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프로그램 로고스 5월2일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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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설교 매니저 - 새문서
마태복음 7:12 NKRV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NLT)
“For this is how God loved the world: He gave his one and only Son, so that everyone who believes in him will not perish but have eternal life.
마가복음 1:14–20 NKRV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곧 그물을 버려 두고 따르니라 조금 더 가시다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보시니 그들도 배에 있어 그물을 깁는데 곧 부르시니 그 아버지 세베대를 품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 두고 예수를 따라가니라
샬롬! 반갑습니다. 오늘 화요모임에 오신 여러분들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옆 사람들과 같이 인사합시다. 사랑합시다, 성령 충만 합시다! 말씀을 찾아서 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마가복음 1장 14-20절 말씀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지난 시간 광야는 힘들고, 어려운 자리가 아니라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라고 성령께서 우리를 내몰아내신 곳입니다. 우리는 그 곳에서 길 잃은 수많은 방황하는 인생들이 길을 찾아서 그 길로 생명을 얻도록 길을 내는 자 들입니다. 광야에는 늘 시험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시험 가운데 하나님이 우리와 반드시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지난 시간 말씀을 통해 이야기 했습니다.
오늘은 마가복음 에서 교회가 이 땅에 왜 존재하게 되었는가? 에 대한 본질적 목적을 이야기 해 주고 있습니다.
자 성경을 보면 14절입니다. 요한이 잡히죠. 근데 요한의 체포와 함께 성경은 슬쩍 뭘 빗 대놓고 있는가 하면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 했습니다. 예수께서 어디에서 오셨죠? 갈릴리에 오셔서 .. 여기 갈릴리는 예수님의 평생의 사역의 현장에 가장 중요한 지역이 됩니다. 갈릴리는 ‘가불’ 이라고 불릴 만큼 쓸모없는 땅 이였습니다. 그런 동네가 갈릴리였습니다. 예수님은 일부러 여기서부터 사역을 시작하셨고, 부활 후 제자들과 어디에서 만나기로 약속하셨죠? 내가 먼저 갈릴리로 갈 것이다. 부활 후 갈릴리에서 만나기로 약속이 이루어집니다. 갈릴리는 그 만큼 성경 전체에서 예수님의 사역에 중요한 주된 무대가 되고 현장이 됩니다.
그리고 갈릴리에 오셔서 무엇을 전하시죠?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 합니다. 그냥 복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복음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에 복음이라고 해도 되는데 왜 하나님의 복음이라고 말 했을까요? 여기에 분명한 의미와 성경의 의도가 깔려져 있습니다.
이 때 복음 이라는 말은 처음부터 기독교만 쓰던 말이 아닙니다. 복음이라는 말은 사실상 로마황제의 명령이 곧 ‘복음’ 이였습니다.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적어도 복음이라고 했을 때는 황제의 명령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조금 더 깊게 들어가서 황제의 명령에는 어떤 내용이 들어가 있는가? 입니다.
로마는 온 세상에 걸쳐 전쟁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항상 이겼고 정복자가 되었어요. 그럼 반드시 그 국가 에다가 세금을 어마어마하게 부과 합니다. 그러면 그 식민지 국가 에다가 세금을 부과 하는 주된 명령은 황제로 부터 시작 되요. 그 국가 에 세금을 부과 하는 것은 로마시민들에게는 뭘 가요? 복음이에요 수입이 들어오니까 반대로 그것을 겪는 식민 국가의 입장에서는 절대 복음일 수 없죠.
