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504 새벽] 세상의 우상들을 버리고 선하신 하나님만 붙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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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 322 세상의 헛된 신을 버리고
본문 : 삿 2: 11-16
언제나 선하신 하나님, 늘 우리의 삶을 선하게 인도하여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내가 선하신 주님의 인도하심을 깨달을 때에도, 그리고 미처 깨닫지 못할 때에도, 늘상 변함없이 우리를 가장 좋은 것으로 예비하시고 인도하시는 주님을 온전히 신뢰하게 하여 주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오늘 본문의 시작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악을 행했다" 라는 말로 시작한다. 그들이 행한 악은 무엇이었길래 하나님께서 이처럼 진노하시며 이스라엘에게 징계하시는 것인가? 이스라엘의 악은 단 한 가지,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을 섬긴 것이다. 본문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버렸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정말로 이스라엘은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멀리 떠나갔는가? 여호와 하나님이 누구신지 모른 채 그저 이방신들만을 섬겼는가? 언뜻 보면 이스라엘이 여호와를 까맣게 잊어버리고 이방 신을 섬긴 것으로 이해하기 쉽다.
그러나 이것은 틀린 것이다. 이스라엘은 단 한 번도 여호와 하나님을 완전히 잊어버린 적이 없다. 또한 저들은 단 한 번도 하나님을 섬기지 않은 적이 없다. 왜냐? 믿져야 본전이기에 여호와 하나님을 버릴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이스라엘은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다른 신인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긴 것 뿐 이었다. 그런데 이것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자신을 버렸다고 말씀하신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도 겉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얼마든지 우상을 함께 섬길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함께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겼을까? 당시 바알은 구름과 폭풍과 비의 신이고, 아스다롯은 전쟁과 다산의 신으로서, 바알과 아스다롯은 서로 부부사이였다. 가나안 사람들은 이 두 부부신이 한 해의 소출과 다산을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신이라 생각해 왔다. 특히 신들의 세계와 자연의 세계, 인간의 세계는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에 신들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이 자연과 인간의 세계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했다. 이것을 거꾸로 이야기 하면, 인간의 세계에서 행하는 일들 역시도 신들의 세계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었다.
가나안 사람들은 바알과 아스다롯이 서로 함께 잠자리를 많이 할수록 자손의 수와 가축의 소산과 땅의 소산이 많아진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바알과 아스다롯의 사랑의 행위를 부추기기 위하여 신전에서 예배의 한 방편으로 술을 마시며 남자 신도들은 신전 여자 창기들과 음행을 하고, 여자 신도들은 남창들과 음행을 저지르게 된다. 이것은 단지 성적인 쾌락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기는 예배의 행위였다.
이미 가나안 사람들은 오랫동안 농사를 지어왔었기 때문에 한 해 곡식의 소출이 많았던 것 같다. 반면에 이스라엘은 400년간 이집트에서 종살이를 했고, 40년간 광야생활을 했던 자들이었기 때문에 제대로 된 농사법 지식도 없었을 것이다. 어찌보면 한 해 소출량이 가나안인들에 비해 형편 없었을 것은 당연한 이야기이다. 그러다 문득 이스라엘은 이런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왜 우리는 가나안 사람들에 비해 소출이 적지? 같은 햇빛과 같은 비를 맞는대도 왜 가나안 민족의 한해 소출량이 우리보다 훨씬 더 많지?” 그리고 곧이어 이스라엘 백성들은 결론을 내렸을 것이다. “우리도 가나안의 신들에게 절하여 많은 소출을 얻어 보자” 더욱이 가나안의 종교는 육감적이고 쾌락적이었기 때문에 더욱 매력있게 여겨졌을 것이다.
