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 가운데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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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이 진짜 그리스도인이 어떤 사람이냐? 라는 질문에 어느 경건한 그리스도인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마음이나 생각을 하나님께 두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사는 사람이다.’ 라고 할 것 입니다.. 그래서 묻습니다.
“여러분은 우리는 어떠한 그리스도인 입니까?” 사실, 우리는그리소도인이라 말은 하면서도 부끄럽게도 하나님보다 세상에 더 마음을 주며 살고 있고, 세상을 더 생각하며 살고 있고, 세상을 더 바라보며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에는 감격과 능력이 있습니다. 두말할 필요 없이 그 신앙의 감격과 능력은 이름만의 신앙인이 아닌 진정한 신앙인이 맛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진정한 신앙인이란 앞에서 언급한 어느 경건한 신앙인의 말처럼 세상보다 하나님께 더 마음을 주고, 하나님을 더 생각하며, 하나님을 더 바라보는 신앙인을 말합니다. 그러고 보면 신앙인이라 하는 사람이 신앙의 감격과 능력을 온전히 맛보지 못하는 이유는 그 사람이 이름만 신앙인인 진정한 신앙인이 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41편은 기가 막힌 절망적 상황에서도 끝까지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까닭에 최종의 승리자가 된 한 시인의 위대한 신앙고백이 나오는 시입니다.
이 시의 말씀들 가운데 5절과 11절 말씀이 그가 한 신앙고백의 핵심이 되는 말씀인데, 그중 5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이 시인의 고백처럼 낙심할 수밖에 없고 불안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 찬송을 부르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2019년 12월부터 세계는 2년 동안 세계를 강타하였던 코로나19 전염병으로 인해 많은 어려움들을 겪었습니다. 당시 코로나가 처음 나타났을 때 저에게있어 충격적인 것이 있었습니다. 의학이 큰 발전을 이루었음에도 코로나를 막지 못할 뿐만 아니라 백신이나 치료약 또한 쉽게 개발이 되지 않는것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과학발전시대, 의학발전 시대라고 하지만 코로나로 인하여서 우리나라 역시 지난 2년 동안 690,000여 명이 그 병에 걸렸고, 그중 6,300여 명이 생명을 잃었습니다.
또 많은 자영업 하시는 분들이 그 병의 확산 방지를 위해 국가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거리두기와 영업시간 제한으로 인해 사업장의 문을 닫기도 했고 문을 닫지는 않았지만 힘들게 하루 하루를 버티었습니다.아마 이러한 경험을 해보셨던 성도님들은 더욱 많이 공감하실 것 입니다.
당시 국민들 대부분도 이전에 경험해 보지 못했던 여러 가지 생활의 불편함을 크게 겪었습니다. 그리고 미래의 주역이 되어야 할 학생들은 공부에 많은 지장을 받고 있습니다. 당시 제가 청년들을 맡고 있었는데 2년제 대학을 다니는 청년들은 친구들이 누구인지를 알 지 못하고 졸업을 하는 상황도 일어났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회도 함께 사는 것을 추구하는 사회가 되기보다는 개인의 유익을 우선하는 것을 추구하는 사회가 되어 갈등과 분열의 모습을 이전보다 더 많이 보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회의 영향으로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세계에서 제일 높고 출산율은 세계에서 제일 낮습니다. 거기에다 북한의 안보위협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샌드위치와 같이 되고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오늘의 우리나라 모습과 사회 모습을 보면서 내일의 우리나라와 사회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됩니다. 사실 눈에 보이는 오늘의 모습들만 본다면 그런 부정적인 생각이 맞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입니다. 그리고 신앙인인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그 어떤 좋지 못한 상황도 능히 해결해 주시는 분입니다. 그러기에 신앙인인 우리는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 지금보다 더 크게 다가온다 할지라도, 낙심하거나 불안해하지 않고 그 모든 것을 능히 해결해 주실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나라 모든 국민들에게 하나님이 해결자이심을 선포하여 그들에게도 하나님을 소망하는 믿음을 갖게 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만,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면 얼마든지 회복될 수 있고 일어설 수 있습니다. 나라만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와 우리 가정에도 많은 문제들이 있습니다만 해결자이신 하나님께서 그 문제에 개입하시면 그 문제들은 해결됩니다. 그러기에 오늘 우리와 우리나라와 가정은 도움이시고 해결자이신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이것이 지혜이고 능력입니다. 오늘 읽은 말씀에는 우리가 암울한 현실에서도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할 이유 세 가지가 나옵니다. 그 이유들이 무엇입니까?
