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4월 4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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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dout
Handout
불편한 설교
불편한 설교
여러분 설교가 불편하게 들려온 적인 있는가?
예전에 제가 대학생때 채플에서 중국에과 북한에서 사역을 하는 한국계 미국선교사님이 오셔서 설교를 한적이 있습니다. 이 선교사님은 복음을 전하다가 중국에 공환에게 끌려가서 고문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정말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하신 분입니다. 그러고보니 말이 거칠었습니다.
선교사님은 중국에서 당한 일들, 그리고 1980년대 중국에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중국사람들은 아직 미계하고 가난하고 잔인하다는 말을 자주 사용하였습니다.
그런데 중국 그 자리에는 중국인 유학생들이 30명이 앉아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한국말을 잘 알아듣는 조선족학생이 강단으로 올라가서 중국인들을 비하하지 말라고 선교사님에게 말하였고, 중국이 유학생들은 모두 일어나서 욕을 하며 나갔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국인 유학생들을 앉혀놓고 이게 뭐하는 짓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선교사님이 참 미련했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10년도 훨씬 지난 이야기인데, 그 상황이 내 머리속에 계속해서 맴돕니다.
그런데 한번 생각본다.
과연 선교사님만 미련했을까?
선교사님은 준비한 설교를 다 끝마치지 못하고 예배는 끝이 났습니다. 중국유학생들이 소리를 지르며 선교사님을 향해 쓰레기를 던질 때, 선교사님은 이렇게 반복해서 말했습니다. 잠깐만요. “내 이야기 끝까지 들어봐야 합니다.”
그러던 중 중국인 유학생들은 다 채플을 나가 버렸고, 교직원이 와서 설교를 중단시켰고, 총장은 많은 학생들 앞에서 사과를 하고 그날의 해프닝은 기독교대학의 수치스러운 사건으로 신문에 나왔습니다.
결국 그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선교사님 이야기를 끝까지 이야기를 못들 었습니다.
만약에 그들이 설교를 끝까지 다 들었었더라면,
만약에 당시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인내심을 가지고 선교사님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었으면 어떠한 결과가 있었을지 한번 생각해봅니다. 제가 그 선교사님의 입장에서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성령께서 앉아 있는 학생들에게 역사하셔서 마치 에즈베리대학에서 부흥운동이 일어나듯이 마음에 변화가 있었더라면 참 좋았겠다. 어떠한 변화가 일어 났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중국 유학생들이 은혜를 받아서 처음으로 듣는 복음에 감동을 받아서 자신들의 나라로 돌아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힘은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억압하려 할지라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 것 처럼 그러한 역사가 일어 났으면 얼만 좋았을까요?
기도
본문분석
본문분석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을 보면, 결과적으로 회개하고 세례를 받은 사람이 3000명이 이라고 말합니다.성령이 베드로에게 임했을 때 이러한 놀라운 사건이 일어난 것 입니다.
성경을 묵상하면서 이러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에 한번의 설교로 3000명이 전도된다면, 이걸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그리고 하루에 3000명이 모인 다는게 가능할까? 장소가 좋았을까?
그런데 성령받은 베드로가 설교할 때, 많은 사람들이 모인곳으로 찾아가지 않았습니다.
14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서서 소리를 높여 이르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사도행전 2:14 (NKRV)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서서 소리를 높여 이르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성령받은 자들의 복음의 선포는 11명이서 시작하였습니다. 12명도 아니였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있는 곳에 찾아 간 것이 아니라. 소리높여 외치는 선포에 사람들이 말을 기울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였습니다. 말을 잘하는 사람들 주변에는 사람이 모입니다. 왜 그럴까요? 재미있으니까
그런데 베드로를 포함한 12사도의 선포는 재미있는 이야야기 아니였습니다.
2장의 내용을 잘 읽어보면,
“선지자 요엘의 예언이 지금 이루어 졌고,
너희 들은 이스라엘의 왕 다윗이 가장 위대하다고 보지만, 다윗은 이미 죽어서 그무덤이 우리에게 있다. 그러나 예수는 죽지 않고 부활하셨다.
그리고 성령으로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시며
그리스도를 거부한 원수들이 우리 발에 굴복할 때 까지 우리 오른편에 않아 계실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아는 , 너희가 죽인 예수이다”
유대인들을 불편하게 했던 두가지
우리가 듣기에는 괜찮지만, 이스라엘사람 유대인들이 듣기에는 불편한 내용입니다.
