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423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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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만의 결과

우리 친구들, 다들 한 주 잘 보냈나요? 오늘도 이 자리에서 함께 말씀을 나누게 되어 너무나도 반갑습니다.
우리 지난 주에 함께 말씀 나누면서 마지막에 어떤 말 나눴는지 기억하세요? 하나님과 함께함으로 두려운 한 주가 아니라 즐거운 한 주가 될 수 있다고 함께 나눴었어요.
그럼 우리 친구들, 어떤가요? 하나님과 함께 즐거운 한 주를 보냈나요? 아마 그런 친구들도 있을 수 있고, 아닌 친구들도 있을 것 같아요.
즐겁고 행복한 한 주를 보낸 친구들은 돌아오는 한 주간도 그렇게 보내기를 바라고, 그렇지 못한 친구들은 이번주가 그렇게 될 수 있기를 기도하겠습니다.
그럼 우리 돌아오는 주에도 즐거운 한주가 될 수 있도록 지난주 말씀 다시 한번 잠깐 생각해볼까요? 우리가 왜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다고 했죠?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니까.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멱살캐리 해주시고 우리를 버스태워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실패할 수 없다.
이런 이야기들을 나눴었습니다.
그렇죠. 이 말씀을 보면서 우리는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어요.
그런데 두려움에서 벗어나 용기를 얻는 것은 좋은데, 용기가 심해지면 어떻게 될까요? 만용이라고 하게 되죠. 즉 교만하게 된다라는 말입니다.
아니, 지난주에는 용기를 가지라더니, 왜 오늘은 또 용기를 가지지 말라고 하나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텐데, 물론 하나님을 바탕으로 한 용기는 너무나도 좋습니다. 하나님 빽 믿고 열심히 부딛쳐가는 것 너무 좋죠.
제가 말하는 과한 용기는 무엇이냐면, 근거 없는 용기, 근거없는 자신감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자. 한번 물어볼게요. 나정도면 하늘고에서 얼굴로는 평균 이상인 것 같다 하는 친구?
네 이게 바로 근거없는 자신감의 좋은 예겠죠.
농담이고, 근거 없는 자신감이란, 뒷받침하는 객관적인 무엇인가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냥 자신감만 넘치는 그런 경우들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이러한 근거없는 교만을 매우 좋지 않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스스로를 잘못된 길로 이끌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오늘 등장하는 말씀을 함께 보면서, 이러한 교만은 왜 우리에게 좋지 못한지, 또한 하나님은 그러한 교만에 대해 어떻게 행동하시는지를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시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뭐라고 하시죠? 이 백성들로부터 떠나라고 하시죠. 내가 순식간에 이들을 멸하려 한다라면서 말이에요.
이 말씀만 보면 뭔가 엄청난 일이 일어난 것 같죠.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엄청 화가 나신 것 같은데,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요.
우리가 지난주에 보았던 것처럼, 가나안 땅을 앞에 두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순종으로 인해 코앞에 가나안 땅을 두고 다시 돌아서 광야 땅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고된 광야 생활이 다시 시작된 것이죠. 아마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만이 가득찼을 것 같아요. 물론 자신들이 잘못한 것이긴 하지만, 어떻게 그 힘든 생활을 다시 하냐는 생각을 했겠죠.
그러다보니 백성들 사이에서 그 불만을 표출하는 이들이 등장하게 됩니다. 바로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이었죠.
이들은 무리를 지어서 백성들 사이의 지휘관 250명과 함께 모세에게 대항하기 시작합니다.
실제로 쿠데타 시도가, 우리나라로 치면 반정이 발생한거에요.
그들은 그러면서 이렇게 주장합니다.
민수기 16:3 NKRV
그들이 모여서 모세와 아론을 거슬러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분수에 지나도다 회중이 다 각각 거룩하고 여호와께서도 그들 중에 계시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 위에 스스로 높이느냐
이들의 말은 이런거에요. 한마디로 너희 너무 나댄다라는 것이죠.
모세는 그 말을 듣고서 이렇게 대답합니다.
민수기 16:5–7 NKRV
고라와 그의 모든 무리에게 말하여 이르되 아침에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속한 자가 누구인지, 거룩한 자가 누구인지 보이시고 그 사람을 자기에게 가까이 나아오게 하시되 곧 그가 택하신 자를 자기에게 가까이 나아오게 하시리니 이렇게 하라 너 고라와 네 모든 무리는 향로를 가져다가 내일 여호와 앞에서 그 향로에 불을 담고 그 위에 향을 두라 그 때에 여호와께서 택하신 자는 거룩하게 되리라 레위 자손들아 너희가 너무 분수에 지나치느니라
그래 그럼 내일 하나님 앞에서 증명해보자. 너희도 너무 나댄다.