1. 하나님이 살아 계시기 때문입니다.
2절 말씀입니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시인은 이 말씀에서 자신의 영혼이 하나님을 갈망한다고 하면서 그 하나님을 살아 계시는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살아 계시는 하나님!”
이 살아 계시는 하나님이라는 말씀에는 두 가지 뜻이 담겨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가짜 신이 아닌 참 신이라는 뜻이고, 둘째는 하나님이 역사를 친히 주관하시는 신이라는 뜻입니다. 분명 하나님은 창세 전부터 스스로 계신 참신이시고, 지금도 살아계신 참신이십니다. 그리고 영원 전부터 다스려 오신 온 우주와 역사를 오늘에도 다스리고 계시며 영원토록 주관하실 분이십니다.
오늘 본문의 시를 쓴 시인에게 바로 그런 살아계신 하나님, 즉 참 신이시고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낙망하고 불안해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낙심치 않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은혜를 갈망했습니다. 그런데 상황이 바꿔지지 않습니다. 그대로 입니다. 아니 더 심해집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그를 조롱합니다. ‘네가 믿는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나님이 가짜 아니냐 그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조롱의 소리에도 그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누가 뭐라해도 하나님이 살아 계신 것이 틀림없는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아직 기도 응답을 받지 못했고, 사람들의 조롱을 받으면서도 하나님을 향한 시선을 옮기지 않고 하나님께 소망을 둡니다. 그리고 얼마 후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 그 절망적 상황을 극복하고 이 시를 씁니다.
그렇습니다. 그 누가 뭐라 해도, 그리고 그 어떤 상황이 벌어졌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그리고 역사를 주관하시며 오늘도 하나님의 자녀인 여러분을 위해 일하고 계십니다. 그러기에 여러분에게 염려와 불안과 걱정이 몰려올 때, 지금도 살아계시고 지금도 여러분을 위해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믿는 신앙으로 여러분은 이렇게 외쳐야 합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는데 왜 염려하는가!” “하나님이 역사를 주관하시는데 왜 불안해 하는가!” “하나님이 나를 위해 일하시는데 왜 걱정하는가?” 그리고 용기있게 그 염려와 불안과 걱정을 물리쳐야 합니다.
이런 신앙의 고백으로 어느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사는 사람이 진정한 신앙인이고, 그 상황을 넉넉히 극복할 수 있는 신앙인입니다. 바라기는 언제나 살아계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사는 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그 어떤 상황도 넉넉히 극복하며 사는 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이 반석이시기 때문입니다.
