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3과. 당신이 참으로 누구인가 살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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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dout
Handout
고백 : 하나님의 은혜를 믿읍시다.
헌금 :
예배를 위하여
고마우신 하나님 아버지, 세상을 따르지 않고, 주의 말씀을 따르는 주의 자녀들이, 오늘 함께 예배드리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주의 말씀으로 우리를 일으키시고, 주의 말씀이 우리의 기쁨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봉헌을 위하여
이 시간 우리 자신과 우리의 가진 물질을 자원하는 마음으로 봉헌하여 드립니다. 이 물질을 받으시고 주의 역사에 크게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오늘의 예배의 시종을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찬양 : 나의 안에 거하라
본문 : 로마서 5:1-11 (6-9)
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7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11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
2017년 일본에서 개봉한 영화 제목입니다.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
미국 심리학자, 허버트 프로이덴 버그가. 처음 발견한 질병인데,
간호사의 70%가 경험하는 병인데,
사소한 일에도 쉽게 짜증이나고,
아무 것도 하기 싫은데, 정말 격렬하게 아무 것도 하기 싫은..
이 질병에 대해 다루는 영화인데,
대학을 졸업하고, 만만치 않은 사회 생활을 시작하면서,
취업 실패를 수도 없이 하고,
조급한 마음에,
그나마 회사의 정식사원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는데,
실상 회사에 취직하고 보니,
꿈과 비전은 온데갖데 없고, 현실은 좀비처럼 하루하루를 버티기에도 어려운 자기 자신을 발견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집에 오면 몸과 마음은 녹초가 되고,
자기가 살고 있는 자취방은 쓰레기장보다 더 더럽고,
잦은 야근과 정신적 스트레스로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된 것이죠.
어느날 퇴근길 지하철을 타는데,
너무 지쳐서 정신을 잃고 쓰러지려다가, 또다른 주인공의 도움으로 간신히 살아나는 이야기입니다.
이 질병이 무엇일까요?
*사회는 우리의 가치를 증명하라고 합니다.
너가 가치있는 사람인지는, 너의 행동으로 증명해바.
너의 성적으로 너의 가치를 증명해봐.
너의 실적으로 너의 가치를 증명해봐.
너의 탁월한 인격과 인품으로 가치를 증명해봐.
세상은 우리의 행동으로 우리의 가치를 증명하라고 합니다.
우리가 쉬지 않고 무언가를 하고,
무언가를 놓지 않고,
심지어 집에 퇴근하면서까지 일을 가지고 들어오고,
그러는 이유는, 바로 ‘너가 가치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네 스스로 증명하라’는 세상의 요구 때문입니다.
*학업소진척도 타당화 연구 라는 논문이 있습니다.
이수현 연세대 의과대학 기초연구조교수와 다른 연구원이 연구한 것인데,
의대생을 382명을 대상으로,
학업소진 설문 결과를 분석한 것인데,
여러분, 공부 잘하는 사람은 자신감이 넘쳐야 할 것 같잖아요?
연구해보니까,
입시준비로 스트레스를 받는 중학생, 고등학생들보다,
의대생들의 스트레스가 더 심각하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뭐에요?
아무리 공부를 잘 하는 사람이라고 할 지라도,
‘네 가치를 증명해봐’
‘네 스스로 너의 가치를 증명해봐’
너의 성적으로
너의 실력으로
너의 실적으로 너의 가치를 증명해봐.
이런 세상의 말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실패한 사람은 실패한 사람 나름대로,
성공한 사람은, 그 성공 때문에 더 높은 세상의 기준이 스트레스를 준다는 것이죠.
*여러분은 어떤가요?
여러분은 자유로운 사람입니까?
누가 뭐라해도, 난 가치 있지!
내가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난 가치 있지!
내가 실적이 있든, 그렇지 않든, 난 가치 있지!
내가 어떤 형편이든,
내 성격이 좋든, 좋지 않든, 난 가치 있지!
여러분은, 세상의 요구에서 자유로운 사람입니까?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
2017년 일본에서 개봉한 이 영화가 다루고 있는 질병은, ‘말 그대로 다 불타서 없어진 것 같은 상태’, 번아웃 증후군을 의미합니다.
미국의 심리학자 허버트 프로이덴버그 박사가, 1974년 처음 제시한 용어로,
업무에 몰두하는 과정에서,
극심한 신체적 고통,
정신적 고통을 겪고,
무기력증에 빠지게 되는 것을,
번아웃 증후군이라고 했는데,
그 증상으로는 정서적 고갈,
그러니까, 감정이 완전히 메말라 버려서, 감정 에너지가 하나도 없는 상태를 이야기하는 것이고,
두번째 비인격화,
그러니까, 내가 누군가를 도와야 하는데,
예를 들면 간호사나 교사가,
자신의 도움을 받는 환자나, 학생들에 대해서 기쁜 마음이 하나도 안 들고,
무감각하거나 부정적인 생각만 들고,
사람들을 기계적으로 대하는 것.
그리고 세 번째로 ‘성취감 감소’
내가 하는 일이 뭐 대단한가? 별 거 없지? 자기 자신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것.
이런 세 가지 증상이 나타나는 질병이 바로,
번아웃 증후군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말 그대로 다 불타서 없어진 것 같은 상태인 것이죠.
*우리가 세상을 믿고 의지하면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은 우리의 욕망을 자극하고 유혹합니다.
“너의 가치를 네 스스로 증명해봐.”
이것이 세상이 우리를 자극하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 불순종해야 하는데요.
오늘 본문 5장 1절을 읽어보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말미암아’ 라는 단어는, ‘디아’ 라는 전치사를 쓰고 있는데,
~ 때문에, ~을 통하여
이유나 원인을 뜻하는 전치사 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게 되었는데,
무엇 때문에,
무엇을 통하여,
‘디아’ 라는 전치사를 통해, 그 원인을 밝혀놓았는데,
1절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2절에서
또한 ‘예수’로 말미암아
5절에서도 ‘성령으로 말미암아’
9절과 10절, 11절에서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디아’라는 전치사가 오늘 본문에만 6번 등장하고 있습니다.
