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랑이 행진으로

민수기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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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호르마 승리 2. 승리 후의 불평 3. 하나님의 심판과 용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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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마 승리

아론이 죽은 이후 이스라엘은 길을 떠납니다. 원래대로 라면 에돔의 땅을 지나 올라가야 했습니다. 에돔의 땅을 지나면 좀 더 쉬운데 가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에돔이 그 자신들의 땅을 지나가는 것을 거절했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에돔왕에게 왕이 보는 시야에서 우리가 걷겠습니다. 그 어떤 것도 건들지 않고 지나가기만 하겠습니다. 라고 했지만 왕이 거절합니다. 그렇게 말하고 갑자기 돌변하여 공격을 하면 누가 그 것을 감당하느냐는 말과 함께 지나갈 수 없다.라고 통보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좋은 길을 놔두고 돌아서 가야하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아론이 죽은 슬픔을 잘 다독이면서 길을 떠나자마자 사건이 생깁니다.
아랏의 왕이 이스라엘을 쳐서 몇 사람을 포로로 데려가버렸습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 생겼습니다.
이스라엘이 걸어가는 그 길에 전쟁이 있을 것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갑자기 공격을 당할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기에 이스라엘은 당황합니다. 하지만 그 당황이 오래가지 않습니다.
바로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합니다.
지금 아라랏 왕과 전투를 앞둔 이스라엘은 광야 2세대입니다. 40년 전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다며 불순종의 모습을 보였던 1세대들이 죽고 광야에서 자라게 된 2세대입니다.
광야생활은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하는 훈련을 받는 시간이었습니다.
2세대들은 광야 생활을 통해, 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40년을 돌아다녀야 하는지를 배웠습니다.
1세대와는 다른 믿음의 모습을 만들어가던 세대였습니다.
아마 1세대였으면 이렇게 공격을 당해 이스라엘이 포로로 끌려가게 되면, 바로 불평했을 것입니다.
“우리 애굽에서 잘 살고 있는데 굳이 굳이 끌고 나오더니 이러한 꼴을 당하게 한다!”라며 불평과 불만을 쏟아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2세대는 다릅니다.
포로로 끌려간 가족을 데리고 오기 위해, 그리고 다시 전투를 하기 위해 준비하면서 가장 먼저 하나님 앞에 나가 기도함으로 전쟁 준비를 합니다.
믿음과 순종을 갖지 못했던 1세대와 다르게 하나님 앞에 서원하며, “우리의 손에 전쟁을 붙여 달라!”고 외칩니다.
이스라엘을 공격했던 아랏 왕은 가나안 사람입니다.
40년전 이스라엘이 전쟁하는 것을 두려워했던 그 가나안 사람과의 전쟁을 하게 되었습니다. 기도하지 않고, “우리는 메뚜기에 불과하다!”라며 “스스로 약속의 땅을 정복하는 것을 포기”했던 이스라엘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맞서 싸우려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손에 붙여주시면 우리는 반드시 승리한다!”라는 확신을 갖고 기도하고 서원하고 선포하며 전쟁을 시작합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승리합니다. 완전 박살내 버립니다. 그리고 그 곳을 “파괴. 완전히 멸함"이라는 의미의 호르마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우리가 여기에서 주목해야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민수기는 이스라엘의 광야 40년 역사를 기록한 책입니다. 이 책을 보면 이스라엘이 얼마나 하나님께 불평과 불만을 쏟아냈는지 그리고 계속해서 하나님께 반역하며 살아온 삶들이 세세하게 기록 되어있습니다.
하지만 그에 비해 이스라엘의 전쟁 승리는 굉장히 간략하게 표현이 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불순종에 대한 기록은 많은데, 승리에 대한 내용은 이렇게 간략하게 3절 딱 한 절로 기록이 되어 있을까요?
(쉬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붙들고 살아가는 민족에게 승리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면, 순종하고자 하면, 그 분이 주시는 은혜를 신뢰하기만 하면! 백이면 백 모든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할 수 있기 때문에 간략하게 기록한 것입니다.
40년 전 열두 정탐꾼아무리 우리는 그들에 비해 약하며, 메뚜기와 같다! 라고 했어도, 광야 1세대가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광야를 떠돌지 않았을 것입니다.
40년 전 당연히 누렸어야 할 그 승리를 이제서야 누리고 있는 것이죠.
하나님을 의지하고 붙들기만 했으면,
질 것 같아보이는 전투였다 할지라도, 그 자리까지 이끄셨던 하나님을 정말로 신뢰하기만 했다면
이스라엘은 40년 전에 이 승리를 맛보았을 것이고, 이미 가나안에 정착하여 살아가고 있었을 것입니다.

