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칠언, 그리고 십자가] 십자가를 만나다(요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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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일시 : 2023년 4월 23일 주일 청년부
시리즈 : 가상칠언, 그리고 십자가
제목 : 십자가를 만나다
본문 : 요한복음 19장 30절 *신182
결단찬양 : 그 사랑
[윤동주 시인의 십자가]
십자가를 병적으로 좋아하는 저에게 있어, 오늘의 제목처럼 ‘십자가를 만나는 일’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물론 제게만 국한된 것은 아닙니다. 이 십자가는 이곳에 앉아 있는 우리 모두에게 있어 분명 중요한 사실입니다.
그러다보니 오늘로써 이 가상칠언의 시리즈가 끝맺음 한다는 사실에 아쉬움이 너무 크게 남습니다. 매주 가상칠언의 발자취를 함께 나누며, 조금 더 쉽게, 조금 더 임팩트 있게 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함에 늘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십자가를 가지고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가능한 쏟아 내어 보려 합니다.
먼저, 이 시를 읽어 드리며, 설교의 포문을 열어보려 합니다. 너무나 잘 아는 시인, 윤동주 시인이 쓴 십자가 라는 시입니다.
“
쫓아오던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첨탑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종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
물론 이 시의 배경은 종교적 의미보다 광복을 위한 고귀한 희생이 주되기는 하나, 저는 이 시를 접하며 마음에 크게 동요되었던 구절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 였습니다.
너무나 역설적인 이 두 단어가 저는 오늘 본문이랑 너무나 잘 어울린다 생각했습니다. 괴로우나 행복했던, 죽음이나 기쁨이었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무엇보다 오늘 본문인 ‘다 이루었다’는 말씀이 그 의미를 너무나 잘 담아내고 있었음을 보게 됩니다.
[테텔레스타이 : 영생을 주시다]
본문은 ‘테텔레스타이’라는 원어를 사용해, 다 이루었음을 선포합니다. 이 ‘다 이루었다’는 단순히 숙제나 과제를 다 마치고, ‘아~ 끝났다.’ 정도의 수준이 아닙니다. 오늘 하루의 모든 일들을 마치고, 퇴근하는 정도의 수준도 아닙니다. 여기서의 다 이루었음은 그 이상의 것임을 우리는 알고 오늘의 본문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다 이루신 내용은 무엇입니까? 요한복음 4장 34절을 보니 이렇게 기록하는데,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여기서도 동일하게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라 말합니다. 요한복음 4장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습니까? 바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난 예수님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곳에서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 ‘영원히 목 마르지 않는 생수’를 말씀하시며, ‘생명의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그러니 이 여인이 어찌됩니까? 그녀가 그 생수를 받아들이며 영생을 얻게 되지 않습니까? 또 그 여인 앞에 주님 또한 자신이 그리스도임을 나타내시며, 자신이 해야 할 사명이 무엇인지를 언급합니다. 그 사명이 무엇입니까? 바로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시는 일 입니다.
그럼 오늘 본문으로 돌아와 주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테텔레스타이’ 다 이루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생명을 주시는 일’ 아니겠습니까? 다시 말해, 이는 곧 ‘영생’을 얻도록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십자가를 통해 : 속죄, 곧 영생을 얻게 함]
그러나 이 영생의 성취가 어디서 이루어집니까? 십자가 위에서 이루어 집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속죄의 관점에서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이 속죄를 통한 영생의 성취는 십자가 위에서 첫 등장이 아닙니다. 요한복음은 첫 시작부터 속죄의 관점을 가지고 옵니다. 요한복음 1장 29절을 보니 이렇게 기록합니다.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세례 요한은 메시아로서 오신 예수님의 사역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았습니다. 그가 우리의 모든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심을 통해 영생을 얻도록 하실, 속죄를 통해 우리게 생명을 허락하실 분임을 말입니다.
그는 저번 주 우리가 나누었던 내용처럼, 어린 양으로 오셔서, 어린 양으로서 성취하셨고, 어린 양으로서 십자가 위에 달려 계셨으며, 또 오늘 본문 이후에 나오는 내용을 통해, 주는 여전히 어린 양으로써의 임무를 감당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요한복음 19장 31절부터 33절까지의 말씀을 보니 이렇게 기록합니다. “이날은 준비일이라 유대인들은 그 안식일이 큰 날이므로 그 안식일에 시체들을 십자가에 두지 아니하려 하여 빌라도에게 그들의 다리를 꺾어 시체를 치워 달라 하니 / 군인들이 가서 예수와 함께 못 박힌 첫째 사람과 또 그 다른 사람의 다리를 꺾고 / 예수께 이르러서는 이미 죽으신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
십자가에 달려 죽은 세 사람. 예수님과 그리고 좌우로 함께 한 강도들. 그러나 이들에게 대하는 로마 군인들의 다른 반응들을 방금 읽은 구절로 보게 됩니다.
