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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한의 두 제자가 찾아오다 2. 우리가 메시아를 발견했다 3. 예수님이 발견하고 찾아가 부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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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의 두 제자가 찾아오다

지난 한 주 순에서 기도제목을 나누고 함께 기도하면서 동역자들을 향한 마음과 사랑이 더 끈끈해졌을 것이라 생각해요. 한 주간의 미션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이후에도 늘 생각하며 기도하는 그런 순 우리 가온누리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해요.
우리는 지난 이주동안 도마와 마태에 대해 살펴보았어요. 그리고 오늘은 빌립에 대해 알아보려고 해요.
빌립은 도마와 마태보다도 더 정보가 없는 사람이에요. 설교를 준비하는 저도 쉽지 않았지만 사실 콘티를 짜는 제이원 리더들이 더 힘들었을 것이라 생각해요. 자료도 많이 없는 그리고 별 내용도 없어 보이는 본문을 묵상하고 콘티 짜느라 늘 고생이 많은데, 앞으로도 계속 고생해주세요.
오늘 본문은 사실 35절부터 봐야 해요.
이튿 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라고 기록이 되어 있는데 여기에서 요한은 세례요한을 의미해요. 그가 두 명의 제자들과 함께 서 있다가, 제자들에게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말을 해요.
두 제자는 그 말을 듣고 예수를 따라 나섰는데, 예수님은 그들을 보고 “무엇을 구하느냐?”라고 물어요. 그들의 대답은 “랍비여 어디 계시옵니까” “우리는 참된 스승을 찾고 있는 중입니다!” 이었어요.
“무엇을 구하느냐?”
“참된 스승을 찾습니다.!”
“그래? 그럼 와서 보라!”
라고 말씀하시면서 예수님은 그들을 자신이 머물던 곳으로 데려가셨어요. 성경을 보면 예수님을 따라갔던 두 제자 중 한명은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이다. 라고 밝히고 있어요.
그 곳에 가서 무엇을 보았는지는 모르지만, 안드레는 바로 자신의 형제 시몬을 찾아가요. 그리고 그에게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라고 외쳐요.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물으셨죠. “무엇을 구하느냐?” “참된 스승을 찾습니다.”
그렇게 따라간 안드레는 참된 스승을 넘어 “메시야"를 찾게 되었어요. 다른 말로 그가 살아가게 될 목적을 찾게 되었다는 뜻이에요. 세례 요한과 함께 했고 그의 가르침을 받았으나, 세례 요한을 메시아로 생각하지 않았던 안드레였어요.
예수님께서 와서 보라! 라고 하신 후 잠깐 시간을 보냈을 뿐인데 그는 “예수님을 메시아!”라고 바로 고백을 하는 놀라운 상황이 벌어진 것이죠.
도대체 그가 무엇을 보았기에 이제 막 만난 “예수를 메시아"로 고백 할 수 있었을까요?
전 스승이었던 세례 요한이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했기 때문에 그 것을 온전히 신뢰했기 때문일까요?
예수님께서 시몬을 만났을 때를 잘 살펴보면 그가 어떻게 예수를 메시아로 고백 할 수 있었는지 알 수 있어요.
시몬은 안드레의 말을 듣고 얼떨떨하게 예수의 앞으로 왔어요. 사실 시몬은 좀 피곤했을 거에요.
시몬과 안드레는 갈릴리 사람인데, 지금 그들이 있는 곳은 예루살렘이에요. 예루살렘은 갈릴리에서 110km 떨어진 곳 이었어요. 당시 이동 수단은 말, 나귀 혹은 튼튼한 다리 밖에 없었기 때문에 꽤 오랜 시간을 걸어서 예루살렘에 왔을 거에요.
어부로써 매일 물고기를 잡아야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그들이 먼 거리에 있는 예루살렘에 온 이유는 성전을 방문하기 위해서였어요. 다른 말로 성전 방문이라는 목적을 이루고 나면 잠시 쉬었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죠.