‘너의 가치를 증명해봐’
‘네 스스로, 너의 행동과 성적과 실적과 취업과 연봉으로 너의 가치를 증명해봐.’
이게 세상의 유혹인데,
성경은 그게 아니라고 합니다.
무엇 때문에 ‘너가 가치 있는 줄 아니?’
무엇 때문에 ‘너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줄 아니?’
무엇 때문인지 아니?
‘디아’
6번의 ‘디아’ 전치사를 통해서,
너의 행동도 아니고,
너의 성적표도 아니고,
너의 대학도 아니고,
너의 직장과 연봉도 아니고,
너의 그 어떤 것도 아니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로 말미암아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너 때문에 아니야.
너의 행위와 자격과 성공 때문이 아니야.
오직 그로 말미암아.
‘디아’
예수로 말미암아, 너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고,
하나님의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고,
하나님의 놀라운 특권을 누리게 되었고,
마음에 기쁨과 즐거움에 넘치게 된 것이란다!
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번 아웃 증후군.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
아무 것도 하기 싫은데, 정말 아무 것도 하기 싫은 상태.
이미 아무 것도 안 하고 있는데, 정말 아무 것도 안 하고 싶은 상태.
미국의 심리학자 허버트 프로이덴버그 박사가,
이 증후군을 처음 발견했다고 말하지만,
이 증후군에 대한 처방은,
2,000년 전에 예수 그리스도가 먼저 내리셨다는 사실!
우리는 이 사실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발달하고, 첨단이 되고, 놀라운 시대가 된다고 할지라도,
예수가 진리이고,
성경이 진리이고,
말씀이 진리입니다.
아무리 인간이 대단한 업적과 놀라운 성과를 이룬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예수 없이는 결코 정상적인 삶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 나를 위해 죽어주시지 않았다면,
그분이 나를 위해 십자가 지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의 번아웃 뿐만 아니라,
영원토록 지옥에서 ‘영적인 고갈’을 경험하며, 불타는 고통을, 말그대로 영원한 번아웃을 경험해야 할 인생인 것입니다.
그런 우리를, 눈물 많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자기 몸을 전부 불태우시면서,
우리의 영적 번아웃, 영원한 번아웃으로부터 구원하신 것이죠.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
우리가 회사는 관둘 수 있습니다.
잠깐, 회사를 그만 둘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 고갈,
번아웃으로부터 우리를 구출하는 것은 회사를 관둔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네 가치를 증명해봐.
너 스스로 네 가치를 증명해봐.
네 행동으로, 네 성적표로, 네 실적으로, 너의 능력으로 네 가치를 증명해봐.
이런 세상의 말에 적극적으로 불순종하고,
오늘 본문,
‘디아’
때문에, 그것을 통하여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받았으니,
‘디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게 되었다는,
진리를 적극적으로 신뢰하게 될 때에,
우리가 불타 없어진 것 같은, 번아웃으로부터 해방되어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디아’ 예수 때문에 행복하고,
예수 때문에 기쁘고,
예수 때문에 희망차고,
예수 때문에 에너지가 넘쳐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될 때에,
'번아웃 증후군’으로부터 해방되어,
예수 때문에 행복하다! 라고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무엇이 여러분을 기쁘게 하나요?
*그런가 하면, 이 기쁨은 환난을 통해 더욱더 켜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3절을 보니까,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3절과 4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확실히 안다는 것입니다!
완료, 능동태 동사를 쓰고 있는데,
그럴 것이다.
그럴 수도 있다.
뭐 이런 것이 아니라,
확실하다!
확실히 안다!는 것입니다.
환난과 고통,
괴로움과 고난이,
번아웃만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환난과 고통을 통해서,
더 큰 기쁨,
더 큰 소망,
더 아름다운 신앙인격을 가져올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예수 없는 인생은,
네 스스로 네 가치를 증명해봐.
이 사탄의 말에 속아서,
시간이 갈수록
정서적 고갈,
비인격화,
성취감 감소 등과 같은 번아웃 증후군에 시달리지만,
예수 안에 행복한 인생은,
환난과 고난,
뭡니까?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성과가 없는 고난,
고통이 뭡니까?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회사 사장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거나,
공부를 해도 성적이 안나오거나 하는 상황.
이런 환난과 고난이,
우리를 번아웃 시키고,
정서적 고갈,
비인격화,
성취감 감소 등의 번아웃 증후군에 시달리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아, 내가 예수 안에 이미 가치 있지!’
확신과 소망을 더 커지게 하고,
기쁨이 넘치게 한다는 것이죠.
*말씀을 정리합니다.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
2017년 개방된 영화,
좋은 대학을 위해 달려가다가,
이제는 좋은 직장을 위해 달려가다가,
번아웃이 와가지고,
지하철 탑승구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져버릴 것 같은, 현대인들에게도,
예수 그리스도는 여전히 진리라는 사실을 잊어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가 진리입니다!
예수가 생명이고, 예수가 능력입니다!
예수만 잘 믿으면, 인생이 잘 되고, 생명력이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가 여러분의 구원자이고, 우리 모두의 구원자인 것입니다!
‘디아’
예수 때문에 행복하고,
예수 때문에 즐거워하고
예수 때문에 희망이 넘치는 인생.
그 인생이 바로, 사도 바울이 말한 구원받은 행복한 인생인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도,
‘네 스스로 네가 가치 있다는 것을 증명해봐’ 라고 하는 사탄의 말에 속지 말고,
예수 안에서 이미 하나님과 화평하다!
예수 안에서 이미 은혜에 들어갔다!
‘너는 이미 예수 때문에 가치 있다!”라고 하시는 주의 음성을 믿고 신뢰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함께 찬양하겠습니다.)
번아웃 증후군은,
죄의 결과입니다.
아담이 자기 스스로 하나님이 되려고 했던 것처럼,
오늘날 현대인들이,
자신의 실력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뭐라고 합니까?
‘디아’
너 때문이 아니다.
네 실력, 네 성적, 네 능력이 아니라,
‘디아’
예수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너가 가치 있는 것이다.