로마 황제의 명령에 근거해서 펼쳐진 복음은 반쪽짜리 복음 입니다. 그것은 온 인류가 온 만민이 공감할 수 있는 복음도 안 되고 평화도 안 되었습니다. 그것은 철저히 로마 중심적 복음이었습니다. 그 황제가 전하는 명령을 로마시대의 로마사람들은 유앙겔리온 복음, 굿 뉴스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이게 세상의 복음 입니다. 오늘날에도 이지러지고 반쪽짜리 편협 된 복음이 온 천하에 우리의 귀를 속이고 있습니다. 이때 예수그리스도께서 전한 복음은 무슨 복음이에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에요. 만민에게 전해지는 복음이에요. 만민에게 구원의 소식을 전하는 복음이에요. 믿습니까? 그래서 그냥 복음이 아니라 오늘 성경에는 정확하게 하나님 나라의 복음, 하나님의 복음 을 전파하여 여기 전파 하다. 라는 말은 사실 설교하다, 캐롯소 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가르치고 설교하기 시작했다 그 말 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가르침에 주된 내용은 무엇이었다는 얘기 입니까? 바로 하나님 나라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오늘날 성경을 가르치고, 설교 속에 던져지는 주된 메세지는 하나님의 나라라는 주제가 빠져서는 그건 옳은 설교라고 할 수 없습니다. 모든 설교가 하나님 나라에 대한 말씀이어야 합니다. 세상에서는 듣지 못 했던 것, 세상에서는 경험하지 못했던 것, 세상에서는 말하지 않는 것 그게 머에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에요.
오늘 CCC가 이 하나님 나라의 복음에 대해서 새롭게 증언자가 되고, 선포자가 되는 곳이 될 수 있기를 여러분들이 계속 기도해 줘야 됩니다. 주님은 그렇게 그의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자 그 다음에 성경을 보겠습니다 15절, 때가 찻다, 카이로스 라는 말을 썼는데 이건 무슨 시간인줄 아시죠? 이것은 물리적 시간을 이야기 하는게 아닙니다. 단순히 흘러가는 시간이 아니라 어떤 의도 되고 계획된 결정적인 시간을 의미 합니다. 갈라디아서 4장 4절 같이 읽겠습니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이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여자의 몸에서 나게 하신 것은 뭐때문에 나게 하셨다고요? 때가 차매 하나님의 계획된 어떤 결정적 시간이 와서 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때가 차매 라는 말이 뭘까요? 이 때는 온 세상이 절망에 빠져 있었어요. 경제적으로도 희망이 없었고, 정치적으로도 기댈 곳이 없었고, 종교적으로도 절망 스러운 시대였어요. 그리고 온 천하 백성은 로마라는 강력한 국가 밑에 힘의 물리적인 지배아래서 깊은 탄식을 터트리며 신음 속에 있을 때입니다.
그리고 온 백성들의 마음속에는 이 때문에 더 지독 스럽게 주님이 언제 오실까? 주님 오실 날 만 대망하여 기다리고 있었어요. 이 때야 말로 가장 예수그리스도의 오심, 메시아 대망 사상이 절정에 달할 때 입니다. 왜요? 그 분 만이 오셔서 이 어려움을 해결해 줄 수 있고 구원해 줄 수 있다는 믿음과 소망 때문입니다. 바로 그 때가 찼다 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원리로 지금 이 시대를 보면 정말 주님이 다시 오실 시간이 가까워 진 것 같아요. 저는 확실히 믿습니다. 주님 다시 오실 시간이 정말 가까워 왔어요. 이 주변의 징조를 보면 성경에서 주님이 예고 해 주셨고 사인을 주셨던 모든 징조와 징후들이 도처에서 보여 지고 만져지고 있어요. 그것은 단순히 육감과 감정과 감성의 문제를 뛰어 넘어서 성경이 이 시대의 징조를 정확하게 설명한 내용들이 세계 도처에서 근대사에 펼쳐지고 나타나고 있어요. 정말 그 때가 찼어요. 그래서 우리 한의대 C 맨 여러분들은 다시 오실 그 시간에 집중해야 됩니다. 신랑이 다시 오신다는 그 정점을 향해서 우리의 인생의 모든 타임 스케줄을 이제는 맞추고 조여서 우리의 온 인생을 드리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 떠나야 됩니다. 가서 다급한 마음으로 죽어가는 영혼들을 향해서 주의 복음을 절실한 마음으로 절벽 벼량 끝에 서있는 그를 붙들고 그리로 가면 죽어!!! 소리를 질러야 되요 내가 무슨 내용을 전할 방법을 모르겠거든 소리라도 질러야 되요. 당신 그리로 가면 죽어 소리라도 질러야 되요. 내가 어찌 할 줄 모르겠거든 소리라도 질러야 되요. 지금 이 시대를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많이 듭니다. 오늘 우리가 있는 학과와 캠퍼스 속에 때가 찼다는 말로 들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15절 성경을 좀 더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사실은 이 시제를 보면 과거 완료 형으로 쓰여져 있어요. 근데 이 과거 완료형이 아직도 끝나지 않은 미완료로 이중적으로 쓰여 집니다. 왜 그럴가요 ?