예루살렘에 자주 올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밀렸던 일도 했을 것이고, 사람들도 만나고 하면서 여러 일정들을 소화하고 쉬고 있던 시몬에게 안드레가 나타나서 느닷없이 “메시아를 만났어!! 어서 같이 가자!!”라고 한 것이죠.
무슨 소리가 싶었지만 시몬도 역시 메시아를 기다렸던 사람이었기에 안드레의 손에 이끌려, 메시아라 칭해지는 예수 앞에 나왔어요.

우리가 메시아를 발견했다

자신에게 오는 시몬을 예수님은 똑바로 쳐다보셨어요. 그리고 느닷없이 이렇게 말씀하세요.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첨 본 사람이 자신의 아버지의 이름도 알고, 자신의 이름도 알고 있어요. 안드레가 내 정보를 준 것인가? 혹은 이거 사기 아니야? 라고 생각 할 수 있는 상황이죠. 상황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는데, 자신을 향해 “게바"라고 표현을 하셨어요.
시몬에서 게바. 즉 반석. 베드로로 그의 이름이 바뀌게 되었어요. 당시 시몬은 굉장히 흔한 이름이었어요. 지나가다가 시몬! 이라고 하면 에? 하면서 돌아보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을 정로도 여기도 저기도 시몬 투성이었어요.
처음 본 사람이 자신의 아버지와 이름을 아는 것도 놀라운데, 이름까지 바꾸어 불렀어요. 일반 사람들이었다면 “이거 짜고 치는거 아냐? 안드레 나한테 사기치는거야?”라고 말할 수도 있는 순간이었어요.
그런데 시몬은 바뀐 게바라는 이름을 그대로 받아드려요.
안드레가 참된 스승을 찾다 메시아를 발견하게 된 것처럼, 시몬 역시 바뀐 이름을 통해 내가 기다리던 그 메시아가 이 분이구나! 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깨달아요.
안드레도 게바도 인생의 방향이 완전히 달라지기 시작했어요.
안드레와 게바를 변화시킨 것은 드라마틱한 어떤 기적이 아니었어요. 기적은 순간 감정을 흔들 수 있을지 몰라도, 그 것이 지속되지 않아요. 지속 될 수 있는 것은 내가 경험한 하나님의 은혜와 말씀 뿐이에요.
안드레와 게바는 가서 보았을 뿐이고, 바뀐 이름을 들었을 뿐인데 이 두가지가 그들이 그토록 찾던 참된 스승과 기다리던 메시아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죠.
안드레가 시몬을 예수님께 데려왔을 때, 42절의 말씀처럼 “예수님께서 먼저 보셨"어요. 여기에서 우리는 중요한 한 가지를 찾아내야 해요.
우리가 하나님을 먼저 바라보고 구원해달라고 한 것이 아니라, 그 분이 자신이 가장 사랑하지만 잃어버렸던 영혼 저와 여러분을 먼저 쳐다보셨다는 것이에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계속해서 쳐다보고 계신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해야 해요.
지난 주 마태가 자신을 찾아오신 예수님의 부르심에 반응해서 벌떡 일어나 따라나서며, 새로운 삶을 살아갈 기회를 붙잡았던 것처럼,
저와 여러분도 계속해서 우리에게 눈을 고정하고 마음을 쏟고 계시는 그 하나님의 손을 붙잡고 일어서서 곁에서 함께 걸어야 해요.
얼떨떨하게 끌려나온 시몬을 예수님은 먼저 쳐다보셨어요.
안드레가 말한 이 사람이 정말 메시아인지 아닌지 확인하려고 그 자리에 나온 시몬의 그 내면을 깊이 꿰뚫어 보셨어요. 지금 그는 죄인이고 믿음이라 말할 수 있는 것 조차 갖지 못한 그냥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예수님은 지금 그의 모습이 아니라 앞으로 변화될 그의 모습을 보셨어요. 그래서 그에게 게바라는 이름을 주신 것이죠.
사실 게바. 흔들리지 않는 바위라는 이름은 그에게 어울리지 않아요. 왜냐하면 게바. 베드로는 성격이 급하고 즉흥적인 사람이고 또 예수님을 부인했던 사람이었거든요.
