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각각 자기 기업을 지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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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세하게 묻는 자에게 응답하신다.

공의는 정의로 이어진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는 또 한편 사람들과의 바른 관계로 이어진다. 여기서 참 중요한 것은 함께 지킬 수 있는 일관된 약속이다.
원칙과 규칙에서 원칙은 모두에게 해당되는 대원리이고, 이에 세세하게 적용하면서 규칙들이 형성된다.
신기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먼저 대원리를 주셨다. 그리고 하나님과 관계 맺는 예배 등에 대해서는 아주 세세한 규칙까지 주셨다.
그리고 사람들과의 관계성에서 때로는 갈등의 요소들, 또 함께 논의할 요소들이 반드시 생긴다.
이런 부분들이 의미가 없다면, 성경에서 전혀 기록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협의적인 과정들이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논의하고 협의하는 것들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다.
물론 그 과정에서 하나님께 묻고, 응답을 받아야한다. 문제시한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자리에 먼저 항상 답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먼저는 대원리들이 있지만, 때로는 충분한 답이 주어지지 않은 가운데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럴때는 묻는 것이다.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 어떻게 공의와 정의가 흐를 수 있는지 말이다.
슬로브핫의 딸들은 아버지가 일찍 죽음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지 못할 위기에 처했다. 부계 사회 속에서 살아간다지만, 그들에게 유업을 물려받지 못한다면, 그들은 정말 한 순간에 극빈한 삶으로 떨어질 수 있다. 이러한 위기의 순간 속에서 하나님께 정의를 부르짖는다. 이러한 외침 속에서 오히려 역전됨을 보았다. 딸들이 아버지의 기업을 물려받은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것은 더 큰 이점이 되었다.
그녀들이 결혼하는 시집에 이 재산이 더해질 것이다. 한편 이로 말미암아 균형이 또한 무너질 수 있다. 타 가문에게로 땅이 흘러감으로서 혼란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때로는 정의를 시행하다보면, 또 다른 문제가 연관되어서 복잡하게 진행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정의를 시행조차하지 않는 것은 문제이다. 여전히 하나님께서는 세부적인 논의함 속에서 답을 주기 원하시는 것이다. 구하지 않는 자에게는 주시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원리이기도 하다.
이러한 문제점을 느낀 므낫세의 손자 마길의 아들 길르앗 자손들은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다. 항상 정의의 차원은 단순히 개인의 차원에서도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가문과 지역과 함께 살아가는 이들에게도 교차적으로 존재한다. 이 과정 속에서 하나님의 응답을 듣고, 또 한편으로는 서로가 양보하고, 서로가 수용함이 늘 필요하다.
이러한 과정들이 결국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으로 이어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공의가 곧 정의의 문제로 이어지는 유기적인 통일성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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