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목자되신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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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같이 묵도하심으로 예배드리겠습니다.
사도신경으로 우리의 신앙을 고백합니다.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찬송가 569장, 통일찬송가 442장
‘선한 목자되신 우리 주’ 찬양하시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요한복음 10장 1~10절 말씀입니다.
함께 합독하여 읽겠습니다.
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문을 통하여 양의 우리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2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의 목자라
3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4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5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6 예수께서 이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셨으나 그들은 그가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니라
7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8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9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10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이시간 드려진 예물을 위해서 기도드리겠습니다.
좋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새벽에 나아와 하루를 시작하며
말씀앞에 서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시간 하늘로부터 오는 신령한 은혜를 사모합니다.
성령의 임재를 충만하게 부어주셔서 능력으로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오장육부, 관절, 골수, 마디, 세포마다 성령의 기름부으심으로
회복되어 다시 살아나고, 강건해지는
놀라운 역사를 경험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연약함, 피곤함, 아픔과 질병, 고통과 고난, 어려움 속에 있는
상황과 환경 모두 떠나가게 하여주시고,
그 마음 가운데 모든 염려, 근심, 걱정, 불안, 두려움
사라지게 하여 주시고,
인생의 무거운 짐들이 가벼워지도록 주님의 평안을 내려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오늘도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주의 말씀으로 사는 것임을 다시 확인하고,
결단하는 복된 시간 되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앞에 나오며, 받은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과
주실 은혜를 사모하는 심령으로 귀한 예물 드리는 손길들 있습니다.
감사헌금, 일천번제, 00헌금, 00헌금을 올리오니
받으시고, 만복을 내려 주시옵소서.
더욱 드릴 것이 넘치게하여 주시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성령의 지혜로 깨닫게하시고,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갈 수 있는 능력과 믿음의 담대함도 부어주소서.
이 모든 말씀을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할렐루야~ 우리 앞뒤 옆사람들과 인사합시다.
잘 오셨습니다. 큰 은혜 받으세요. 축복합니다. 사랑합니다.
오늘은 요한복음 10장 말씀을 살펴보며
‘선한 목자되신 예수님’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다윗은 시편 23편 1절에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사람 사이의 관계를 목자와 그 양 떼에 견주어 비교하는 것은
중동 지방의 일반적인 관습이었습니다.
왕과 제사장들은 자신을 목자로, 그 백성들을 양으로 불렀습니다.
성경 역시 이같은 비유가 많이 등장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예수님께서 양과 목자의 비유를 사용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단순히 목자와 양의 비유를 사용한 것에서 나아가,
당시의 상황과 연관하여 새롭게 발전시켜 의미를 부여함으로
우리에게 큰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앞장에서 영적으로 장님이었던 바리새인들을 질책하셨습니다.
그들은 거짓 목자였습니다.
반대로, 거짓된 종교 지도자들과 달리 예수님은 선한 목자가 되십니다.
그 모습을 바로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참된 목자, 선한 목자의 모습은 어떠한지
함께 말씀을 살펴보며 큰 은혜의 깨달음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째, 예수님은 양의 문이 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목자와 양의 비유를 하시며
자신이 선한 목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자신을 ‘양의 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선한 목자’는 사람이고, ‘양의 문’은 물질입니다.
그래서 얼핏 보기엔 ‘양의 문’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선한 목자’와는 거리가 멀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 반대입니다.
도리어 예수님께서는 그 뜻을 더욱 심화, 발전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당시의 목축 풍습을 살펴보면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는
종종 양과 목자가 빈 들에서 밤을 지샐 경우가 있습니다.
이럴 경우, 목자는 양의 우리를 돌담으로 둘러쌓고,
문을 따로 만들지 않습니다.
그 대신 자신이 직접 우리의 출입구에 야숙하며 문 역할을 하였습니다.
양의 출입을 자신이 직접 통제하고,
양의 동태를 세밀히 관찰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목자를 통하지 않고는,
양은 물론이거니와 어느 누구도 양 우리에 출입할 수 없었습니다.
양에게 있어서는 목자가 곧 생명과 안전의 유일한 통로였던 것입니다.
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이 말씀이 바로 예수님이 양의 문이 되신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와 동일한 맥락에서 베드로는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자신을 구세주로 자처하거나
복음 이외에 다른 것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고 가르치는 자는
불법을 행하는 자가 됩니다.
자신을 메시아라 자처하며 구원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흔히 이단이라고 말하죠.
신학교에서도 잘못된 가르침으로 복음을 상대적인 진리로 격하시키고,
예수님 외에도 다른 것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신학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성경에 어긋나는 진리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반하는 주장입니다.
생명과 진리의 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뿐입니다.
이것이 확실히 세워지지 않는 한 우리의 믿음은
헛 것일 수 밖에 없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둘째, 예수님은 양의 이름을 부르십니다.
선한 목자는 삯꾼 목자와 달리 자기의 양들을 깊이 알며
그들 각각에게 개인적인 관심을 기울입니다.
