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4.29. 새벽예배.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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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393장 - 사도신경 - 성경봉독
찬송가 393장 - 사도신경 - 성경봉독
민수기 20:1–13 (NKRV)
1 첫째 달에 이스라엘 자손 곧 온 회중이 신 광야에 이르러 백성이 가데스에 머물더니 미리암이 거기서 죽으매 거기에 장사되니라
2 회중이 물이 없으므로 모세와 아론에게로 모여드니라
3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말하여 이르되 우리 형제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을 때에 우리도 죽었더라면 좋을 뻔하였도다
4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회중을 이 광야로 인도하여 우리와 우리 짐승이 다 여기서 죽게 하느냐
5 너희가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여 이 나쁜 곳으로 인도하였느냐 이 곳에는 파종할 곳이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도다
6 모세와 아론이 회중 앞을 떠나 회막 문에 이르러 엎드리매 여호와의 영광이 그들에게 나타나며
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8 지팡이를 가지고 네 형 아론과 함께 회중을 모으고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는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 하라 네가 그 반석이 물을 내게 하여 회중과 그들의 짐승에게 마시게 할지니라
9 모세가 그 명령대로 여호와 앞에서 지팡이를 잡으니라
10 모세와 아론이 회중을 그 반석 앞에 모으고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반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고
11 모세가 그의 손을 들어 그의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니 물이 많이 솟아나오므로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마시니라
12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13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와 다투었으므로 이를 므리바 물이라 하니라 여호와께서 그들 중에서 그 거룩함을 나타내셨더라
자료 조사
자료 조사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첫째,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했습니다. 애굽을 떠날 때 물 부족은 '반석을 치라'는 주님의 명령으로 해결되었지만,17 이번 가데스에서의 주님의 정확한 지시는 달랐습니다. 여기서 모세는 '그들의 눈앞에 있는 반석에게 말하라 그러면 반석이 물을 쏟아내리라'(8)는 구체적인 지시를 받았습니다.
모세는 설득력 있는 커뮤니케이터였으며, 오랜 세월 동안 백성들은 그의 모범적인 삶과 신실한 가르침에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날 가데스에서 그는 비극적으로 부정적인 교훈, 즉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행하기를 거부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것보다 더 적은 것을 받는다는 교훈을 제외하고는 나눌 교훈이 없었습니다.
민 20:10 “모세와 아론이 회중을 그 반석 앞에 모으고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반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고”
들어라 이 반역자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해서 이 반석에서 물을 내주랴? 그래야 너희가 완악한 마음을 돌이키겠느냐?
서론
서론
저는 성경을 참 좋아하고, 성경이야말로 유일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확신합니다. 몇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그들의 이야기들이 지극히 인간적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결코 완벽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결코 흠모할만한 성인군들이 아니지요. 만약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하나같이 완벽한 사람들이었다면 읽기에 재미있긴 했을 것 같습니다. 마치 우리가 슈퍼맨과 같은 우리와는 전혀 다른 슈퍼히어로들이 등장하는 영화를 보면서 재미를 느끼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완벽한 인물들, 우리와 전혀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는 소설이고 영화일 뿐 전혀 우리와 같은 보통의 사람들의 인생 이야기와는 거리가 멉니다. 이 말은 곧 완벽한 인물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큰 공감을 사거나 교훈을 주거나 하기는 어렵다는 말이지요.
그런데 성경을 보십시오.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너무 우리와 비슷합니다. 그들의 이야기들은 지극히 인간적인 수준을 넘어 충격적이기까지 합니다. 하나같이 흠이 있고 연약한 부분이 있는데 성경은 굳이 그들의 그런 치부들을 숨기려 애쓰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아담과 하와는 한 순간의 유혹에 넘어가 하나님이 주신 아름다움을 잃어버리고 세상에 죽음을 가져왔습니다. 그들의 첫 아들 가인은 최초로 살인을 저지른 자였구요.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은 어떻습니까? 두려움 앞에서 아내를 다른 남자에게 누이라고 둘러대며 넘겨주었습니다. 또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지도자라 불리는 모세는요? 그 역시 혈기를 이기지 못하고 살인한 자였으며,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많은 변명을 늘어놓으며 거절했던 자입니다. 이스라엘의 가장 훌륭한 왕이라 불리는 다윗은 어떻습니까? 그는 가장 충성스러운 부하의 아내를 간음한 것으로도 모자라 그 일을 덮으려 우리아를 전장에서 죽도록 계략을 꾸몄습니다.
성경의 인물들은 너무나도 인간적입니다. 혈기가 있고, 음란하며, 거짓을 일삼고, 욕심이 많습니다. 지식도 지혜도, 용기와 진실함과 믿음도 부족합니다. 그렇기에 성경의 인물들의 이야기는 우리가 너무나도 쉽게 공감을 할 수 있지요. 저들이 왜 저런 죄를 저지르는지 우리는 이해를 할 수가 있는데, 조금 이해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 마치 성경의 인물들의 이야기가 마치 내 이야기를 써놓은 것처럼 느낄 정도입니다.
