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어두운 밤
0 ratings
· 66 viewsNotes
Transcript
영혼의 어두운 밤
영혼의 어두운 밤
[여는말]
우리의 신앙생활이 공식대로만 움직인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기도하면 항상 응답받고, 말씀읽으면 하나님의 뜻이 곧바로 분별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나님과 항상 친밀함을 갖고,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삶을 매일 살아갈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교회도 평안하고, 삶도 평안하고, 모든 게 잘 돌아가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지 않을까요?
그러나 과연 그럴까요?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영혼의 숨겨진 또다른 측면을 발견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몸말]
먼저 이 질문부터 해야겠습니다.
모세는 어떤 인물일까요?
먼저 모세는 하나님과 매우 친밀한 사람입니다.
출애굽기 33장 11절에 보면 하나님은 마치 친구에게 말하듯 얼굴을 맞대고 모세에게 말씀하신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부름받은 이후 언제나 가장 가까이에서 하나님을 만난 사람입니다.
모세는 또 어떤 인물일까요?
모세는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역을 잘 참고 인내한 온유한 사람입니다.
민수기 12장 3절에 보면 모세의 온유함이 땅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다고 말합니다.
새번역에서는 온유함이 아니라 겸손함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 세상 누구보다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입니다.
모세는 또 어떤 인물일까요?
모세는 수많은 기적을 일으킨 인물입니다.
이집트에 10가지 재앙을 내리고, 홍해를 가르기도 하고, 쓴물을 단물로 바꾸기도 하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하늘에서 내리기도 하는 등 정말 많은 기적을 행한 인물입니다.
물론 하나님이 하신 것이지만 모세를 통해 일하셨습니다.
이처럼 모세는 수많은 어려움들을 뚫고 광야에서 40년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온 전무후무한 지도자입니다.
모세에게선 그 어떤 것도 흠을 잡을 수 없을것만 같습니다.
모세는 거의 완벽한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말할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 말씀 14절에 보면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데스에 도착합니다.
그들은 이제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 근처에 도착한 것입니다.
며칠후면 그들은 약속의 땅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길을 가기 위해 꼭 통과해야 하는 길이 있습니다.
바로 에돔 땅입니다.
에돔 땅에는 왕의 대로가 있습니다.
이 대로는 당시 상인들이 주로 교역할 때 사용한 길입니다.
에돔 땅을 거쳐 북쪽으로 모압, 다메섹까지 쭉 연결되어 있는 통행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길을 이용하고 싶은 것입니다.
모세는 에돔 왕에게 그 쪽 길을 안전히 지나갈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합니다.
사신들을 보내 자신의 뜻을 전달합니다.
그의 편지 내용은 이렇습니다.
그는 먼저 에돔 왕을 형제라고 부릅니다.
14절 ‘임금님의 형제 이스라엘은’
에돔 족속의 조상이 이삭의 아들 에서이기 때문에 형제라고 부른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야곱의 후손이고, 에돔은 야곱의 형 에서의 후손인 것입니다.
형제의 나라라는 것을 강조해 어려울때 도와야 하는 거 아니냐는 뜻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먼저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겪은 고난들을 이야기합니다.
이집트 땅에서 노예생활하면서 학대받았던 일을 말합니다.
그들이 부르짖자 하나님이 응답하셔서 그들을 구원해주셨다고 말합니다.
왜 이런 말을 하는 것일까요?
형제임을 밝히며 동정심을 유발하려는 것입니다.
또한 지나가게만 해주면 밭이나 포도원에 들어가지 않고 샘물도 이용하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을테니 지나가게만 해달라는 요청인 것입니다.
모세가 이렇게 말할정도면 정말 낮은 자세로 도와달라고 요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에돔왕의 응답이 어떨까요?
그는 “우리 땅 지나가려고 해봐, 그럼 전쟁이야” 이렇게 응답합니다.
어떤 적절한 핑계를 대거나 경제적 대가를 요구하는게 아닙니다.
그냥 어떤 조건이든 지나가면 가만 안둔다는 협박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모세는 그만두지 않고 또다시 사신을 보내 이렇게 말합니다.
19절 모세의 말입니다.