3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이름을 안다는 것은 목자가 양을 자신의 소유로, 가족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팔레스타인 지방에서는 한 우리에 여러 주인이
자기의 양들을 넣어두곤 하였습니다.
그럴 경우, 목자는 자기 양들에게 이름을 붙여 주어
다른 목자의 양과 구별하였습니다.
우리나라도 요즘 반려동물을 많이 키웁니다.
반려동물과 산책을 하다보면,
다른 동물들과 섞이게 되는 경우가 많이 생깁니다.
그 때, 자신의 반려동물에게 이름을 불렀을 때,
그 이름을 듣고 얼마나 빠르게 반응하는가를 보고
서로의 유대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반려동물에게 이름을 붙일 때, 단순하게 붙였습니다.
잘 뛰면, 발발이. 얼룩덜룩하면, 바둑이. 조용하면, 나비.
그런데 요즘은 반려동물의 이름도 사람이름처럼
매우 의미있고, 다양하게 짓습니다.
심지어 발발이도 그냥 발발이가 아닙니다.
(김)발발이, (이)바둑, (박)나비. 주인의 성까지 붙여서 부릅니다.
그만큼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받아들인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우리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심은
우리를 친밀하게 아시고, 우리를 하나님 나라의 백성,
가족으로 삼아주셨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일찍이 모세에게도 말씀하셨습니다.
출애굽기 33:12 (NKRV)
12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보시옵소서 주께서 내게 이 백성을 인도하여 올라가라 하시면서 나와 함께 보낼 자를 내게 지시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나는 이름으로도 너를 알고 너도 내 앞에 은총을 입었다 하셨사온즉
하나님께서 모세의 이름을 안다고 말씀하십니다.
단순히 ‘모세’라는 이름 두자를 아신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친밀하게, 아주 잘 안다는 뜻입니다.
또한 다윗은 시편 31편 7절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고백했습니다.
시편 31:7 (NKRV)
7 내가 주의 인자하심을 기뻐하며 즐거워할 것은 주께서 나의 고난을 보시고 환난 중에 있는 내 영혼을 아셨으며
우리 주님은 우리의 머리털까지 세십니다. (마 10:30)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내가 먼저 구하기 전에 알고 계십니다. (마 6:8)
이렇듯, 우리 주님은 자기 양에 대해 모든 것을
세심하고, 총체적으로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을 신뢰할 때,
제아무리 현실이 고통스럽고, 불합리한 일을 당해도 절망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주님께서 나의 모든 것을 아신다고 말씀하시며,
주님의 손길을 나에게 뻗으시며 기다리시는
위로를 경험하게 될 줄 믿습니다.
셋째, 예수님은 앞서가며 양들을 인도하십니다.
목자는 양의 뒤에서 양을 몰아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선한 목자 되신 예수님은 앞장서서 양들을 인도하십니다.
4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이렇게 목자가 앞장서서 양들을 인도하면, 어떤 유익이 있을까요?
양들은 앞에서 다가오는 맹수들의 습격이나 지형적 위험을
쉽게 피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단순히 우리 인생의 뒷편에 서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명령만 하시는 분은 아니십니다.
자신이 친히 바르고 정직한 삶을 살아가시며
우리에게 본을 보이신 분이십니다.
누구보다도 먼저 제자의 발을 씻기시고,
십자가의 고통마저도 마다하지 않는 삶을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면에서 몸소 앞서가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나를 쫓으라”고 말씀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이스라엘의 구원 역사를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하는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모세를 보내셔서
앞장서서 길을 인도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광야에서 앞장서 인도하셨습니다.
단지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바라보고 나아가기만 하면 되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서울제일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의 신앙도 출애굽했던 이스라엘 백성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앞서서 고난과 역경의 삶을 헤쳐 나가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를 인도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단지 예수님의 삶을 바라보며,
그분을 닮아가기 위해 그 걸음을 쫓기만 하면 됩니다.
예수님께서 ‘등불’이 되시기 때문에, 그분을 찾아 따르기만 하면
우리의 삶은 복되고 안전한 삶이 될 줄 믿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필요와 상황,
우리의 고난과 처지를 다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영혼이 선한 목자되신 우리 주님 안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합니다.
오늘도 선한 목자되신 주님을 온전히 신뢰함으로
주 안에서 평안을 누리며 승리하시는
기쁘고 복된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오늘 들은 말씀을 기억하며, 양의 문이 되신 주님,
내가 주님만을 바라봅니다.
다른 구원, 다른 진리는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께만 집중하며
다른 유혹에 마음 뺏기지 않게 지켜주시옵소서
나의 이름을 아시는 주님, 나의 모든 필요와 어려움을 다 아시는 주님께
나의 연약함을 토로합시다. 그리고 간구하세요.
주님께서 다 듣고 계십니다.
그리고 앞서가시는 주님을 의지하십시오.
주님을 따라가십시오. 그렇게 주님을 닮아가기 원합니다.
나를 거룩한 길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다함께 주님의 이름을 크게 부르시며
합심하여 기도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