여러분, 이스라엘이 우리보다 신앙이 형편없어서 우상을 섬겼을까? 저들이 우리보다 훨씬 악하였기 때문인가? 아니면 저들은 태생부터 저렇게 음란한 자들이었나? 그렇지 않다. 저들은 우리와 동일하게 그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현실적 요소에 민감했을 뿐이었다. “나의 지금 상황에 어떠한 결정과 선택이 더 이익이 될까? 당장 나에게 더 많은 소출을 가져다 줄 것이 무엇일까?” 그들은 한 해 수확을 늘리기 위해 여호와 하나님 한 분 만을 섬기는 것보다 이왕이면 바알과 아스다롯도 함께 섬기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던 것 뿐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고방식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도 동일하게 갖고 있는 부분이다. 여러분, 생각해보라. ‘세상의 가치관과 하나님의 명령이 서로 대립될 때에 어느 것을 선택하는 것이 나에게 지금 당장 이익이 될까?’ 지금 당장 여러분들게 이 질문을 드린다면 누구나 쉽게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 우리에게 가장 유익이 됩니다” 라며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살면서 막상 이 질문에 대해 선택해야 할 기로에 놓이게 되면 망설여지는 것이 사실이고, 심지어 조금의 주저도 없이 세상의 가치관을 따라 가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너무 많다는 것이다.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 늘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됨을 보게 된다. 세상이 말하는 성공의 방식, 출세의 방식, 부를 쌓을 수 있는 방법들, 곧 우리의 눈과 귀를 사로잡고,우리의 마음을 자극하여 요동하게 만드는 수많은 세상의 가치관과 하나님의 말씀 사이에서 늘 갈등해야 하고, 늘 선택해야 한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 위해서는 우리 안에 믿음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신뢰와 믿음이 없다면 우리는 그 명령대로 행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내가 세상에서 말하는 것들에 마음이 동요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인도자 되시고 구원자 되시며 선한 목자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분의 말씀대로 순종할 때에 하나님께서 나의 앞길을 책임지시리라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지금 이스라엘은 그 믿음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들이 처했던 삶의 터전에서 세상의 가치관과 하나님의 명령이 서로 대립하였을 때에 그들은 세상의 가치관을 따라 갔다. 풍성한 수확을 거둘 수만 있다면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기고 숭배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성경은 뭐라고 말하는가? 이러한 선택을 한 이스라엘을 일컬어 오늘 본문 11절은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다” 고 평가한다. 하나님만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고, 세상의 방식을 받아들이고 그것들을 따랐던 이스라엘을 가리켜 하나님께 악을 행하였다고 평가하는 것이다.
여러분은 어떠한가? 여러분은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선한 목자가 되셔서 우리를 늘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심을 확신하는가? 아니면 본문 속의 이스라엘처럼 하나님도 신뢰하지만 내 은퇴후 삶을 위해, 내 미래를 위해, 내 성공을 위해, 다른 세상의 가치관도 함께 받아들이고 섬기는가? 꼭 기억하라. 우리가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그분에 대한 온전한 신뢰와 믿음이 뒷받침되어야만 가능하다.
이 온전한 신뢰란 무엇을 의미할까?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만이 진리이고 생명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온전한 신뢰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 만이 우리에게 가장 큰 이득이며, 옳고 제일 좋은 길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다른 길은 있을 수 없다. 오직 주를 온전히 신뢰하는 자만이 이 모든 일들을 감당할 수 있다. 선하신 주님을 완전하게 신뢰하는 자만이 어떠한 선택의 기로 앞에서도 주저하지 않고 주님을 선택할 수 있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여러분, 말씀을 정리하려 한다. 오늘 우리 주변에도 수많은 ‘주'라고 불리울만한 것들이 세워지고 있다. 이렇게만 하면 노후의 삶이 보장된다고, 이렇게만 하면 은퇴후 윤택한 삶을 살 수 있다고, 이대로만 하면 사회생활 성공할 수 있고, 이대로만 하면 승진할 수 있다고, 이렇게만 하면 몇 년 안에 내집 마련에 성공할 수 있다고 우리를 현혹시키는, 우리를 둘러싼 수많은 바알과 아스다롯 가운데에서도 여러분의 마음을 지키길 바란다.
시23:1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라는 시편기자의 고백처럼, 우리에게 넉넉하게 채워주시고, 우리에게 늘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선하신 주님만을 붙드는 이 자리의 모든 성도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기도하자. 주여, 우리의 연약한 믿음을 붙들어 주셔서 이 세상의 헛된 우상들에 마음 빼앗기지 아니하고 오직 선하신 주님만을 붙드는 우리의 믿음 되게 하여 주옵소서. 선하신 목자 우리 주님만을 끝까지 신뢰하며 이 믿음의 경주를 끝까지 달려가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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