언제나 하나님의 나라는 그 나라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는 과거완료이지만 아직도 받아들이지 않은 백성들에게는 미완료에요 맞죠? 미완료에요. 아직도 하나님의 나라가 그 인생 속에 미완료 형으로 진행되고 있는 심령들이 도처에 깔려 있단 말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뭐하고?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여러분 오늘 이 시대는 복음이 너무 물렁해 졌어요. 너무 복음이 나이롱이 되었어요. 나이롱.. 왔다갔다 하는 신자를 나이롱 신자라고 하죠. 자기 편리하게 신앙생활하던 사람들을 나이롱 신자라고 합니다. 오늘 어느 교회에 가던지 교회가 지천에 깔렸는데 설교시간에 목사님이 회개해야 됩니다. 이런 설교만 하면 누가 이 자리에 앉아 있겠어요? 교회가 여기 밖에 없나? 지천에 깔려 있는데? 다른 교회로 가지 그래서 오늘날 한국교회에 사라진게 있어요 바로 권징 이 사라졌어요. 권징이란 말은 착한 일을 권하고, 악한 일을 징계한 다는 뜻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교회에게 주신 권리이자 법도입니다.
여러분 교회가 크게 4가지 속성을 유지해야 되는데 그 중에 하나가 거룩성 입니다. 성결성 입니다. 근데 거룩과 성결성이 사라졌어요. 왜그럴까요? 교회 안에 불의와 잘못에 대한 권징이 함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한국교회 신앙 1세대들 만 해도 예수 안 믿는 집안과 결혼하면 성찬을 금하는 수찬정지를 당했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몸으로 성찬예식에 참여하는 성찬 예식에 참여 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 수찬정지 라고 합니다. 이 수찬정지의 징계를 받은 자는 자숙하고, 잘못을 뉘우쳤고 교회는 징계의 기간이 끝나면 이전의 권리를 회복시켜 주고 교회의 일원으로 다시 따뜻하게 품어주었습니다.
그때는 교회에서 허락한 그 권징을 그대로 다 받았어요. 그런데 이제 오늘날 회개의 복음이 사라지고 여러분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좋은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여러분 예수를 믿으면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육체가 강건하여 집니다. 이런 복음을 전하면 과연 기독교가 갖는 핵심가치 일가.. 그렇지 않습니다. 항상 예수님은 사랑하는 제자들과 따라올 우리들에게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우리가 그 분의 신부가 되고 그 분의 신부로 이 땅을 걷기로 작정한 순간 수많은 불이익과 고난과 역경이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암시 하고 있어요. 회개의 복음 … 이것이 주님이 설파하시며 외쳤던 첫 번째 복음의 내용이었습니다. 회개하라, 회개하라..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자 그다음 성경을 봅시다 16절-20절
자 이제 우리는 14절에서 부터 시작된 15절 까지의 짧은 앞 구절에서 예수님이 이 땅에 왜오셨고, 세례요한은 그 예수님을 왜 오실길을 준비하고 비참한 죽음을 맞게 되는가? 즉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오셨어요.
근데 하나님의 영원한 수단은 영원한 방법은 뭐죠 항상 사람을 통해서 일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해도 달고, 별도 달고, 천지를 지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근데 그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고 이루어 나가는데 항상 하나님이 쓰신 방법이 사람을 준비하여 사람을 통해 하신 겁니다. 그래서 제일 먼저 누구를 부르십니까? 교회에 기초를 삼으실 12제자를 부르는 거에요.
여기에서 12제자를 부르기 시작하는 것은 이 12사도를 통해서 뭘 이 땅에 설립하시기 때문입니까? 교회를 기초를 놓기 위해서 에요. 그래서 성경의 사도는 단회성이에요. 오늘날 목회자는 사도적 계승자도 아니고, 후계자도 아닙니다. 사도는 예수님에게 부름 받았던 12사도로 끝났어요. 그 이후로 오늘날 목사들이 사도다 이렇게 얘기 하는 것은 잘못된 가르침 입니다. 사도는 끝났습니다. 우리는 그 사도들의 정신, 가치, 목적지 그것을 공유하여 그 뒤를 따르는 주의 종들일 뿐이에요. 사도는 예수님 시대로 끝 난거에요.