믿음 없는 지금의 모습이나 이후나 사실 별반 다르지 않은데, 예수님은 그가 변화된 삶을 살 것을 기대하셨어요.
순간적으로 흔들릴지 몰라도 신실하게 살아가기 위해 노력할 그의 미래의 모습을 보셨던 것이죠.
저와 여러분에게 눈을 고정하고 계속해서 마음을 쏟고 계시는 이유가 바로 이 것 때문이에요.
지금 흔들리는 삶을 살아갈지 몰라도, 조금씩 변화될지 몰라도,
지금보다 좀 더 나은 내일의 모습을 기대하시기에,
순간적으로 흔들리더라도 다시 하나님을 붙잡고 일어설 것을 아시기에 저와 여러분에게 눈을 고정하고 계시는 것이에요.

예수님이 발견하고 찾아가 부르시다

안드레와 또 다른 사람 그리고 베드로를 제자로 받아드리신 예수님께서 그 이튿 날 갈릴리로 가려고 길을 나섰어요. 그리고 한 사람에게 찾아가셔서 “나를 따르라" 라고 말씀하세요.
예수님께서 이 사람을 만나기 전 둘 사이에 어떤 접촉도 없었어요. 어떻게 보면 오늘 처음 만난 사람인데, 그 사람은 “나를 따르라"라는 말씀에 바로 반응해서 그를 따라 나서요.
그가 바로 빌립이에요.
예수님의 제자이지만 큰 기록이 남겨져 있지 않은 사람. 그러나 자신이 믿고 신뢰하는 예수님을 위해 살아갔고, 그 예수를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친구에게 전하는 역할을 했던 사람이 빌립이에요.
지난 주 마태가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반응해서 바로 나설 수 있었던 것은 해변가에서 복음을 전하시는 예수님을 먼 발치에서 봤기 때문이에요. 어쨋든 한 공간에서의 접촉이 있었는데, 빌립은 그런 것도 없었어요.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바로 예수님을 따라 나서요.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 장면이죠.
빌립이 왜 예수님을 갑자기 따라나섰는지 정확히 알 수 없어요. 하지만 저는 이 장면을 묵상할 때 대학생이었던 저의 모습이 떠올랐어요.
저는 C.C.C라는 동아리에서 활동을 했던 적이 있어요.
순장이 되려면 여러 훈련을 받고 또 실천 과제를 해야 하는데, 그 중 하나가 20명인가 30명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어요.
제가 다녔던 학교에 오정못이라는 연못이 하나 있었는데, 지금도 있나 모르겠네요. 물이 깨끗해졌나...
학교를 다닐 때 오정못에 빠지면 온갖 피부병에 다 걸려서 시름시름 앓는다는 무시무시한 괴담이 있었어요.
순장 훈련이 거의 끝나갈 때쯤 전도 과제를 완성하지 못했던 저는 오늘은 10명에게 사영리를 전한다! 라는 마음을 갖고 등교를 했어요.
지금도 그렇겠지만 그 당시에도 복음을 잘 듣지 않았어요.
하루 종일 4영리를 들고 다녔는데, 아무도 듣지 않아서 굉장히 낙담하면서 오정못 앞 벤치에 앉아서 한숨을 쉬고 있는 데 갑자기 분수가 터졌어요.
물줄기를 쏘아대는 시간이었는지 갑자기 분수가 터지면서 그 분수를 다 뒤집어 썼고, 몸에서 구린내가 나기 시작했어요.
전도도 다 실패했는데 분수까지 뒤집어쓰고, 온갖 피부병에 걸린다는 그 괴담의 주인공이 된 저는 너무 허탈했어요.
옷 갈아입으려고 벤치에서 일어나서 걸어가다 오정못 옆 정자에 앉아있는 한 학생을 보게 되었어요.
몸에서 냄새가 나지만 그래도 한번만 더 말을 걸어보고 안되면 그냥 집 간다! 라는 마음으로 말을 걸었는데, 그 친구가 너무나 흔쾌히 4영리를 듣겠다고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4영리를 읽고 복음을 제시했는데 갑자기 그 친구가 울기 시작했어요.
