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429 양청] 소요리문답 7-8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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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난 4-6문을 통해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를 다루었다. 하나님의 존재는 어떠하며 하나님의 속성은 어떠한지, 하나님의 삼위일체 되심에 대해 다루었다. 이제 이어서 7-12문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역에 대해 배울 것이다. 그 중에서 7-8문에서 다룰 하나님의 작정은 시간 전에 하시는 하나님의 외적 사역이며, 9-10문에서 다룰 창조와 11-12문에서 다룰 섭리는 시간 속에서 하시는 하나님의 외적 사역이다. 오늘은 시간을 만드시기 이전, 즉 온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기 이전에 하나님께서는 어떤 일을 하셨는지, 시간 전에 하신 하나님의 외적 사역인 ‘하나님의 작정' 에 대해 생각해 볼 것이다.
7문. 하나님의 작정은 무엇입니까?
답. 하나님의 작정은 그의 뜻의 계획에 따른 그의 영원한 목적으로, 이로 말미암아 자기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일어나는 일은 무엇이든지 미리 정하신 것입니다.
8문. 하나님은 자신의 작정을 어떻게 실행하십니까?
답. 하나님은 자신의 작정을 창조와 섭리의 사역에서 실행하십니다.
건축은 크게 ‘설계'와 ‘시공'으로 나눌 수 있다. 건물의 설계자는 소유주의 요청에 따라 아름답고 튼튼하며 용도에 적합한 공간을 구상하여 그 모양과 시공과정을 도면에 표시한다. 설계자는 예술, 공학, 안전 등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어야 좋은 설계를 할 수 있다. 또한 시공자는 자기가 하고 싶은대로 일을 처리해서는 안되고, 철저히 설계도면에 따라 시공을 해야 한다. 아주 사소한 변경이라도 꼭 설계자와 상의해서 결정한다. 하지만 막상 건축 현장에서 보면 여러 변수들이 있기에 도면대로 건축되지 않는 일들도 일어난다. 또한 설계자와 시공자가 서로를 못미더워하여 갈등들이 일어나기도 한다.
이처럼 설계자와 시공자는 유한한 사람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한계들이 있다. 나에게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 설계와 시공을 하지만 변수들이 너무나 많다. 설계자가 도면을 그리면서 수치를 잘못 기입하는 경우들도 생길 수 있고, 다양한 환경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로 도면 작업을 할 수도 있다. 또한 설계도면이 아무리 완벽하다 하더라도 시공자가 시공하는 과정에서 실수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또한 설계도면도 완벽하고 시공도 완벽하게 되었다 하더라도 갑자기 지진이나 산사태, 싱크홀들이 일어난다면 다 부질 없는게 아닌가. 이처럼 인간에게는 완전한 계획도, 완전한 실행도 있을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르시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또한 창조하신 세계에서 여러가지 일을 진행하실 때에 모르는 것이 하나도 없으셨다.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에서 하늘과 땅을 만드실 때 앞으로 일어날 모든 일들을 담아낼 수 있게 만드셨다. 우리가 지난 시간까지 살펴보았지만 하나님은 시간을 만드셨기 때문에 시간에 초월하시고 시간을 다스리신다. 하나님께 알지 못하는 미래는 있을 수 없다. 오히려 하나님은 미래를 만드시고 자신의 뜻에 따라 그 시간 속에서 일어날 모든 일들을 계획하신다. 그 계획은 무한하고 영원하며 불변하신 하나님의 지혜로 말미암아 아무 부족함과 흠이 없는 완벽한 계획이다. 하나님께는 변경이나 후회가 없으시다.
물론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계획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내가 경희를 내 딸로 삼아야겠다" 라는 하나님의 뜻은 “경희를 어떤 방법으로 하나님의 딸로 삼으실 것인가" 하는 계획과 서로 구분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녀로 삼으시는 뜻은 분명하고 이해하기 쉽다. 그러나 그 뜻이 펼쳐지는 방식이나 지혜나 경륜과 같은 계획은 은밀하고 이해하기 어려울 때도 있다. 내가 내 자녀를 훌륭하게 키우겠다는 뜻을 품은 부모는, 때로는 자녀를 훈계하고 때로는 벌을 주기도 한다. 부모의 계획 속에서 자녀가 이해하기 힘들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다양한 상황들이 펼쳐진다. 그러나 자녀가 부모의 사랑을 확신하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부모를 의지한다면, 나중에는 부모의 계획을 이해하게 된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도 비슷하다. 때로 이해하기 어렵고 감당하기 힘들 수 있다. 지난 4월 16일이 세월호 9주기였다. 그 어여쁜 아이들이 침몰할 때 하나님은 어디서 무얼 하셨을까? 인간의 유한한 지혜로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계획을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하신 뜻은 분명하다. 죄인을 구원하심으로 영원히 사랑받는 자녀로 삼으시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분명한 뜻을 이루어가시는 하나님의 계획은 은밀하고 난해할 때가 있다.