그 사도가 존재해서 감당해야 했던 역할이 뭐냐? 하나에요 이 땅에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12사도가 제자로 부름을 받는 겁니다. 그러면 이 땅에 교회가 설립된 가장 중요한 목적이 뭐에요. 복음 전파 입니다. 어떤 것도 이 복음전파의 사역을 대신할 가치는 교회에서 존재할 수 없어야 되요. 교회의 모든 우선적 가치는 선교와 복음 전파 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뭘 불렀어요. 사도를 부르고 교회를 세웠다 이 말이에요 아멘.
자 그런데 성경을 좀 볼가요. 17절 ..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이것이 문장 중간에 있는데 나를 따라오너라 할 때 이 단어가 대문자로 적혀 있어요. 헬라 문법에는 원래 대문자는 문장 시작할 때 쓰여지죠. 근데 이거는 문장 중간인데 대문자로 썼어요. 근데 언제 문장 중간인데도 불구하고 대문자로 쓰느냐 ..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를 시작할 때 문장 중간일지라도 대문자 알파벳으로 글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원문에 보면 이 대목이 정확히 대문자로 시작했어요. 그 말은 이 말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내가 너로 뭐가 되게 하리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자 여기에 우리가 이제 3가지 초점에 말씀을 나누고 오늘 말씀의 결론을 맺겠습니다.
17절.. 자 이것은 부름 이에요. 부름.. 근데 이 부름이 어디에서 일어났습니까? 어부 역할을 했던 삶의 현장에서 부름이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보통 부름을 뭐라고 그러죠? 콜링 , 소명이라고 말합니다. 소명이라는 개념이 여기에서 생겨났습니다.
보통 콜링은 소명, 또는 부름 또는 직업을 이야기 합니다. 그런데 이 어부들의 직업이 바꼈어요 안바꼈어요? 안바꼈죠? 똑같이 어부죠. 그런데 뭐가 바꼈어요? 속내용이 바뀝니다. 이들은 지금까지 뭐를 낚는 어부였죠? 고기를 낚는 어부 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 직책을 이용해서 내가 너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자 여기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중요한 과제가 하나 있습니다. 이 부름이 삶의 현장에서 일어났다는 거에요. 학교 선생님은 학교 현장에서, 방송인은 방송 현장에서 가정주부는 가정 현장에서 뭐가 일어났다고요? 부름이 일어났다구요. 이 말은 곧 무슨 말이냐면 방송일 그만 두고, 주부 다 때려 치고 나서자! 더더욱 이 얘기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바로 그 삶의 자리가 무엇이어야 한다는 말입니까? 새로운 소명의 현장이 되어야 한다는 거에요. 그것이 삶의 현장에서 콜링이 일어났어요.
저는 그래서 가끔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자기가 복음 전하는 일을 하고 싶은데 어떤 것을 통해서 할지를 잘 모르겠다고 질문을 합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이야기를 하죠. 하나님은 너를 한 번도 경험하지 않은 곳으로 부르지 않으신다. 지금은 먼저 니가 있는 그 현장에서 복음 전하는 하나님의 일을 시작하십시오. 그 현장에서 사람을 낚는 어부로 살아갈 때 그 다음은 또 하나님이 인도하신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 부름의 현장이 삶의 자리에요.
이렇게 부름을 받은 자는 어떤 현상이 일어납니까? 18절.. 곧 그물을 버려두고 따르니라, 이제 여기에 이 사도들은 이 제자들은 사도로서 부름을 받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 그물을 버리는 과정을 겪어내야 됩니다. 이것은 어떤 속뜻이 여기에 담겨 있는가 하면 부름을 받는 자는 버려야 되요. 버리지 않고 부름에 따를 수 없습니다. 반드시 포기해야 됩니다.