우리는 큰 길로만 지나가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나 우리의 가축 떼가 임금님의 물을 마시면, 우리가 그 값을 치를 것입니다. 우리는 다만 걸어서 지나가기만을 바랍니다. 그 밖에는 아무 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혹시라도 우리가 경제적 피해를 줄까봐 못가게 하는 것이면 그 값도 다 치루겠다는 것입니다.
가축이 그 길에서 물을 마시면 물 값을 다 치룰테니 걱정말라는 것입니다.
이만하면 에돔왕도 손해볼 일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에돔왕의 반응이 어떻습니까?
한마디 말밖에 없습니다.
20절입니다.
당신은 지나가지 못하오
심지어 혹시라도 지나갈까봐 많은 군사들을 데리고 그 길목에 나타났습니다.
이건 뭐 한번 해보자는 일촉즉발의 상황인 것입니다.
모세 입장에서도 너무 자존심 상하고, 수치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점이 하나 있습니다.
도대체 하나님은 어디 계시는가 하는 점입니다.
전혀 하나님이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모세가 하나님과 그렇게 가깝다면 이 중요한 순간 나타나셔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흔적이 하나도 없습니다.
모세 인생에 이런 적이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반역할때에도 하나님은 나타나셔서 문제를 해결해주셨습니다.
모세가 기도하면 하나님은 언제나 나타나셔서 말씀해주시는 그런 분입니다.
그런데 오늘 이 본문에서 하나님은 숨어버리셨습니다.
하나님은 도대체 어디 계시는 것일까요?
이제 며칠만 더 고생하면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40여년을 뺑뺑이 돌고 고생 고생해서 다시 여기에 왔습니다.
백성들의 수없이 많은 반역들, 광야에서 못먹고, 못자고 힘든 생활을 했던 고생들을 생각해보십시오.
나이 80살에 사역을 시작해 이제 120살 된 노쇠한 모세입니다.
그는 할만큼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은 숨어버리십니다.
너무 하신거 아닙니까?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왜 하나님은 한마디 말씀도 없이 숨어버리신 것일까요?
분명 이 절체절명의 순간 모세는 하나님 앞에 엎드렸을 것입니다.
약속의 성취를 눈앞에 두고 있고, 여기만 지나가면 피니쉬 라인이 눈 앞에 있습니다.
그런데 그토록 항상 가까이 계시던 하나님이 사라져 버리신 것입니다.
어떻게 된 것일까요?
이 기가막힌 사건에 대해 이해하려면 우리는 바로 앞에 일어난 일들을 살펴 봐야만 합니다.
앞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또다시 광야에서 불평을 합니다.
광야에서 38여년이 지난 때입니다.
그 시간동안 과거 세대는 광야에서 거의 다 죽고 이제 새로운 세대가 일어났을 것입니다.
그런데 새로운 세대 역시 자신들의 부모님이 했던 대로 또 물이 없다고 불평합니다.
참 38년동안 한결같은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불평, 불만이 습관이 되어버린 것일까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수십년째 계속되는 끝이 없는 광야생활, 배고픔, 불편함, 외로움은 저라도 쉽사리 적응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런 위기 앞에서 모세와 아론은 하나님 앞에 무릎꿇고 기도합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8절입니다.
너는 지팡이를 잡아라. 너와 너의 형 아론은 회중을 불러모아라. 그들이 보는 앞에서 저 바위에게 명령하여라. 그러면 그 바위가 그 속에 있는 물을 밖으로 흘릴 것이다. 너는 바위에서 물을 내어, 회중과 그들의 가축 떼가 마시게 하여라.
놀랍게도 하나님은 백성들을 징계하지 않으시고 놀라운 기적으로 물을 주십니다.
그런데 이 순간 오히려 위기는 모세와 아론에게 닥칩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반석을 두번 쳐서 물을 만들어 냅니다.
문제는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의 말을 들어보십시오.
10-11절입니다.
반역자들은 들으시오. 우리가 이 바위에서, 당신들이 마실 물을 나오게 하리오? 모세는 팔을 높이 들고, 그의 지팡이로 바위를 두번 쳤다. 그랬더니 많은 물이 솟아나왔고, 회중과 그들의 가축 떼가 마셨다.
주어가 ‘우리가’입니다.
하나님이 아닌 자신과 아론을 추켜세우는 말을 한 것입니다.
그가 바위에게 명령을 하지 않고 지팡이를 두번 친 것은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것입니다.
