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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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능력
요한복음 20장 19-23절
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2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21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22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우리는 지지난주 부활절을 잘 보내고, 5월을 향해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세상의 달력 말고, 교회 달력이 있는거 다 아시지요? 사순절, 부활절, 성령강림절, 대림절, 주현절 이 있습니다. 이를 교회력이라고 합니다. 오늘은 부활절 후 셋째주일입니다. 이 절기는 예수께서 부활 하시고 여러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일을 기억하고,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더 깊이 묵상하는 절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절기에는 ‘흰색’이 교회 곳곳에 많이 사용됩니다. 바로 그 흰색은 주님의 ‘영광’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부활절에 담임목사님의 귀한 설교를 들었습니다. 우리는 예수의 부활로 인해 ‘이미’ 승리한 자이고,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로 인해서 이 세상을 기쁘게 힘차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또 다시 오늘 ‘부활’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이유는, 교회력에 따라 예수님의 부활을 다시 우리 마음에 새기기 위함입니다. 바로 예수님의 부활은 교회안에서 끊임없이 불러야 할 ‘기쁨의 노래’입니다.
여기서 예배란 무엇일까요? 바로 우리 기독교의 ‘예배’그것은 바로 그분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우리에게 참 생명을 주시기 위해 ‘부활’하셨다는 사실! 그 사실을 기억하고 감사하기 위해 예배를 드립니다. 우리는 그 목적을 위해 이 곳 ‘영락농인교회’에 모여서 예배드립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 안에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그리고 부활’만 바라보고, 찬양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제 오늘 본문말씀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은 무엇인지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에게 평강을 줍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하셨지만, 제자들은 몹시 두려워 했습니다. 예수님을 따랐던 제자들은 자신들도 ‘예수님을 믿었다는 이유로 잡혀가지는 않을까? 예수님처럼 십자가에 달려 죽지는 않을까’ 하고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한 곳에 모여 문을 닫고 숨죽여 지냈습니다. 그때 누가 오시나요? 누구시죠? 바로 부활하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가 제자들에게 찾아오십니다. 오늘 본문 19절입니다.
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그때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을 향해 제일 먼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9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네! 그렇습니다. 두려움에 떨던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평강이 너희들 가운데 있을 것이라고 선포하십니다. 이 “평강”은 사람이 주는 평강이 아닙니다. 바로 하늘로부터 내려온 선물인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가 평안하자!고 마음을 고쳐먹어도, 그리 오래가지 못합니다. ‘작심삼일’이라는 말 아시죠? 인간의 결심이라는 것은 나약합니다. 그러나 하늘로부터 주어진 평안은 깊고, 넓고, 오래동안 그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바로 그 평안을 부활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값없이 ‘선물’로 주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이 말을 들은 제자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예수님을 눈 앞에서 만나보고 어떤 맘이었을까요? 기뻤을까요? 죽었던 예수님을 다시 눈앞에서 보니 놀라웠을까요? 아니면 ‘죽었던 예수님이 어떻게 다시 살아날 수 있단말인가?’하면 반신반의하며 의심의 눈초리로 예수님을 지켜봤을까요? 본문의 말씀을 더 따라가 보려 합니다.
2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의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셨습니다. 바로 손과 옆구리에는 로마군인들이 박은 못자국이 선명하게 찍혀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부활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기 위해 손과 옆구리의 못자국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제자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20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제자들은 드디어 확실히 손과 옆구리의 못자국을 보고 ‘예수님이신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기쁨을 감추지 못햇습니다. 돌아가신줄 알았던 예수님이 바로 내 앞에 나타나셨습니다... 지금 우리앞에 예수님이 나타나신다면 우리는 어떤 마음일까요? 너무너무 기쁜 마음일 것입니다.