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신뢰함으로, 하나님 안에서 행복한 우리가 다 되기를 바라면서, 찬양하겠습니다.
*기도합시다.
들은 말씀을 가지고
여러분, 우리가 탈진되는 이유, 번아웃 되는 이유는, 네 스스로 네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라는 사탄의 말에 속아 살기 때문입니다. 예수가 이루신 성취를 믿지 않고, 네 스스로 뭔가를 이루어보라는 사탄의 말이 끊임없이 우리 자신을 몰아붙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들은 말씀을 통해서, 우리 자신을 내려놓고, 우리의 모든 업적도 내려놓고, 오직 주 예수 때문에 기뻐하고 감사하고 행복한 인생이 되게 해달라고, 우리 옆사람들도 무엇 때문에 저리 표정이 어둡고 힘든 것인지, 하나님 저 사람에게도 ‘디아’ 예수 때문에 행복함이 임하게 해달라고. 우리 자신과 서로를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또 더 나아가, 우리 교회의 리더이신 담임목사님과 사모님, 영육간의 강건함을 허락하시고, 청년부를 섬기는 저와 리더 순장들이, 번아웃 증후군, 세상의 말에 속아, ‘뭔가를 더 잘해보려고 애쓰는 청년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모든 것을 이루어주신 예수님을 잘 믿고’ 기쁨과 즐거움을 충만하게 누리는 우리 청년부 리더 순장들 다 되게 해달라고. 교회 안에 병약한 지체들의 질병을 깨끗하게 치료하시고 회복하게 해달라고. 우리가 새생명축제를 앞두고 기도하고 전도하는 모든 영혼들에게 주의 말씀이 임하게 해달라고. 함께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세상에 시달린 주의 자녀들이, 오늘 들은 말씀을 통해, ‘예수 때문에 행복한 인생’이 되도록, 주께서 친히 감화하시고 역사하셔서,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고, 고난 중에도 기뻐하는 견고한 인생이 다 되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오는 한 주도 주의 말씀과 성령으로, 우리 자신을 거룩케 하여 주시고, 우리가 날마다 주의 말씀을 가까이할 수 있는 은혜도 더하여 주시옵소서. 각자 삶에서 가진 어려움과 문제들을 말끔하게 풀어나가 주시고, 무엇보다 하나님을 깊이 만나는 은혜가 주의 자녀들의 삶에 넘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설교개요 (문제제기 - 진단 및 대책 - 결단)
문제제기
왜 자신의 가치를 부정하는가?
세상의말,
사람들의 말,
자기 내면의 말,
진단 및 대책
왜 그런가? 이유가 무엇인가?
말씀 중심의 삶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 중심의 삶이 아니기때문에
세상 중심
사람 중심
결단
말씀으로 돌아가자
말씀 안에서 ‘나의 위치’를 확인하자.
나의 신분
하나님과 나의 관계
관찰
1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부과 수동), 그러므로 믿음으로부터. 우리가 평화를 소유하자,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미 받았다.
믿음으로
그러므로 평화를 소유하자.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2 그를 통하여, ‘나아감’(프로스아고게 / 접근,access)를 우리가 가졌다(완료). 믿음으로, 이 은혜 안으로, 우리가 서 있다(완료, 히스테미). 그리고 우리가 자랑한다(카우카오마이 / 자랑하다, 즐거워하다 / 현재). 하나님의 영광의 소망 위에,
‘access 권한’을 얻었다.
컴퓨터, 프로그램, 어떤 비밀장소에 접근할 권한.
완료성은, 이미 완벽하게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믿음 덕분에,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가 서 있는 이 은총 속으로 들어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리라는 희망을 자랑으로 여깁니다.
3 다만 또한 우리가 자랑한다(카우카오마이 / 현재). 슬리프시스(환난, 고통, 괴로움)들로도. 왜냐하면 슬리프시스는 휘포모네(인내)를,
2절의 ‘자랑’이 3절에서도 나타난다.
평소에도 자랑하지만,
환난을 통해서도 자랑한다.
4 확실히 알고 있다(오이다 / 완료). 그것이 카테르가조마이(행하다, 이루다, 성취하다)한다는 것을, 휘포모네(인내)는 도키메(연단, 증거, 시련, 증명, 검증, 증명된 인격)를. 또한 도키메는 엘피소(소망)을.
확실히 알고 있다. 환난은 인내를 이루어낸다는 것을.
그리고..
인내는 증명된 인격을
증명된 인격은 소망을 이룬다는 것!
기독교는 ‘인격’이 중요하다.
‘능력’보다 ‘인격’이다.
5 또한 엘피소(소망)이 카타이스퀴노(부끄럽게 하다, 욕되게 하다, 모욕을 주다)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사랑(아가페)이 에크케오(쏟아지다, 피흘리다, 부어주다 / 완료 수동)되어졌기 때문이다. 우리 카르디아(마음, 중심) 안에, 거룩한 영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신(디도미 / 부정과거 수동태).
성령은 이미 주어졌다.
이미 주어진 성령을 통하여, 우리 마음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쏟아부어졌다.
그러므로 소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는다.
소망이 어떻게 우리를 부끄럽게 할 수 있는가?
6 에티(아직, 여전히, 그대로)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우리가 아스세네스(병든, 약한, 아픈) 상태일 때에, 카이로스(때)에 따라서, 아세베스(경건하지 아니한) 자들을 대신하여, 그가 죽었다(부정과거).
7 몰리스(겨우, 드물게, 간신히) 과연, 의로운 자를 대신하여, 어떤 사람이 죽을 것이다(아포스네스코 / 미래). 선한 사람을 대신하여, 타카(혹, 아마) 어떤 사람이 톨마오(감히 ~ 하다, 대담함을 보이다)하게 죽었다(부정과거).
겨우 드물게,
혹시나
8 쉬니스테미(함께 서 있다, 추천하다, 성립되다)한다, 그러나 우리에 대한 그 스스로의 사랑을, 하나님께서, 우리가 여전히 죄인들로 존재하고 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었다(부정과거).
우리가 여전히 죄인들로 존재하고 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다.