두가지의 내용이 유대인들을 불편하게 합니다.
이스라엘의 왕 다윗을 모독했다.
“다윗은 이스라엘에 가장 존경받은 왕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그들이 존경하는 다윗왕보다 권위 있음을 말합니다. (다윗은 죽어서 무덤에 있는데 예수님은 무덤에서 일어나 살아나셨다.
2.메시아를 모독하고 메시아 신앙을 모독했다.
유대인들이 기다리는 메시아를 그들의 손으로 죽였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아직도 메시아를 기다립니다. 그리고 메시아는 그들에게 있어서 구원과 해방을 주는 그런 위대하고 거룩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메시아가 이미 왔는데 그들이 죽였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있는 유대인들은 베드로의 설교가 상당히 불편했습니다.
그것에 대한 핵심적인 내용입니다.
사도행전 2:36 (NKRV)
36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너희가 십작에 못박은 예수는 그리스도다”
-이 말씀은 우리는 쉽게 말하지만, 유대인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거슬리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귀에 거슬리는 이 베드로의 설교가 사람들의 마음에 다가 왔을대 성경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하죠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사도행전 2:37–38, NKRV)
설교를 듣는자들에게 마음의 찔림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영어 성경에 보면 이렇게 말합니다. they were cut to heart
마음의 깊은 찔림은 마음이 괭장이 불편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찔림은 성령이 주시는 찔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찔림속에서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우리가 어찌할꼬” - 거기서 부터 하나님의 구원이 그들에게 임하게 됩니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였습니다.
성경에 보면, 이와 비슷한 경우가 하나가 더 있습니다.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 세례요한 회개를 선포할때에 그것은 듣은 사람들은
자신의 죄를 자복하며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바리세인들과 서기관들도 세레를 받았습니다.
여기서 “자복”하다 라는 말은 헬라어로 ἐξομολογέω 에크 소몰로게오라고 합니다
ἐξομολογέω 자백하다. 진술하다. 고백하다
라고 합니다. 이것은 에크- 밖으로 소몰레오 - 고백하다. 라고 합니다.
세례요한의 선포 또한 당시에 유대교의 신앙을 가진 자들에게 불편했을 겁니다.
찔림이 일어 낫습니다. 마음의 균열 creek이 생긴겁니다.
그런데, 복음의 능력은 그 균열을 더 크게 만들어서 속에 있는 것을 쏟아 놓게 했습니다. 그리고 자시속에 있는 더러운 것을 온전히 비우고 성령으로 그들의 마음을 채웠습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능력입니다.
이와 반대로 행6을 보면 스데반이 공회에서 설교합니다.
그런데 스데반이 설교했을때 유대인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행6:54 에 보면 말합니다.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사도행전 7:54, NKRV)
그들에게도 마음의 찔림이 왔습니다.
그런데 균열이 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들의 균열을 된 마음을 깨고자한 성령의 인도하심을 거부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불편함을 분노로 표출했습니다.
그래서 스데반을 죽였습니다. 그리고 많은 기독교인은 흩어졌고 교회가 해산되었습니다.
그런데 죽는 순간에도 예수님처럼 자신에게 돌을 던지는 사람을 향하여서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말라고 고백하는 것을 목격한것을 다메섹으로 향하려는 사울이었습니다.
그의 마음에도 균열이 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그를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은 그를 만나주시고 그의 마음에 있는 모든 죄악을 토해 내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듣거나 사람과의 관계 성도와의 교제 속에서
마음의 균열이 갈때가 있습니다. 즉 실망하거나, 나를 표적으로 이야기 한다 라는 생각이 들때가 있습니다.
말씀을 들을때, 말씀을 읽을때, 우리의 삶에 어려운 문제를 만날때 그렇습니다.
저도 교우분들과 교제하고 대화할때, 마음의 찔림이 있을때가 있습니다. (자전거)
성경공부시간에
맞는 말씀을 하실때, 그런데 그때 목사라는 권위때문에 마음이 불편할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돌아보면, 그말이 맞을때도 있습니다.
그때 깨닫습니다. 성령을 통해서 나의 마음을 찟으셨구나 회개가 나오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 심판에 대한 이야기를 말씀 하십니다.
그런데 그 심판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찔림을 느끼고 경험해야만 합니다.
Lutheran Service Book Three Year Lectionary 4-23-2023: Third Sunday of Easter
Luke 24:13–3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