그렇다면 한 가지 질문, 모든 일에는 제 1 원인이 있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것은 중력이 있기 때문이고, 해가 뜨고 지는 것은 지구가 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작정에 다른 이유나 조건이 있을 수 있을까? 하나님의 작정에 하나님이 아닌 제 1 원인이 있을 수 있는가? 하나님으로 하여금 그렇게 작정하도록 만드실 만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하나님보다 더 큰 존재나 지혜자가 없기 때문에 오직 하나님의 뜻만이 작정의 유일한 동기이다.
이것을 오해하시면 안된다. 전지하신 하나님께서 앞으로 일어날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에 미리 아심을 통하여 작정하셨는가? 이를 신학적인 용어로 ‘예지 예정’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만일 하나님께서 2023년에 영광이가 예수님을 영접할 것을 미리 아시고 영광이를 구원하시기로 택하셨다면, 하나님의 작정은 영광이가 가진 어떤 것에 영향을 받으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영광이가 가진 것이 어떠하든, 그의 성향이나 성격이나, 이런 것들이 어떠하든지 그것과 아무런 상관없이 오직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는 뜻’ 가운데 정하시는 것이 바로 작정이다. 하나님께서 다른 어떤 것의 영향을 받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만으로 자유롭게 작정하신다.
3번을 보라. 하나님께서는 가장 완벽한 설계자로서 앞으로 일어날 모든 일들을 정하실 때, 사사로운 동기나 꼼수나 목적을 가지고 정하시지 않았다. 하나님은 무한하시고 영원하시며 불변하신 분으로서, 그분의 뜻과 계획 역시 가장 아름답고 거룩하다.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사람과 달리 하나님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시며 가장 고귀하고 적합한 목적을 위해 작정하시고 무한하신 그분의 능력으로 실행하신다. 그래서 하나님의 작정은 하나님께서 영원하시기에 도중에 변경되지 않는 영원한 목적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작정은 하나님의 영원성이라는 속성에서 나온다. 하나님께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동일하시다. 하나님은 시간이 있기도 전에 시간을 초월하셔서 모든 것을 영원히 정하셨다. 시33:11 “여호와의 계획은 영원히 서고 그의 생각은 대대에 이르리로다” 하나님의 계획은 영원히 서고 그분의 생각은 영원까지 이른다고 말씀한다. 딤후1: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이처럼 하나님의 작정은 하나님의 영원성을 이해할 때만 이해할 수 있다. 만일 영원성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하나님의 작정은 운명론에 오염되고 하나님은 죄의 조성자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4번을 보라.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작정하셨다고 말씀한다. 계4:11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하나님께서 작정하실 때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하신다고 말하는데, 이는 결코 이기적인 태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아름답고 더 고귀한 것은 없다. 하나님의 속성이 무한하시고 영원하시고 불변하신 것처럼, 그분의 영광도 무한하시고 영원하시고 불변하신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작정하실 때 그 작정의 성격도 하나님의 무한하시고 영원하시고 불변하신 거룩함에 맞춰 가장 높고 깊은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든다. 만일 하나님께서 가장 완벽한 설계자로서 온 우주만물을 계획하셨다면, 사람을 포함한 모든 피조세계는 마치 버튼 하나 누르면 알아서 정해진 레일만 주구장창 돌아다니는 기차 장난감과 같은 존재는 아닌가? 그저 입력된 대로만 움직이는 로보트가 아닌가? 과연 이것을 ‘자유’ 라고 말할 수 있을까? 또한 하나님께서 그분의 선하심 가운데 온 우주만물을 창조하셨는데, 어떻게 이 세상에 이처럼 죄악이 득실거릴 수 있는가? 선하시다는 그분이 죄까지도 만드신 것인가? 하나님은 죄의 조성자이신가? 실제로 이러한 주장은 기독교 신앙을 공격하는 거짓 교사들의 주장이기도 햇다.
먼저, 하나님께서 죄의 조성자가 되실 수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보자. 앞서 우리가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 생각해보았지만, 하나님은 그 거룩하심이 무한하시고 영원하며 불변하시다. 따라서 죄의 조성자나 죄의 원인이 되실 수 없다. 죄와 관련된 하나님의 작정은 유효적이지 않고 허용적이다. 즉, 하나님께서는 죄를 직접 창조하신 분이 아니라 이 세상에 죄가 들어오도록 그냥 허용하신 것이다. 따라서 죄의 책임은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있다. 오늘날 이 세상을 보면 악인들이 판을 치는 것 같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해 대적하고 하나님을 거슬러 행하고 있지만, 그들은 여전히 하나님이 계획하신 바를 따라 행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이러한 하나님의 작정에 대한 우리의 믿음은 우리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더욱 활기차게 한다. 하나님의 작정 안에서 소망을 발견하는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더욱 열심히 노력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사람은 전도의 가능성이라고는 조금도 보이지 않는 척박한 곳에서도 열심히 전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정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작정 중에서도 사람과 천사같은 이성이 있는 피조물에 대한 것을 예정 이라고 한다. 하나님은 인류 중 일부를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영생에 이르도록 선택하셨다. 하나님의 선택은 앞에서 설명했듯이 순전히 하나님의 자유로운 은혜와 사랑으로 인한 것이지, 절대로 택함받은 자들의 신앙이나 선행이나, 인내 등을 미리 보셨기 때문이 아니다. 하나님의 선택을 조장할 수 있는 원인이나 조건이 사람이나 다른 피조물에는 전혀 없다. 오직 하나님의 자유로운 은혜와 사랑이 선택의 유일한 원인과 조건이다. 엡1:4-5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정하신 것에는 오직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이루어진 일이라고 말씀하신다. 딤후1: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여기서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은 오직 하나님의 뜻과 은혜 가운데 이루어진 일임을 말씀하신다.