그러면서 모세는 한마디를 더 합니다.
민수기 16:8–11 NKRV
모세가 또 고라에게 이르되 너희 레위 자손들아 들으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스라엘 회중에서 너희를 구별하여 자기에게 가까이 하게 하사 여호와의 성막에서 봉사하게 하시며 회중 앞에 서서 그들을 대신하여 섬기게 하심이 너희에게 작은 일이겠느냐 하나님이 너와 네 모든 형제 레위 자손으로 너와 함께 가까이 오게 하셨거늘 너희가 오히려 제사장의 직분을 구하느냐 이를 위하여 너와 너의 무리가 다 모여서 여호와를 거스르는도다 아론이 어떠한 사람이기에 너희가 그를 원망하느냐
한마디로 하면 너희 지금 하는 것도 분에 넘치는 일인데 더 할려고? 이런 것입니다.
그리고 모세는 고라와 함께 반역을 행한 다단과 아비람을 부릅니다. 그런데 그들은 뭐라고 하냐면, 너희가 지금 백성들을 속이고 왕이 되려고 하고 있다고 하면서 그 부름에 응답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모세와 아론이 어떤 심정일지 어느정도 이해가 되시나요? 아주 극대노한 상황일 것입니다.
아마 하나님도 모세와 다르지 않으셨겠죠. 자신이 세운 지도자를 따르지 않고 오히려 반역을 행하니 말이죠.
그래서 우리가 처음 읽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다 멸망시키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22절을 보면 모세와 아론이 뭐라고 하죠? 아이고 하나님 왜 일부가 죄지은 걸로 모두를 벌하려 하십니까.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놀랍습니다. 우리의 생각에서는 지나가는 말로라도 에휴 그래요 주님 그냥 저런 애들 확 없애버리고 새출발하시죠. 이럴 수 있을 것 같은데, 모세와 아론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죄 지은 자들만 벌해달라고 말하죠.
그러자 하나님은 그 말 그대로 백성들을 반역한 무리와 떼어놓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모세와 백성들은 그대로 행합니다.
그리고 모세는 반역자들 앞에서 선언합니다.
지금 벌어지는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이고 내가 임의로 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지금처럼 삶을 살아가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 아니겠지만,
만약 하나님께서 새 일을 행하셔서 땅이 그들과 그들의 모든 소유물을 삼켜서 지옥에 빠지게 하시면 이들이 하나님을 모욕했다는 걸 너희는 알 수 있을거야.
백성들이 좋아하는 시각적인 증거로 확인하고자 한 것이죠.
그런데 그 말을 마치자마자 어떻게 되었나요? 모세가 말한대로 땅이 갈라져 고라와 그의 모든 가족과 소유를 다 삼켜버립니다.
비유하자면 지진날 때 땅이 갈라지면 사람들이 빠지고 하는 것처럼 빠진 후에 다시 땅이 원래대로 돌아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고라와 함께했던 250명은 하나님의 불로 불살라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엄청난 심판을 내리시게 된 것이었죠.
여기까지가 바로 오늘 말씀을 통해 보았던 말씀의 내용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통해 불순종한 자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자들이 당하는 엄청난 심판의 결과를 바라보게 됩니다.
다시금 하나님이 정말로 무서운 분이시라는 것을 보게 된 것이죠.
하지만 우리가 오늘 바라보아야 할 것은 그게 아니죠. 왜 고라와 이들이 이렇게 엄청난 고난을 받아야 했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이들이 심판을 받은 원인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요? 우리가 시작하면서 말했던 바로 교만입니다.
이 반역자들의 리더였던 고라는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말씀에 나왔던 것처럼 하나님의 성막에서 봉사하는 사람이었어요.
아마 여러분들에게는 이것이 크게 와닿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막이란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어요.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아주 거룩한 장소였기 때문이죠.
비유하자면 지금 용산 대통령실 같은 느낌인거에요. 대통령실에 아무나 들어갈 수 있나요? 아니죠. 대통령이 있는 곳이기 때문에 검증된 사람들만 들어갈거에요.
성막 또한 그랬습니다. 하나님께서 레위인들만 택하셔서 아무나 들어올 수 없는 거룩한 성전에서 일하도록 하신 것이죠.
그러니까 레위인들의 위상이 어땠겠어요. 만약 제가 매 주일마다 대통령실 가서 설교한다고 하면 여러분들은 제가 대단해보이겠죠. 그런 것처럼 레위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서도 많은 존경을 받았을 거에요.
그러다보니까 이들의 콧날이 아주 높아지게 된 거에요. 우리는 귀한 일을 하는 귀한 사람들이야! 라고 생각을 하기 시작한 것이죠.