9 많은(폴뤼스), 그리고 더욱(말론),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수동태), 지금 방금 이제, 그의 피로, 우리가 구원을 받을 것이다(소조 / 미래 수동태), 그를 통하여, 그 오르게(진노, 노여움)으로부터.
많은 그리고 더욱 = 더욱 확실하다!
확실하다!
우리가 이제 그의 피로 의롭다하심을 받았으니,
우리가 예수를 통하여 그 진노로부터 구원 받을 것은 더욱 확실하다!
지금 = 현재
구원받을 것이다 = 미래
현재의 상태를 보아하니, 미래의 상태도 확실하다!
10 만일 에크스로스(원수, 적대감)하는 사람으로 존재할 때에, 우리가 하나님과 카탈랏소(화목하게 하다, 화합하다 / 부정과거 수동태)되어졌다. 그 아들의 죽음을 통하여. 많은(폴뤼스), 그리고 더욱(말론), 화목하게 되어진 자들(카탈랏소 / 부과 수동 분사 복수)은, 우리가 구원을 받을 것이다(소조 / 미래 수동태), 그의 생명으로.
에쓰라 : 적의, 원수
헤롯과 빌라도가 전에는 원수였으나 당일에 서로 친구가 되니라
헤롯과 빌라도가 친구가 될 수 있나?
절대 그럴 수 없다.
하나님과 죄인이 화목해질 수 있나? 절대 그럴 수 없다. 그런데 그것이 이루어졌다.
왠만하면 어떤 관계가 회복되지 않는다.
더욱 확실하다!
화목하게 되어진 자들이 구원받을 것이라는 사실이!
(9절이 반복된다.)
예수를 통하여 구원을 받을 것이고,
예수의 생명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원을 받을 것이다.
현재의 화목함이, 미래의 구원을 보장한다.
11 다만 이것만 아니라, 도리어 카우카오마이(자랑하다, 즐거워하다) 한다. 하나님 안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이제 우리가 카탈라게(화해, 화목)를 얻게 하신(람바노, 부과 / 취하다, 얻다, 받다).
카탈라게 (화해, 화목)
의견 불일치 또는 적대감 후에 새로워진 우정의 상태.
?
정경적 의미?
1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
9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
믿음으로, 그의 피로
1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2 그로 말미암아
5 성령으로 말미암아
9 그로 말미암아
10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11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
성령,
아들의 죽으심
6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7 의인을 위하여, 선인을 위하여
8 우리를 위하여
경건하지 않은, 우리를 위하여
6 죽으셨도다
7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8 죽으심으로
10 죽으심으로
2 즐거워하느니라
3 즐거워하나니
11 즐거워하느니라
연구
주해
예수님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과의 평화, 성령의 선물, 영광의 소망에 대한 기쁨을 누립니다. 우리는 믿는 바를 위해 고난을 받기도 하지만, 그 고난이 우리의 소망을 더욱 감격스럽게 만듭니다. 우리의 절망적인 상황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이 될 수 있는 아들을 우리를 위해 죽게 보내셨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구원을 계획하지도 않았고 받을 자격도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공짜 선물입니다. 우리가 원수였을 때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이제 우리가 친구가 되었으니 얼마나 놀라운 관계가 펼쳐질까요!
고난의 가치 =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라!
그리스인들은 친구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영웅적인 희생을 소중히 여겼지만, 전쟁 상황을 제외하고는 그런 희생은 드물었습니다.
그리스인들은 갈등을 겪고 있는 사람들 사이의 화해에 대해 말했지만, 신이 자신을 화나게 한 인간과 화해를 시작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아들을 희생시키면서까지 그렇게 하신다는 생각은 충격적이었습니다.
바울은 "그러므로"라는 말로 3-4장에서 설명한 칭의의 결과로 돌아갑니다. 칭의를 받은 사람들은 경건한 성품으로 성장하고 자랑할 정당한 이유를 찾습니다(2:17, 3:27 참조). 특히 바울이 여기서 "우리"를 사용한 것은 더 이상 유대인과 이방인을 구별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신자를 포함합니다.
신자들은 이미 믿음(충만함)을 바탕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며, 현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고 있습니다. 후자의 표현은 칭의가 단순한 거래가 아니라 신자가 그리스도와 인격적으로 동일시되는 것을 수반한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신자들이 고난을 자랑할 수 있는 이유는 바울 자신처럼 고난이 신자들을 굳건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고난은 우리를 거의 넘어뜨리기도 하지만, 결코 우리를 파멸시키지 못한다.
이 희망이 그들을 실망시키지 않는 것은 그들에게 주신 성령에 의해 하나님의 사랑이 그들의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 성령에 의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는 것은 그들의 희망이 헛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는 사람은, 결코 소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하나님과 화평을 누린다는 것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더 이상 적대감이 없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로막는 죄가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더 나아가 새로운 관계가 성립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심판의 결과를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이 세우신 보호 아래 살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하나님과 올바르게 만드셨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개인적으로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주셨고,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 최고의 특권의 자리로 우리를 인도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자리로 인도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적이 아니라 그분의 친구이며, 사실 그분의 자녀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고난은 하나님의 사랑의 실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긍정하고 적용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인내하는 법을 배우는 인격의 특성은 그 자체로 끝이 아닙니다(베드로전서 1:6~7 참조). 그것은 과정의 한 단계입니다. 인내는 인격의 힘을 키웁니다. 인격(도키메)이라는 단어에는 "시험의 결과로 승인된"이라는 개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런 성품을 가진 사람은 외적인 모습보다는 내적인 자질로 유명합니다. 이러한 연쇄 반응의 최종 결과는 구원에 대한 확신, 즉 하나님이 우리를 주관하시며 끝까지 지켜보실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 하나님을 신뢰한다면 인생의 어려움은 무작위적이거나 무의미하거나 낭비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약속을 지키실 것이라는 우리의 기대는 결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할 때, 우리는 그분이 약속하신 모든 것을 성취하실 것, 즉 우리가 영생으로 부활하여 영광 가운데 그분과 함께할 것임을 절대적으로 확신할 수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분은 이미 우리에게 성령을 주셔서 우리 마음을 그분의 사랑으로 채우셨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상기시켜 주시며 계속해서 우리를 격려해 주십니다.