9절 말씀입니다. “내 반석이신 하나님께 말하기를 어찌하여 나를 잊으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압제로 말미암아 슬프게 다니나이까 하리로다.” 이 말씀은 시인이 원수의 압제로 말미암아 도망이나 다녀야 하는 기가 막힌 상황을 자신이 겪고 있음을 토로하면서 하나님의 도움을 간구하는 기도입니다. 그런데 그 기도의 첫머리에서 그는 하나님을 이렇게 부릅니다. “내 반석이신 하나님!” 하나님이 자신의 반석이라는 고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그에게는 하나님이 자기 인생의 반석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사실 이 믿음은 인생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믿음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반석이 되어 주시는 인생만큼 튼튼하게 세워질 인생이 없는데, 하나님은 믿음대로 역사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미국 뉴욕의 맨하탄에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위시해서 라디오 시티 빌딩, UN 빌딩, 크라이슬러 빌딩, 그리고 911테러에 의해 무너진 후 다시 세운 세계무역센터 빌딩과 같은 초고층 빌딩들이 많이 세워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맨하탄은 지금은 다리로 연결되어 육지가 되어 있지만 본래는 배를 타야 들어갈 수 있었던 작은 섬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작은 섬이었던 맨하탄에 초고층 건물들이 그렇게 많이 세워질 수 있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요? 여러 이유들이 있습니다만 그 이유들 가운데 가장 기본이 되는 이유는 맨하탄의 지반이 모래땅이나 갯벌땅이 아닌 거대한 바위덩어리였기 때문입니다. 즉 지반이 반석이었기에 그렇게 많은 건물들을 그렇게 높이 지을 수 있었다 그 말입니다. 그래서 그 곳에 세워진 그 높은 건물들이 흔들리지 않고 지금도 굳게 서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건물은 기초가 중요합니다. 건물만 그렇습니까? 아닙니다. 나라도 그렇고, 사회도 그렇고, 가정도 그렇고, 인생도 그렇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의 시를 쓴 시인도 자기 인생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기초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기 인생의 진정한 기초는 역사를 다스리시고 인생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되셔야 한다는 사실도 분명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자기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친히 자기 인생의 기초, 즉 반석이 되어 주셨다는 사실도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동안 자신을 도와주었던 모든 것들이 다 사라져 인생이 뿌리째 흔들리는 상황에서도, 그리고 자신이 힘있게 그동안 달렸었던 모든 길들이 다 막혀 인생의 미래가 어둡게 된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자기 인생의 반석이신데 그 누가 나를 넘어뜨릴 수 있겠느냐 하면서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습니다. 그리고 그 소망으로 그 기가 막힌 상황을 뛰어넘었습니다.
하나님이 반석이 되어 주신 인생이 얼마나 복된 인생인가를 삶을 통해 보여준 대표적 인물이 다윗입니다. 그는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을 것만 같았던 환난에서 벗어난 다음, 자기가 그 환난에서 벗어나 자기 인생이 굳건히 설 수 있었던 결정적이고 절대적인 이유가 하나님께서 자기 인생의 반석이 되어 주셨기 때문이라고 고백합니다. 시편 18편 2절 상반절 말씀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분명 다윗의 이 고백은 하나님께서 자기 인생의 반석이 되어 자신을 붙들어 주셨기에, 그 무엇도 자신을 흔들 수 없었다는 고백입니다.
분명 우리 인생에 영원한 반석은 하나님 한 분 밖에는 없습니다 분명 하나님만이 우리 인생의 영원한 반석이 되실 수 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누가 감히 흔들 수 있습니까? 아무도 흔들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반석이 되어 주신 인생 역시 그 누구도 흔들 수 없습니다. 진정 오늘 우리는 다윗처럼 “하나님은 나의 반석이시다. 그러기에 그 어떤 것도 나를 흔들 수 없다”고 외치며 용기있게 살아야 합니다. 바라기는 하나님이 내 인생의 반석이라는 믿음 안에서 그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사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비상의 때에 오히려 하늘을 향해 비상하는 멋진 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3.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기 때문입니다.
11절 말씀입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나는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 하리로다.” 시인은 이 말씀에서 하나님을 환난을 만나 낙심 가운데 있고 불안해 하고 있는 연약한 자신에게 나타나셔서 자신을 돕는 분이라고 고백합니다.
사실 아픔과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이 그 아픔과 고통을 입으로 표현하지 않으면 보통의 사람들은 그 사람이 얼마나 큰 아픔과 고통을 겪고 있는지 쉽게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세세한 말을 듣지 않았어도 그 사람의 얼굴 표정과 숨소리만 가지고도 그 사람에게 힘든 일이 있는지 없는지, 또 얼마나 힘들어 하고 있는지 어느 정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지혜를 가진 것과 함께 그 사람을 사랑하기까지 하는 사람은, 그 사람의 그 힘든 것에 어떻게든 도움을 주기 위해 먼저 나서게 되어있습니다.