승리 후의 불평

기도하며 선포했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에 따라 승리를 경험했습니다. 앞으로 가나안 사람들과 끊임없는 전쟁을 치뤄야 했던 이스라엘에게 가나안 왕과의 전쟁에서의 승리 경험은 굉장히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문제가 또 생깁니다. 아랏왕이 공격해서 이스라엘이 포로로 끌려갔을 때보다 더 심각하고 위험한 문제가 터집니다.
외부에서 문제가 터졌을 때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기도하며 똘똘 뭉쳤고 그 문제를 피하지 않고 부딪쳐 승리를 쟁취해냈습니다.
지금 이 문제는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시작되고 있습니다. 완전히 진멸시켜버리는 호르마 승리를 거두었으나 그들은 여전히 길을 돌아서 가야 했거든요.
4절. “에돔 땅을 우회하려 했다가 길로 말미암아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들이 걸어가야 하는 길은 굉장히 험하고 사람들이 걸어 갈 만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마실 것과 먹을 것이 거의 없는 굉장히 척박한 길이었습니다.
완벽한 승리를 경험했습니다.
아무도 자신들을 막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 승리가 하나님께 있음을 망각한체, 당장 눈 앞에 있는 땅. 그 어려움을 보고 이들이 불평과 불만을 쏟아내기 시작합니다.
“아랏 왕과 싸워 이겨낼만큼 우리는 강하고 능력이 있는데 왜 돌아서 가야하는가?”
승리의 기쁨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당장 눈 앞에 있는 것에 집중하면서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스스로 또 닫아버렸습니다.
“고작 이렇게 살려고 우리를 데리고 나왔는가!”라며 모세를 향해 거친 원망의 소리를 내기 시작합니다.
모세를 원망하는 것으로 시작했던 이들의 외침의 수위가 점점 강해지더니 결국 선을 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광야 생활을 하며 먹어왔던 만나. 하나님께서 직접 내려주신 그 양식을 5절의 표현처럼 “하찮은 음식"이라고 폄하해 버립니다.
“하찮은"이라는 표현은 여기에서 딱 한번 사용되었습니다. “하찮은”은 “비참한. 끔찍한”이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은 40년 동안 쉬지 않고 내려주셨던 하나님의 선물이자 양식이었던 그 만나를 “하찮은 음식"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는 비참하고도 끔찍한 음식"이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죠. 만나를 비하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우습게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을 완전히 하찮고 쓸모 없는 신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죠.
이전에는 모세와 아론 사람에게 불평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하나님을 지목하여 불평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이 불만은 이스라엘의 광야 여정 중 마지막으로 기록된 불만입니다. 마지막으로 기록된 불만의 수위가 어떻죠?
“하나님을 하찮고 쓸모 없는 비참한 신”으로 표현합니다.
절대 해서는 안되는 죄를 짓고 있는 것입니다. 왜 이들이 이렇게까지 하나님을 모욕하고 비난했던 것일까요?
호르마 승리 때문이었습니다.
광야에서 40년동안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는 훈련을 했지만 사실 그들은 아버지 세대였던 광야 1세대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아버지 세대들이 끊임없이 저지르는 반역과 불만을 계속해서 보고 자랐거든요.
그들에게 학습되어진 습관. 즉 상황에만 집중해서 불평하고 불만하며 하나님을 져버리는 그 못된 습관이 있었다는 것이죠.
자신들이 기도하며 선포하며 하나님께 서원했습니다. 그래서 큰 승리를 경험했습니다.
승리를 경험하게 해주신 하나님이 어느 사이엔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승리를 이루어 낸 것이 온전히 자신들만의 능력이라는 교만한 마음이 자리 잡았습니다.
나의 능력과 힘으로 승리했다.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험하고 마실 것도 먹을 것도 없는 길로 가야 하는 것인가?
조금 전에 큰 승리를 경험한 우리가 무엇이 두려워 에돔왕이 “지나 갈 수 없다"한다고 수용하고 돌아가야 하는 것인가? 하는 그 교만한 마음하나님을 나보다 못한 존재로 만들어 버린 것이죠.