낮추심 - 우리를 가장 무력하게 하심 - 하나님을 드러내심 - 세상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됨
이제는 죄를 더 잘 인식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세상 사는 게 더 고통스러울 수 있다.
이제는 죄 짓는 것이 전혀 기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가까이 하고 싶지도 않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자리를 떠나라고 하시지 않는다.
그 자리에서 언제까지 있어야 하는지는 하나님이 정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정하시는 때까지, 그 자리에 머물 때에 복이 임한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결정해야 한다.
하나님께 물어보고 움직이고 행동해야 하는 것이다.
당신이 참으로 누구인가 살펴보라
불우한 형편의 애리는 놀랍게도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서 사랑을 받고 있었다. 그녀는 친구가 많았다. 마침내 우리 대학부의 아주 훌륭한 청년과 결혼을 했다. 무엇이 그녀의 비밀이었을까?
애리는 자신이 누구인지 알았다. 그녀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자신을 하나님의 딸로 믿고 받아들였으며, 또 자신의 생애를 통해 이루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크신 목적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서 하나님께 헌신하였다.
그녀는 어느 누구에게도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매우 적극적이었으며 다른 사람들을 보살펴 주었기 때문에 모두가 그녀를 좋아했다.
태우는 매사에 완벽을 요구하는 아버지 밑에서 성장하였다. 그는 총명하고 재능있는 젊은이였다. 그러나 아무리 열심히 하고 잘하여도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릴 수가 없었다. 그의 아버지는 게속 아들을 몰아부칠 뿐이었다.
아버지의 기대에 맞추기 위해 최선을 다하면서 그는 해군사관학교 에 입학했으며, 또 비행 훈련도 받았다. 그는 유능한 젊은이들이 꿈꾸는 것을 성취하였다. 즉 해군 함대의 엘리트 비행사가 된 것이다.
"해군 복무를 마쳤을 때 저는 제 삶을 통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도 저의 아버지처럼 완벽하신 분 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기대를 완전하게 이루어 드리는 일은 선교사가 되는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솔직하게 말해서, 저는 단지 아버지를 위해서 해군사관학교에 갔던 것처럼 하나님의 기대에 맞추기 위해 선교학과에 등록하였습니다.
“저는 항상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려고 애썼던 것처럼, 하나님께도 저의 하는 일을 통해 기쁘시게 해드리려고 했습니다. 제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으로 이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위 두 사람의 경험은 “행동”이 아니라 “믿음” 위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이 정립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이 누구시며 또 그가 이루신 일의 결과로 우리가 어떤 신분을 갖게 되었는지 이해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열매맺는 행동은 다른 어떤 것이 아닌, 확고한 믿음의 결과이다.
로마서(1-8장)
에베소서(1-3장)
골로새서(1-2장)
우리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조급한 마음에서, 교리를 뛰어넘어 ‘실제적인 교훈’을 주는 부분으로 달려간다.
상처난 곳에 반창고를 붙이듯이, 즉각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원리나 지침을 원하기 때문이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입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화목케 되었다(롬5:1)는 확실한 지식이 없이 어떻게 소망 안에서 즐거워하고 환난을 참을 수 있겠는가?(롬12:12)
믿음이 흔들리면 생활도 흔들리게 된다.
불신과 욕설, 으르렁대는 부부, 성가대 지휘자와 그의 아내.
서로의 관계가 아니라, “하나님의 관계”를 점검할 시간을 가지도록 지침을 내림.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발견하고, 부인의 파괴된 영혼을 재정립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그들은 매우 행복하고 만족해하며 되돌아왔다.
이 부부는 먼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정립한 후 자기들의 문제점을 찾는 것이 올바른 순서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당신이 자신의 신분을 잊어버리고 하나님께서 자녀로서 이미 당시늘 받으신 그 사실을 어떤 행위로 이루어가려고 할 때, 당신은 갈등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받아주시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하나님께서 받아주셨기 때문에 그를 섬기는 것이다.
우리는 사랑을 받기 위해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를 따르는 것이다.
승리하는 삶은 이미 당신에게 이루어진 사실을 믿을 때 가능하다.
무가치, 정죄, 패배자, 무익한 인간… - 사단의 속임수
하나님의 은혜의 열매
(하나님의 은혜로 나는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나는 완전히 용서받았으며 의롭다고 인침을 받았다(롬 5:1).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나의 생활을 주장하는 죄의 권세에 대해서도 죽었다(롬 6:1-6).
나는 영원히 정죄받지 않는다(롬 8:1).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되었다(고전 1:30).
나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는 성령을 받았다(고전 2:12).
나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받았다(고전 2:16).
나는 값 주고 산 바 되었다. 나는 나의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이다 (고전 6:19, 20).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견고케 하시고 기름을 부으셨으 며, 나는 기업의 보증이 되는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다(고후 1: 21; 엡 1:13, 14).
나는 죽었으므로, 더 이상 나를 위해 살지 않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고 있다(고후 5.14, 15).
나는 의롭게 되었다(고후 5:21).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으므로, 이제 사는 것은 내가 아니다. 이제부터 나의 삶은 그리스도를 위한 삶이다(갈 2:20).
나는 모든 영적 복을 받았다(엡 1:3).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창세 전에 택함을 받아서 그리스도 앞에서 흠이 없고 거룩하게 택함을 입었다(엡 1:4).
나는 예정되었다. 하나님의 은혜로 그의 자녀가 되었다(엡 1:5).
나는 구속함을 받고 용서받았으며, 하나님의 한없는 은혜를 받았다 (엡 1:6-8).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살게 되었다(엡 2:5).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킴을 받아 그와 함께 하늘에 앉게 되었다 (엡 2:6).
나는 성령 안에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엡 2:18).
나는 담대함과 자유와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게 되었다(엡 3:12). 나는 사단의 권세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나라로 옮기웠다 (골 1:13).
나는 구속함을 받고 모든 죄를 용서받았다. 나의 모든 죄는 다 사라졌다(골 1:14).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계시다(골 1:27).