저는 얼마전 탄자니아에 선교여행을 2주동안 다녀왔습니다. 제일 먼저 생각나는 건 당연히 사랑하는 아내와, 그리고 아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영상통화로 만나기는 했지만, 직접 만나서 뽀뽀도하고 안아주기도 하는 것과는 정말 다릅니다. 선교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 진우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진우는 처음에는 쭈삣쭈삣햇습니다. 그런데 제가 아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손을 내미니, 그제서야 제 품에 안겨 너무 기뻐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당연히 행복하고 기쁩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제자들은 사랑하는 부활을 주님을 만났고, 너무 기뻐했습니다. 제자들을 만난 예수님께서 또다시 그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1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또!!! 다시한번 예수님은 평강이 있을 거라고 말씀하십니다.!! “또”라는 의미는 예수님께서 강조해서 말씀하시는 거지요. 정말로 예수님은 우리에게 평안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이 처해있는 어려운 상황들, 환경들, 무거운 마음들, 포기하고 싶은 마음들... 그 모든 마음들을 알고 이해하고 계십니다. 하나도 빠짐없이 말입니다.
이런 우리들을 향해 예수님은 지금도 여러분의 마음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부활의 주님은 우리에게 평강을 주시는 분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에게 사명을 줍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아버지이시죠. 하나님은 그 아들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셨습니다. 누군가를 보낼때는 ‘목적’이 있습니다. 어떤 ‘목적’ 때문에 우리에게 예수님을 보내주셨나요? 우리의 죄를 담당하게 하시고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은 바로 예수님의 ‘사명’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사명’을 끝까지 감당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주신 것처럼, 이제 예수님도 우리를 보내겠다고 말씀하십니다.
21.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에게 ‘사명’을 주신 것처럼, 이제 예수님도 우리에게 ‘사명’을 주시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우리 각자 한 사람, 한 사람을 보내십니다. 사명을 주시고 사명을 감당하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어디에, 무슨 목적에 사용하시려고 보내시려는 걸까요? 네. 교회 안에 여러 가지 직분을 맡겨주셨습니다.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 등등이요. 또 여러 가지 모양으로 봉사합니다. 차량봉사, 성가대, 식당봉사 등등이요. 이것 뿐만이 아닙니다. 가정에서는 아이들의 아버지, 어머니로, 또 직장에서는 성실한 근로자로 우리에게 일을 맡겨주십니다.
신학자 칼빈은 이 사명을 이렇게 3가지로 나눕니다. “첫째, 성도로의 사명, 둘째, 직분으로의 사명, 셋째, 직업으로의 사명”.
이 말은 우리가 행하는 모든 것이 ‘사명’이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명을 받은 자들이죠. 맞나요? 하나님은 우리가 받은 사명을, 각자의 자리에서 성실하게 행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따라 모든 삶에서 순종하며 사명 감당하는 우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이때 사명을 받은 자들은 어떻게 이 일을 감당할 수 있나요? 맞습니다. 이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은 바로 ‘성령’ 으로부터 나옵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은 이 사명을 능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2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성령이 아니고서는 우리의 모든 사명을 인간의 노력으로 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일을 할 때 금방 지치게 되고, 옆에 있는 사람들과 다투게 됩니다. 일이 금방 실증이 납니다. 그러나 우리가 매일 하나님 앞에 무릎꿇고, 부활의 예수님을 바라보며, 기도할 때, 주님은 성령을 부어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다시 사명을 감당할 힘을 부어 주십니다. 우리 모두 성령의 힘으로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들을 감당하기를 원합니다.
3. 예수님의 부활은 이웃과 화평하게 합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활을 말하기 위해서는 꼭 ‘십자가’를 먼저 말해야 합니다. 여기서 예수님의 십자가는 무엇을 알려줍니까? 우리 안에 ‘죄악된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모든 인간은 예외없이, 죄를 안고 살아갑니다. 로마서에는 우리의 죄의 모습이 어떤지 다음과 말합니다. ‘시기,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이 모습에서 한사람도 예외는 없습니다. 우리 안에 아주 교묘하게 파고든 죄의 뿌리가 너무 깊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셨습니다. 모든 죄의 권세를 이미 물리치셨습니다. 우리가 이제는 죄의 노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죄로부터 용서받은 사람들에게 한가지 더 큰 요구를 하십니다. 하나님께 자신의 죄를 용서받았다면, 이제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해 주라는 요청입니다.