사람 마음에 참 죄가 많은게, 이렇게 누가 옆에서 막 높여주면, 감사해하고 만족을 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더 높은 자리로 가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의 고라도 그러한 마음이 생겨나게 됩니다. 아니 나 정도면 특별한 일을 하는 특별한 사람인데, 왜 같은 레위인인 아론만 성막 안에서 일하고, 우리는 바깥에서만 일하는 거지? 그리고, 모세 저 사람은 보니까 백성들 가나안에도 못들어가게 하고, 능력이 없는데, 차라리 우리가 하면 더 잘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그들 가운데 생겼던 것이죠. 그러한 잘못된 교만과 질투심은 결국 그들을 모세에 대한 반역이라는 죄의 결과로 이끌게 됩니다.
자 우리는 신약성경에서 이런 비슷한 사람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혹시 누구인지 아시겠어요? 그렇습니다. 바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 그리고 제사장들이 그랬죠.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존경을 받는 존재들이었어요. 말씀을 잘 알기도 했고, 사회 지도층으로서 백성들을 이끄는 사람들이기도 했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그렇게 높아지다보니 그들은 어떻게 되었죠? 교만해져서 자신들만이 최고이고, 자신들만이 하나님께 선택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방인들을 무시하고, 가난한 자들을 바라보지 않고, 결국 말씀이 예언했던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십자가에 못박는 큰 죄를 범하고 말죠.
이것이 바로 교만의 무서움입니다. 어쩌면 우리들의 마음속에도 이러한 마음들이 있을 수 있어요.
나는 원래 잘 하는 놈이다. 내가 하면 실패한 적이 없다. 결국 나만 하나님께서 택하셨다.
하지만 이런 교만은 절대로 하나님께서 원하시지 않는 모습입니다. 그러한 마음과 생각들은 결국 고라와 반역자들, 그리고 바리새인들처럼 스스로를 죄악의 길로 이끌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대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한다는 건가요? 용기를 가지라는 건가요 말라는 건가요?
우리는 그에 대한 답을 오늘 말씀에 등장하는 모세의 행동을 통해 바라볼 수 있습니다.
모세가 고라의 반역에 어떻게 대응했죠?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진짜가 누구냐고 말이죠.
우리 같으면, 내가 하나님께 택함 받은 사람이고, 지금까지 너희를 어떻게 이끌었고, 주저리주저리 막 설명하면서 싸울 것 같아요.
하지만 모세의 선택은 간단했습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이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이런 모습입니다. 하나님께 돌리는 것이죠.
우리의 삶에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나에게 어떤 좋은 일들이 생기고, 우리가 행하는 것들이 성공하게 된다면, 그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것입니다. 왜냐, 이것이 내가 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가능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나에게 좋지 않은 일들이 다가오고, 고난이 닥친다고 한다면, 그 모든 해결을 주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주님, 제게 이런 어려움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함께하신다면 우리가 이길 수 있게 하실 것임을 믿습니다.
이렇게 고백해야 한다는 것이죠.
연말이 되면 티비에서 여러가지 시상식들을 합니다. 그런데 그때 자주 듣게 되는 한가지 문장이 있습니다. 뭐죠? 바로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린다 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하도 들어가지고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사실 이 고백은 우리에게 중요한 고백입니다.
어찌보면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 순간인데, 그 순간을 내 것으로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게 하셨다라고 고백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그러면 마지막으로 우리 오늘 말씀을 한번 정리해볼까요? 오늘 고라의 반역과 그로 인한 심판의 장면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심판의 자리로 이끈 것이 뭐라고 했죠? 바로 교만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도 생길 수 있는 이러한 교만에서 벗어나고, 우리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돌리자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사실, 우리가 교만하지 않는 것, 겸손한 것은 쉽지 않습니다. 어떤 가수가 겸손은 힘들어라는 노래를 만들었던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사실 우리에게는 겸손할 수 있는 쉬운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감사하는 것이죠.
우리가 감사하지 못하고 불평을 갖게 되는 것은 결국 우리 안에 교만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정도인데 합당한 것을 받지 못한다는 생각인 것이죠.
우리가 겸손한 마음을 갖고 있다면, 또한 아까 우리가 말한 것처럼,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며 살아간다면, 우리는 당연히 감사할 수밖에 없어요.
어떤 것이 주어지더라도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이라면, 또한 행하실 것이라면 그 결과는 당연히 선할 것이고, 우리는 당연히 감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 모든 친구들이 이번 한주간을 살아가면서, 교만에서 벗어나 겸손함으로 하나님께 우리의 삶을 맡기며 감사함을 고백할 수 있는 우리 모든 친구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함께 찬양할까요? 함께할 찬양은 충만입니다. 우리 안에 주님만으로 만족하며 감사할 수 있는 고백을 함께 주님께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말씀을 놓고 기도합시다.
우리의 삶 속에 주님 함께해달라고
감사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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