나는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었다(골 2:7).
나는 영적인 할례를 받았다. 나는 거듭나지 못한 옛사람을 벗어버렸다(골 2:11).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충만해졌다(골 2:10).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었고, 그와 함께 일어났으며, 그와 함께 살아났다(골 2:12, 13).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또 살리심을 받았다. 나의 생명이 그리 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다(골 3:1-4).
나는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을 받았다(딤후 1:7).
나는 구원을 받았고 하나님의 은혜로 구별되었다(딤후 1:9; 딛 3.5). 나는 거룩하게 하시는 자로 인하여 거룩함을 받았다. 그래서 부끄러움 없이 형제라 불린다(히 2:11).
나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간다(히 4:16).
나는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받아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었다(벧후 1:4).
관계와 친교의 차이
그러면 우리가 죄를 지으면 하나님과의 이 이상적인 관계가 변하게 되는가?
이 혈육관계가 나의 어떤 행동으로 변화될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
그러나 나의 어떤 행동으로 나와 아버지의 관계가 악화될 수 있을까?
물론 그럴 수 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인식하는대로 믿는다.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우리는 어떻게 말을 하고 있는가?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 하는 말은 기본적으로 그 사람에 대한 인식을 보여준다.
연구 발표에 의하면, 평균적으로 한 가정에서 어린이들은 긍정적인 말 한마디에 열마디의 비율로 부정적인 말을 듣는다고 발표하였다.
학교는 이보다 조금 낫다. 학생들은 선생님들에게서 긍정적인 말 한마디에 일곱마디의 비율로 부정적인 말을 듣는다고 한다.
많은 어린이들이 그들이 ‘실패자’라는 느낌을 계속 받으면서 자라고 있다.
신약성경은 우리가 ‘죄를 짓는 성도’라고 하였다.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이것은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진리를 “믿느냐 안 믿느냐”의 문제입니다. 이것은 당신이 그리스도 안에서 누구이냐 하는 문제입니다.
당신의 문제는 ‘행동’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믿음’이다.
당신은 하나님께서 받으신 하나님의 의로운 자녀이다. 당신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든 그리스도 안에서 당신의 신분은 성경의 진리로 확실하다.
번아웃, 무기력, 쉼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
이 영화는 2017년 일본에서 개봉한 영화 제목이다.
이 영화는 계속된 야근으로 인해 신체적, 정신적 고갈을 경험한 주인공이 초등학교 동창을 우연히 만나게 되면서 행복을 느끼는 과정을 담은 영화이다.
홍보 인쇄물을 담당하는 중견기업의 6개월차 신입 영업사원. 원대한 포부를 안고 대학을 졸업하였으나, 만만치않은 전쟁 같은 사회에 발을 들이고 번번히 취업의 문턱에서 실패한다. 그러면서 조급증이 생기고 그 결과 정사원이라는 닉네임을 목에 걸며 기뻐했지만 그것도 잠시, 부장의 호통과 악몽같은 갈굼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티다가 의욕과 꿈, 포부는 온데간데 없고 현실은 좀비처럼 하루를 버텨가며 살고있는 처량한 자신을 한탄한다. 집에 오면 녹초가 되기 일쑤여서 자취방은 쓰레기장을 방불케하고 잦은 야근과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이미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된지도 오래다. 어느날, 퇴근길에 너무나 지친 나머지 전철 플랫폼에서 정신을 잃고서 추락할 뻔 하다가 가까스로 야마모토에게 구해지고 그와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된다.
해당 영화 내에서는 ‘번 아웃(burn out)’ 증상을 보이는 주인공이 등장하는데, 번 아웃이라는 것은 미국의 심리학자 Herbert Freudenberge가 1974년 처음 제시한 용어로, 업무에 몰두하는 과정에서 극심한 신체적, 정신적 스트레스를 겪고 무기력증에 빠지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번아웃은 크게 ‘정서적 고갈', ‘비인격화', ‘성취감 감소'의 3가지 하위 요인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정서적 고갈'은 업무와 관련한 과도한 심리적 부담 혹은 요구로 인해 정서적 자원이 완전히 고갈된 에너지 결핍 현상을 의미합니다.
‘비인격화'는 자신으로부터 도움이나 서비스를 받는 사람들에 대해 부정적이고 무감각한 증상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을 기계적으로 대하거나 다른 이에게 무관심해지는 등의 현상이 등장할 수 있습니다.
‘성취감 감소'는 직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일에 대한 성취도 부족으로 생기는 부정적 평가로, 자신의 능력감 또한 감소되게 됩니다.
특히 감정노동을 하는 노동자의 경우 실제 자신의 정서와 표현된 정서를 구별하지 못해 정서적 고갈을 경험할 가능성이 높아 번아웃 증상이 나타날 가능성 또한 증가하게 됩니다.
번아웃 증후군이 등장하게 되면, 여러 가지 정서적/신체적 증상들이 나타날 수 있는데, 우울감, 불안, 긴장 등의 정서적 증상과 무력감, 자존감 하락 등의 인지적 증상, 피로와 두통과 같은 신체적 증상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최근 들어 소진 증후군은 직장인들 뿐 아니라 학생들도 경험한다는 연구들이 발표되고 있다
학생들이 경험하는 학업소진은 과도한 학업으로 인한 피로감, 좌절감, 학업에 대한 거리감, 스트레스, 무력감, 냉소적인 태도 등을 나타내는 신체적, 정신적, 정서적 고갈상태를 의미한다(고홍월, 2012).
사실 학업소진은 학생이라면 누구나 경험할 수 있지만 특히 의대생들에게 학업 소진은 50%~60%의 학생들에게 영향을 미칠 만큼 의대생이라면 일반적으로 경험하는 심리적 고통이다.
자존감
제니퍼는 자신의 결혼 생활에 희망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남편과 자녀를 떠나서는 삶의 목적이 없다고 느낍니다. 남편은 남편이 없으면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계속 상기시켜 줍니다.
헨리는 평생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왔습니다. 마흔이 된 지금도 그는 자신이 내리는 모든 결정을 아버지의 환심을 사기 위한 기회로 여깁니다. 그는 슬프고 낙담하며 직업이나 장기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없는 것 같습니다.