사실 예정론은 사람의 인식 능력으로 모두 이해하고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높고 신비롭다. 따라서 예정론은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 예정론을 사람의 지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에 두고 믿음으로 받아들인다면, 사람의 구원이 다른 어떤 조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순전한 은혜와 사랑으로 인한 줄 깨달아, 자신의 상태와 자격을 뛰어넘어 구원에 대한 분명한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을 온 마음 다해 찬양할 수 있다. 어떤 곤고하고 비참한 상황에서도 믿음을 붙들 수 있다. 예정론에 대한 참된 이해에서 겸손, 풍성한 위로, 끊이지 않는 소망, 진정한 찬양과 같은 깊은 경건이 생겨난다.
7번을 보라. 그러면 하나님의 작정의 범위는 어디부터 어디까지인가? 7문에서는 이에 대해 뭐라고 말하는가? “무엇이든지" 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작정의 범위는 모든 것이다. 특별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그분의 백성으로 삼으실 때, 그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모든 수단들도 함께 정하신다. 택하신 자들이 어떤 단계와 과정과 방법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것인지 모든 수단을 정하신 것이다. 여기에는 아담의 타락, 그리스도에 의한 구속, 그리스도의 영에 의한 부르심, 양자됨, 믿음, 칭의, 성화, 견인 등이 포함된다. 앞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계획을 구분해서 살펴보았다. 택하신 백성들을 거룩하신 하나님의 자녀로 삼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아담의 타락, 그리스도에 의한 구속, 그리스도의 영에 의한 부르심, 양자됨, 믿음, 칭의, 성화, 견인등은 하나님의 계획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창세전의 하나님의 작정이 어떻게 실행되는가? 8문을 다시 한번 읽어보자. “하나님은 자신의 작정을 어떻게 실행하십니까? 하나님은 자신의 작정을 창조와 섭리의 사역에서 실행하십니다" 시간이 만들어지기 전, 창세전에 하나님께서 행하신 사역이 ‘작정’이었다면, 이제는 시간 속에서 하나님이 행하시는 사역은 ‘실행’이다. 하나님의 작정은 ‘창조'와 ‘섭리' 로 실행된다. 따라서 작정이란 창조와 섭리에 해당하는 모든 것을 미리 정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살펴볼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는 잘 모르더라도, 하나님께서 시간 속에서 행하신 창조와 섭리를 통하여 하나님에 대해 어느 정도는 막연하게라도 인식할 수 있다. 이를 자연계시 혹은 일반계시라고 부른다. 광대한 자연만물을 바라보며 이 놀라운 세계를 지으신 손길이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유추한다. 보이지 않는 자연의 법칙들을 바라보면서 이 놀라운 질서들을 부여하신 존재가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인간의 양심을 보면서 절대선의 존재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처럼 창조세계에서 자연이나 역사의 섭리를 매일 경험하며 사는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기회들을 수없이 경험하며 산다.
성경은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라도 일반계시를 통하여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기회들이 수없이 주어졌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롬1:18-21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이 말씀 따라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은 창세로부터 하나님이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기 때문에 그들이 하나님을 모른다고 핑계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러분, 이제 오늘 강의의 결론이라 할 수 있겠는데, 믿음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를 통해 하나님을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명료하게 하나님 자신을 나타내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그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을 더욱 발견할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 우리는 작정교리를 통하여 우리의 신앙생활 가운데 큰 유익을 누릴 수 있는데, 교재 9번의 작정교리가 주는 유익을 함께 읽어보자. “작정교리는 성도로 하여금 구원의 확신을 누리고, 삶의 모든 곤고 속에서도 위로를 얻고 평안을 누리게 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게 한다" 어째서 이 교리가 우리로 하여금 이렇게 반응하게 만드는가?
우리의 구원이 내가 뭔가를 준비하거나, 내가 뭔가를 이루려고 하는 등, 내 쪽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창세 전부터 하나님께서 시작하셨고, 하나님께서 준비하셨고, 하나님께서 계획하신대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우리의 구원의 기초가 하나님께 있으니 이를 누가 방해하거나 취소할 수 있으랴. 그러니 이 작정교리를 확실히 이해하고 붙들 때 우리는 구원의 확신과 위로와 평안을 누릴 수 있으며, 우리에게 이 놀라운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할 수 있는 것이다. 오늘 배운 부분들을 잘 정리하여 구원의 확신과 위로와 평안을 누리며 하나님을 찬송하는 여러분들의 삶이 되시기를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