하나님의 심판과 용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버린 이스라엘을 향해 하나님께서 심판을 시작하십니다.
불뱀을 보내셨습니다. 불뱀은 사람들을 물었고, 뱀에 물린 사람들은 불에 타는 고통을 느끼며 죽어가기 시작합니다.
병원도 약도 없는 광야에서 이 정도의 독을 가진 뱀에게 물리면 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빨리 죽어 이 고통이 끊어지기를 기다리는 것 외에 답이 없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까지 되어서야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잘못을 생각해냅니다. 그리고 모세에게 기도해달라 요청합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이 해왔던 모든 반역의 사건들을 보면 모세가 먼저 엎드려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시기 전에 모세가 먼저 바짝 엎드려 자비와 용서를 구하며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용서가 임하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백성들이 잘못을 깨닫고 먼저 뉘우치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기도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에게 불뱀을 만들어 기둥 위에 달아 놓으라! 말씀하십니다.
기도하고 달아 놓으라! 그리고 불뱀이 장대 위에 달렸다. 7-8절 단 두 절의 기록이기 때문에 이 시간이 굉장히 짧거나 혹은 촉박하게 진행되었을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광야에서 불뱀의 형상을 한 놋뱀을 바로 만들어 달 수 있었을까요? 재료가 되는 구리를 빨리 가져왔다 해도, 구리를 녹이고 뱀의 형상으로 만들고 틀을 잡아 굽고 식히는 것이 5분 안에 완료되는 일이었을까요?
아닙니다. 꽤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그 시간동안 불뱀이 빨리 만들어지기를 바라면서,
하나님께서 이 진노를 거두워 주시기를, 자신들이 잘못했을 기도하며 기다렸을 것입니다.
불뱀이 만들어졌고 장대 위에 달려 세워집니다. 그것을 본 사람든 다 살아납니다.
이해가 되시나요? 솔직히 말이 안되는 상황 아닌가요? 불에 타는 고통을 주는 독에 노출 된 사람이 장대 위에 걸린 뱀을 보는 것만으로 독이 사라지고 살아난다는 것은 어떤 타당성도 설득력도 없는 이야기 아닌가요?
하지만 그 일이 실제로 그 광야에서 일어났습니다.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났을까요? 간단합니다. 가나안에 들어가기 직전 마지막 사건을 통해 이스라엘의 순종을 하나님께서 보고 싶으셨던 것이죠.
반역과 불평 불만은 인간에게 뗄 수 없는 너무나 당연한 것들이죠. 우리도 다르지 않습니다. 어쩌면 감사보다 불평과 불만을 더 많이 하는 것이 우리일지 모르죠.
하지만 그럼에도 정말 감사한 일은, 그런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셨고 돌이킬 수 있는 힘을 주셨고, 성령님을 통해 매일의 변화를 우리에게 주고 계신다는거에요.
지금 이 상황을 보고 불평하고 두려워한다 해도,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기에 우리가 이 새벽을 깨우고, 매일의 예배 자리에 있는 것 아닌가요?
장대 위에 달린 불뱀을 보고 살아난 그들처럼, 우리도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에 새 삶을 얻고 영생의 삶을 기대할 수 있게 된 것 아닌가요?
사랑하는 제2가족 여러분.
하나님 우리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들 중 한가지는 순종의 삶을 살겠노라는 우리의 믿음의 고백입니다.
지금까지 인도하신 것도 하나님이시며, 오늘도 앞으로도 나를 이끌어 가실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나는 그런 하나님을 믿습니다. 실수하고 넘어진다해도, 불평하고 마음대로 살아간다해도, 결국 나에게는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라고 하는 그 고백을 듣고 싶어합니다.
오늘 이 시간 기도 할 때, “나에게 가장 소중한 분은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라고 고백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삶의 한 부분이라도 순종하는 삶을 사는 내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함께 기도 할 때 그 분이 주시는 평안함 그리고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주어지기를 소망하며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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