다니엘서를 보면 다니엘이 뭘하죠? 뜻을 정하여 뜻을 정할 때.. 뜻을 정한다는 것은 뭘 전제 한다고요? 포기 해야되는 것을 전제한다고요. 뜻을 정하는 자는 내려나야 될 것이 분명이 있습니다. 그것을 움켜지고 뜻을 정하고 따를 수는 없어요. 그래서 사도바울이 제일 즐겨 썼던 표현 하다가 쫓아 가노라, 달려 가노라 .. 더 좋은 것을 위해서 덜 한 이익을 내려놓는다는 말입니다.
근데 이 싸움이 놀랍게도 우리 일상 속에 매일 반복된단 겁니다. 우리는 항상 무슨 싸움인가 하면 더 좋은 가치를 위해서 덜한 가치를 계속 포기하는 싸움이에요.
이게 매일 매일 우리 현실에서 일어나요. 더 좋은 가치, 영원한 가치가 뭘 까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가치에요. 이 가치를 위해서 이 땅에 소멸되어질 없어질 사소한 이익들을 내려놓는다는.. 매일 매일 이 싸움은 우리 일상 속에 임합니다. 아마 매일 매일 이 갈등이 계속 쑤시고 들어 올 거에요. 이게 전쟁이죠 계속 내려놓는 싸움이에요. 양쪽을 다 움켜지고 쫓아 갈 수는 없어요. 부름에 응할 수는 없습니다.
생명을 살리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이 일이 다른 어떤 일 보다 귀하고, 가치 있게 여기는 여러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이들이 어떻게 되는가 보십시다. 19절,20절..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는 무슨 관계죠? 성경에 성경에서 나타난 용어를 빌려 쓰자면 하나님과 우리 사이는 무슨 관계죠? 언약 관계 입니다. 그런데 성경 다 뒤져 보세요. 하나님은 절대 종과 언약 하지 않습니다. 누구와 언약합니까? 자기백성, 자기자녀와 언약해요. 근데 성경에 나타난 히브리어로 베리트 라는 언약은 사실상 일방적인 언약입니다. 왜 상대가 이 언약을 지켜낼 실력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한 가지 원칙이 종과는 언약 하질 않아요. 종은 부리고 , 소유하고, 시키면 되기 때문에 언약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늘 뭐라고 불러주시죠? 언약백성이라고 불러주세요. 그 말은 무슨 말입니까? 우리를 하나님이 부르시고 소명을 주시고 일을 시키되 우리를 기계처럼, 우격다짐으로 그의 힘으로 일시키지 않는다 그 말이에요.
계약이라는 것은 대등한 관계에서 하는 것 입니다 맞죠? 계약은 대등한 관계에서 해요. 이 자체가 감격이에요. 근데 사실은 우리가 하나님과 대등할 수 가 없잖아요.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다가와 해주신 계약은 베리트 라는 계약이에요.
그 말은 일방적인 계약이에요. 아들을 내놓으시고 죽이셔서 아들의 죽음을 걸고 우리에게 약속을 하셨다구요. 너희는 틀림없이 내 백성이고 내 자녀인데 내가 너희와 계약하겠다. 근데 저쪽이 계약을 이행할 실력이 안 되어서 반드시 이 계약은 망가지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 해요 하나님이 이 계약이 안 될 것을 뻔히 알고도 계약을 해요. 그런데 계약이 깨지지 않아요 누구 때문에? 그리스도 때문에.. 그래서 그 아드님의 목숨을 담보로 우리와 사랑의 언약을 하시는 거라구요.
하나님이 우리를 생각하시는 것이 그렇게 우리를 대등한 인격자로 대우하시고 부르시고 사역을 감당케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성도의 삶은 제일 밑바닥에 깔린 기초가 사랑해서 하는 겁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실수와 실패가 없었습니까? 아닙니다. 그런데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그 분이 신실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분의 사랑은 끝까지 감당해 주시는 사랑이에요. 아들을 걸고 하시는 사랑이에요. 그 사랑 안에 저와 여러분들이 머물러 있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신실하세요 믿습니까?
이제는 우리가 율법적인 따름과 부담과 위험을 안고 가는 따름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그 분을 사랑해서 선교를 떠나고, 사랑해서 순종을 하고 헌신을 할 수 있는 계약 관계의 상대라는 것을 기억하고, 우리는 예수그리스도께서 그 계약을 완성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하여 우리를 부르신 학과, 한의대 캠퍼스 그 자리에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순장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축복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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