샌디는 어렸을 때부터 자신이 못생기고 멍청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열여덟 살이 된 그녀는 연애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대학 입학이 두려웠습니다.
반복된 비판.
질은 성인 생활 동안 여러 명의 남자친구를 사귀었습니다. 그녀는 좌절감을 느끼고 거절을 피하기 위해 그들의 성적 접근에 굴복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습니다.
거절을 잘 못하는 것.
*탄생신화
부모님이 저에게만 들려주시던 탄생신화가 있다.
교사였던 아버지가 백령도 섬마을에서 근무하셨을 때 어머니가 저를 임신하셨어요.
그곳에는 성당이 하나뿐이었고, 십 리를 걸어 가야했대요.
만삭이 됐을 무렵, 출산 예정일이 많이 남아서
크리스마스 미사를 보러 갔는데
어머니가 진통을 시작했고, 성당에서 저를 낳으셨대요.
부모님은 항상 말씀하셨어요.
"너는 우리에게 온 크리스마스 최고의 선물이야."
저는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행복한 기분이 들었어요.
제 존재 자체를 인정받는 것 같기도 하고요.
아이와 눈이 마주쳤을 때, 아이가 잠들 때,
아이에게 힘을 주고 싶을 때마다
이 이야기를 들려주면 아이가 너무 행복해했습니다.
저는 아이에게 탄생 신화 외에도
긍정적인 가족 신화를 자주 들려주려고 했어요.
가족들의 장점을 아이와 연결해주는 거예요.
"넌 할아버지 닮아서 부지런하고, 할머니 닮아서 센스가 좋아" "외할머니 닮아서 너그럽고, 외할아버지 닮아서 총명하지."
아이는 자기 뿌리를 인식하고 애정을 가지게 되고
여기서 뻗어 나온 자긍심이 아이를 이끕니다.
*뿌리
우리의 뿌리는 “원숭이”인데, 무슨 자긍심을 가질 수 있겠는가?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의 “뿌리”라고 말씀하고 있다.
우리는 근본 하나님의 자녀이다.
아담의 범죄로, 하나님을 대적하게 되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다시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되었다.
뿌리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뿌리는 다른 말로 하면, “족보”이다.
자존감이란 공격이나 비판에 대한 회복력과 저항력을 주는 내면의 가치감을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각 사람은 자신의 가치에 대한 개념(정확할 수도 있고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가지고 있으며, 자존감은 그 개념에 대해 느끼는(또는 평가하는) 방식입니다.
건강한 자존감을 갖는다는 것은 교만하거나 자신의 중요성에 대해 과장된 견해를 갖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우리 자신을 평가할 때 "냉정하게 생각하라"고 권장합니다(롬 12:3). 이는 정직하고 공정하게 자신을 평가하라는 뜻입니다.
사람들의 자존감은 자신을 창조하신 분의 평가에 의존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자신의 가치나 중요성을 평가하고 설득하도록 허용할 때 문제가 생깁니다.
낮은 자존감은 종종 한 사람의 삶에서 부정적인 피드백이 장기간 지속되어 깊은 상처와 고통을 초래한 결과입니다.
누군가가 나에 대해 지속적인 부정적 평가를 해온 것이다.
사회는 끊임없이 우리의 가치를 평가합니다. 직장에서 우리는 성과 평가를 받습니다. 학교에서는 성적을 매깁니다. 대출을 받을 때도 평가를 받습니다. 우리의 가치에 대한 평가는 어릴 때부터 시작되어 죽은 후에도 계속됩니다.
하나님은 애초에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과 우리를 영원히 구속하기 위해 지불하신 대가를 바탕으로 우리의 가치를 결정하셨습니다.
상담자로서 우리는 자신의 가치에 대해 손상되거나 고통스러운 감각을 가지고 오는 사람들을 다루어야 합니다. 우리의 가치나 중요성에 대한 하나님의 관점을 찾는 것은 우리의 시간과 영적 에너지를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존감과 관련된 문제를 파악하지 못한 채 자신에 대해 나쁘게 느끼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들은 실패자처럼 느껴지거나 부적절하다는 강한 느낌을 받아 우울증과 불안에 시달릴 수 있습니다.
자존감이 낮은 일부 사람들은 성적 학대를 당한 경험이 있으며 그 결과 여전히 자신이 더럽고 무가치하다고 느낍니다.
하나님이 용서하셨다는 것은, ‘단 한번도 성적 범죄를 저지르지 않은 사람’으로 보신다는 의미다.
자존감이 낮은 많은 사람들은 이혼으로 인해 불안감을 느꼈거나 이혼에 대해 비난을 받거나 책임을 떠안아야 했던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일부는 지나치게 예민한 성격으로 인해 타인의 비난이나 비판에 취약할 수도 있습니다.
2. 다른 사람이 정해 놓은 삶의 기준을 충족하지 않으면 자신에 대해 좋은 느낌을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까?
3. 실패나 실수를 자신의 가치에 대한 직접적인 반영이라고 생각하십니까?
5. 실패할까 봐 두려워서 위험을 감수하는 것을 피한 적이 있습니까?
9. 용서할 줄 모른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까?
10. 당신은 체중과 외모에 집착합니까?
11. 스스로 경쟁적이라고 생각합니까?
12. 자신이 다른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거나 다른 사람의 재능이나 외모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자주 있습니까?
15.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여러분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16. 당신은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신다고 믿습니까? 당신은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지적으로 이해하는 것에 더 가깝습니까?
19. 어렸을 때 무언가를 잘못했거나 실패했을 때 어떻게 대우 받았습니까?
20. 부모님이 당신에 대해 높은 기대치를 가졌습니까, 아니면 낮은 기대치를 가졌습니까? 아니면 둘 다 없었나요?
22. 성적 학대나 강간을 당한 적이 있습니까? 신고했습니까? 어떻게 처리되었고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23. 인생에서 자신에 대해 좋은 느낌을 갖게 해준 사람들에 대해 설명해 주세요.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아직도 함께 있나요?