지방에서 대전으로 학교를 왔고, 아는 사람도 없어서 굉장히 힘들고 외로웠는데 자신을 사랑하는 존재가 있다는 것이 위로가 된다고 하더라구요. 예수님을 몰랐던 그 친구는, 몸에서 냄새나고 젖은 이상한 사람이 전한 복음을 듣고 지금도 여전히 신앙 생활을 잘하고 있어요.
어쩌면 빌립이 그 친구와 같은 마음이지 않았을까 싶어요. 다음 주에 마지막으로 나다나엘이라는 제자에 대해 나누게 될텐데, 빌립은 나다나엘과 함께 메시아를 묵상했고 매일 그를 만나기를 기다려 왔어요.
그의 기다림과 달리 바뀌지 않는 현실과 더디게 오는 것만 같았던 메시아로 인해 낙담하고 괴로워하고 있을 때, 자신을 발견하고 먼저 다가와 “나를 따르라"라고 말하는 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어요.
굉장히 당황스러운 장면인데, 빌립은 자신에게 다가 온 분의 그 말이 “기다렸으나 오지 않았던 메시아로 인해 상처받았던 그의 마음에 ‘위로'를 주었던 것이죠.
예수님은 갈릴리로 떠나기로 “결정"하고 빌립을 “발견"했어요. 빌립이라는 이름의 뜻은 “말을 사랑하는 자"에요. 말을 사랑하는 자에게 다가가셔서 그가 그토록 기다렸던 말 “나를 따르라.” “너가 그토록 기대하며 기다렸던 그가 나다"라고 말씀하신 것이죠.
요한의 두 제자가 예수님을 찾아갔던 것처럼, 당시에는 가르침을 받고 싶었던 사람들이 스승을 찾아가 받아달라고 요청을 했었어요.
그런데 지금 예수님은 그 반대로 스승이 제자가 될 사람을 찾아가 “나를 따르라"라고 하는 파격적인 제안을 하고 계시는 것이죠.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이 “나를 따르라"라고 부르신 유일한 제자가 바로 빌립이에요.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은 예수님께서 하고 계시는 것이죠.
세상에 오셔서 파격적인 모습을 보이며, 사람들은 구원의 자리로 부르셨던 그 분께서 저와 여러분에게도 동일하게 “나를 따르라" 초대하고 계셔요.
여러분 정말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발견하셨고 찾아오신 후 “나를 따르라"라고 말씀하신 것을 믿나요?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그 마음을 정말로 믿고 확신하며 살아가고 있나요?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의 자리로 초대하셨어요. 그리고 우리에게 구원을 선물로 주셨어요. 우리가 정말 구원받았다면, 구원받았음을 확실하게 믿고 신뢰한다 면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이 있어요.
발견하고 찾아가 말씀하셨다는 것의 의미는, 예수님께서 빌립의 앞으로의 모든 인생과 삶의 발걸음을 책임지겠다는, 그리고 빌립의 삶의 주도권을 갖겠다는 것이에요.
그를 그리고 우리를 제자로 부르신 목적이 아주 분명하다는 것이죠.
그의 인생을 책임지셨듯 저와 여러분의 모든 삶의 여정을 책임지고 이끌어 가시겠다는 예수님의 의지적인 표현과도 같아요.
예수님은 사회적으로 지위가 높거나 말을 잘 이해할 사람들을 찾아가서 제자루 부르지 않으셨어요. 정말 완벽하게 평범한 사람들. 어쩌면 사람들이 관심 갖지 않을 위치에 있는 자들을 찾아가셔서 불러주셨어요.
안드레와 베드로 그리고 빌립이 살았던 벳세다 지방은 어부의 고향이라는 뜻을 갖고 있어요. 어부의 고향에서도 정말 평범한 사람들을 부르셨어요.