교회 2층 사랑카페에서 보시면 ‘예수 중독자’ 손양원 목사님에 대한 글이 있습니다. 보신적 있으신가요? 다들 아시다시피, 손목사님은 애양원에서 한센인을 돌보며 사역했던 훌륭한 목사님이셨습니다. 두 아들이 공산당에 의해 총살을 당했고, 아들들을 먼저 천국으로 보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손목사님은 놀랍게도 총살했던 그 사람을 자신의 양아들로 삼았습니다.
‘대단한 목사님이니 그렇지. 우리는 할 수 없어’ 네 그럴 수 있죠. 그럼에도 손목사님이 보여주신 그 모습은 우리가 가야할 ‘신앙의 목표’ 인것은 확실합니다. 하나님께서 내 죄를 용서해 주셨듯이, 이제 우리도 이웃들의 죄를 용서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떤일이 벌어질까요? 23절입니다.
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우리가 잘못한 이웃들을 향해 그 죄를 용서해주면, 그 죄가 용서받는다고 말씀합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그러나 절대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남들을 용서할 권한, 능력, 힘이 없습니다. 그 권한은 누구에게만 있을까요? 바로 하나님!입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실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무슨 의미인가요? 바로 죄를 지은 그 사람을 이해하고 사랑하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죄를 지은 사람이 자신의 잘못을 깨닫기까지 사랑으로 사랑으로 보살피라는 말입니다. 또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그 잘못한 사람을 하나님의 생명의 길로 인도할 것입니다.
우리 이웃들의 죄를 용서하면 반드시 주어지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감사와 평안’입니다. 카페 2층에 붙어있는 ‘손양원 목사님의 9가지 기도’에 이렇게 적혀있습니다. 그중 7번째 기도제목에 이런 기도가 있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두 아들을 총살한 원수를 회개시켜, 내 아들 삼고자 하는 사랑하는 마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 총살시킨 사람이 얼마나 미웠을까요? 우리라면 참아낼 수 있었을까요? 하지만 손양원 목사님은 용서하기로 결단하고 그 사람을 사랑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랬더니 무엇이 찾아오나요?바로 ‘감사’. 감사가 찾아옵니다. 그리고 그 감사의 마음은 자신에게 ‘평안한 맘’으로 이어집니다. 이제 그 감사하고 평안한 마음은 우리가 속한 곳에 ‘화평’을 만들어 갑니다. 교회 안에서는 성도간에 기쁨과 사랑이 넘칩니다. 교회는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공동체로서, 진정한 ‘화평의 장소’가 됩니다. 이것이 부활의 예수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진정한 교회의 모습인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삶에 ‘평안’을 선물로 주고,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하고, 성도간에 사랑을 심어줍니다. 결국에는 우리 교회를 ‘화평’한 곳으로 인도합니다.
여러분은 진정으로 ‘예수님의 부활’을 믿으시죠? 네 분명히 예수님의 부활을, 믿음으로 고백하시길 원합니다. 그래야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의 말처럼, 부활이 없었다면 우리의 믿음을 모두 헛것입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진정으로 부활하셔서 우리와 지금도 함께 계십니다.
오늘 말씀처럼, 우리 모두 부활의 능력을 힘입어 감사와 기쁨으로 살아가는 아름다운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살아계시고,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기 때문에,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이제 그 받은 평안을 가지고 나에게 맡겨진 사명을 잘 감당하고
다른사람들을 더욱 사랑하는 우리될수 있도록 인도해 주세요.
끝까지 에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고 나아가는 우리되게 인도해 주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