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를 온전히 이루리라 (야고보서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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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s
Transcript
“인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인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오늘도 하나님 말씀으로 채워지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오늘 수요일까지 사시느라 애쓰셨습니다.
갑자기 이렇게 말씀드리니 당황스러우시지요?
그런데 여러분 정말 애쓰셨고요, 잘하셨습니다.
제가 여러분들의 삶을 다 알지는 못하지만
여러분들은 지난 주일에 말씀을 듣고 그 말씀으로 살아오셨고,
하루하루 각자의 삶 가운데 최선을 다해서 사셨습니다.
물론 스스로에게는 부족하다고 느낄 수 있고,
아쉬움이 있을 수 있지만,
여전히 이렇게 함께 예배할 수 있고,
우리가 서로 다시 만나며 새로운 시작을 위해 모인 것을 보면,
여러분들은 최선을 다하셨고,
참으로 애쓰셨습니다.
이렇게 살아가는데 여러분들에게 무엇이 가장 힘이 되었습니까?
맞습니다. 요즘 흔히 말하는 답이 정해져 있는 질문을 한거 같은데요.
하나님이 가장 힘이되셨길 소망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가장 힘이 되셨길 소망합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힘이고 소망이었던 것이죠.
그렇게 살아보니 벌써 수요일이 되었습니다.
다시 생각해보면요,
이렇게 우리가 오늘이 되기만을 기다리며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하죠?
주일에 저를 만나신 분들은,
물론 제가 낯도 가리고 그래서 개인적으로 인사하고 그러지 못하셨지만,
저를 만나기 위해서 수요일까지 어떻게 기다리셨습니까?
맞습니다.
인내해야 합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어야 오늘 수요일을 맞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인내라는 부분이 참 많은 부분에서 연결되는 것을 봅니다.
사람들마다 차이는 있지만,
인내해야 하는 것을 깨닫는 사람들도 있지만,
인내를 깨달아도 그것이 실제로 우리 가운데 지켜지기까지는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네 맞아요. 오늘 제목입니다.
조금 억지로 맞춰봤는데요.
“인내를 온전히 이루리라"
여러분들이 저를 만나기 위해서 인내를 온전히 이룬 시간들을 돌이켜보면서,
물론 대부분은 어쩌다가 교회 와보니 저를 통해 말씀을 살펴보는 분들이 대부분이겠지만,
그래도 오늘 저와 함께 살펴볼 야고보서 말씀을 통해서 (수요 예배를 기대하는 마음에서 왔으니)
하나님은 우리의 삶 가운데 어떻게 인내하며 살길 원하시는지 살펴보길 소망합니다.
야고보서는 예수님의 형제가 되는 야고보가 썼습니다.
유대인들의 핍박으로 그 당시 예수님을 따랐던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예루살렘 밖으로 많이 흩어졌습니다.
그렇게 나그네 삶을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에게 편지를 쓴 서신서입니다.
자신들의 살았던 고향을 떠나 난민이 되어 온갖 역경과 시험을 당하고 있는 성도들에게 쓴 야고보의 격려 형식을 띤 편지입니다.
1절부터 살펴보겠습니다.
1절에서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두지파에게 문안하노라"
야고보는 이 서신서에서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라고 소개합니다.
서두에 제가 말씀 드렸드시 예수님의 형제가 되는 야고보입니다.
어쩌면 예수님과 어깨동무하며 함께 자라온 야고보이기도 합니다.
물론 함께 자란다고해서 야고보의 신앙이 처음부터 성장해온 것은 아닙니다.
요한복음7 에 보면 그 형제들까지도 예수를 믿지 않았다고 합니다. (요7:5)
5 이는 그 형제들까지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
그랬던 야고보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이후 부활하신 사건은 고전15:7
본격적으로 야고보가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야이신 것을 보고 깨닫고 나아오게 된 계기가 된 것입니다.
7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8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그렇게 깨달음을 얻고서 자신을 소개할 때,
“난 예수 그리스도의 형제요~” 라고 어떤 가문을 소개한 것이 아니라,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어깨동무한 사이요~” 라고 소개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소개했습니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라고 소개합니다.
여기서 첫번째 오늘의 말씀 가운데 첫번째 주제입니다.
여기서 첫번째 오늘의 말씀 가운데 첫번째 주제입니다.
오늘 말씀 가운데 ‘인내를 온전히 이루는’ 첫번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가운데 ‘인내를 온전히 이루는’ 첫번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누군가의 종이되는 것,
이것이 인내입니다.
참아내는 것,
그런데 그 주인이 예수님이라면?