자, 저는 지금 두 가지 중요한 말을 하려고 합니다. 먼저는 성경의 인물들의 이야기가 지극히 인간적이기 때문에 성경은 결코 지어낸 책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성경이, 특히 구약성경에는 이스라엘이 자랑하는 수많은 믿음의 영웅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어낸 책이었다면 수많은 인물들의 죄와 허물을 그대로 두었을까요? 절대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모세가, 다윗이 딱 영웅으로 여겨질 정도의 이야기만,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고 훌륭하게 자신들의 역할을 수행하는 이야기만 남겨놓고 나머지 죄와 허물이 드러나는 이야기들은 빼지 않았겠습니까? 하지만 성경은 그렇게 사람들의 손을 타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등장인물들의 죄와 허물이 그대로 기록되어 있지요.
애초에 이 책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사람에 대해 무엇인가를 전달하려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자 제가 전하고 싶은 두 번째 말은 성경의 인물들의 이야기가 지극히 인간적이기 때문에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말입니다. 성경은 죄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죄인들을 사랑하시며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끊임없이 성실하게 일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전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그저 죄인들의 이야기만 가득 담겨 있었다면 성경은 죄로 물들어 타락한 참혹한 현실을 잘 녹여낸, 그래서 우리가 너무나도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일 수는 있겠지만 우리가 거기서 무엇인가 길을 발견하거나 교훈을 얻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죄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죄인들을 사랑하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너무나도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그러한 죄인을 사랑하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이 계시기에 우리가 용기를 얻고 소망을 품고 다시금 인생을 의미있게 살아갈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은 오직 성경을 통해 다시 말하자면, 죄인들을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 하나님과 함께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알게 하십니다. 저는 그래서 성경을 참 좋아하고, 성경이야말로 유일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확신합니다.
제가 이렇게 장황하게 서론을 말한 이유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눌 본문이 상당히 부담스럽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우리가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온 위대한 인물 모세가 하나님 앞에 죄를 짓고, 하나님께 거절당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민 20:12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을 향해 너희가 나를 믿지 않았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나타내지 않았기 때문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이 당혹스러운 말씀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본론
본론
이제 말씀을 차근차근 한 번 살펴봅시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민 20:1 “첫째 달에 이스라엘 자손 곧 온 회중이 신 광야에 이르러 백성이 가데스에 머물더니 미리암이 거기서 죽으매 거기에 장사되니라” 해가 바뀌고 첫째 달이 되었습니다. 이 때 모세의 누이 미리암이 죽었다고 하는데요, 햇수를 따져보면 이 때가 곧 광야에서 생활한 지 40년째 되는 해입니다. 이스라엘은 그들의 원망과 불평 때문에 꼬박 40년을 광야에서 방황을 했습니다. 넉넉잡아 열흘이면 갈 길을 40년 동안 헤맨 것입니다. 40년을 돌고 돌아 지금 그들이 다시 돌아온 곳이 어디입니까? 가데스입니다. 혹시 이 가데스라는 지명이 익숙하지 않으신가요? 모세가 열두 명의 정탐꾼을 보냈던 곳이 바로 이곳 가데스입니다.
40년의 긴 세월을 광야에서 보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변한 것이 없어 보입니다. 여전히 원망과 불평에 가득차있습니다. 민 20:2-5 “회중이 물이 없으므로 모세와 아론에게로 모여드니라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말하여 이르되 우리 형제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을 때에 우리도 죽었더라면 좋을 뻔하였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회중을 이 광야로 인도하여 우리와 우리 짐승이 다 여기서 죽게 하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여 이 나쁜 곳으로 인도하였느냐 이 곳에는 파종할 곳이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도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를 탈출한 직후에 그들은 똑같은 일을 경험한 적이 있었습니다. 40년 전에도 그들은 똑같은 태도로 모세에게 불평했었지요. 출 17:1-3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신 광야에서 떠나 그 노정대로 행하여 르비딤에 장막을 쳤으나 백성이 마실 물이 없는지라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이르되 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 다투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느냐 거기서 백성이 목이 말라 물을 찾으매 그들이 모세에게 대하여 원망하여 이르되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가축이 목말라 죽게 하느냐”
자그마치 40년입니다. 40년이면 좀 변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여전한 이스라엘의 원망과 불평에 시달리던 모세와 아론은 상한 마음을 가지고 회막으로 나아가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러자 곧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 이렇게 응답하셨지요. 민 20:8 “지팡이를 가지고 네 형 아론과 함께 회중을 모으고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는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 하라 네가 그 반석이 물을 내게 하여 회중과 그들의 짐승에게 마시게 할지니라”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기 위해 지팡이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온 회중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 했을까요? 반석에게 물을 내라 명령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모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민 20:10-11 “모세와 아론이 회중을 그 반석 앞에 모으고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반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고 모세가 그의 손을 들어 그의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니 물이 많이 솟아나오므로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마시니라”
이 구절에서 모세의 분노가 느껴지십니까? 이렇게 번역하면 조금 더 와닿으실 것 같습니다. “들어라 이 반역자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해서 이 반석에서 물을 내주랴? 그래야 너희가 완악한 마음을 돌이키겠느냐? 하고 모세가 그의 손을 들어 그의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니” 40년 동안 그들에게 시달리며 쌓인 모세의 분노가 폭발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온유한 사람이라고 불리던 모세가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지고 마는 순간이었습니다.
