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430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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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에서 벗어나는 은혜

여러분 오늘도 함께 이자리에 모여서 말씀을 나누게 되어 너무나도 반갑습니다. 오늘도 말씀을 통해 주님이 주시는 귀한 은혜를 누리는 귀한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친구들, 혹시 지난주는 잘 지냈나요? 제 바람으로는 잘 지냈으면 좋겠지만, 그리고 실제로 잘 지냈으면 너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친구들도 꽤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 친구들이 잘 알듯이 곧 시험이 여러분들을 찾아오기 때문이겠죠.
이 시간만 되면 사실 여러분들의 마음에는 다급함과 조급함, 그리고 두려움이 생기게 될 것 같습니다.
저도 이전에 시험기간을 돌이켜보면 여러분들과 비슷한 마음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저 다른 것이 있다면, 여러분들은 충분히 준비를 많이 했겠지만, 저는 그렇지는 않았다는 것이겠죠.
저는 어떻게 공부하는 스타일이었냐면, 그냥 수업때만 열심히 듣고서, 평소에는 따로 그걸 안펼쳐보다가 시험기간이 되면 열심히 벼락치기로 공부하는 스타일이었어요.
그러다보니 시험기간일수록 더욱 주님이 간절해지게 되더라구요.
그래서 어떻게 했냐면, 시험 보기 전에 이렇게 기도를 했죠. 주님 제가 비록 공부는 많이 못했지만, 그래도 제발 아는 거 나오게 해주시고, 찍으면 잘 맞을 수 있도록 해주세요.
근데 저같은 경우는 꼭 이러면 어떻게 되냐면, 아는게 나오기보다는 애매하게 들었던 것 같은 것들만 나오고, 아리까리해서 고민하다가 고치면 틀리고, 이런 일들만 생기더라구요.
그때는 그래서 시험을 망치고 그러면 집으로 돌아가면서 여러 생각이 들게 되죠. 아 기도도 열심히 했는데, 주님이 왜그러실까. 혹시 내가 저번에 주님께 죄를 지은 것이 있어서 벌을 주시는 걸까.
호옥시나 여러분들 가운데에도 저처럼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되는 친구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저번에도 제가 여러분들께 이야기했듯이, 주님은 우리가 했던 것에 따라서 벌을 주고 그러신 분이 아닙니다.
지난번에 성경 읽겠다고 해놓고 안읽었다고 괘씸죄로 벌을 주시고 이런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다시 한번 말하지만, 우리의 모든 죄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 모두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지은 죄에 플러스로 앞으로 있을 죄까지도 말이죠.
하지만 아무리 그런 이야기를 들어도 마음에 불편함이 있게 됩니다.
왜냐, 우리는 지속적으로 죄를 짓고, 그냥 짓는 것 뿐만이 아니라 그 죄가 더 커져나가기도 하고, 그러다보면 혹시 내가 구원을 못받은 것은 아닌지, 이런 생각들이 들게 될 거에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말한 대로 죄는 우리를 지속적으로 유혹하고, 또한 넘어가게도 합니다. 그러한 우리 스스로의 모습을 돌아보면 한마디로 현타가 오게 됩니다.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우리의 이 죄가 우리에게서 떠나갈 수 있을지, 또한 죄많은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는지, 오늘 이 말씀을 보면서 함께 나누어보도록 할게요.
오늘 우리가 함께 본문 말씀을 읽었는데, 혹시 우리 친구들, 이 말씀이 어떤 내용인 것 같나요? 뭐에 대한 내용인 것 같아요?
그렇습니다. 율법 규례에 관련된 말씀이에요. 시체를 만져서 부정하게 된 사람이 다시 깨끗해질 수 있는 방법에 대한 말씀입니다.
사실 우리가 이런 말씀들을 보게 되면 어때요? 따분하고 재미도 없고, 왜 굳이 이런 일들을 해야되는 건지, 성경을 읽는 우리들을 참 힘들게 하는 것들이 바로 이런 율법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율법의 내용들은 하나하나가 너무나도 중요한 말씀입니다. 이 율법이 가리키고 있는 바가 있기 때문이죠.
이 말씀에서 등장하는 행동들이 그저 그냥 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겠죠.
그렇다면 대체 오늘 이 말씀은 우리에게 어떤 것을 가져다줄 수 있을까요.
처음부터 한번 보도록 할게요.
11절에서 뭐라고 하죠? 사람의 시체를 만진 자는 7일동안 부정하리니.
부정하다라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깨끗하지 못하고 거룩하지 못하다는 의미입니다. 그 몸이 더러워졌다라는 뜻이겠죠.
그러다면 왜 시체를 만지면 부정해진다고 했을까요?