물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큰 여러분들 앞에서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시대를 살아가는 그 유익이 더 큼을 알아서
당연히 예수님의 종이 되는 것이 훨씬 이득이지요 라고 하겠지만,
야고보는요.
야고보 가문만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 야고보는 결과론적으로만 보면 좋은 집안, 좋은 가문에서 태어난 사람입니다.
물론 부모가 잘나서가 아니지요.
이 당시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부활사건으로 꽤나 알려진 상태입니다.
이 당시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부활사건으로 꽤나 알려진 상태입니다.곡야고보는 예수님의 가족입니다..야고보는 예수님의 가족입니다.
심지어 형이 예수님입니다.
그정도면 이 서신서를 쓰는 야고보는 예수님이 형이라고 자신을 소개해도 괜찮았을 것 같습니다.
오히려 그렇게 소개하고 쓴다면
일반적인 생각으로는 뭔가 있어 보이는 편지가 될꺼 같고,
더욱 신뢰할 만한 서신서가 되어 힘이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야고보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저와 같은 생각으로 편지를 쓴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라고 소개하며 편지를 썼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살아온 형제로서
어깨를 나란히 하며 편지를 쓴 것이 아니라,
‘내가 예수님 가문의 형제야’라고 쓴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
종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종’이라는 의미에는 자신의 삶과 목적이 있습니다.
종을 뜻하는 한자단어로는 ‘노예’라고 있습니다.
종 ‘노’자에 종 ‘예’자를 붙여서 만든 ‘노예’입니다.
종, 곧 노예의 의미에는 자신과 목적이
자신을 종으로 노예 삼는 주인에게 있습니다.
그것은 주인에게 10%, 20%, 30%, 50%만이 아니라,
전적인 100%의 삶이 주인에게 달려 있음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이 서신서, 메시지의 주인공은 누구입니까?
주인의 말씀을 100% 그대로 전하는 것이니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지요.
야고보가 근본으로 정하고 메시지를 전하는 것은,
바로!
자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사실입니다.
정리하면 야고보의 메시지는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렇게 야고보는 자신의 인생은 100% 예수님에게 온전히 있다고 말하며 선언합니다.
그렇게 스스로를 야고보는 예수그리스도의 종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인내의 시작입니다.
예수님께 온전히 맡기는 것,
이것이 인내의 시작인 것입니다.
우리의 근본을 예수님께 두는 것,
이것이 인내의 시작인 것입니다.
잠깐 견디고 잠깐 맡기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완전히, 100% 맡기는 것이 바로
인내의 시작입니다.
그러면 연약한 우리가 어떻게 인내하며 예수 그리스도만 의지할 수 있습니까?
2절 입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3절 이어서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여기서 두번째, 오늘의 말씀 가운데 두번째 주제입니다.
여기서 두번째, 오늘의 말씀 가운데 두번째 주제입니다.
오늘 말씀 가운데 ‘인내를 온전히 이루는’ 두번째는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만들어지는 인내’입니다.
오늘 말씀 가운데 ‘인내를 온전히 이루는’ 두번째는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만들어지는 인내’입니다.
디아스포라, 핍박받아 고향땅을 떠난 성도들에게
온갖 고난과 역경이 있는 상황에서,
야고보는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그러면서
“이는 너희 믿음이 시련이”
무엇을 만들어 낸다고요?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너희들에게 닥친 고통,
너희 의지로 떠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핍박받게 된 상황,
그런 시련이 무엇을 만들어 낸다고요?
‘인내'를 만들어 내줄테니,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라고 말합니다.
인내는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만들어 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일어나는 일들,
거기서 나오는 핍박은 ‘인내'를 만들어 준다고 합니다.
그러니 그 인내는 고통입니까?
‘온전한 기쁨'이 되는 것이지요.
예수님을 믿으면요.
물론!! 여러분들에게 축복과 은혜가 넘칠줄 믿습니다. (아멘)
그런데요. 예수님을 믿으면요.
핍박이 있을 수 있습니다.
힘들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그냥 안믿는 것보다 힘들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보면요. 더 핍박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살면요.
일반적으로 힘든 일이
그 자체만으로도 ‘온전한 기쁨’으로 느껴지게 됩니다.
내가 요령을 피워서 지름길로 갈 수 있지만요.
그 요령이 아니라 정직함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성실하게 살아가면요.
마치 남들도 다 얻는 이득을 놓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그 삶 가운데 평안함과 기쁨은 온전히 넘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얻어지는 인내요. 기쁨인 것입니다.
사실 여러분들은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매일 같이 시련 당하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뭐라고 하려고하면,
여러분 마음 속에 어떤 생각이 먼저 드십니까?