이 일로 인해 모세와 아론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12절에서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이 보는 앞에서 나의 거룩함을 나타낼 만큼 나를 신뢰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내가 이 총회에게 주기로 한 그 땅으로 그들을 데리고 가지 못할 것이다.
모세와 아론은 하나님의 거룩함을 영광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백성들이 자꾸 불평하니까 자신들의 능력을 드러내고자 했던 것입니다.
항상 하나님의 영광을 비추던 존재였다면, 이제 그 영광을 자신들이 차지한 것입니다.
이 일로 인해 그들은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도 너무하지 않습니까?
불평한 백성들은 가만 놔두시고, 40년을 개고생한 모세와 아론을 책망하시는 것이 말입니다.
마치 부모님이 철없는 막내동생은 가만두고 맏형이 쪼금만 잘못하면 호되게 혼내시는 것일까요?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 부분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모세에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은 평생의 과업이자 사명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멈추라고 하시니 참 억울하지 않겠습니까?
한 발이라도 딛고 죽게 하시던지 하셔야죠.
저같으면 아무리 자신이 죄를 지었더라도 이건 좀 너무한거 아니시냐고 하나님께 따졌을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다시 애돔족속의 문제로 돌아와 보겠습니다.
에돔왕이 왕의 대로로 못가게 하는 상황에서 모세가 아무리 엎드려도 하나님은 나타나지 않으십니다.
아무런 말씀도 없습니다.
이 일이 앞서 있었던 모세와 아론의 불순종 때문일까요?
처음에 저는 이 부분을 이해하기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학자들 의견을 읽어도 동의할수가 없었습니다.
어떤 학자는 모세가 앞서 불순종했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 의견에 동의할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계속해서 화난 상태로 계신다는 것을 이해할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에 맞지 않습니다.
그럼 무슨 이유일까요?
저는 이 부분에서 ‘영혼의 어두운 밤’이라는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영혼의 어두운 밤’이란 용어는 1542∼1591년에 활동한 16세기 수도사, 십자가 성 요한이 쓴 책 제목에서 유래합니다.
원래 그의 이름은 ‘성 마티아 요한’인데 ‘십자가 요한’으로 바꿀 정도로 그는 매우 경건한 인물입니다.
1577년 10월, 그는 개혁을 반대하는 수도사들에게 납치돼 톨레도 수도원에 11개월간 감금되었습니다.
그 기간동안 독방에 있던 그는 벽 틈으로 들어오는 가느다란 빛줄기를 제외하고는 온통 어둠 속에서 지냈습니다.
고통스러운 시간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이 때 귀한 영적 체험을 하게 됩니다.
그가 겪은 영혼의 어두운 밤이란 영적 메마름과 정신적 피폐함을 겪는 상태를 말합니다.
하나님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영적 침체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께 버림받았다는 느낌이 드는 영혼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가는 그런 상태입니다.
그는 이런 영혼의 어두운 밤을 그곳에서 깊이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는 이 때가 지나자 하나님과 더욱 친밀해진 경험을 하게 된 것입니다.
저는 모세의 경우도 그렇게 보았습니다.
모세의 상황을 생각해보십시오.
모세가 에돔왕에게 허락받지 못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돌고 돌아서 가나안 땅으로 가야 합니다.
그러다가 다시 광야에서 몇 십년을 돌아다닐지 알수 없습니다.
그럼 백성들이 가만 있을까요?
물없다고 난리치는 백성들인데 약속의 땅을 눈 앞에 두고 갈수 없다면 그 책임을 누구에게 돌릴까요?
모세는 두려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어떻게든지 에돔땅을 지나가고 싶었을 것입니다.
2번이나 비굴하게 에돔왕에게 구한 것도 그 이유 때문입니다.
이 순간 모세는 하나님께 간절히 구했을 것입니다.
‘주님, 에돔왕의 마음을 돌려주십시오, 아니면 에돔왕과 싸워 이기게 해주십시오.’
그러나 하나님은 아무런 응답도 하지 않으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모세에게 주신 영혼의 어두운 밤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과 아론 둘다 가나안 땅에 들어갈수 없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 말씀만으로도 그는 참 마음이 아팠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하나님은 아무런 응답도 없으시고, 모습을 감추셨습니다.
결국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에돔 땅을 지나가지 못하고 돌아서 가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가 이것 뿐입니까?
