 되었습니다.
⓽ 이렇게 되니 달라진 것이 예배가 사모가 되는 것입니다.
제가 하는 일의 특성상 그동안 격주로 주말까지 근무하느라 2주에 한번 밖에 주일 예배에도 참여하지 못했는데, 마침 전 직장을 그만두게 되고, 새롭게 직장을 옮기는 과정 가운데 매 주 주일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주 5일 근무하는 곳으로 옮겨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했었습니다.
⓾ 그런데, 놀랍게 하나님께서 그 기도에도 응답해주시어 얼마 전부터 매주 주일 예배를 드릴 수 있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바로 이 복음이 저를 자유케 합니다. 그리고 너무 기쁘답니다. 이 자유를 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저는 우리 성도님들이 이 분처럼 복음이 주는 참된 자유, 그리고 기쁨을 모두 누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찬양/ 하덕규씨의 자유
기도
1) 율법주의와 방종의 길로 자꾸 미끄러질 때가 많은데, 그 때 마다 복음을 자신에게 선포함으로 다시 일어나 복음의 길을 걸어가게 하여 주소서.
1) 율법주의와 방종의 길로 자꾸 미끄러질 때가 많은데, 그 때 마다 복음을 자신에게 선포함으로 다시 일어나 복음의 길을 걸어가게 하여 주소서.
2) 성령님이 주시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자원함으로 순종하여 섬기는 기쁨, 진정한 자유를 누리게 하여 주소서.
2) 성령님이 주시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자원함으로 순종하여 섬기는 기쁨, 진정한 자유를 누리게 하여 주소서.
축도
지금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을 친히 십자가에 내어주신 그 크신 우리 주 그리스도의 은혜와/
아들을 내어주면서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다함없는 사랑하심과/
지금도 우리를 위하여 친히 기도해주시고, 동행하여 주시는 성령님의 은혜가 /
율법주의와 방종의 길에서 벗어나 복음의 길로 들어와 복음이 주는 참된 자유함을 누리기를
원하는 모든 성도님들의 삶 위에 이제로부터 영원까지 항상 함께 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하옵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