‘아~! 예수님’
이거 그냥 대충 하려고 해도
‘아~! 예수님'
뭐만 할려고 하면
‘아~! 예수님'
아니면,
‘아~! 하나님'
우리는요. 하나님 때문에, 예수님 때문에 시련 당하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시련 당하고 계시나요? (아 맨날 당하고 사신다고요?)
그 시련을 피하지 마시고요.
그 시련을 당하시면요.
여러분들이 믿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인내를 만들어주십니다.
그래서 마치 바보처럼 그렇게
예수님이 만들어준 인내를 감당하고 살면요.
‘온전한 기쁨으로' 살아가게 되는 줄 믿습니다.
여러분들에게는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시련은요.
평생의 기쁨이 될 줄 믿습니다.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 감당을 하나님이 하시기 때문이죠.
그래서 기쁘게 여길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기 때문이죠.
우리의 인생을 책임지는 하나님이 계시기에.
하나님이 인내를 만들어주시고,
하나님이 기쁘게 여기게 해주십니다.
4절 보겠습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인내는 누가 만들어주신다고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만들어주신다고 했잖아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만들어주시는 분,
바로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이 만들어주시니,
그 인내를 어떻게 이룹니까?
“인내를 온전히 이루리라"
여기서 세번째, 오늘의 말씀 가운데 세번째 주제입니다.
여기서 세번째, 오늘의 말씀 가운데 세번째 주제입니다.
오늘 말씀 가운데 ‘인내를 온전히 이루는’ 세번째는요 ‘예수 그리스도로 부족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 가운데 ‘인내를 온전히 이루는’ 세번째는요 ‘예수 그리스도로 부족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고백했다는 이유로 유대인들에게 핍박을 받아 떠나야만 했던 유대 그리스도 성도들은
자신들 앞에 놓인 고난과 역경, 시련들이 즐비해 있었지만,
그것을 회피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인도하심을 따라 세상을 나아갔습니다.
자신들 앞에 펼쳐질 일들이 눈에 보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고향을 떠나 타지로 떠난 것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물론 핍박으로 떠날 수 밖에 없는 것도 있었겠지만,
야고보가 말하는 것은,
이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인도하심이요.
그것은 다시 4절에요.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구비하다는 것은 완전하다는 것입니다)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예수 그리스도의 인도하심은 인내를 만들었습니다.
그 인내를 온전히 이루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셨습니다.
알수 없는 미지의 땅으로 떠나야만 했던 유대 그리스도인들은
야고보의 서신서를 통해서 깊은 감동과 은혜가 임했을 것입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견뎌야 할 시련이 닥쳐오지만,
여러분들 삶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부족함이 없길 소망합니다.
예수 그리스로도 말미암아 인내를 온전히 이루는 역사가 있게 될 것이고,
그 일에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인생에 부족함이 없고, 만족함만 있을 것입니다.
5절에서요.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하나님이 주십니다.
내 눈 앞에 보이지 않고,
내게 지혜가 없어 갈피를 못잡더라도,
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후히 주시고,
지혜가 없어 간절히 구하는 백성에게 꾸짖지 않으시는 하나님이,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하나님이 주십니다.
하나님이 여러분들의 앞길을 주십니다.
예수로 가득 채워주시고 구하는 일들을 주십니다.
6,7,8절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야고보의 메시지는 아주 단호합니다.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너무 단호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데는 지금 고난을 겪고 있는 유대 그리스도인들의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단호한 말에는 그만큼 확신에 찬 말에 역설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나아가면 됩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인내를 허락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이겨낼 수 있습니다.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요동치는 바다 물결이 아니라,
잔잔한 호수처럼 담대함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또한 마지막 8절의 말씀처럼,
두 마음을 품고서 마음속에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 우리의 삶을 온전히 맡김으로,
우리에게는 고통과 시련이 아닌,
지금의 상황을 인내를 온전히 이루는 역사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마무리하겠습니다.
야고보가 유대 그리스도 인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어떠한 상황속에서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인내가 만들어지고
우리의 삶 가운데 어떤 것도 부족함 없게 하시고,
우리의 지혜가 부족하면
하나님 앞에 구하면,
구하는데로 채워주시는 은혜가 있다는 사실을
야고보서 1 을 통해서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동일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도 나그네 삶이요,
앞 길이 정해져 있지 않은 온전하지 않은 삶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기쁠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때문이고,
온전한 믿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시기에 가능한
100% 온전한 믿음으로 말미암아
조금도 부족함 없이 살아갈 수 있을줄 믿습니다.
한없이 부족한 우리에게
무한한 은혜를 허락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오늘도, 그리고 남은 이번 주간도 살아가는
복된 성도님들 되시길 소망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