강도들을 향해 이들이 어찌합니까? 다리를 꺾어 뼈를 부러트립니다. 이는 당시 문화 중, 죽었는가 확인도 있지만, 혹여나 살았거든 확실히 죽이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향해 이들은 어찌합니까? 이미 죽음을 알았기에 뼈를 부러트리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이는 곧 출애굽기에 나온 유월절 규례의 성취였습니다. 출애굽기 12장 46절을 보면, 이 구절을 포함한 본문의 소제목이 곧 ‘유월절 규례’ 였음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46절에 이렇게 기록함을 볼 수 있습니다. “한 집에서 먹되 그 고기를 조금도 집 밖으로 내지 말고 뼈도 꺾지 말지며”
요한은 이 구절을 근거로 십자가의 속죄를, 예언의 성취로 보았습니다. 유월절 어린양은 출애굽 때 이스라엘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당했고,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유월절 어린양과 같이 자기 백성을 대신해 심판을 받으셨고, 자기 백성의 구원을 위해 죽임을 당했습니다.
주님은 그저 우리의 죄 용서를 위해 대신 심판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오직 예수님의 인생 목표였을 뿐입니다.
[십자가를 통해 : 새 창조를 위한 십자가, 생명]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곧 우리에게 새 삶을 허락하기 위한 죽음이라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즉 예수님의 십자가는 새 창조를 위한 죽음이었습니다.
창조의 핵심은 생명입니다. 창세기의 말씀을 보며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생명을 허락하셨지 죽음 가운데 이들을 내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생명이라는 귀한 선물을 받았으나 죽음 가운데 걷게 됩니다. 왜요? 죄 때문입니다. 우리의 죄가 생명을 파괴했고, 죽음에 이르도록 했습니다. 우리는 사탄의 유혹을 끝내 이기지 못해 주님을 배반하고 거역하는 크나 큰 죄를 범했습니다.
그렇게 죽음을 눈 앞에 두며 하루, 하루를 살아가야 하는 죄인이었으나 하나님은 우리게 희망을 주셨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절망스런 죽음의 세계에 보내주신 것 아니겠습니까?
첫 창조의 가장 큰 핵심이었던 '생명'은, 새 창조에 와서도 가장 큰 핵심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이러한 모습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과 또 그 위에서 주께서 말씀하신, 테텔레스타이 '다 이루었다'는 외침은 곧 우리게 '생명'이 허락되었음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사랑으로부터 나온다]
이제 7주라는 시간동안 함께 동거동락한 이 십자가의 끝자락을 걷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 십자가의 동력을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며, 가상칠언 시리즈를 마무리 하려 합니다.
1. 십자가에 달리셔 외치셨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2. 자신들을 향해 조롱하는 로마군인들을 향해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3. 한 강도를 향해 외치신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4. 숨지기 전 마지막 힘을 내 외치신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5. 자신의 어머니 마리아와 사랑하는 제자 요한이 함께 있음을 보며,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보라 네 어머니라'
6. 모든 것을 쏟아 내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시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그리고 오늘의 마지막 구절인
7. 테텔레스타이, '다 이루었다'
고통과 고난 그리고 승리와 선포, 이 십자가의 원동력은 어디서 온겁니까?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이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했습니다.
예수님의 새 창조 사역을 관통하는 핵심 동기는 끝내 사랑이었고, 예수님은 사랑 때문에 세상에 오셨고, 사랑으로 세상에 머무시며, 사랑을 위해 세상을 떠난, 어쩌면 이 시대 가장 아름다운 로맨티스트 아니겠습니까?
그는 죽음으로 자신의 사랑을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그 사랑을 따라 순교의 길로 걸어갑니다. 십자가의 고통과 고난을 보았음에도 그것에 그치는 것이 아닌, 십자가 넘어 승리와 선포를 보며 그 길을 걸어갑니다.
[결론]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저는 여러분들과 예수를 나누며 고통스럽고 고난의 길을 걷고싶지 않습니다. 이 교회에 있음이 늘 재밌길 바라며 무엇보다 예수를 나누는 것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또 십자가를 닮아가며 따라감이 역경이 되는 것이 아니라, 승리로써 기쁨이자 행복이길 소망합니다.
[기도제목]
Ⅰ 잠깐의 십자가가 아닌 내 삶의 십자가를 매일 묵상하는 우리 되게 하소서
Ⅱ 십자가의 사랑으로 힙 입은 우리, 서로를 더욱 사랑하며 살아가는 우리 되게 하소서
[찬양 후 기도제목]
Ⅲ 십자가 위에 세워지는 공동체, 서로를 사랑함이 말뿐아닌 실천하는 공동체 되게 하소서
[축도]
지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크고 놀라우신 사랑과
성령 하나님의 감동 감화 역사 임재 충만하심이
십자가를 날마다 노래하며, 십자가로 살아가겠노라 다짐한 자들과
십자가의 사랑을 입음에 감사하며, 그 사랑 다른 이들에게 실천하겠노라 결단한 자들 머리 머리 위에
지금부터 영원무궁토록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