모세는 이렇게 하면... 공동체를 위해 물을 내릴 수 있다는 말을 들었지만(8), 평소와 달리 명령대로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주님의 명령대로 지팡이를 주님 앞에서 가져왔지만, 반석에 대고 말하는 대신 백성에게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그 앞에 모이자 그는 그 기회를 이용하여 그들을 반역자라고 공격적으로 말한 다음 그들 앞에서 반석을 두 번 쳤습니다. 만약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반석에게 말씀하셨다면 물이 솟아나는 것은 주님의 전능하심을 나타내는 표징이 되었을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말씀을 폭포로 만들 수 있습니다.
둘째, 그들은 하나님의 은사를 오용했습니다. 모세와 아론은 주님으로부터 리더십과 소통이라는 두 가지 특별한 은사를 받았습니다. 여기서 그들은 리더십의 은사를 오용했습니다. 주님의 종으로서 그들은 복종하는 순종의 모범이 되어야 했습니다. 백성들은 그들이 주님의 명령대로 모든 일을 하기를 기대했습니다. 민수기의 가르침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지만, 모세는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자신이 들은 대로 정확하게 행하지 못했습니다. 그 순간, 이 위대하고 재능 있는 지도자는 리더십의 은사를 오용하여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것을 행했습니다.
그들은 또한 소통의 은사도 오용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일생 동안 하나님을 위해 강력하게 말했으며, 주님께서 그들에게 하신 위대한 말씀은 성경에 우리를 위해 보존되어 있습니다. 그날 모세는 반석 앞에서 주님을 높이는 대신 백성들을 괴롭히는 데 말의 은사를 사용했습니다. '그들은 그 자리를 자연에 대한 하나님의 수월한 통제를 기쁨으로 표현하는 자리로 만드는 대신, 쓰라린 비난의 현장으로 만들었다."18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군중은 반역자라고 불려도 마땅하지만, 그날 주님은 그들이 듣기를 원치 않으셨던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놀라운 자비를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자기 뜻대로 말하는 자의 분노에 찬 책망으로 인해 망가졌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종들에게 필요한 은사를 아낌없이 주실 때, 그 은사를 개인적인 만족이나 인간의 박수를 받기 위해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19
셋째,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렸습니다. 주님의 비난은 짧지만 직접적이었습니다: '너희는 이스라엘 백성이 볼 때 나를 거룩하게 여길 만큼 나를 신뢰하지 않았다'(12). 믿음이 부족하면 기성세대는 그 땅에서 쫓겨날 수밖에 없었고, 모세와 아론조차 주님의 말씀을 믿지 않아 실패했습니다. 주님께서 그분의 특별한 능력을 조용히 보여 주실 계획을 세우셨을 때, 그들은 자신들의 말로 백성에게 우레를 쳤습니다. 백성들의 갈증은 해소되었지만, 주님은 거룩하고 자비로우시며 관대하신 하나님으로서 그분의 이름을 드높일 기회를 빼앗기셨습니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방해했습니다. 거대한 무리는 신성한 동정심을 받을 자격이 없었지만 주님은 그것을 드러내기를 열망하셨습니다. 그들은 모세가 말한 것('이 반역자들아...', 10)과 행한 것('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쳤다', 11)을 주로 생각하면서 기적의 권능의 현장을 떠났습니다. 지도자들은 주님보다는 자신들에게만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바위 얼굴을 향하여 말했더라면 주님께 영광을 돌렸을 것입니다. 백성들은 경배와 찬양의 기회를 빼앗겼습니다.
마 17:1-3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그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더불어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보이거늘”
출 34:5-6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에 강림하사 그와 함께 거기 서서 여호와의 이름을 선포하실새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우리의 삶은 먼저 우리에게 나타내신 은혜와 자비를 나타내는 삶이 되어야 할 것. 은혜와 자비를 받은 자로서 은혜와 자비로 대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
롬 12:1-2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