정말 뛰어난 사람들을 찾아다니면서 드래곤볼 모으듯 수집하지 않으셨어요.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셨던 이들은, 마음에 결핍이 있거나 낙심했거나 혹은 세상으로부터 단절되어서 혼자 남았던 사람들. 사람들에 의해 버림받았던 사람들이었어요.
그 약한 감정을 건드려 제자로 삼으셨다는 의미가 아니라, 정말로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먼저 찾아가셨다는 것이죠.
안드레와 또 다른 제자가 예수님을 찾아왔을 때 그 분은 “너희가 무엇을 구하느냐?”라고 물어보셨어요. 하지만 빌립과 저와 여러분을 찾아오셨을 때는 “무엇을 구하느냐?” “무엇을 찾고 있느냐?”라고 하지 않으셨어요.
예수님이 먼저 우리를 발견하고 찾아오셨어요. 그리고 우리에게 함께 걸어갈 기회를 주셨어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이 땅에 실현되는 것을 가장 앞자리에서 보고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주신거에요.

안드레 그리고 빌립

오늘 본문에 등장한 인물 중 안드레와 빌립은 사실 주목받는 제자들은 아니었어요.
특히 안드레는 거의 기록이 없어요. 12제자를 소개할 때만 이름이 나온다던가 혹은 누구와 같이 있었다더라. 라는 말밖에 없어요.
안드레는 소심한 인물이었고, 눈에 띄지 않았어요.
자주 혼란에 빠졌고, 소명대로 살만한 능력도 없었고, 온갖 약점이 가득한 사람이었어요. 그랬던 그가 오늘 외치고 있어요 “메시야를 만났다!”
빌립은 더해요. 그토록 기다리던 예수님을 만났고 나다나엘에게 “우리가 기다리던 메시아를 만났다!!”라고 외쳤지만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예수님을 의심해요.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는 말이 있죠.
오병이어 사건 때 가만히라도 있었으면 괜찮았을텐데
빌립은 “우리가 떡을 어떻게 사먹입니까? 에이 돈도 없어요. 먹을 것도 없구요. 먹을 것을 사러 내려가도, 여기에 모인 숫자보다 적은 사람이 사는 동네라 먹을 게 없을거에요"라고 하면서 투덜투덜 거려요.
안드레도 빌립도 베드로도 제자가 될만한 사람들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찾아가셨어요.
지금 당장 그들의 모습에 주목하지 않으시고, 앞으로 변하게 될, 말씀을 삶에 적용하며 살아가게 될 미래의 모습에 주목하셨어요.
예수님은 지금 이 순간에도 저와 여러분에게 주목하고 계셔요.
지금 나의 모습이 아니라, 앞으로 변할 그 모습을 기다리고 계셔요.
앞으로 하나님을 더욱 더 사랑하게 될 그 마음에 희망을 걸고 계셔요.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내 모습에 주눅들지 마세요. 말씀대로 살고 있지 못한다며 자책하지 마세요.
바쁘게 살아가느라 하나님을 잊고 넘어지고 있다며 내가 그리스도인이 맞는지 고민하지 마세요.
나를 선택하셨고 먼저 찾아오셔서 불러주셨음을 정말로 믿고 확신한다면 저와 여러분이 해야 하는 것이 하나 있어요.
내 모습이 어떠하던지간에, 스스로에게 상처주는 것을 멈추고
내 모습 그대로를 용납하시고
동시에 앞으로의 여러분의 모습을 기대하고 계시는 그 분께 감사를 고백하는 것이에요.
이번 주의 미션은 매일 한가지 이상씩 감사를 고백하는 것이에요.
말로만 해서 잊고 지나가는 감사가 아니라, 노트든 어디에든 써가면서 생각날 때마다 감사를 고백하세요.
그리고 자기 전에 누워서 오늘 하루동안 감사했던 내용들을 보면서 “이런 나를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한번 더 고백하세요.
별로 특출난 것 없고, 어쩌면 제자들처럼 온갖 약점으로 인해 마음이 무거운 삶을 살아가는 나일지라도 먼저 발견하여 찾아와 주신 예수님께 찐감사를 고백하는 이번 한주가 되기를 소망하며 축복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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