시체는 사람의 목숨이 떠나간 상태입니다. 죽었다는 것이죠. 그런데 이 죽음이라는 것은 뭐에 대한 결과일까요? 바로 죄에 대한 결과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말씀도 있죠.
그러다보니 죽음이라는 것은 완전하신 하나님과 반대되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러한 죽음에 닿는 것은 그 자신을 하나님의 상태와 반대로 만든다는 것이 되겠죠.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시체를 만진 자를 부정하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부정 자체를 탓하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그 시체를 시체인지 모르고 실수로 만졌을 수도 있구요, 그리고 시체를 알고 만졌다고 해도, 사람을 장사하는 사람들 같은 필수로 만져야 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잖아요?
물론 시체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과 반대의 상태에 놓여있는 것이지만, 그래서 그것과 접촉했을 때 부정해지지만, 하나님은 그 자체를 죄로 여기시지 않으셨고, 그것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하셨습니다.
그것이 이어지는 12절에 나옵니다. 셋째 날과 일곱째 날에 잿물로 정결하게 하라고 말씀하시죠.
오 그럼 시체 만져도 어디 불쏘시개에서 재 얻어다가 물에 풀어서 쓰면 되겠네요? 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요, 사실 이 재는 아무 재가 아닙니다.
이 재에 대한 설명은 바로 앞에 19장 1절부터 10절까지에 등장합니다. 바로 붉은 암송아지를 태운 재입니다.
민수기 19:9 NKRV
이에 정결한 자가 암송아지의 재를 거두어 진영 밖 정한 곳에 둘지니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 회중을 위하여 간직하였다가 부정을 씻는 물을 위해 간직할지니 그것은 속죄제니라
그래서 이 재를 물에 풀어서 잿물을 만들고 그것을 통해 각 개인들이 부정한 상태에서 벗어나 다시금 깨끗해질 수 있었던 것이죠.
그런데 여러 사정상 타이밍이 맞지 않는 경우들도 있을 수 있겠죠? 그래서 셋째 날과 일곱째 날에 깨끗해지는 잿물로 깨끗하게 하지 못하면 그는 계속 부정한 상태로 남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러한 상태를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부정 자체에 대해서는 뭐라고 하시지 않으시더라도, 그것이 계속 되는 것에 대해서는 뭐라고 하신다라는 것이죠.
왜냐, 그 사람이 여호와의 성막을 더럽히게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니 그러면 그냥 그 사람만 좀 격리해놓고 나중에라도 꼭 정결하게 하면 되는 것 아닌가요?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죠. 하지만 이 부정은 그렇게 간단히 처리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 이유는 이어지는 14절에서부터 등장합니다.
14절부터 등장하는 내용은 사람이 장막 안에서 죽었을 때에 대한 규례인데요, 여기서 신기한 장면이 등장합니다.
민수기 19:14–15 NKRV
장막에서 사람이 죽을 때의 법은 이러하니 누구든지 그 장막에 들어가는 자와 그 장막에 있는 자가 이레 동안 부정할 것이며 뚜껑을 열어 놓고 덮지 아니한 그릇은 모두 부정하니라
자 어떤 점이 아까랑 다른가요? 그렇습니다. 바로 장막 안에 있는 모두가 부정하고 심지어 뚜껑을 덮지 않은 그릇들마저 모두 부정하게 된다라는 거에요.
그렇다면 여기서 이 부정의 특징이 등장하죠. 뭘까요? 바로 전염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부정한 자를 또 다른 이가 접촉하거나 함께하게 된다면 부정이 옮겨지게 된다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부정하게 되더라도 빨리 부정의 상태에서 벗어나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에서 더 자세한 정결의 방법을 말씀하십니다. 잿물을 우슬초로 찍어서 사람과 더러워진 모든 기구와 시체까지도 뿌려야 된다는 것이죠.
그리고 그것을 뿌린 사람 역시도 부정해지기 때문에 몸과 옷을 씻어서 정결하게 하도록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읽었던 정결의 규례입니다. 부정한 자가 부정함에서 벗어나 정결하게 되는 방법인 것이죠.
그래요. 뭐 율법 규례 잘 알았어요. 그런데 전도사님, 이게 우리랑 무슨 상관인 것이죠?
그렇습니다. 전도사님이 말하니까 듣기는 들었지만, 우리가 뭐 이스라엘 사람도 아니고, 죄 지으면 우리도 잿물 뿌려야 된다는 것인가요? 이런 생각이 아마 우리 친구들의 머릿속에 있었을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요, 이 규례는 여러분들과 관계가 있습니다. 왜냐, 이것이 여러분들과 관계 있는 한 존재를 가리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누구를 가리키고 있는 것일까요?