본문을 기록한 시인도 하나님을 지혜로운 분으로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지금 겪고 있는 아프고 고통스런 사연들을 하나님께 다 내어놓지 않았어도 하나님께서 이미 자신이 겪고 있는 아픔과 고통을 다 알고 계신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또 하나님을 자신을 사랑하는 분으로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이 겪고 있는 아픔과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자신을 도와주실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시인의 고백처럼 하나님은 우리가 겪고 있는 아픔과 고통을 아실 뿐만 아니라, 그 아픔과 고통에서 우리가 벗어날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의 모든 형편을 먼저 아시고 우리를 위해 도와주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께서 은혜로 열어주실 내일을 기대해야 합니다.
제임스 어윈(James Irwin)은 아폴로 15호라는 우주선을 타고 인류 역사상 네 번째로 달에 착륙했던 우주인으로, 특히 우주인 가운데 첫 번째로 달에서 차를 몰았던 사람입니다. 그는 라버(Rover)라는 차를 타고 달 표면 10km를 다니며 달을 탐사했었는데, 그렇게 달에서의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그런데 다시 우주선을 타고 지구로 귀환할 때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우주선이 지구로 내려올 때 지구 가까이에 오면 우주선은 지구의 중력 까닭에 내려오는 속도가 엄청 빨라집니다. 그래서 그 속도를 낮추기 위해 우주선은 지구와의 거리가 어느 정도 되었을 때 세 개의 낙하선을 편 후 내려오게 되어있었습니다. 그래서 어윈이 낙하선을 펼쳐야 할 지점에서 버튼을 눌렀는데, 세 개의 낙하산 중에 두 개만 펼쳐지고 하나가 펼쳐지지 않았습니다. 사고가 발생한 것입니다. 지상에 있는 우주비행본부인 나사(NASA)에 그 상황을 보고하고 지시에 따라 비상조치도 취해보았으나 낙하산은 끝내 펼쳐지지 않았습니다.
그대로 내려오면 아폴로 15호는 압력을 견디지 못해 폭발하게 됩니다. 나사에 있던 사람들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고 모두 다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어윈 역시 그 위험한 상황, 즉 아폴로 15호가 폭발하고 자신도 죽게 될 것이라는 상황을 인지했습니다. 그러나 그 때 그는 두려워하지 않고 기도합니다. “하나님! 이 연약한 인간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도움을 간구합니다. 도와주옵소서! 하나님께 맡깁니다.” 그런데 어원이 그 기도를 마치자마자 놀라운 현상이 발생합니다. 그것은 갑자기 지구에서 엄청난 회오리바람이 공중으로 솟아오른 것입니다. 그 회오리바람은 낙하산 한 개를 편 것과 같은 효과를 일으켰고, 그래서 아폴로 15호는 설계된 속도대로 지구로 내려올 수 있었습니다. 이후 복음 전도자가 된 그는 우리나라도 방문하여 그 때 일에 대해 이렇게 간증했습니다. “저는 분명 그 때 그 일은 하나님께서 저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늘과 땅과 바다를 진동시켜서 행하신 일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렇게 어윈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를 도와주신 하나님은 오늘에 저와 여러분의 기도도 들으시고 도와주십니다. 그러기에 오늘 우리도 그와 같이 이렇게 외치며 살아야 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도와주신다. 그 사랑과 도움으로 나는 승리한다.”
분명 하나님은 우리를 도와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를 도와주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승리자가 되고 내일의 주인공이 됩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며 살아 도와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오늘은 물론이려니와 내일에도 받고 사는 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 계셔서 우리 곁에 계시며 우리를 위해 일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반석이 되어 우리 인생이 흔들리지 않도록 굳게 세워주십니다. 그리고 또 우리 인생이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극복할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그러기에 그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사는 것만큼 인생의 확실한 지혜는 없고 인생의 분명한 능력도 없습니다.
요즘 우리는 참 어렵고 힘든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우리 인생을 책임져 주시는 전능하신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오늘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오늘에 겪고 있는 어려운 상황도 극복할 수 있고, 어둡게만 보이던 내일도 영광의 내일로 만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