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데스다의 표적2 (요5: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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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주의 세계관을 붕괴시키는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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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데스다의 표적2 (요5:9~18)
지난주 나오셨던 분들의 환영과 감사. 신앙을 가질 수 있기 권면. 등록카드 작성. 새가족들이 참여 해주셔서 감사. 베데스다 연못에서 일으키신 표적사건. 세 번째 표적은 유대인들과 갈등의 불씨가 된 표적,
[신화적 세계관 붕괴]
베데스다 연못은 간헐천이었고 행각이라는 쉼터에 여러 병자들이 즐비. 지배하던 신화적 세계관이 있었음. 누구든지 먼저 들어가는 사람은 무슨 병이든 낫는다는 신화가 지배하는 장소. 경쟁과 속도. 38년된 병자에게 찾아오셔서 경쟁과 속도라는 신화적 세계를 무너뜨리시는 이야기. 38년된 병자로 상징되는 대중들에게 주는 의미가 오늘날 우리에게도 적용. 속도와 경쟁의 신화에서 벗어나야 함.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속도와 경쟁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일어나게 걸어가게 한다. 그리고 14절에 이 사람을 예수님이 성전에서 다시 만났음. 어디로 간 것인가? 성전. 누구를 만났나? 자신을 찾아오신 예수. 회복-성전-예수 이것이 이 사람의 병을 고치신 목적.
14절에 보면 “네가 회복되었으니 다시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도록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38년 전에 이 사람이 죄를 지어서 이런 병을 얻었는데 다시 죄를 범하지 말라로 해석하면 안됨. 38년 전 죄를 다시 범치 말라는 것이 아니라 38년 동안이나 계속 죄를 범해왔는데 다시 죄를 범치 말라는 뜻. 누워만 있던 사람이 무슨 죄? 타인과 환경을 원망하면서 더욱 경쟁에 집착하는 죄를 38년 내내 짓고 있었던 것. 다시는 돌아가지 말라. 돈 없는 사람이 돈에 더 집착, 외모에 자신이 없는 사람이 성형 후 더 심한 악플, 뼈저리는 아픔이 있었기 때문에. 경쟁에서 탈락한 사람은 이긴 사람보더 더욱 경쟁에 집착하고 노예가 됨. 성적에 관대하지 못한 트라우마. 이것을 하지 말라는 것.
[잘못된 사회가치 붕괴]
오늘 본문에는 이들을 지배하고 있던 바리새인들에 대하여 주는 의미가 숨어 있음. 9절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이 사람이 일어나기만 했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것.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셨고 그대로 이루여져서 들고 걸어갔는데 공교롭게도 이날은 안식일.
종교지도자들의 안식일 규례에 저촉되는 것 시비. 10절 유대인들이 병 나은 사람에게 이르되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 11절 대답하되 나를 낫게 한 그가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더라 하니 그러나 이 사람은 자기를 회복시킨 사람이 누구인지 모름. 예수님은 그 자리를 이미 피하신 후(12-13절).
왜 들고 걸어가라고 말씀하셨을까? 안식일. 민중들의 신화적 세계관을 붕괴시키는 동시에 종교기득권들을 중심으로 시대 전체를 지배하던 절대적 가치 율법이라는 지배 이데올로기, 절대화된 시대정신을 동시에 붕괴시키시는 것. 베데스다 연못에서 예수님의 눈에 보인 것은 가난하고 힘없는 백성들에게는 이들을 지배하던 경쟁과 속도라는 거짓 세계관에 노예, 시대를 지배하던 거대한 절대가치와 시대정신, 신념 체계가 있었는데 그것이 율법. 안식일 규정. 이것을 베데스다 연못에서 부수기로 작정하신 것. (Ex)영도 고갈산. 이사 못감. 밤 이사. 달마도 제거 못함. 신화적 세계관의 노예. 서울에 강남/대치동 이사 못감. 부와 학벌이라는 욕망과 허영이라는 시대의 절대적 가치 노예. 이 두 가지를 깨지 않고서 하나님 나라는 들어오지 못함.
절대적 신념의 악마성. 38년된 병자가 회복된 것에 대한 감격, 인간에 대한 감격은 사라지고 안식일이 침해받았다는 것에 분노. 회당중심 교인들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안식일에서 나옴. 이데올로기와 신념이 절대화되었을 때 악마가 됨.
가롯유다베드로. 가롯유다가 떡 조각을 받은 후 곧 사탄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 증상 없었음. 정치적 메시아가 아님을 직감하고 정돈이 끝난 것. 절대적 신념으로 죽인 것. 베드로 가이샤라 빌립보 수난과 죽음을 듣고 예수님을 꾸짖음. 열심당적 확신. 전쟁해야 할 장군이 어디 약한 소리를 하나? “사탄아 물러가라” 말씀보다 더 강해진 우리의 신념과 악한 시대정신이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게 함. “~이래야 한다.” 조심하라. (EX) 신혼 아침밥으로 싸운 일. 경험의 절대화가 가정을 깬다.
종교 지배 체제가 가지는 율법의 최고 강조점은 안식일 규정이므로 동시에 예수님이 신화의 세계관과 율법 이데올로기를 부수면서 이 땅에 들어오심.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방식으로 우리에게 드어오는가? 우리를 노예로 묶고 있는 잘못된 미신적 세계관과 이 세상의 절대적 가치를 붕괴시키면서 하나님의 나라가 들어옴. 그래서 예수를 만난 사람은 38년된 병자가 회복된 것처럼 이 굴레에서 벗어남. 고후3: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건물이 물에 잠겼던 경험. 우리교회가 물에 잠겨서 옆에 더 낮은 지역의 사람들이 피해를 덜 봤다. 감사. 경제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난 깨달음. 성장/속도/물량 경제성의 가치를 초월하는 교회. 이 세상의 절대화된 신념과 가치를 초월하는 세계가 있다. 예수를 통해서 시작된 하나님 나라.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마음속에 들어오고 예수가 나의 삶의 주인이 되면 나를 붙잡고 있는 신화적 세계관에서 벗어남. 이 땅에 절대적 가치라고 생각되는 것들이 상대화된다. 그러면 초월하게 된다.
목사님은 왜 돈에 욕심이 없습니까? 욕심이 없는게 아님. 그러나 더 벌려고 하지 않는다. 성직자라서? 무소유? 성향이 돈에 관심없어서? 그렇게 보여야 하니까? 아니다. 더 가지면 지금의 행복이 깨질까봐. 더 필요하지 않다. 부족하기 때문에, 약하기 때문에 주시는 은혜가 있다. 더 깊이 대화, 자전거 못사줘서 울었다는 목사님. 기도함, 안쓰러움. 서로를 불쌍히 여김. 돈으로 해주면 되는데 돈으로 못해주니까 깊어지는 것. 하나님의 나라가 시대의 절대가치와 절대 신념들을 붕괴시키면서 들어온다.
예수를 받으들인다는 것은 내 안에 절대화된 가치가 깨지고 새로운 말씀의 가치가 들어온다. 그러면서 나를 가두는 세상이 깨지는 것. 그래서 잠못드는 분노가 아무것도 아닌게 된다. 이 세상의 가치가 상대화 된다. 원수도 상대화 된다. 생각해보면 불쌍하다.나의 세계가 무너질 때 비로소 보이는 세상을 경험하고 체험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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