24절입니다.
숨어계시던 하나님이 대뜸 나타나십니다.
주님은 아론이 불순종했기 때문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 아론의 옷을 벗겨 그의 아들 엘르아살에게 입혀주라고 말입니다.
모세의 오른팔과 같은 아론이 죽게 되는 것입니다.
왼팔과 같은 미리암은 20장 1절에 보시면 몇달 전에 죽었습니다.
모세의 왼팔 오른팔이 다 잘려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대제사장인 아론의 죽음은 백성들에게도 충격적이었을 것입니다.
29절에 보면 백성들이 그의 죽음을 알고 30일동안 애곡했다고 말합니다.
보통 7일 애곡하는데 30일을 애곡했다는 것은 그만큼 아론의 빈자리가 컸던 것입니다.
모세에게 설상가상, 첩첩산중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상황입니다.
에돔땅도 못지나가고 돌아서 가야 하니 백성들 불만도 걱정되고, 항상 대변인 역할을 해주고 옆에서 도와주던 아론도 죽고, 미리암도 죽고 말입니다.
그런데 그나마 작은 빛을 찾아볼 수 있는 장면이 있습니다.
바로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이 아버지 아론의 대제사장 복장을 물려받은 것입니다.
모세도 자신의 후계자를 세워놓고 아론과 함께 죽었으면 외로움이 덜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모세 혼자만 좀 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게 하십니다.
모세는 이 순간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40년을 목숨걸고 백성들을 인도했는데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한 마음이 어떠할까요?
그러나 이 상황은 모두 하나님이 주도하신 것입니다.
침묵하시고 숨으신 것도, 미리암과 아론을 먼저 데려가신 것도 모두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영혼의 어두운 밤을 주신 것입니다.
그 시간을 통해 모세 마음 속 깊은 어두운 곳에 자라나고 있던 독버섯을 걷어내신 것입니다.
40년동안 리더의 자리를 신실하게 지킨다는 것이 참으로 어렵지 않았을까요?
아무리 하나님이 가까이 계셨다지만 눈뜨면 보이는 사람들은 불만많은 백성들입니다.
그러니 모세도 지치고 힘든 시기가 찾아온 것입니다.
그때 모세가 결국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분노하며 지팡이를 두번 쳐 자신을 드러낸 것입니다.
그의 마음에 언제 숨어든지도 알수 없는 교만의 독버섯은 하나님의 영광을 도둑질하게 만들었습니다.
분노의 독버섯은 하나님의 이름을 땅에 떨어뜨리고 만들었습니다.
불순종의 독버섯은 결국 하나님의 임재를 잃어버리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영혼의 어두운 밤은 모세의 이런 독버섯들이 모두 죽는 때입니다.
그의 자아가 죽는 때입니다.
모세를 보십시오.
모세는 에돔왕에게 수치와 모욕을 당했지만 그와 대결하지 않습니다.
모세의 자아가 죽자 기생하던 독버섯들이 영양분을 잃고 다 죽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는 단지 에돔왕 앞에서 돌이켜 백성들의 실망과 불평을 감수하며 돌아가는 먼 길을 선택합니다.
아론의 죽음 앞에서도 담담하게 받아들입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하나님의 쓰라린 말씀도 담담히 받아들입니다.
[마무리]
이제 오늘 말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이런 영혼의 어두운 밤을 주십니다.
그 때가 되면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버리신 것은 아닐까하는 두려움이 엄습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그 때 우리는 영혼의 어두운 밤을 지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이 영적으로 단것만 주신다고 믿으려 합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이 빛만 주신다고 믿으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때론 우리에게 어둠도 허락하십니다.
쓰디쓴 것도 허락하십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에 우리 영혼에 결코 해롭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 때가 되면 하나님은 우리를 낮추시고, 우리 안에 있는 모든 독버섯들이 죽게 만드십니다.
우리의 무질서한 욕구들이 영혼의 어두운 밤이 되면 질서를 찾아가게 됩니다.
무질서한 정신세계에 참된 평안이 찾아오게 됩니다.
그러나 그 때가 가장 어두운 때이기에 곧 새벽이 온다는 증거입니다.
그 영혼의 어두운 밤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이런 하나님을 믿고 영혼의 어두운 밤을 잘 이겨내는 저와 우리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