그렇습니다. 바로 우리 죄를 대속하신 그리스도 예수님입니다.
오늘의 이 사례에서 나타나는 부정함은 바로 우리의 죄를 나타낸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부정함이 뭐라고 했죠? 하나님과 반대되는,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상태라고 했습니다.
죄 역시도 마찬가지죠.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과 정확히 반대된 것이 바로 죄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부정함을 계속 간직한 사람은 어떻게 된다고 했었죠? 이스라엘에서 끊어진다고 말씀은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성막을 더럽히게 되기 때문이죠.
부정함을 지닌 채로 거룩하신 하나님께로 나아간다면 그에게는 사망이 찾아오게 될 것입니다.
죄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죄를 가진 상태로 하나님께 나아간다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요? 거룩하신 공의의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부정한자가 그랬던 것처럼, 죄를 지닌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가 없었습니다. 나아가면 죽으니 나아갈 수가 없었던 것이죠.
그런데 그 부정함의 특징이 또 하나가 있었죠. 뭐였을까요? 바로 전염성입니다. 부정함에 접촉만 하더라도, 그 자신도 부정해지고, 결국에는 그 주변이 다 부정해지게 되었죠.
죄도 다르지 않습니다. 죄는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고, 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의 사람들에게까지 죄의 영향을 전염시킵니다.
다른 이들을 비방하고 욕함으로써 그 사람에게도 죄로 물든 마음을 만들게 하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죄로 물든 행동을 하면서 그걸 본 사람들의 마음에도 그러한 행동을 하고 싶도록 유도하는 것처럼 죄 역시도 큰 전염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죄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부정함을 해결하는 것처럼 빠르게 해결을 해야 합니다.
그 방법은 뭐였나요? 붉은 암송아지를 죽여 만든 재와 물을 합쳐 그 잿물을 통해 정결하게 될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잿물로 정결하게 된 자는 이제 다시 하나님의 성막에 들어갈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죠.
우리의 죄 역시도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붉은 암송아지와 물은 없지만, 그것보다도 더욱 귀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존재했습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우리는 그 재를 얻을 수 있었고, 그리고 성령의 우리 속에 임재하심을 통해 그 재를 담을 물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재와 성령의 물이 합쳐진 잿물은 우리를 죄로부터 자유롭게 만들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다시 하나님을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결국 이 정결에 대한 규례는 다른 것이 아니라, 우리 모든 부정한 죄를 다시 정결하게 만드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알려주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재와 성령이라는 물을 통해 얻은 잿물이 있었기에 우리는 죄라는 더러운 본성에서 벗어나 이전까지 끊어져있던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금 세워나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우리 모든 이들에게 알리시고자 하셨던 하나님의 크신 계획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께 한번 묻겠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상태에 있나요? 부정한 상태인가요? 아니면 정결한 상태인가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부정함에서 벗어나기 위한 이 붉은 암송아지의 재는 그 당시의 부정함만을 정결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다시 시체를 접촉하게 되면 그 일들을 또 했어야 했다는 것이죠.
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라는 크신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이기 때문에 절대로 한번만 쓰고 버리는 일회용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행할 앞으로의 모든 부정한 일마저 그리스도의 재는 여러분들을 정결하게 다시금 만들어주실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의 상태는 절대로 부정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은 이미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로서, 그 재로서 정결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의 어제도, 지금 이순간도, 또한 내일과 미래도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 여러분들과 함께하십니다.
아마 우리 친구들에게는 당장 눈앞에 닥친 시험이 중요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물론 시험이 안중요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제가 여러분들께 말하고 싶은 것은 그 시험이 여러분들에게 어떻게 다가오든, 그것이 여러분들의 모든 것을 좌지우지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시험을 잘보든 못보든 여러분들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정결한 주님의 백성입니다. 주님께서 사랑하시고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어떠함과 상관없이 주님은 여러분의 모든 순간마다 함께하실 것이고, 여러분들을 정결하게, 주님께서 원하시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만들어주실 것입니다.
그 주님의 사랑을 믿으면서, 앞으로 있을 모든 시험들, 또한 또 다른 앞길의 모든 일들 가운데서도, 주님과 함께 힘을 내어 나아가는 우리 모든 오늘의 하늘고 친구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함께 찬양할까요? 함께할 찬양은 예수 늘 함께하시네입니다.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의 모든 고단한 삶을 이끌어주시는 주님을 함께 찬양합시다.
말씀을 놓고
우리를 정결케 하신 주님께 감사하면서 주님과 더욱 함께하겠다고
우리 앞에 놓인 여러 문제들을 놓고 더욱 함께해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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