의존성 성격장애
의존성 인격 장애는 타인이 돌봐주는 것을 과하게 필요로 하는 상태를 특징으로 하며, 이는 복종과 매달리는 행동으로 이어집니다.
의존성 인격 장애가 있는 사람은 타인이 본인을 돌봐주는 것을 원하며 스스로를 돌보는 것을 매우 불안해합니다. 본인이 원하는 보살핌을 받기 위해서, 이들은 독립성과 관심사를 포기할 용의가 있습니다. 따라서 이들은 지나치게 의존적이고 복종적입니다.
이 장애가 있는 사람은 보통 평범한 결정을 할 때조차 재확신과 조언을 수없이 요구합니다. 이들은 타인, 대개 한 사람에게 본인의 삶의 여러 측면에 대한 책임을 떠맡깁니다. 예를 들어, 이들은 배우자에게 무엇을 입을지, 어떤 종류의 직업을 찾아봐야 하는지, 누구와 어울려야 하는지 말해달라며 의존할 수 있습니다.
의존성 인격 장애가 있는 사람은 소수의 의존적인 사람들에 한해서 사회적으로 교류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가까운 관계가 끊어지면 이 장애가 있는 사람은 즉시 대체자를 찾으려고 합니다. 보살핌을 절실히 필요로 하기 때문에 이들은 대체자를 선택하는 데 있어 이것저것 따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의존성 인격 장애가 있는 사람은 아무 이유가 없는 경우에도 이들이 의존하는 사람에게 버려질 것이라는 두려움을 과하게 가지고 있습니다.
과도한 복종심
과도한 복종심
의존성 인격 장애가 있는 사람은 지원을 잃거나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것이 두려워 타인과의 의견 차이를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이들은 타인의 도움을 더 이상 받을 수 없는 위험을 감수하기보다는 잘못된 사실을 알면서도 동의를 할 수 있습니다. 화를 내는 것이 적절한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친구와 동료를 잃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으로 인해 이들에게 화를 내지 않습니다.
의존성 인격 장애가 있는 사람은 돌봄과 지원을 받기 위해 무엇이든 합니다. 예를 들어, 불쾌한 업무를 수행하고, 불합리한 요구를 받아들이며, 신체적, 성적 또는 정서적 학대를 견뎌낼 수 있습니다. 스스로를 돌볼 수 없다는 두려움 때문에 혼자 있는 것을 매우 불편하거나 두려워합니다.
자신감 결여
자신감 결여
의존성 인격 장애가 있는 사람은 본인을 열등하다고 생각하며 본인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들은 비판이나 거절을 본인의 무능력함에 대한 증거로 해석하여 본인의 자신감을 떨어뜨립니다.
독립성 결여
독립성 결여
의존성 인격 장애가 있는 사람은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확신하기 때문에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독립적으로 일을 하는 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이들은 책임을 요구하는 작업을 피하며, 본인이 무능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도움과 재확신을 필요하다는 점을 나타냅니다. 유능한 사람이 이들을 감독하고 동의하여 안심시키는 경우, 의존성 인격 장애가 있는 사람은 적절하게 직무를 수행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버림받지 않도록 포기하지 않도록 너무 유능해 보이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 결과, 이들의 경력에 흠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들은 본인의 의존성이 계속 지속되게 하기 위해 독립생활 기술을 배우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묵상
적용 / 서론
"尹 말참견 용납 않겠다"는 中…"국격 의심된다" 따진 외교부
"尹 말참견 용납 않겠다"는 中…"국격 의심된다" 따진 외교부
박현주 기자
중국이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말참견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하자 외교부가 "중국의 국격을 의심하게 하는 심각한 외교적 결례"라고 맞대응했다. 외교부가 중국을 향해 "국격이 의심된다" 등 표현을 쓰며 따진 건 최근 수년간 전례 없는 일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8일 서울 용산 대통령 집무실에서 로이터 통신과 인터뷰하는 모습. 대통령실
외교부는 20일 오후 출입 기자단에 보낸 문자 공지를 통해 "힘에 의한 현상 변경에 반대한다는 국제사회의 보편적 원칙을 우리 정상이 언급한 데 대해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입에 담을 수 없는 발언을 했다"며 "중국 외교부 대변인의 이 발언은 중국의 국격을 의심하게 하는 심각한 외교적 결례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앞서 전날 공개된 로이터 인터뷰에서 윤 대통령은 "결국은 (대만 긴장 고조는) 힘에 의한 현상 변경 시도 때문에 벌어진 일이고 우리는 국제사회와 함께 힘에 의한 현상 변경에 대해 절대 반대한다는 입장"이라며 "대만 문제는 단순히 중국과 대만만의 문제가 아니고 남북한 간의 문제처럼 역내를 넘어서서 전 세계적인 문제로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에 이튿날인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왕원빈(汪文斌)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대만 문제는 순전히 중국 내정으로 중국의 핵심 이익 중 핵심"이라며 "대만 문제의 해결은 중국인 자기 일이며 타인의 말참견을 용납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윤 대통령의 대만 관련 발언을 '타인의 말참견'으로 깎아내린 셈이다.
중국이 올해 들어 두 번째로, 그것도 대통령을 향해 "말참견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부용치훼'(不容置喙)를 꺼내들자 외교부도 강경 대응에 나섰다. "중국의 국격을 의심하게 한다", "입에 담을 수 없는 발언을 했다" 등 문구를 쓰며 외교부가 상대국에 맞대응한 건 최근 수년간 처음 있는 일이다. 지난 2월 중국이 박진 외교부 장관의 CNN 인터뷰에서의 대만 관련 발언에 대해 "말참견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했을 때도 외교부는 "(박 장관의 발언은) 한반도의 평화, 안정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라고 취지를 설명하는 선에서 그쳤다.
중국이 대만과 화해할 수 있는가?
*뿌리 = 족보
비참하게 살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내가 왕의 혈족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면 이상하게 “자긍심”이 든다.
내가 별볼일 없는 사람이 아니고, “왕의 혈족”이구나.
우리는 “하나님의 혈통”을 이어받은 “신의 혈족”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흐르는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